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감이 잔뜩 묻어나는 그 말에 카카는 자신과 카쿠스가 어릴 적 판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래도 둘은 식사예절이 아주 훌륭한 편에 속했지만 그럼에도 판은 항상 둘의 식사를 챙겨주느라 밥때가 다 지나고 나서야 혼자 부엌에 남아 밥을 먹고는 했다.

당시에는 '왜 선생님은 같이 안 먹는 걸까.' 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판에게 그런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카카는 눈 앞에 보이는 숟가락을 도저히 집어들 수가 없었다.

꽈아아악

아무리 밀폐된 방 안이라도 입술을 무는 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걸 느낀 여성은 다시 한 번 카카를 흘끗 쳐다보았다.

"먹기 전에 계속 써도 되고. 먹고 쓰고 반복해도 되고. 니 맘대로 해도 돼. 그 대신 내 시간을 오래 뺏지는 마."

"......"

감상적으로 변해가는 마음을 얼려주는 목소리에 카카는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녀가 말한대로 지금 당장 키보드를 다시 두들길 수도 있었지만 아침부터 제대로 먹지 못 해 굶주린 상태였던 카카는 조심스레 오무라이스를 떠먹었다.

"......"

=*=

기절을 한 후 카카가 깨어난 곳은 의외로 평범한 방이었다.

침대가 하나.

책상이 하나.

의자가 하나.

작은 창문이 하나.

커다란 문이 하나.

흰 셔츠와 검은 바지만 걸려있는 옷걸이가 하나.

그 광경을 둘러보며 눈을 깜빡이던 카카는 곧 방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을 움츠렸다.

[이제야 일어난거야? 참내, 게을러터져서는.]

"누, 누구야?"

[누구고 나발이고. 정신 차렸으면 거기 있는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기나 해. 아, 책상 위에 있는 약도 먹고. 안 먹으면 죽어.]

"자, 잠깐만! 아직 물어볼 게..."

하며 카카는 혼비백산한 얼굴로 말했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그녀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여자의 것으로 들리는 목소리가 매몰차게 대화를 끊어버리고나자 카카는 두려움이 잔뜩 깃든 눈으로 책상 위를 바라보았다.

아까는 대강 둘러보느라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 보니 작고 흰 통이 하나 있는 것을 본 카카는 조심스레 그것을 쥐어들었다.

"안 먹으면... 죽는다고...?"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카카는 손에 약통을 쥔 채 의심스러운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작은 방 안에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을 이 곳으로 납치해온 것은 누구일까.

납치한 목적은 무엇일까.

카쿠스는 무사한걸까.

"......"

카쿠스에게까지 생각이 닿자 카카는 머리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도저히 그럴 상황이 아니었지만 카카는 자신이 납치되던 때의 상황을 침착하게 떠올렸다.

처음엔 카쿠스를 노리고 있었지만 자신으로 타겟을 바꾼 사람들.

그 때문에 자신이 끌려오긴 했지만 적어도 카쿠스는 무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카쿠스도 함께 잡혀왔을 가능성까지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카카는 입술을 세게 물었다.

'카쿠스... 넌 집에 있는 거지...?'

대답이 돌아올 리 없는 질문을 마음속으로 한 카카는 가슴이 꽉 조여오는 기분이 들었다.

공포, 두려움, 불안감.

그런 감정들이 몸과 마음을 동시에 눌러오는 걸 간신히 버텨내고 있을 때.

갑자기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

원래 별다른 병이 없었던 카카는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숨을 헉 하고 들이쉬었다.

위험을 느낀 몸이 본능적으로 산소를 갈구했던 것이지만 그건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윽, 아으읏...!"

마치 머리에 무언가가 달려 눌러오는듯한 고통.

도구를 쓰는 게 아니라면 이런 고통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카카는 힘겹게 머리로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의 머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이 자신을 이토록 고통스럽게 하는지도 모른 채 초 단위로 더해지는 아픔을 고스란히 받은 카카는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철퍽!

"으읏... 으아아아아악!"

[내가 아까 약 먹으라고 하지 않았어? 그거 안 먹으면 죽는다니까?]

"허억, 허억... 끄으읏...!"

고통 속에서 들려오는 재수없는 목소리.

그 말을 따르고 싶지 않았지만 살고싶다는 본능으로 약통에서 약을 꺼낸 카카는 그것을 급하게 씹어먹었다.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지만 아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이 말끔하게 돌아온 카카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후아아... 하아, 하아..."

[그러게 내가 뭐랬어. 잘 했으니까 이제 밖으로 나와. 할 게 많으니까.]

"......"

모든 게 의심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선택지가 없었던 카카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거기에 있었던 건 세 개의 문이었다.

'여긴... 뭐하는 곳이지...?'

작은 의자 하나와 문 세 개.

그 문들의 위에 페인트를 이용해 엉망으로 써둔 글자를 본 카카는 하나씩 그것들을 읽어보았다.

"먹는 곳, 씻는 곳, 실험하는 곳...?"

[아아. 네가 오늘부터 끊임없이 왔다갔다 해야 할 곳들이야. 이제부터 방금 방이랑 거기 빼곤 갈 데도 없으니까 잘 기억해두는 게 좋을걸?]

"......"

다른 두 방은 아무래도 좋았지만 실험하는 곳 이라는 이름에 카카는 작게 소름이 돋았다.

'내 몸을 이용해서... 실험을 하는 건가...?'

일상생활에서는 커녕 뉴스도 아닌 책과 영화나 같은 매체에서나 접해본 그 단어에 카카는 긴장된 얼굴을 했다.

신체를 개조한다거나 약을 먹인다거나 일정한 생활을 반복하게 한다든가.

온갖 안 좋은 생각이 든 카카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쿠스 대신 내가 와서 다행이다.'

[응? 너 지금 안심한 거야? 아. 혹시 여동생 대신 잡혀온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

여동생이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안심이라는 생각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카카는 가슴이 쿵쾅거리고 눈이 크게 떠졌다.

그 안의 파란 두 눈동자가 떨리는 것을 본 것일까.

아까의 그 목소리는 놀리려는 의도가 다분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정곡을 찔렸나보네? 그건 그다지 중요한 거 아니긴 하지. 자, 이제 거기 실험실으로 들어가봐. 아. 내가 하라는대로 잘 안 하면 다음은 너희 가족들이야. 알지?]

가족이라는 건 자신의 어릴적 가족들일까.

아니면 지금의 가족들일까.

여동생이라는 것까지 아는 이상 후자일 것이라 생각한 카카는 두려움에 몸을 떨며 실험하는 곳이라는 글자가 적힌 방으로 들어갔다.

수술대. 약. 어두운 방. 옅은 조명. 메스. 피.

그런 것들이 있을 줄 알았던 카카의 눈 앞에 나타난 것은 의외의 광경이었다.

여태 가까이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총 한 정과 옆에 수없이 놓여져있는 탄창.

그리고 멀리 보이는 표적.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지만 사격장처럼 생긴 장소의 모습에 카카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넌 오늘부터 거기서 하루종일 총만 쏘는 거야. 어때, 재밌겠지?]

"...왜?"

[그거야 네 알 바 아니고. 내가 거기 친절하게 메뉴얼까지 준비해뒀으니까 보고 따라하기만 하면 돼.]

"......"

그 말을 들은 카카는 황당해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총이 세워져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손을 대자마자 전해져오는 차가운 철의 냉기.

동시에 사람을 죽인 도구라는 점에서 느껴지는 오묘한 감정.

처음 만져보는 것이어서인지 여러 생각이 순식간에 지나간 카카는 총이 거치되어있던 곳 옆에 있는 테이블로 시선을 옮겼다.

네모난 테이블 위에 있는 종이 한 장.

큰 글씨로 견착 방법부터 사격 방법까지 적혀져있는 것을 보았지만 총도 처음 보는 카카가 그걸 읽는다고 곧바로 사격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못 쏘고 뭐고 하는 건 상관 없으니까 그냥 하기만 해. 그리고 난 바쁘니까 그만 가볼게. 그렇다고 안 볼 건 아니니까 열심히 해~]

"......"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

이것이 어떻게 실험이 되는 것인지도 몰랐지만 총을 집어든 카카는 메뉴얼에 따라 어색하나마 견착을 해보았다.

그 뒤의 과정은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곧 카카는 첫 사격을 해 볼 수 있었다.

타앙!

"으아아악!"

하지만 아무리 메뉴얼을 잘 만들어뒀어도 중학생 여자아이가 총을 제대로 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튄 총탄에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일 정도로 엉망인 사격을 하고난 카카는 바닥에 쓰러져 가쁘게 숨을 들이쉬었다.

"하아, 하아..."

처음 해봐서일까.

가슴이 튀어나올 정도로 뛰기 시작한 카카는 놀라서 일어서지조차 못 했다.

' 내가 하라는대로 잘 안 하면 다음은 너희 가족들이야.'

"......"

몸은 계속 그렇게 앉은 채 이 행위를 그만두고 싶어했다.

그런 본능보다도 더 머리를 파고드는 아까의 그 말에 다시 일어난 카카는 다음 사격을 이어나갔다.

=*=

탕!

"......"

[이젠 하다하다 움직이는 것도 다 맞추네. 대단한데?]

"시끄러워. 이제 들어가서 잘 거야."

[마음대로 해. 아, 그리고 내일은 밖으로 나갈 거니까 알아두고.]

"...뭐?"

3년하고도 4개월, 그리고 17일.

자신이 이 곳에 갇혀있었던 기간을 순식간에 떠올린 카카는 인상을 잔뜩 쓰며 되물었다.

[내일 나갈거라니까? 어때. 오랜만에 나가는 건데 기대되지 않아?]

"...별로."

[에이. 생각했던 것보다 별로 안 좋아하네. 그럼 이건 어때? 내일부터 시키는 거 잘 하면 여동생 만나러 가게 해줄게.]

"......"

=*=

"그거. 사람 죽이는 일이었지?"

끄덕.

타닥거리는 소리마이 울려퍼지던 방 안.

낮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카카는 손을 멈추고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입을 연 여성은 카카의 옆으로 와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한 쪽은 보라색. 한 쪽은 파란색.

각자 다른 눈동자를 하고 있는 카카를 한 번 바라본 여성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빨간색 눈동자로 그녀를 마주보며 물었다.

"몇 명이나 죽였어?"

"......"

타닥, 타닥타닥.

"...좋아. 계속 써봐."

카카가 쓴 숫자를 본 여성은 다시 의자에 앉아 화면을 바라보았다.

=*=

숨을 깊게 들이쉰다.

눈을 가늘게 뜬다.

방아쇠를 당긴다.

실험실에 적혀있던 메뉴얼.

몇 번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되뇌었던 말.

타앙!

"휴우..."

[처음 치고는 잘 하는데? 어때. 사람을 표적으로 처음 총을 쏴 본 느낌이?]

"별로. 아무렇지도 않아."

[거짓말하긴. 몸이 떨리는 게 여기서도 다 보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