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서 기다리고있어."

마을에서 차를 타고 두 시간을 조금 넘게 왔을까.

눈을 두꺼운 안대로 뒤덮인 채 여성의 옆자리에 앉은 카카는 어떤 정보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그걸 본 여성은 카카의 안대에 천천히 손을 올려두었다.

그리고선 한숨을 작게 내쉰 그녀는 여태까지의 목소리와 큰 차이도 없이.

그저 나지막하게 읊조리듯 입을 열었다.

"조금이라도. 잠깐이라도 수상한 짓 한다는 생각이 들면 죽일 거야."

"......"

그 말에 카카는 아까 아슈토레스가 어떤 꼴이 되었는지를 떠올렸다.

어두운 뒷골목에 뿌리째 뽑힌 이와 피를 흩뿌린 채 쓰러진 모습.

사람이 맨 손으로 순식간에 해낸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든데다가 끔찍하게 잔인했던 그 광경을 떠올린 카카는 살짝 떨리는 몸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보고서도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여성은 한참이나 고른 숨을 내쉬며 고민에 빠져있었다.

여성이 손을 까딱하기만 해도 자신이 죽을 거라는 생각에 입이 바싹바싹 마른 카카는 조용히 침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잠시 후에서야 안대를 천천히 풀어준 여성은 둘만이 있는 차 안에서 카카와 눈을 마주쳤다.

갑자기 들어오는 밝은 빛에 파란색과 보라색의 눈을 동시에 찌푸린 카카는 여성의 새빨간 눈을 볼 수 있었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그 눈을 바라보고 있자 카쿠스의 빨간 눈 한 쪽이 떠오른 카카는 정신이 아찔해져왔다.

그제서야 갑작스러운 상황이 준 당혹감과 여성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걷힌 카카의 머리속으로 다른 생각들이 흘러들어왔다.

카쿠스에 대한 걱정.

자신이 낯선 마을로 왔던 이유.

두고 온 첼로가방.

그 뒤로 생각했던ㅡ

"용감하네. 낯선 곳으로 끌려와서 다른 생각할 여유도 있고."

"......"

"여기로 널 데려온 게 잘못된 선택이 아니길 바래야겠네. 내가 말해둘 건 몇 개 없어. 내 집에서는 무조건 내 말에 따를 것."

끄덕끄덕.

"아이들과 일정거리를 유지할 것. 내 남편한테서도 마찬가지야. 네가 손끝 하나만 건드리려 해도..."

"......"

거기까지만 말해도 충분히 긴장하는 카카의 모습에 여성은 더 말을 잇지 않았다.

"그것만 지키면 상관 없어. 어차피 내 감시하에 계속 있을테니까 허튼 짓은 못 하겠지."

카카는 여성이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해할 의지가 전혀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었을 뿐더러, 혹여 있다고 하더라도 카카는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런다면 카쿠스를 다시는 못 보게 되리라는 경고를 온 몸에서 보내오고 있었으니까.

"그럼 내려. 말 못 하는 것 빼곤 전부 정상이지?"

"......"

카카는 그 말에 쉽게 대답하지 못 했다.

심한 약물중독.

잠시만 혈관 안의 약이  끊겨도 몰려오는 우울감과 환상, 목소리, 기억들.

그것들 때문에 순간적으로 대답을 하지 못 하자 여성은 눈을 살짝 찌푸렸다.

"내가 널 배려해줘야 할 입장이 아니라는 건 알고있겠지."

"......"

"왜 그러는지는 알 것 같으니까 내려."

'안다...고?'

여성의 말에 의아함을 가지면서도 카카는 곧장 차에서 내렸다.

8명은 족히 탈 수 있을, 바퀴가 커다란 차에서 떨리는 몸으로 조심스레 내린 카카는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는 게 느껴졌다.

"읏...!"

타악.

반대쪽의 운전석에서 내리는 소리.

그리고 이어서 터벅거리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으면서도 카카는 몸을 움직이지 못 했다.

아니, 그보다 심하게.

아예 차에 쓰러져 기대어버린 카카의 입에서는 괴로운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아... 하아..."

'카카, 카... 배는, ... 오늘 ...'

항상 잡초가 가득했던 집.

매일같이 정원으로 나가는 걸 좋아했던 선생님.

포근하게 집을 비추어주던 햇살.

'집?'

피투성이가 된 집안.

싸늘하게 시체가 돼버린 판.

현관에 발을 디딛는 순간부터 흘러오는 피냄새.

차에서 내리자마자 흘러들어오는 기억들에 카카는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몸을 가누기는 커녕, 제정신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던 카카의 식도에서는 위산이 역류해 안쪽의 점막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조금만 정신을 놓아도 기절해버릴 것 같았던 그 때.

여성이 카카의 입에 억지로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으읍...!"

순간적으로 그녀가 아슈토레스한테 했던 것이 떠오른 카카는 공포에 사로잡혀 몸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움직이기도 전에 몸을 고정시켜버린 그녀의 손은 그대로 안까지 들어와 식도로 딱딱한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순식간의 일이었지만 잠시동안 숨이 막혔던 카카는 그대로 딱딱한 콘크리트 위로 무너지며 기침을 뱉어댔다.

"콜록, 콜록콜록! 커흑, 윽...!"

"엄살 피우지 말고 그대로 삼켜."

냉기가 퍼지듯 차갑게 퍼져오는 목소리.

따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그 목소리에 카카는 본능적으로 목에 들어온 것을 꿀꺽 삼켰다.

딱딱한 것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순간이 되어서야 뭔지도 모른 채 남이 주는 걸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너무 늦어버린 생각이었다.

공포로 이성이 마비되어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자신을 질책할 새도 없이 카카는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느꼈다.

"......"

"이제 좀 편안해졌나보네. 어서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게."

여성의 말을 들은 카카는 방금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기억들이 깨끗하게 사라진 것이 느껴졌다.

지금 자신이 쓰러져있는게 우스울 정도로 빠르게 사라져버린 기억에 잠시 당황해있던 카카는 진정된 다리를 짚고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끝없이 이어져있는 자욱한 안개.

그리고 그런 안개의 중심에 농담처럼 서있는 2층 건물과 그 앞에 있는 작은 주차장.

방금 타고 온 것을 포함해 차 두 대가 있는 것을 보고 있자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경은 다 했지. 그럼 따라와."

"......"

먼저 앞장서서 집으로 들어가는 여성의 뒤에서 카카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그녀를 따라가기만 했다.

자신이 뒤에서 뭘 해도 상관없다는듯 무방비하게 걸어가는 여성의 등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긴 카카는 문을 열어준 그녀를 따라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

"슬리퍼는 손님용으로 준비해둔 게 없어서. 내 여벌 줄 테니까 신고 들어와."

안개만 끼어있어 회색만이 떠오르던 바깥과 다르게 집 내부는 현관부터 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난방기를 가동하고 있는건지 따뜻한 공기에 하마터면 마음이 풀릴뻔한 카카는 여성이 손을 내미는 신발장을 바라보았다.

현관 한 켠에 직접 만든듯 울퉁불퉁한 부분들이 있는 목재 신발장.

그 안에는 아이들의 것으로 보이는 토끼와 강아지 그림이 들어가있는 슬리퍼와 옆에는 평범한 슬리퍼들이 보였다.

그 중에서 약간 낡은 것을 꺼낸 여성은 카카의 앞에 그걸 툭 던져주었다.

손님을 대할 태도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손님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있는 카카는 조용히 그 슬리퍼를 신었다.

여러번 사용한 흔적이 있는 슬리퍼는 조금 큰 감이 있었지만 카카의 발에 제법 잘 맞았다.

그걸 보고 자신의 슬리퍼를 꺼내신은 여성은 현관 바로 앞에 있는 계단을 가리켰다.

"저기로 올라가있어. 나는 애들 보고 갈테니까."

끄덕끄덕.

카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보지 않고 여성은 안 쪽으로 들어가버렸다.

아까 희미하게 보았던 남자와 아이들이 거기에 있을거라 생각하며 카카는 호기심을 버린채 계단을 타고 올랐다.







뇌절같은데 썼으니 올림

26일까지 매일올라갈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