* 윌버업따 찾지마랏
별 같은 건 먹을 수 없습니다.
: 어쩌면 일어날 법한 이야기. (8)
검은 도화지 위에, 마치 보석을 박아놓은 듯한 하늘의 별빛, 그 별빛을 지나는 휘황찬란한 은하수.
달에 처음 착륙했다던 아폴로11호가 본 풍경은 이런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오로라를 처음 본 인간이 이곳의 풍경을 다시 본다면 똑같은 생각을 할까?
무슨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그런 경외감은 아무 쓸모없는 것이었다.
밤하늘의 별을 세고 어떤 별인지 연구하고 기록하는 것 보다,
어떻게 하면 침식체를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처치 할 수 있는 가에 대한 고찰이 더 중요해졌다.
그렇다. 설령 천문학자가 이곳에 온다 해도, 그 천문학자의 목숨이라도 간신히 건져서 현실로 돌아가면 다행인 곳.
이면세계의 하늘은 모두 거짓이며,
저 하늘의 거짓된 별빛들은 오래 마주하면 마주할수록 서서히 말라가며 미치게 만드는 절망의 상징이다.
그 거짓으로 가득 찬 빛의 물결과 절망스러운 별빛의 파도 아래에서, 호라이즌은 침식체의 시체에 발길질을 한 번 했다.
“......식별코드 비스트: 디자이어 타입. 역시 아니군요.”
쇠파이프를 든 호라이즌은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하늘과 지면이 맞닿은 지평선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심도의 이면세계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지독한 고요함에 호라이즌은 다시 한 번 사방을 스캔했다.
“스캔 시도 501번째, 목표 적성개체 없음. 이 이상의 수색은 무의미한 것으로 판단.”
고심도 이면세계를 혼자 헤집는 것은 위험하다.
너무나도 당연한 문구지만, 호라이즌에겐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저것은 일반적으로 관측되는 고심도 이면세계에나 해당되는 이야기.
호라이즌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어쩌다 마주치는 침식체와의 교전도, 발에 치이는 이미 죽어버린 침식체의 시체도, 이미 이곳에 묻혀 망령의 물건이 되어버린 고철 덩어리들을 스캔 하는 것도.
그 무엇도, 더 이상하지 않았다.
“......”
이동과 탐색으로 전력을 소모하는 것을 막는 판단을 내리고, 말없이 지평선을 응시할 뿐.
이 말도 안 되는 풍경엔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호라이즌은 잘 알고 있었다.
“들립니까. 최고관리자.”
―――――...―――――...――――――――――――...
“여전히 먹통이군요. 절 분리수거 하려는 건 아니길 바랍니다.”
지지직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통신에 호라이즌은 불쾌하다는 듯 투덜거렸지만, 여전히 고심도 이면세계의 땅덩어리 위에 서서 자리를 지켰다.
[ System : 작전 계획서를 다시 확인합니다. ]
그도 그럴 것이 굴러다니는 아티팩트 하나 주워보겠다고 용을 쓰는 해적질이나 해보겠다고 이곳을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 불러오는 중... ]
[ 경고 : 전방 1km에 목표 적성 개체 감지. ]
“식별코드, 솔리키타티오.”
지금 호라이즌이 서있는 이곳은 저들의 왕이 지나갈 길이자 진격로.
인류에게는 최전방이자 최후의 방어선이 될 곳.
“적성개체의 이동속도로 추정. 교전 가능 거리 진입까지 예상 시간 3분.”
그 인류의 방어선 위에는 기계 하나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홀로 서있는 호라이즌은 꽤 결연한 표정으로 적성개체가 다가오고 있는 지평선을 보고 있었다.
“교전 가능 거리에 진입. 하지만 대기상태를 유지하겠습니다.”
지성을 가진 침식체는 무작정 달려드는 침식체보다도 두려운 존재다.
아직까지는 작전 계획서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는 시작이었으나, 저들이 아닌 저 개체 하나만 나타난 것에 대해 끝없이 연산했다.
“교전 예상 중인 개체가 당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솔리키타티오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쇠파이프를 잡은 호라이즌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냉각기가 돌아간다. 아주 빠르게 돌아간다. 연산회로도 다시 한 번 작전계획을 검토한다.
아직 저 개체 하나만 나타난다는 건, 게임의 제약을 어디까지 받고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미물의 손에서 태어나 미물의 흉내를 내는 어리석은 새여. 너는 이 곳에 서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인가. 참으로 가엾도다.”
솔리키타티오의 첫마디는 비웃음이었다. 가엾다고 말하는 그 입이 찢어질 기세로 입꼬리가 치솟아 있었다.
그러나 호라이즌은 동요하지 않았다. 쇠파이프 하나를 꾹 쥔 채, 자신을 비웃는 솔리키타티오를 응시할 뿐이었다.
“하늘을 날던 새가 땅을 기고, 두 다리로 걷는 미물을 흉내 내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도다. 이는 천 번 태어나서 만 번 부서질 죄악이요, 불경하기 짝이 없나, 왕께서는 이를 가엾게 여겨 네게 자비를 베풀어 이곳을 미물의 걸음걸이로 벗어나는 것을 허락하셨노라.”
이는 그들의 왕이 보내는 경고이자, 그들의 자만이었다.
호라이즌은 똑같이 비웃음으로 맞받아쳤다.
“할 말은 그게 끝입니까? 시시하군요.”
“왕께서 걸음 하실 길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면, 나는 땅을 기는 새의 날개를 떼어낼지어니.”
솔리키타티오가 두 손을 들었다. 마치 지휘자처럼 두 손으로 허공을 천천히 두드리자, 호라이즌의 연산 회로에서 경고가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허망하고도 텅 빈 대지 위에 계속해서 무언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호라이즌의 시각회로는 솟아오르는 모든 것을 쫓으며 식별코드를 잡아냈다.
[ 경고 : 적성개체 식별코드 ]
[ 전방 솔리키타티오, 밀레스, 란케아리이, 노빌리스 ]
[ 좌측 라크리모수스, 유스티티아, 페레그리나리… ]
“세는 게 무의미하군요.”
호라이즌은 계속해서 시야에 나타나는 적들과 그 적들의 식별코드소리를 들으며, 쇠파이프를 내려놓았다. 맑은 깡- 소리는 계속해서 나타는 적의 웃음소리와 절규소리에 묻혔다.
[ System : 호라이즌 인게이지… ]
눈을 감은 호라이즌이 몸을 숙였다. 호라이즌의 푸른 머리카락에서는 영롱한 빛이 나고, 키이잉- 하는 소리가 자매라는 이름의 적들의 울음소리를 밀어냈다.
“기동 목적은 인류 수호.”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으로 호라이즌은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빼어난 바디슈트는 순백의 여신으로 보이게 하며, 거대한 엘부르즈는 호라이즌을 전장에서 더 빛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러나, 솔리키타티오는 여전히 비웃었다.
“한낱 미물들의 오만함까지 흉내 내는 것인가, 추락해버린 새여... 겉을 아무리 과거의 명성으로 장식한다 한들, 미물들의 손에 태어난 버러지. 왕이 행차하실 길을 가로막은 대가로 너는 내가 몸소 가장 고통스러운 천만 번의 재조립을 경험하게 하겠노라.”
“제게 통각 모듈은 장착되어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가하는 위협은 제게 아무 공포감도 심어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나는 위대하신 마왕, 타기리온의 명을 받드는 첫 번째 사도이며, 네가 흉내 내는 미물들이 5종이라고 칭하는 절대적인 존재다. 나의 자매들 또한 내 힘에 비견하지는 못하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니라... 깨닫지 못하고, 네 하찮은 날개의 힘을 믿고 패악을 저지르려는 것이냐.”
“착각하고 있군요. 솔리키타티오. 저는 새가 아니고, 기계입니다. 그리고 기계는 연산모듈은 냉혹하죠. 자만이라는 단어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호라이즌은 그 말을 끝으로 솔리키타티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비웃음으로 계속 일관한 솔리키타티오의 표정이 제법 일그러지고, 몸을 돌려 자매들을 살폈다.
그 몸짓 한 번에 이미 자신의 자매 둘이 엘브루즈의 대검에 목이 날아갔다. 참혹하게 떨어져나간 머리가 땅위를 구르고, 구르는 머리를 보는 찰나에도 엘브루즈는 멈추지 않고, 솔리키타티오의 자매들을 계속해서 베어나갔다.
“놓치지 않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호라이즌은 하늘을 날았다.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하며 정확하고, 신속하게 자매들의 머리를 노렸다.
절망으로 첨칠된 밤하늘 아래, 별빛이 계속해서 추악한 괴물들을 참수했다. 별빛이 꽂는 대검은 땅을 가를 것처럼, 강한 힘으로 목을 베고, 충격파를 가했다.
“불경하도다...!”
솔리키타티오가 두 손을 모아 하늘로 올리자 클리파의 힘이 솟아올랐다. 은하수가 끝없는 암흑물질에 덮이고, 목이 날아가 쓰러진 자매들은 심장부에서 혐오스러운 종양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오만한자에게 절망이라는 천벌을 선사하겠노라...”
자매들의 잘린 목에서 머리가 자라나고, 구더기처럼 꿈틀거렸다. 호라이즌은 놓치지 않고, 딥웹에서나 볼법한 구역질이 나는 장면을 스캔했다.
“싸구려 복제품 답군요.”
머리가 약점이 아니다. 종양이 자라나는 심장부를 노린다.
호라이즌의 연산회로는 가능성을 보고 있었으나, 시무르그 실루엣은 달랐다.
엘부르즈의 총탄으로 충분히 뚫을 수 있겠으나, 문제는 시간.
불경한 저 새의 날개를 잘라서―
왕께서 행차하는 길을 깨끗이 닦으리...
제정신을 차린 솔리키타티오의 자매들이 호라이즌에게 정체불명의 창을 투척하기 시작했다. 온갖 무기류를 흉내 낸 듯 창만이 아닌 화살, 단검, 개중엔 십자가도 호라이즌에게 맹공격을 가했다.
시무르그 실루엣만으로는 저들의 탄막공세를 막을 수는 있으나, 심장을 뚫을 순 없다.
냉철한 연산모듈은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통신 채널을 열었다.
[ 긴급 요청 ]
[ 가용 가능한 모든 개체 응답 바랍니다. ]
“나의 자매들이여. 저 새의 날개를 꺾고, 목을 비틀어. 왕의 제물로 바쳐라.”
[ 전황 전송 완료. 모든 개체의 승인 확인. ]
하늘을 날며 맹공격을 피하던 호라이즌은 역장을 개시했다. 거대한 역장은 자매들의 공격을 모두 튕겨내고, 호라이즌은 반격이 아니라 다른 것을 준비했다.
호라이즌이 양팔을 벌리자 시무르그의 팔이 옆으로 뻗어나가고, 시무르그가 쥔 대검의 날이 살벌하게 빛났다.
솔리키타티오는 호라이즌의 출력에 대비하기위해, 공격을 하던 자매들을 제지하고, 한곳으로 모았다. 그 모습은 추악하고 잔혹하나 직격타를 막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었다.
“어리석구나, 하늘을 나는 새여...”
호라이즌은 개의치 않고,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교차한 호라이즌의 손을 따라, 엘브루즈의 대검도 X자로 교차한다.
[ 프로토콜: Star-light에 따라 전 기체 해당 좌표로 공간 도약 개시. ]
코드 발동과 동시에 엘부르즈의 팔이 교차하여 허공을 빠르게 갈랐다. 자매들이 울부짖으니, 거대한 정체불명의 조립체들이 솟아올랐다. 철옹성 같은 벽이 계속해서 솟아오른다.
“......미물다운 생각이로구나, 허나 그만큼 우매하기 짝이 없으니.”
하지만, 그건 솔리키타티오의 착각이었다.
엘부르즈가 가른 허공이 지평선을 만들고, 갈라진 틈에서는 솔리키타티오가 감히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순백색의 장갑판과 그 소체와 어울리는 포신을 가진 양산형 아라크네들과 타이탄. 그리고, 양산이 끝난 야누스 기체도 날아와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터렛을 연상시키는 원반의 물체는 땅에 착지 하자마자 조립되어, 곧바로 올곧은 조립체를 향해 조준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호라이즌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하늘에서 내려와 땅을 찍었다. 엘브루즈가 내려찍으면서 생긴 충격과 함께, 호라이즌의 위로 새로운 공간도약 포탈이 펼쳐졌다. 그 도약 포탈에서는 호라이즌과 같이 빛나는 결전병기 두기가 튀어나와 땅으로 착지했다.
“호출신호 접수완료!”
“최강의 결전병기가 여기에 왔다네!”
시그마는 발랄한 목소리로 가볍게 자신의 홀로그램을 띄워 타이탄의 위로 올라앉았다.
이미 전황을 전달 받은 모든 기체들은 언제라도 저 길을 가로막은 자매들을 향해 화력을 집중할 준비를 끝마쳤다. 타이탄 역시 늠름한 155mm 아틀라틀 포신을 조준하고, 시그마는 웃고 있지만 결연한 눈빛으로 자신의 본체 테라브레인의 위치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위치를 조정시켰다.
자매들이 만든 조립체가 서서히 부서져 내려앉는다. 높디높은 벽이 내려갈수록, 하늘에는 양산형 야누스가, 대지에는 발리스타, 양산형 아라크네와 타이탄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선봉에는 자신이 그들의 원본이라는 듯 압도적인 크기의 타이탄, 그 위에 사뿐히 앉아있는 홀로그램 소녀 시그마가 있었다.
이 수많은 별들을 불러낸 호라이즌은 하늘위에서 조용히 솔리키타티오를 내려다보았다. 저 침식체의 표정 따위는 궁금하지 않으나, 다음 계획으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 전략이었다.
제 아무리 자신을 향해 인간을 흉내 내고 있다고 비웃어도, 인류를 대신하여 이곳에 온 기계들에겐 아무런 동요도 일으키지 못하는 비난이었다.
“의미 없는 발버둥을 하는구나, 미물의 실패작들이여... 너희들이 아무리 이곳에 모인다 한들, 재조립 될 수 없는 한 이곳에 묻혀 비참하게 죽어갈 것이다.”
“이 길은 내어주지 않겠어.”
“전 대원! 전송 받는 정보를 토대로, 적들의 심장부에 있는 코어를 파괴하는데 집중한다!”
시그마의 낮은 말소리와 타이탄의 외침에 수많은 붉은 점들이 일제히 적들의 심장부로 겨눠지기 시작했다.
그대로 당해줄 리가 없는 솔리키타티오의 손짓에 자매들이 산개하고,
밤하늘 아래, 두 창조물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
너무 길어서 쪼갰음. 10에서 끝날 듯?
좀만 쉬고 9도 업로드할 것 같네
오타나 이상한 부분 있으면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