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86 시리즈

시리즈의 마지막 편을 기념하여 이번 글은 수필로 작성하였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지금까지 많은 성원을 보내준 카붕이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2.0패치의 결과는 참혹했지만 게임의 수명을 완전히 끝내버릴 만큼 치명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컨텐츠를 쌓아 올릴 기반이 마련된 만큼
이미 떠나버린 유저들에 대한 아쉬움은 잠시 접어두고
새로 들어올 유저들을 위한 컨텐츠 개발에 박차를 가할 시점이었다

2.0 패치의 후폭풍에 휩쓸려버리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기회가 없었지만 ESPR은 그 자체만으로 꽤 훌륭한 시나리오였다
기어와라 냐루코 양 정도를 제외하면 크툴루 신화로 대표되는 코즈믹 호러를 제대로 표현한 서브컬쳐 물이 없던 시기에
오래된 공포는 코즈믹 호러에 금태 특유의 취향을 듬뿍 담으며
당시 스비가 시도하고자 했던 장르 결합이 어떤 결과물을 가져올수 있는지 처음으로 실증했던 수작이었다
특히나 ESPR이 기념비적인건 초기 팀업이었던 프리드웬 기관을 스토리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서비스 초창기 과금 유도용으로만 사용되는 초기 캐릭터들에게 용도를 부여하고
이후에도 클리포트 마왕과 그에 대응되는 팀업들에게 번갈아가며 스포트라이트가 돌아갈 것을 암시하며
추후 메인 스토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이벤트의 초석을 다지게 되는 시나리오였다
이후 약 한달 반가량의 없뎃 기간 끝에 스비가 가져온 것은 바캉스 이벤트였다
이벤트 시작부터 로자리아 단독 오프닝 무비로 시작된 이 야심찬 이벤트는
등장인물의 숫자만 18명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스케일을 보여준 시나리오였다
다만 자기들이 쓰고 싶은걸 쓸때는 괜찮은 결과물이 나오지만 씹덕 업계 국룰 따라가며 계절에 맞는 스토리를 내놓으면
잘 쳐줘도 평타 수준밖에 안 나온다는 스비 시나리오 팀의 고질적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시나리오였고
결과적으로 시나리오의 재미 자체보다는 아트팀이 수명 갈아 넣어가며 만든 스킨들이 하드 캐리한 이벤트가 되었다

바캉스 이벤트가 종료된 직후 스비가 야심차게 가져온 이벤트는 지금도 불후의 명작이라 칭송 받는 미로의 끝이었다
미로의 끝은 게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유저들에게 의미가 매우 큰 이벤트인데
게임 내 적으로는 비쥬얼 노벨 장르만이 가능한 연출을 십분 활용하여 카운터사이드만의 특색이 무엇인지 세상에 처음으로 내보인 기회였고
게임 외적으로는 오래기간 이어졌던 제작사의 방황의 끝을 알리며 본격적인 재투자 의지를 내비친 시도였기 때문이었다
카운터사이드가 시장에서 살아 남아야 할 이유를 정의한 이 이벤트를 기점으로 스비는 본격적으로 양질의 컨텐츠를 뽑아내게 되며
유저들은 그제서야 섭종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두고 게임과 제대로 된 애착 관계를 형성할수 있었다

3회 연속으로 대규모 이벤트를 선보이면서 스비는 내부적으로 한계에 봉착했고 잠깐 숨 고르기 이벤트를 내놓기로 결정한다
메이즈 다음으로 들고 온건 상대적으로 스케일이 아담했던 시그마: 홀로 남겨진 것인데
자기가 딸인줄 아는 미친 깡통이 주역이 되는 스토리다
시그마는 출시 직후부터 서비스 3주년을 목전에 둔 지금까지도 꾸준히 유저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캐릭터인데
이건 그녀가 작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주도적으로 관남충을 인식하고 플레이어와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설정상 이 게임의 주인공인 관남충은 머신갑이란 로봇을 전면에 내세우고 극히 소수의 인물을 제외하고는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캐릭이 없는데
시그마는 관리자가 직접 만든 컴퓨터라는 태생을 10분 활용하여 관리자(플레이어)의 존재를 인식하고 거리감을 좁히는데 거리낌이 없는 캐릭터였다
자신들이 이입해야 할 대상이었던 관남충이 철저하게 방관자로 남으며 상대적으로 스토리에서 소외될수 밖에 없던 유저들 입장에서
시그마와의 적극적인 어프로치와 상호작용은 가뭄의 단비와 같은 요소였다

또한 시그마는 오랜 고민 끝에 제작사가 제시한 차세대 메카닉 캐릭에 대한 표준이었다
결과적으로 메카닉의 탈을 쓴 미소녀가 나와버린건 아쉽게 되었지만 더 이상 현실 기갑 장비들을 트레이싱한 날림 캐릭터를 만들지 않고
메카닉의 개성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 표명이었다


다만 홀로 남겨진 것은 스토리 그 자체만 봤을때는 좋은 평을 내리기는 힘든 작품이었다
주제 의식은 좋으나 그 전달 방식이 세련되지 못하고 세계관 확장 보다는 시그마의 캐릭터성 조명에 분량이 몰려있기 때문이다
다만 낙엽 치우는 것을 업으로 삼은 청소 로봇이 주인공을 만나며 시작된 이야기가
친구의 존재를 잊었을지 언정 그가 낙엽 치우는 것을 좋아했단 사실을 잊지 못하여
해맑게 웃으며 낙엽을 치우러 가자는 시그마를 비추는 엔딩은 이 게임에서 처음으로 성공적으로 이식된 수미상관이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메이즈 이상으로 유저들의 감성을 자극했던 시나리오였다

약 3주간의 복각 기간이 지나고 할로윈 시즌을 노리고 나온 대마녀의 유산은 스비 입장에선 굉장히 야심찬 이벤트였다
그간 스비의 사업 전략은 둘중 하나였다 이벤트의 주요 BM을 캐릭터 공개 혹은 스킨 테마 홍보로 정한 뒤
전자의 경우 새로운 채용 캐릭터와 각성 캐릭터를 동시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후자의 경우 새로운 채용이 없는 대신 이미 유저들에게 낯이 익은 캐릭터들의 스킨 버전을 전면에 내세워서 장사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대마녀의 유산은 이례적이게도 각성 캐릭터의 출시와 할로윈 스킨 세트를 동시에 선보인 야심찬 시도였는데
아쉽게도 이 당시 제작 역량의 한계를 느끼면서 이후부터는 스킨 테마 홍보를 포기하고 전적으로 캐릭터 소개를 위한 시나리오를 짜기 시작한다
대마녀의 유산은 현대에서 활동하는 중세 마녀들을 다룬 판타지 테마의 시나리오였는데
마녀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살려내면서도 관리국과 관련 없는 제 3자의 시각에서 세계관을 밑바닥 부터 묘사한 첫 시나리오였다

작중에서 소개된 각성 버전 유나가 이후 꽤 오랜 시간 동안 탑 티어 캐릭으로 군림하기도 하였고
ESPR, 프리드웬 기관, 카페 스트레가 3개의 팀업이 유동적으로 상호 작용하며 본격적으로 이면세계란 컨셉을 시나리오에서 표현하며 본격적으로 시즌 2 피날레를 위한 빌드업에 들어가게 된다

2020년도의 후반기를 장식한 에피소드는 부서지지 않는 꽃이었다
이벤트의 주역을 맡은 베로니카는 게임 출시후 처음으로 나오게 된 신규 솔져 클래스였는데
이 팀업은 상당히 이른 시점인 11월달부터 PSY가 인터뷰를 통해 예고했던 조합인지라 유저층의 기대치가 상당히 높은편이었고
그 기대치를 뛰어 넘는 퀄리티로 나와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던 이벤트다

기억을 잃은 조직의 암살자가 평범한 삶을 영유하다가 과거의 업보에 발목이 잡힌다는 시나리오는 초창기 제이슨 본 시리즈가 떠오르는 플롯이었는데
특이하게도 관남충이 시나리오에 꽤 큰 영향력을 끼치며 베로니카는 나온지 얼마 안 된 캐릭터임에도 유저와 꽤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는데 성공한다

부서지지 않는 꽃의 의의는 이때 소개된 4명의 캐릭터성에 있다
이벤트 스토리에서 묘사되는 캐릭터들의 특성과 실제 인게임 묘사간의 갭이 컸기 때문에
캐릭터의 다양한 면모를 조명하는데 성공하며 팀업 전체가 이례적으로 큰 인기를 끄는데 성공하였다
본격적으로 스비가 어떻게 하면 캐릭터 팔이를 성공할수 있는지 감을 잡은 시점이었다

중간에 어설픈 BM 변화를 시도하다가 프리 2.0 시절로 되돌아갈뻔한 위기도 있긴 했으나
어떻게든 사태를 무마시키고 이후에도 크리스마스 이벤트 같은 무난한 컨텐츠를 통해 연말을 보내고
이후 2021년 2월 2일 오픈 1주년 기념 이벤트를 시작하게 된다

1주년 기념 행사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유저들과 스비에게 만감이 교차할수 밖에 없는 시기였는데
겨우 반년 전만 해도 2.0 패치를 진행하며 게임의 수명에 대한 진지한 의구심이 드는 상황에서
다소의 잡음이 있긴 했으나 그래도 어떻게든 6개월을 버티며 무탈히 서비스 1주년을 맞이한 감격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스비와 넥슨은 서비스 초창기의 실패를 만회하겠다는 듯이 대규모 예산을 투자하며 프로모션을 진행했고
수많은 뉴비들과 함께 힐데 드레스를 보고 낚인 짤쟁이들이 대거 유입되며
카사 역사상 처음으로 2차 창작 르네상스를 겪게 된다

시즌 1이 완결 되었던 20년도 5월 이후로 무려 7개월만에 새로운 메인 에피소드가 나오며 시즌2의 서막을 알렸고
아트 팀은 게임 최대 기념일을 어떻게던 흥하게 하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역대 최고 퀄리티의 스킨을 찍어냈다

특히나 편지즈리로 유명한 신지아의 스킨이 꽤 큰 화제가 되었는데
당시 커뮤에서 짤방으로 많이 유명하던 부기 영화에서도 신지아 스킨이 언급되며
게임 출시 후 처음으로 긍정적인 커뮤 바이럴의 케이스가 되었다

상업적 성과도 괄목할만한 수준이었다 항상 2000,3000을 전전하던 갤럭시 런처 유저수는 쇼케이스 직후 4000을
본격적인 이벤트 시작후 1.1만까지 급상승하였고
게임 매출은 출시 후 두번째로 매출 순위 10위권에 도달하는데 성공한다
게임 내부적으로는 계속해서 발전해왔음에도 망겜이라는 외부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하던 카사 입장에선
정말로 큰 쾌거였고 매우 짧은 기간이긴 하나 정말 오랜만에 TV 광고를 실시해보기도 한 시기였다
다만 1주년의 성공은 오래가지 못하였는데 서비스 첫 6개월을 BM 수정하는데 낭비해버린 나머지
유저들이 유입이 되었음에도 제공할수 있는 컨텐츠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였고
그나마 좋은 평가를 받던 시나리오들은 대다수가 한정 이벤트였고 외전 편입도 미비한 시점이었기에
메인스토리 6장까지 밀고 나면 할게 없다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 못한 상황이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건틀렛이 아니면 굳이 게임을 계속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하였고
유저수는 천천히 과거 수준으로 회귀하기 시작한다

물론 의의가 전혀 없던것은 아니다 우선적으로 매니아층에게만 어필 가능한 게임성이란 세간의 평가를 부수고
메이저 게임 수준으로 유저 숫자를 끌어올린 것은 괄목할만한 성과였다
비록 유저수 유지에는 실패하였지만 그건 남은 기간동안 컨텐츠를 채워넣고 한정으로 출시 되었던 이벤트들을 외전으로 편입 시키면 해결될 문제였다
게임의 잠재력이 증명된 상황이니 남은건 게임을 갈고 닦으며 주년 이벤트에 유입을 노리면 된다는 희망이 형성된 시점이었다

그렇게 해서 다사다난했던 카운터사이드의 서비스 1년차는 끝이 나게 되고 이후 게임은 적극적인 유저 확장보다는
게임 내부 정비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다만 아직 1.0 시절부터 남아있던 게임의 불합리성이 제거된게 아니었고 그로인해 지속적인 매출 압박을 받던 상황인지라
스비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BM을 개선할려다가 번번히 유저들의 반대에 부딪혀 BM 개선을 포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프리 2.0 시절 수준으로 불타오르던 시기도 있지만 다행히도 어떻게든 상황은 수습되어
큰 성장이 없더라도 유저수 자체는 평의한 수준을 유지하며 나름 콘크리트를 다져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다소의 잡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속도는 매우 느리지만 착실히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망겜의 대표 주자였던 카사는 주년 이벤트할때 찍먹하다가 컨텐츠 떨어지면 바로 본진으로 돌아가면 된다며
가끔 가긴 좋지만 오래 머물기는 애매하다는 뜻에서 여름철 휴향지 게임이란 칭호를 얻게 된다

2022년은 여러모로 카운터사이드에게 의미가 깊은 해인데
BM을 가지고 유저와 지속적으로 대립해야 했던 스비가 처음으로 큰 문제 없이 무난한 서비스를 보여준 첫 시기이기도 하였고
또한 6개월마다 로드맵을 공개하며 안정적인 개발 싸이클이 정착 되었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이벤트가 메이즈 수준으로 유저들을 매료 시킨것은 아니고
수익성도 이전에 비해 크게 나아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글로벌 서버의 성공이 금전적인 압박을 많이 줄여준 덕분인지
게임이 정체 되었다는 비판을 종종 받기는 해도 서비스 자체는 매우 무난한 퀄리티를 유지하며
분재 게임으로서 시장에서 꽤 괜찮은 영역을 구축하게 된다

그렇게 무난한 서비스가 이어지던 9월 갑자기 스튜디오 비사이드는 뜬금없이 카페를 열겠다는 공지를 올린다
이 당시에도 서브 컬쳐 시장에서 카페 콜라보가 드문 일은 아니었다
다른 종류의 이벤트에 비해 필요 비용이 적기도 하고, 유저들에게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면서
회사 입장에서도 용돈 벌이 수준으로 나쁘지 않은 기획이기에 많은 애니메이션 게임 불문하고
많은 서브컬쳐 관련 업체에게 선호도가 높던 이벤트 형식이었다

허나 스비가 제시했던건 1회성 콜라보 이벤트가 아닌 인게임 컨셉을 차용한 실제 카페였고
판교역 한 가운데에 씹덕 대상 카페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진짜로 건물을 임대한 뒤에
인테리어 공사까지 실시하며 본격적인 카페 오픈 준비에 열을 올리게 된다

일반적인 사회 통념에 비춰 봤을때 류금태는 굉장히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업가이다
중견기업은 아니더라도 휘하 직원이 100명에 달하는 중소 기업의 경영자란건 상당히 높은 사회적 지위고
특히 그의 나이가 42세란걸 고려하면 동년배들과 비교했을때 굉장히 큰 성공을 거둔거라 봐도 무방하다
일반적으로 이 정도 사회적 지위를 얻게되는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명품시계, 외제차, 골프채 같은 사치품에 눈이 돌아가기 마련인데
남들이었다면 사장님 대접 받으며 자존감 채우느라 바쁠 시기에 그는 아직도 자신이 10대 청소년인지 아는지
본인이 만든 세계관을 현실 세계에 구현하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행동이고 사실 유저들 입장에서도 쟤 왜 저러나 싶은 생각이 더 컸지만
한편으로는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도 젊은 시절의 감성을 잊지 않은체 꿈을 쫒는 그가 부럽기도 하였다
자신이 만든 세계관이 어지간히 사랑스러웠던건지 기어코 망상을 현실세계로 끄집어내며
동네방네 자랑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새 장난감을 들고 동네를 뛰어 다니는 어린 아이 같아 자연스레 쓴웃음이 지어졌다

카페 스트레가가 오픈한지 며칠 안 된 시점에 대형 소식이 전해진다
내년 2월부로 넥슨과의 퍼블리싱 계약이 종료되고 자체 서비스로 전환 된다는 소식이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2.0 패치보다 더 심각한 사안이었을텐데
예상외로 이 상황에서 스비는 AGF 참여할것을 발표하게 된다
스비 창립 이후 최초로 참여는 오프라인 이벤트였다

사실 스비 입장에서 AGF 참여는 굉장히 큰 부담일수 밖에 없었다
2022년 AGF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블루아카이브였다
부스 사이즈만 보자면 카카오게임즈가 가장 많은 투자를 했던 기업이었지만
유저 동원력과 넥슨이 부스에 투자했던 금액을 보자면 블루아카도 전혀 밀리는 구석이 없는 행사였다
블루아카이브가 당시 차지했던 면적은 독립부스 32개를 합친 사이즈였고 이는 임대료만 5600만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행사를 위해 설치한 부수기재와 부스 설비들을 고려했을때 최소 억 단위는 들어갔을텐데
그에 비해 스비가 가져온건 굿즈 몇개와 프린팅된 트럭 하나였고
블루아카이브의 1/6도 되지 않는 부스 사이즈는
역량을 인정 받아 넥슨의 자회사로 편입된 넷 게임즈와 결국 넥슨의 품을 떠나 홀로서게 된
스튜디오비사이드의 현 처지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특히나 서브컬쳐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덕후들이라면 누구나 성공한 작품을 만들기를 소망한다
블루아카이브 바로 건너편에는 디앤씨미디어의 부스가 있었고
출판 업계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그 디앤씨 조차 자기네 부스에서 블루아카이브 관련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PD를 만나기 위해 수백명 단위로 줄을 서고 수많은 알바생을 고용하며 행사를 진행하던 블루아카의 그 모습은
어쩌면 박상연을 포함한 스비 직원들이 게임을 처음 만들때 꿈꿔왔던 광경이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뻔히 비교될수 밖에 없는 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스비는 AGF 참여를 강행하였다
내부 직원을 총 동원했던건지 행사장에는 인터뷰에서 볼수 있던 낯 익은 인물들이 꽤 많이 보였는데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끌려 나와 막노동을 하는게 힘들었을텐데도
밝은 표정을 지으며 유저들을 응대하는 그들의 얼굴을 보고 만감이 교차할수 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날 보았던 풍경은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자연스레 AGF 기사를 찾아보게 되었다
박상연은 자체 서비스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AGF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밝혔는데
문득 6개월전 뜬금 없이 10주년 접속 엠블럼이 게임에 추가된게 떠올랐다
스비 직원들은 항상 말솜씨가 부족하였기에 공적인 자리에 나와 말로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기 보다는
게임내 컨텐츠로 우회적으로 자신들의 다짐을 전달하곤 하였는데
오랜 시간 엠블럼을 바라보며 이들이 어떤 생각으로 AGF에 참여 하였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날 내가 내렸던 결론은 간단했다
류금태는 42살이나 먹고도 아직도 10대 시절의 설렘을 잊지 못한 중2병 환자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중2병을 버리지 못하였기에 월 임대료가 300넘게 나가는 판교 한복판에 카페를 차렸고
박상연과 제작진은 퍼블 계약이 삐그덕 거리던 그 순간에 아무런 예고 없이 주년 엠블럼을 만들고
경쟁작들과 뻔히 비교될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쇼핑백을 바리 바리 싸들고 와 유저들에게 나눠주며
자신들의 게임을 홍보하고 있었다

개발진이 자신들의 게임에 애착을 가지지 않고 그저 사업 수단으로만 보는게 당연해진 이 시장에서
그들이 보여준 행동은 평범하진 않았지만
오히려 그 평범하지 않은 행동이 그들의 진심을 대변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보잘것 없는 중소기업이고 이제 넥슨이라는 뒷배마저 떠나며 정말로 홀로서기를 해야하는 상황에 처했지만
그래도 이들이 이 세계관에 가지고 있는 애착심과 애정은 진심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유저 이상으로 카운터사이드를 가장 각별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개발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날부터 난 게임의 수명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떨쳐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지난 주말 정말 오랜만에 쇼생크 탈출을 다시 보게 되었다
쇼생크 탈출에서 화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건 모건 프리맨이 연기한 레드라는 캐릭터인데
그는 어린날의 치기를 이기지 못하고 흉악 범죄를 저질렀다가 인생의 대부분을 철창 뒤에서 보내고 있는 남자였다
항상 가석방을 꿈꾸며 막연하게 자유를 탐하였지만 실상 속으로는 삶에 대한 의지를 포기한 상태였고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자유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는 듀프레인을 만나기 전까진
겉으로는 현실주의자의 가면을 쓴채 속으로는 비관주의와 허무주의에 속이 빠져 썩어가고 있는 사내였다

레드는 우연찮은 기회로 가석방 심사에 통과하여 꿈에 그리던 사회로 나오게 되지만
너무 오랜 시간 통제된 삶에 익숙해진 나머지 사회에서 자신의 의의를 찾는데 실패하고 진지하게 자살을 고민하게 된다
그를 구원했던 것은 우연찮은 계기로 발견하게 된 듀프레인의 편지였는데
멕시코 어딘가에 있는 그림 같은 해변에 먼저 가 있을테니 자기를 찾아오라 내용만을 보고 그는 무작정 멕시코로 떠나게 된다
이 장면에서 항상 비관주의와 현실적인 선택을 강조하던 레드가
작중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어린아이처럼 들떠있는 상태라고 표현하는데
의지할 것은 친구가 남긴 편지 한통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그는 처음으로 희망을 노래하며 뜰든 마음을 품은채 국경을 건너가게 된다

이 장면을 다시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듀프레인을 찾아 국경을 넘어가는 레드의 모습이 마치 이관을 앞에 둔 유저들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솔직해 말해서 카운터 사이드는 어디가서 갓겜이라고 자랑할만큼 잘 만든 작품은 아니다
메이저 게임이라고 하기에는 유저층도 작고, 2차 창작도 소수의 재능있는 이들에게 기대고 있을뿐
흔히 말하는 흥겜들에 비하며 초라한 수준이다
게임이 분탕 걱정 없이 안전하다고 할 수도 없다
넥슨이라는 뒷배가 떠난 이상 이제 스비는 홀로서기를 감행해야 하고
한번의 실수가 회사의 명운을 뒤흔들수 있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탐욕스럽게 매출을 노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누군가 나에게 카운터사이드가 어떤 게임이냐고 묻는다면
난 자신있게 내 추억의 한켠을 장식해준 고마운 게임이라 답할 것이다
분명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고 답답했던 순간도 많았다
가끔은 제작진의 진의가 의심되기도 하고 게임에 대한 회의감에 젖어든 순간도 있었다
지금도 게임이 재밌어서 한다기 보단 관성에 따라 게임을 킨다고 보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안 좋았던 순간 이상으로 좋은 추억이 많았기에
누구에게나 추천할수 있는 갓겜은 절대 아니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소중한 추억의 일부분을 장식한 게임이다
설령 게임이 이번 이관을 계기로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걷는다고 하더라도
게임 곳곳에 서려있는 추억이 사라지는것은 아니기에 내 기억속 카운터사이드는 계속해서 긍적적인 존재로 남아 있을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걱정 보다는 설렘이, 불안감보다는 기대가 더 크다
편지 한통에 의지하며국경을 건너가던 레드처럼 우리에게 유일하게 남은 근거는 저들이 자기 작품에 가진 애착심 단 하나지만
오히려 번듯한 말 보단 행동으로 자신들의 의지를 표명했던 이들이기에 나는 더욱 믿고 싶어진다
오랜 기간 방황도 하였고 유저들에게 많은 상처를 줬던 작품이지만 그래도 많은 착오 끝에 계속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갔고
이후로도 계속해서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나는 옆에서 지켜보고 싶다
게임에 많은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3주년 이벤트가 열리더라도 별로 바뀌는 것은 없을지 모른다
예전부터 광범위한 유저층보단 소수의 매니아들에게 더 잘 먹혀 들어가는 게임이었으니까
허나 그럼에도 나는 소망한다
레드가 자유를 찾아 떠난 멕시코에서 듀프레인과 재회 할수 있었듯이
언젠가 시간이 흘러 이 게임이 종장을 맞이할때, 그 모습이 우리 모두가 바라던 형태이길 바란다.
먼 훗날 게임의 끝이 다가와 추억의 한 조각으로만 남게 되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 보단 쓴 웃음을, 분노보단 아련함을, 안타까움 보단 그리움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추억으로 남을수 있는
개발진의 철학이 온전히 담겨 유저들의 추억 속에 스며드는 작품으로 거듭날수 있기를, 나는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