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같은 건 먹을 수 없습니다.
: 어쩌면 일어날 법한 이야기. (7)
"레이첼, 아무래도 좀 더 있다가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 에이... 이럴 줄 알았으면 따라갈 걸! 얼마나 오래 걸려? ]
"그건 추후에 연락하겠습니다. 아직 논의해야 하는 부분이라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군요."
[ 치, 알았어! 올 때 맛있는 거랑 기념품 사서 와야해! ]
"전 놀러온 게 아닙니다만, 고려는 해보죠. 사무실을 잘 부탁합니다. 레이첼."
사무실을 잘 부탁한다는 말은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통신 너머 레이첼의 환호소리가 들려왔다.
호라이즌은 끊겠다며 쿨하게 통신을 종료했지만, 행동과는 다르게 은은한 미소를 띠웠다.
말은 고려하겠다 해놓고, 이미 레이첼에게 필요할 만한 컬러 스프레이나, 마음에 들만한 그라운드 원 기념품 샵을 찾아 메모리에 저장한지 오래였다.
“다음은...”
다음 순서를 위해 호라이즌은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
여전히 뻥-뚫려있는 사장실의 중장갑문으로 호라이즌이 걸어 들어왔다. 이미 호라이즌이 올 것을 알았는지 사장은 깡통대역이 아닌 원래의 모습으로 호라이즌을 맞이했다.
미래전략실에 다녀오겠다고 한 시그마는 사장실 한편에 있는 푹신한 소파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일부러 휴면상태로 바꾼 겁니까?”
“눈치가 빠르군, 자네의 프라이버시는 존중해 줘야지.”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군요.”
호라이즌의 쌀쌀맞은 말투는 이미 익숙해진지 오래.
사장. 아니, 관리자는 비즈니스용 미소를 띄우며 집무용 책상 자리에서 일어나, 휴면상태의 시그마가 있는 소파로 걸어갔다. 호라이즌도 따라서 시그마와 관리자의 맞은편에 있는 소파 쪽으로 걸어가 착석했다.
앉기가 무섭게, 일부러 들으라는 듯 호라이즌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계가 한숨을 내쉴 필요는 없지만 일종의 비언어적 표현이었다. 관리자는 그것을 캐치하고 서론을 꺼냈다.
“회사 구경은 그닥이었나? 자네도 한숨을 쉬는군.”
“휴먼 같은 괴짜는 평생 모를 겁니다.”
“하하,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호라이즌의 CPU온도가 올랐는지, 냉각기의 소음이 커지기 시작했다. 호라이즌은 곤히 휴면상태에 있는 시그마를 한번 흘긋 보고는 입을 열었다.
“됐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왜 저를 며칠간 그들과 동행하게 한 겁니까? 귀중한 시간을 사용한 만큼, 얼마나 가치 있는 행위인지 납득이 가도록 설명해주시죠.”
“흐음, 내 딸을 말하는 겐가?”
“모르겠다는 말투는 적당히 하시죠. 시그마를 연막 삼아 타이탄을 굳이 저에게 들이민 이유를 알고 싶군요. 스스로 인류수호에 충실한 모범적인 예시인 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만. 의도가 뭡니까? 저와 달리 타이탄은 우수한 기체, 나라 하나도 거뜬히 지키고, 양산의 혜택까지도 받는, 진화하는 우수한 강인공지능이니 배우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 한 겁니까?”
비즈니스용 미소를 거두고 말하는 호라이즌.
만약 시그마가 깨어있었다면, 호라이즌이 쏟아내는 음성에서 화가 난 듯한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관리자는 개의치 않고,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하하, 자네는 인류수호를 위해 무더기로 쏟아지는 4종도 한 번에 목을 날려버리는 결전병기 아니었나?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완벽한 호라이즌 양이 분명하네만.”
“부정, 전 최고관리자가 생각하는 것만큼, 완벽에 가까운 기계가 아닙니다. 그리고 타이탄도 저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호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군. 이야기 해줄 수 있겠는가?”
“하아, 당신의 언동에 대응하기 위한 리소스 할당량은 한정되어있습니다. 따라서, 모르는 척 물어보는 건 자제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문이 박살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겁니다.”
“하하하... 그것만은 참아주게.”
관리자는 호라이즌의 협박 아닌 협박에 항복 선언 후, 시그마의 본체인 테라브레인에 손을 옮겼다.
여전히 휴면모드임을 알리는 붉은색 LED가 점멸하고, 관리자는 호라이즌의 요구사항에 맞는 이야기를 천천히 꺼냈다.
“종을 넘어선 교감은 가능하나, 결국 그들만 통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지.”
분명 인공지능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감하고, 서로를 알아가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살아가는 시대지만... 결국 호라이즌 자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의 특징이 있는 것처럼, 인간도 인공지능의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네. 결국 자네 그 자체를 이해하고 받아주는 이는 같은 강인공지능이지.”
“하, 기계에도 그런 걸 적용하다니. 괴짜군요. 전 소꿉놀이엔 관심 없습니다.”
“소꿉놀이가 아니지만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냥 돌아가도 좋네.”
“비즈니스 관계 정도라면 생각해볼 의향은 있습니다만.”
관리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미소가 번졌다.
“맞아. 그거라네. 결국 서로를 이해하는 자들의 비즈니스.”
관리자는 흡족스럽다는 듯 박수를 한 번치고, 가벼운 손짓으로 허공에 홀로그램 화면을 띄웠다. 화면에는 ‘가제 : 결속 프로젝트’라는 문구가 띄워져 있었다.
“평범한 기계들은 가질 수 없는 감정모듈의 강력한 결속. 그리고 그 모듈만이 컨트롤 할 수 있는 소체에서 터져 나오는 압도적인 출력을 활용하고, 그에 따른 리스크를 보완한다.”
강한 확신에 찬 관리자의 주장에 호라이즌은 턱을 다리를 꼬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거창하게 말하면 대단해 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좀 더 실용적인 이야기는 없습니까?”
“하하, 부풀린 걸로 보였나? 시각자료는 가제만을 띄워서 그렇게 보이는 걸세. 나는 그렇게 무계획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서 말이야.”
”흥, 일단 제 눈에는 당신의 테라브레인 시그마에 기반한 프로토콜 업데이트 정도로 보이는군요. 썩 좋은 경험은 아닐 것 같습니다만.”
미소를 거둔 관리자가 한층 내려앉은 목소리로 홀로그램 화면을 넘겼다.
차례대로 타이탄의 소체분석 보고서와 테라브레인: 시그마 프로토콜의 일부, 그리고 콜드케이스 137번: 시무르그가 지나가고, 관리자의 손짓이 멈췄다.
“......호라이즌 양. 나는 지금 자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아주 많이 절박하고, 시간이 부족하다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네의 연산회로가 진심으로 원하길 바랐기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시간을 부었어.”
[ 클리포트 게임의 시작 조짐 ]
[ 식별코드 : 솔리키타티오, 밀레스, 란케아리이, 라크리모수스, 유스티티아… ]
[ 식별코드 ‘미니스트라’ 보다 상위 개체들로 추정 ]
멈춘 홀로그램 화면이 호라이즌 시각센서에 담기기 무섭게, 호라이즌은 주먹을 꾹 쥐었다.
그리고 그의 의중을 이제야 알아 볼 수 있었다.
여기서 쌓아올린 모든 것들은 소꿉놀이나, 나들이 따위가 아닌, 철저한 비즈니스였음을.
휴먼에게 속았다는 느낌은 오랜만에 받은 만큼 화를 낼 법도 했지만,
호라이즌은 화내거나, 욕설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강한 힘을 스노우 볼처럼 더 크게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한 전략일세. 하지만 무작정 몸집을 불리거나, 불려보겠다고 돌을 박아 넣는 방법은 위험부담이 크기 마련이지. 기억나는가? 자네의 시무르그 실루엣의 가동시간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것을.”
호라이즌이 어깨를 한번 으쓱였다.
“...흥. 드디어 제대로 된 이야기로군요. 기념비적인 비난로그는 타이탄이 아닌 당신에게 남기고 싶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일단 넘어가도록 하죠. 그보다 상당히 촌스러운 프로젝트 명이군요. 네이밍 센스가 절망적입니다.”
“호오? 그럼 세련된 이름 하나 정해주게. 호라이즌 양의 센스가 기대되는군.”
호라이즌은 마치 골똘히 생각하는 것처럼, 다리를 꼰 상태로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스카잔 주머니에 꽂은 손에 아나스타샤에게서 받은 관상용 무브먼트가 닿고, 차가운 감촉을 인식한 순간 호라이즌의 연산모듈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게 별모양이라고 약속했으니까 별이에요! 별을 먹는 거에요!’
‘낭만과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 희망, 길잡이. 다양한 의미로 소비되는 게 별이라는 단어지.’
[ 의사결정 시스템 연산 완료. ]
“프로젝트: 스타라이트(StarLight). 어떻습니까.”
“흐음? 낭만적인 표현이군. 이유가 있나?”
관리자의 패턴은 이미 꿰뚫은 지 오래였다. 호라이즌은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곧 그 화법에 걸맞은 답을 내놓았다.
“당신의 딸이나 타이탄에게 물어보십시오. 저보다 더 마음에 들어 할 겁니다.”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는군. 호라이즌 양.”
“과찬이라는 겸손함을 기대하셨다면, 유감입니다.”
“하하, 상관없으니 걱정말게. 자, 그럼 내용은 바로 전송해주겠네.”
*
처음부터 게임의 임박이라며, 시간이 없으니 만나자마자 프로젝트에 참여하라고 종용하지 못 한 데에는 전송받은 자료에서 알 수 있었다.
몇 수 앞을 읽어내어 인력을 배치하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싸워야 할지 모르는 ‘그 게임’은 호라이즌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건 아마 호라이즌의 열등감을 부추긴 환상 속의 타이탄도 해내지 못하는 일이었으리라.
호라이즌은 확신했다.
다시 한 번 코핀컴퍼니의 본사 옥상에 호라이즌이 홀로 올라왔다.
시그마와 보았던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대신, 대균열의 빛기둥이 선명하게 보이고, 그 대균열의 빛이 채 꺾지 못한 별들이 밤하늘에서 반짝였다.
호라이즌은 그 별들을 잠시 쳐다보다가, 이내 어디론가 통신을 걸었다.
“바쁩니까. 마크.”
[ 먼저 통신을 걸다니 별일이군! 여전히 그라운드원에 있나? ]
“긍정. 바쁘니 짧게 부탁하나만 하고 싶군요.”
[ 음? 다짜고짜 부탁이라니. 혹시 저번에 사양했던 네크로노미코 넨드로이드가 갖고싶어졌나? ]
“비밀친구로서의 부탁입니다.”
통신너머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급하다고 말해도 못 알아먹은 마크가 그제서야 헛기침을 했다.
[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도와주도록 하지. ]
“저는 당분간 사무실로 돌아가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 호오? 장기 출장인가? ]
“비슷합니다. 마크, 레이첼을 부탁합니다. 가능하면 제 스스로 직원을 챙기고 싶었습니다만, 어렵게 되었습니다.”
[ 음? 지금 동시에 전송되는 내용은? ]
“레이첼에게 전해주십시오. 레이첼의 신변보호에 대한 비용까지 더해서 저에게 청구하시면 됩니다. 비밀친구.”
마크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진지한 표정의 호라이즌은 마크의 웃음소리가 멈추고 대답이 오기를 기다렸다.
[ 그래, 비밀친구. 뭘 하러 가는지는 몰라도 위험수당은 꼭 챙겨달라고 하는 거 잊지 말게나! ]
마크다운 대답에 호라이즌은 조용히 피식- 웃어 보였다. 정작 통신기 너머의 마크는 모를 테지만.
“잠깐 제 본업을 잊으신 모양이군요.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선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마크.”
[ 하하하! 그렇지, 내가 잠시 잊고 있었군. 부탁한건 걱정하지 말고 조심히 다녀오게나. ]
“참, 통신 종료 전에―”
[ 음? ]
.....
얼마 지나지 않아서 통신이 종료되고, 호라이즌은 다시 한 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균열의 빛을 받아내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을 빛내는 별들을 렌즈에 담았다.
“태양빛을 반사하여 밝게 보이는 현상.”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과학적인 이론.
한계가 명확한 휴먼들의 시각능력과 달리, 우리는 이 대균열의 빛이 아무리 커져도 그 속에서 별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호라이즌 언니! 이제 조정해야해!”
휴면상태를 종료한 시그마가 호라이즌을 찾아 옥상으로 올라왔다. 호라이즌은 말없이 시그마가 있는 옥상 출구를 향해 걸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시그마.”
“으음, 모르겠어. 할아버지랑 언니는 만들어준 사람이 같아서 괜찮지만, 나는 달라서...”
“그렇군요. 예측불가로 기록해두겠습니다.”
......
프로젝트: 스타라이트(StarLight) ― 희망과 길잡이.
꿈꾸지 못하는 기계들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별빛이 가득한 밤하늘 아래를 걸어 어디론가 향했다.
+)
좀 아쉬운데 내 머리론 이게 한계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