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 흑... 흐윽..."

"카카... 괜찮아요. 울지 마요."

판은 애써 침착한 척을 하며 차분한 목소리를 내려 했다.

하지만 자신이 들어도 심하게 떨리고 있는 목소리에 판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찌나 울었는지 두 눈이 퉁퉁 부은 채로 계속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카카의 모습에 판은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이 어른으로서 침착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생각했지만

지금의 판은 카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불안, 초조, 근심.

수술실 앞에서 도저히 떼어낼 수 없는 감정들에 짓눌린 판은 저도 모르게 카카의 작은 손을 꼬옥 잡았다.

카카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안심시켜주기 위해 하는 행동처럼 느껴졌지만 판은 그 온기에 자신이 위로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나눌 수 없는 오후의 병원.

둘은 서로의 존재에 의지하며 카쿠스의 수술이 무사히 끝나는 것을 빌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들려오지 않는 소식에 판은 점점 마음이 초조해져왔다.

혹시라도 잘못된 건 아닐까.

계속 마음속에서 올라왔지만 애써 억누르고 있던 생각이 퍼져왔지만 판은 머리를 세게저었다.

그것 때문인지 옆에 있는 카카가 놀란 것을 살짝 안아주려할 때.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수술실의 문이 열렸다.

그걸 보고 판보다도 먼저 일어선 카카는 지친 표정이 역력한 의사에게 곧장 달려갔다.

"카쿠스, 카쿠스는 어떻게 됐어요?!"

"후우... 걱정하지 마렴. 지금 막 무사히 수술을 마친 뒤니까."

그 말을 들은 카카의 커다란 두 눈은 금세 눈물로 젖어들어갔다.

그런 카카의 뒤에서 의사의 말을 들은 판은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도저히 참지 못 하고 병원바닥에 털썩 쓰러져버렸다.

"선생니임..."

"네, 카카. 들었어요. 흑, 정말 다행이에요... 정말..."

무릎이 닿기전부터 이미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는 판을 바라본 카카는 울음을 터뜨리며 그녀에게 안겼다.

얼마나 카쿠스를 걱정했던 것일까.

그동안 받았던 정신적인 피로에 카카는 그대로 판의 품에서 잠들어버렸다.

그 뒤로 집에 돌아간 카카는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카쿠스를 만나러 다시 병원으로 올 수 있었다.

카쿠스가 무사하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여전히 동생이 걱정되는지 수심 깊은 얼굴을 한 카카는 손을 꼭 잡은 채 판을 올려다보았다.

"선생님. 카쿠스... 괜찮은 거겠지...?"

"그럼요. 어제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셨잖아요. 분명 괜찮을 거예요."

"수술받는 거 많이 아프다던데... 빨리 가서 카쿠스랑 만나고싶어."

"네, 저도 그래요."

말로 전해듣긴 했지만 눈으로 카쿠스가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판은 병실로 가는 걸음을 재촉했다.

면회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 전부터 대기실 의자에 앉은 둘은 시간이 되자마자 카쿠스의 병실로 달려갔다.

"카카, 그러다가 넘어져요!"

"괜찮아!"

얼마나 마음이 급한지 판보다 앞서나간 카카는 작은 몸으로 낑낑대며 병실의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4개의 침대가 있었지만 한 곳은 비어있고 두 곳에는 어른들이 있는 것을 확인한 카카는 곧바로 카쿠스가 있는 곳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잠들어있는 카쿠스의 옆으로 다가선 카카는 동생이 숨을 내쉬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흰 환자복과 대비되는 피부는 방 안이 더워서인지 땀이 살짝 나고 있었고 작은 몸은 계속해서 호흡을 하며 위아래로 들썩이고 있었다.

언제나 자신의 옆 침대에 누워 자고 있던 것과 조금도 다를 게 없는 모습에 카카는 그만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그런 카카의 옆으로 와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린 판은 다른 손을 카쿠스의 이마로 가져갔다.

땀 때문에 살짝 붙어있는 머리칼을 정리해주는 손길.

부드러우면서도 따스한 그 손길을 바라보며 카카는 카쿠스가 일어나주기를 바랬다.

아직 더 자야 하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카카의 솔직한 속마음은 카쿠스와 얼른 대화를 나누고 싶어했다.

그 마음이 닿기라도 한 건지 판의 손길에 눈을 움찔거린 카쿠스는 곧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항상 봐오던 빨간색 눈.

그리고, 지금 처음 보게 된 보라색 눈.

양 쪽의 색이 달라진 카쿠스의 눈동자에 카카는 잠시 할 말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

"으으... 지친다."

그 날은 평소와 그다지 다를 것도 없는 날이었다.

교복을 입고 하교하는 학생들.

적당히 구름이 끼어서 보기 좋은 하늘.

사거리의 빵집에서 풍겨오는 달콤하면서 고소한 냄새.

단지 평소보다 조금 피곤하다는 걸 빼면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에 카카는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저번처럼 카쿠스가 정원을 태워먹는 일은... 사양이야."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판이 뿔을 부여잡고 쭈그려앉아있던 모습과 눈물이 글썽글썽 맺힌 채 검은 연기 속에 서있던 카쿠스를 떠올린 카카는 저도 모르게 풉 하고 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옆에서 지나가는, 자신보다 아래학년처럼 보이는 여자아이가 쳐다보는 게 느껴져 머쓱해진 카카는 걸음을 빨리 해 집으로 걸어갔다.

별다른 고민도 없이 '오늘 저녁은 뭘까'하는 정도의 생각만이 머리속에 들어있는 카카의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 없었다.

카쿠스가 집에 있으면 빵이나 사러 가자고 할까 생각하며 집 근처까지 온 카카의 눈에 정원에서 물을 주고있는 판의 모습이 들어왔다.

노란 앞치마를 한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판의 옆모습이 참 행복해 보인다 생각하며 대문을 열고 들어간 카카는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다녀왔어."

"카카! 어서 와요."

자신을 보며 활짝 웃음짓는 판에게 다가간 카카는 옆의 테이블에 가방을 내려두고선 의자에 털썩 앉았다.

"선생님. 뭐 하고 있었어?"

"아, 정원 좀 가꾸고 있었어요. 요즘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꽃들이 너무 예쁘게 자라는 거 있죠?"

"잡초들도 그만큼 많이 자라는 거 같은데..."

노란색. 빨간색. 분홍색.

화려한 색깔로 곳곳에 피어있는 꽃들과 그 밑에 수북하게 자라있는 잡초를 본 카카는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을 했다.

검은 교복 마이 안으로 파란 리본을 하고 회색 조끼를 입은 채 안경 아래로 인상을 찌푸리는 카카가 귀여웠는지 판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후훗. 잡초들이 자라는 게 싫은가요?"

"꽃들만 있으면 더 좋잖아. 잡초들이 있으면... 꽃이 제대로 못 피는 거 아니야?"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카카를 보며 판은 물뿌리개를 잠시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맞아요. 그런 건 어디서 배웠나요 카카?"

"배우긴 뭘 배워. 이런 건 상식 아닌가?"

"음... 그렇죠. 보통 사람들은 잡초들은 방해가 될 뿐이라고만 생각하니까요."

"그럼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 안 한다는 거야?"

"아뇨. 저도 비슷한 생각이예요.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저는 그렇다고 해서 잡초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잡초여도 제 정원 안에서 자란 거니까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선생님, 집에 간식 있어?"

"아. 안 그래도 카쿠스가 오면 같이 먹으라고 케이크를 잘라뒀어요."

"카쿠스 아직 안 왔나보네. 그럼 난 씻고 침대에 누워있을게. 선생님도 카쿠스 오면 같이 먹자."

케이크라는 말에 들떴는지 목소리가 반 옥타브 정도 올라간 카카가 판은 그저 귀여울 따름이었다.

"네. 그럼 전 마당 가꾸면서 카쿠스가 올 때까지 기다릴게요. 피곤할텐데 한숨 자고있어요."

"안 그래도 그럴려고. 그럼 이따 보자 선생님."

커다란 안경을 고쳐쓰며 손을 흔들어준 카카는 집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오늘만큼은 옷과 방을 다 정리한 후 쉬자 생각하며 들어간 그녀였지만 현관문턱을 밟자마자 게으름이 발목을 붙잡았다.

'...어차피 시간 많으니까.'

잠깐만. 아주 잠깐만 침대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자 생각한 카카는 외투와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두고선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얼마 전 완전히 꺼져버린 매트리스 대신 푹신한 새 매트리스에 등을 대자마자 카카의 몸은 졸음으로 뒤덮였다.

"하아..."

또 이불을 안 덮고 잤다가는 감기가 걸리고 판에게 주의를 듣겠지만 졸음이 잔뜩 몰려온 지금의 그녀는 이불을 펴는 것조차도 귀찮았다.

 결국 그대로 잠들어버린 카카는 한참 뒤에서야 판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카카, 카카!"

"으음... 선생님, 왜 그래..."

"카쿠스 집에 거의 다 와간다는데, 마중 좀 나갔다 올래요?"

"마중? 흐아아암... 알았어. 지금 어디래?"

"빵집 근처래요. 친구들이랑 놀다가 들어오느라 늦은 것 같아요."

아까 입었던 앞치마는 어디 갔는지 스웨터와 치마를 입은 판은 카카의 흐트러진 머리를 만져주며 말했다.

이제는 이런 보살핌을 받을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 부드러운 손길이 싫지 않았던 카카는 그 손에 머리를 작게 비비고선 일어섰다.

"읏차. 밖에 추워 선생님?"

"아, 조금요. 겉옷 하나 챙겨입고 나가요."

"이 앞에 나가는 건데 뭘. 그보다 카쿠스 내가 마중 나왔다고 뭐라고 하지는 않겠지?"

"후훗. 카쿠스도 한창 그럴 나이긴 하죠. 하지만 혹시 말은 그렇게 하더라도 속으로는 기뻐할 거예요."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선생님, 나 그럼 다녀올게. 윽... 근데 너무 배고프다. 빨리 카쿠스 데려와서 저녁 먹고 케익도 먹어야지."

"후훗, 좋아요. 오늘 저녁은 제가 솜씨 발휘 좀 했으니 기대해도 좋아요."

자신감 있는 판의 목소리에 입꼬리를 살짝 올린 카카는 교복을 입은 그대로 집을 나섰다.

판이 말한대로 어두워진 밖은 꽤나 추웠지만 카카는 잠을 깨기에 딱 좋은 기온이라 생각했다.

"근데 오늘 저녁이 뭐길래 저렇게 말씀하신거지. 음... 냄새만 맡으면 피자랑 스파게티 같은데."

입으로 말한 것 뿐인데도 군침이 도는 메뉴에 카카는 얼른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카카가 내딛은 그 발걸음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 하는 발걸음이었다.

형광등 아래 카쿠스가 걸어오고 있는 으슥한 길로 들어서는 순간.

검은 차에서 내려 카쿠스를 향해 다가가고있는 괴한들을 바라본 카카는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평소라면 눈치채는 게 더 빨랐겠지만 한창 마음이 풀려있던 데다가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느슨해져있던 카카는 너무나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그 때는 이미 괴한들이 카카의 존재를 눈치챈 후였고, 카쿠스에서 카카로 타겟을 변경한 괴한들은 카카를 차에 태우고는 그녀를 기절시켰다.

=*=

"......"

거기까지 쓰고 난 카카는 잠시 손을 멈추었다.

여태까지 그녀가 써내려가는 이야기를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않고 아무런 동작도 하지 않던 여성은 천천히 일어서더니 시계를 확인했다.

"한 번 쉴 때가 되기는 했네. 애들 밥 차려주고 올테니까 기다리고있어."

허튼 짓 할 생각 하지 마.

같은 말도 붙이지 않고 여성은 그대로 방을 나가버렸다.

그렇게 차갑고 어두운 방에 혼자 남게 된 카카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내뱉었다.

이런 식으로 지난 날을 되짚어보는 것은 카카에게 그리 익숙한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지난 날을 되짚어보는 것이 힘들고 진 빠지는 일이라는 것을 카카는 지금에서야 알 수 있었다.

그다지 방에 오래 있었던 것 같지도 않았지만 뒤늦게 본 시계가 벌써 네 시간이 지난 걸 알려주는 걸 본 카카는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그제서야 이야기를 적고있던 팔이 뻐근해오는 걸 느낀 카카는 의자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 기억에 잠겨있던 탓일까.

목에서 우두둑 하는 소리를 내며 스트레칭을 마무리할 때 쯤이 되어서야 카카는 이상한 걸 눈치챘다.

'부작용이... 없어...'

약을 투여하지 않은지 네시간 째.

온갖 부작용이 올라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너무나 멀쩡한 자신의 상태에 카카는 의문이 생겼다.

약을 갈구하는 충동은 남아있었지만 불안증세나 환각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 눈을 몇 번 깜빡이던 카카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고개를 저으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자신이 이야기를 중단한 곳을 바라본 카카는 여성이 잠시 쉬자고 한 게 고맙게 느껴졌다.

자신을 배려한 것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이후의 기억은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카카에게 상처가 되는 기억들이었다.

그 상처를 후벼파기 전 잠시 휴식을 준 여성에게 멋대로 고마워하며 카카는 눈을 감았다.

그렇게 앉은 채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자 얼마 가지 않아 문을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다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는 순간.

카카는 예상 외의 모습에 서로 색이 다른 눈을 깜빡였다.

샛노란 계란 위에 듬뿍 뿌려져있는 빨간 케찹.

군침이 절로 돌게 만드는 향긋하고 고소한 냄새.

양 손에 오무라이스 접시를 하나씩 들고 들어온 여성은 그 중 하나를 카카가 앉아있는 책상에 올려주었다.

"먹어."

"......"

"왜. 내가 먹이지도 않고 계속할 줄 알았어?"

장난기는 조금도 없이, 쏘아붙이듯 말한 여성은 다른 책상에 앉더니 오무라이스를 크게 한 입 먹었다.

아직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지만 우아해 보이는 외관과 맞지 않게 어딘가 급해 보이는 모습에 카카는 조금 놀란 눈을 했다.

첫 번째 술을 금세 먹어버리고 두 번째 숟갈을 뜨던 여성은 그런 카카의 시선을 느꼈는지 눈을 흘끗 하고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너도 애엄마 해봐."

"......"





건강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