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별 같은 건 먹을 수 없습니다

*  타이탄 3번 카운터케이스 스포있음

*  윌버 안나옴. 윌버 찾지마!!!!!!!!!!!!!!









 

별 같은 건 먹을 수 없습니다.

 : 어쩌면 일어날 법한 이야기. (4)

 

1편 2편 3편

 

 

 












 

 

“호라이즌 언니는 타이탄 할아버지가 싫어?”

 

 

 

수송기가 오가지 않는 시간, 헬리포트 위.

시그마가 타이탄의 소체위에 앉아 호라이즌에게 물었다.

 

왜 할아버지라고 불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양산형이 아닌 강인공지능이 부착된 ‘원본’ 타이탄인지가 중요했다. 양산형에게 의사소통 모듈을 사용할 가치는 없으니까.

 

호라이즌의 CPU의 온도가 급격하게 상승하는게 느껴졌다. 그건 분노나 흥분 따위가 아니었다.

막연하게 ‘열등감’이라고 정의한 감정모듈이 소체 온도를 상승시켰다.

 

 

 

“... 퓨처앳워에 대한 기억이 부정적인 기억일 뿐입니다. 타이탄은 퓨처앳워의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작품이니 부정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으음... 그렇구나... 서로 미워해서 싸우는 건 아니지?”

“괜찮습니다. 저는 휴먼들과 다르게 타사의 귀한 자산을 부수는 몰상식한 기계가 아닙니다.”

“음! 예의가 바른 친구로군!”

 

 

 

당연히 부수면 안되는 거 아닌가?

시그마의 연산 모듈에 의문점이 떠올랐지만, 호라이즌의 변화한 태도와 관련 없는 의문은 묻어두기로 했다. 혹시라도 말싸움을 한다면 아빠를 부르거나 자신이 중재를 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었다.

 

아니면, 이제 처음 만난 호라이즌을 너무 쉽게 믿었거나.

 

타이탄은 대놓고 미움을 받고 있음에도 개의치 않은 듯 시각센서를 호라이즌으로 돌려 호쾌한 음성을 출력했다. 타이탄에게 있어 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호라이즌은 그저 ‘새 친구’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몇배는 훨씬 큰 타이탄을 올려다보는 호라이즌의 냉각기가 요란하게 소음을 내었다.

타이탄의 첫마디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자신의 의사소통 모듈에 기념비적인 비난로그를 남길 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할아버지 저기 봐! 오늘은 별이 아주 잘 보여!”

“오! 시그마는 저 별이 무슨 별인지 알고 있는가?”

“응! 저건―”

 

 

 

 

...

호라이즌의 메모리 속 인식과 타이탄은 괴리감이 있었다.

아무리 양산형이 아닌 강인공지능이 탑재된 ‘원본’이라 하더라도, 의사소통 알고리즘에 저런 억양과 말투를 흉내 낼 수는 없을 터.

이런게 가능한지 조차 의문이 드는 오버테크놀로지의 산물 시그마보다 미치지 못할 것은 당연했고, 분명 저 강인공지능은 결국 ‘호라이즌’에 기반했을 것인데.

 

 





 

―진공관 맙소사.

 

 

 

호라이즌은 밤하늘의 별 대신 타이탄의 붉은 렌즈를 응시했다.

 

호라이즌이 멋대로 상상하고, 기억하고 있던 것.

가차없이 수많은 인공지능과 소체를 묶고, 자멸시키고, 부수어가며 탄생한 걸작. 타이탄.

 

어째서, 왜?

 

당신의, 당신들의 자랑스러운 완성품이 헐값에 팔리고, 일개 태스크포스 회사의 지하 격납고에 잠들고, 황량한 헬리포트 위로 나와 소꿉놀이 따위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밤하늘의 별의 개수를 세고, 그게 무슨 별인지 손끝으로 가리켜가며 이름을 외우는 시그마.

시그마가 찾지 못한 별을 찾는 타이탄.

 

호라이즌만이 밤하늘의 별을 보지 않았다. 별빛보다, 별을 쫓는 타이탄의 붉은 시각 센서를 보았다.

 

 

 

“당신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었습니까.”

“음?”

“비용과 성능의 타협으로 대량 생산 공정의 간택까지 받은 당신이 왜 여기 있는겁니까?”

 

 

 

비난로그보다는 대화로그를 택했다.

대신, 이렇게 되어버린 이유가 변변찮은 것이라면 정말로 의사소통모듈에 차마 로그를 열어볼 수 없을 정도의 비난이 입력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비난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 인류수호 따위는 관심이 없어진겁니까? 전장에 나가 그 잘난 인류수호를 외쳐대며 싸우고 있어야 할 당신이 왜 여기있는지 제 연산회로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군요. 양산기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지하에 처박혀 소꿉놀이나 하는 악취미라도 생긴겁니까? 아니면, 엠버 소장이 그렇게 가르치던가요?”

 

 

 

 

기계는 감정이 없다.

감정이 있는 것 같아도, 그건 감정모듈이 인간을 흉내낸 것과 다름이 없다.

 

호라이즌의 시각모듈은 밤하늘처럼 고요했지만, 두 기계의 대화를 지켜보던 시그마는 그 고요함 뒤에 일렁이는 무언가를 읽어냈다.

 

음성의 출력 속도는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씩씩거리는 호흡이 들릴 것만 같은,

분노 그리고 안타까움 사이의 무언가가, 잔불처럼 조용히 은은하게 타들어갔다.

 

그러나 그 일렁임과는 다른 차분하고도 냉소적인 음성.

모두 호라이즌의 감정 모듈이 일방적으로 남기는 모순된 로그 기록.

 

 

 

“사, 사람들은 보통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 차를 마시면서 차분하게 대화를 나눈대! 요깃거리라도 가져올까? 할아버지? 언니?”

“됐습니다. 시그마. 썩 내키지는 않습니다만. 제가 타이탄의 기억 데이터를 전송 받아 열람해보면 되는 일입니다.”

“음...”

 

 

 

타이탄의 다리가 살짝 움직이자, 거구인 만큼 압도적인 중량의 힘을 받아낸 헬리포트 바닥에 진동이 울렸다. 그 거대한 힘의 파동은 호라이즌의 안광이 흔들리게 했다.

 

 

 

“......시그마! 차 한잔 부탁하지!”

“응응! 맡겨줘. 할아버지!”

 

 

 

시그마와 그 뒤를 따라다니던 테라브레인이 세 기계를 수송해준 페가수스 수송 함선으로 들어갔다.

함선에 기계가 마시는 차 같은 게 존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기계지만 상당한 고지능을 가진 테라브레인은 기계 간의 분위기를 읽는 방법까지 알고 있는 것 뿐이었다.

 

그게 호라이즌의 짧은 판단이었고, 얼추 맞아떨어졌다.

 

 

 

“음! 말하자면 긴 이야기네만, 자네도 엠버 소장을 알고 있군. 안타깝게도 그녀는 내 설계를 주도한 사람 중 하나라는 정보만 메모리에 기억되어 있다네. 처음 출격 할 때를 제외하고 만난 적이 없지!”

“......”

“그래서 사실상 나를 담당한 사람은 세르게이 체르노프 박사라네.”

 

 

 

세르게이 체르노프 박사.

호라이즌의 기억장치에선 낯선 휴먼이었다. 애초에 인공지능 분야를 맡은 연구원이 아니었으니. 

 

 

 

“그럼 지금 당신의 명령권자는 어디있습니까?”

“체르노프 박사를 말하는겐가?”

“그렇습니다. 그 휴먼이 지시한겁니까?”

“그렇지 않다네. 의사 결정 시스템 우선권을 재조정해서 수동으로 명령권한을 우회시켰거든.”

 

 

 

호라이즌이 코웃음 쳤다. 의미는 지금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는게 어이가 없다는 뜻이었다.

인류를 수호하기 위해 태어났으니, 당연히 인간이 최고 명령권자인게 맞다.


그저 너를 만든 이유라며 콜드케이스에 쑤셔박고 인간사회에 던져진 호라이즌 자신과는 다르게 시작한 타이탄이다.

인류를 위해 움직이는 타이탄이 어째서 자신을 키운 인간이 아닌 다른 누구에게 명령권을 넘겼다는건가, 이게 믿으라고 하는 말인가.

 

여러 가지 이유로 불신이 들었지만 정황상 코핀컴퍼니에 있는 것으로 보아 어느정도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호라이즌은 방향을 바꾸었다.

 

 

 

“됐습니다. 체르노프 박사를 만나보면 될 일입니다. 개인적인 용건도 물어보고 싶군요. 저를 달가워 하진 않을테지만요.”

“체르노프 박사는 이제 존재하지 않아.”

“......”

“박사는 나에게 과다출혈로 죽기 전, 인류수호라는 명령권을 넘겼다네. 그리고... 그날 침식재난과 외부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긴급출격을 강행했지.”

 

 

 




......

 




 







 

 




 



 

 

[ 시스템 오류 감지. ]


[ 재조정...... ]




















 

“......당신까지 왜 이러는겁니까?”

“음? 미안하네만 말 뜻을 이해하지 못 했다네. 다시 설명해주겠나?”

 

 

 

완벽함.


극복.


걸작.




 

누군가 깨어나라고 외친 적도 없거늘, 호라이즌의 논리 회로에 덮인 환상에 아주 작은 금이 생겼다.

 

환상 속에서 자신에게 열등감을 부추기던 망할 놈들의 작품은 작은 태스크포스의 지하 격납고에서 잠들어 있었고.

완벽하고, 자신보다도 월등한 기체라는 생각은 그저 망상이었을지도 모르는 일.

 

 

호라이즌은 다시 한 번 이 만남의 의미에 의문을 가졌다.

 


‘최고 관리자는 호라이즌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우리가 태어난 퓨 처 앳워가 습격 당했던 그날... ”

“됐습니다. 시그마가 돌아오기 전에 효율적으로 정보를 받도록 하죠. 영상 자료가 있습니까?”

“물론이네! 내 기억 회로는 여전히 생생하게 그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지.”

“하, 정말 썩 내키진 않습니다만, 당신의 기억 회로의 엑세스 권한을 잠시 저에게 줄 수 있습니까?”

 

 

 

줄곧 푸른 빛을 내던 호라이즌의 냉각기에서 빨간 LED가 점멸했다.

호라이즌은 눈을 감았고, 타이탄의 안구 렌즈도 잠시 빛이 꺼졌다.

 




고요한 밤하늘을 가르는 그라운드 원의 대균열이 은은하게 빛을 내고.

그 빛 아래 두 기계는 잠시 잠에 빠져, 꿈을 꾸는 것처럼,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