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이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서 카카는 방금 자신이 쏜 사람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미간을 꿰뚫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서 피와 뇌수가 줄줄 흘러나온 채 쓰러져있는 사람.

이제는 시신이 되어버린 그것을 보며 카카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실험실에서 하던 거랑은 좀 다르네.'

하지만 카카는 그 차이점이 뭔지 정확히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저 무언가가 달랐다고 생각하며 총을 조심스럽게 집어든 그녀는 인이어에서 시끄럽게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따라 다시 실험실로 돌아갔다.

=*=

그렇게 몇 건의 일을 마친 후.

카카는 실험실에서 풀려나 작은 마을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목소리의 말로는 실험이 끝났으니 놓아주는 것이라 했지만, 카카가 가질 수 있었던 자유는 딱 거기까지뿐.

여전히 그 목소리는 카카에게 명령을 해왔다.

하지만 이미 그 목소리에게 명령을 받는 삶에 익숙해져있었던 카카는 별 저항을 하지 않았다.

카쿠스에 대해 묻고 싶은 때가 가끔 있었지만 그래봤자 정확한 대답을 얻기도 힘들고 오히려 카쿠스를 위험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카카는 한 번도 그 이야기를 꺼내본 적이 없었다.

"후우... 집 도착했어. 이제 여기서 살면 되는 거야?"

[맞아. 아, 그리고 실험실 졸업한 기념으로 몇 가지 혜택이라도 줄게.]

"뭔데?"

[이제부턴 뭘 하면서 살아도 돼. 뭐, 어디서 몸을 굴리든 약을 하든 도를 닦든 신경 안 쓰겠다는 말이야.]

"말은 좋네. 어디까지나 네가 시키는 일은 다 한다는 전제 하잖아?"

[그거야 당연하지. 애써 이렇게 잘 만든 도구를 놓아주는 바보가 어디있어?]

언제나처럼 상대방을 무시하고 놀리는 말투였지만 익숙하기도 하고 별 신경도 쓰이지 않았던 카카는 집을 둘러보았다.

욕실, 침실, 주방.

그다지 넓지는 않지만 생활을 할 수 있는 가구들이 모두 있는 것을 본 카카는 의외라는듯한 얼굴을 했다.

[거기 있는 건 다 내 선물이야. 어때, 마음에 들어?]

"그럭저럭."

[대신 이제부턴 그런 거 안 챙겨줄거니까 카카 네가 알아서 사야 돼. 당연한 거지만.]

"나도 알아."

[아. 일 해줄때마다 돈도 꼬박꼬박 줄테니까 걱정하진 말고. 그럼 오늘 이삿날이라 정신 없을텐데 그만 들어가서 쉬어~]

"......"

툭 하고 연락이 끊기는 걸 들은 카카는 조심스럽게 소파에 앉았다.

3년동안 실험실에 갇혀있었던 탓인지 감정이 희박해져있는 그녀였지만 오랜만에 보는바깥 풍경은 카카에게 작은 충경을 안겨주었다.

윗세계와는 다르게 칙칙하고 볼품없는 모습이었지만 어딜 둘러봐도 흰색 벽뿐이던 실험실과는 비교도 안 되는 바깥의 풍경은 카카에게 너무나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이 집까지 오며 한순간도 빠지지 않고 눈에 그 모습을 담은 카카는 작게 숨을 들이쉬었다.

"...카쿠스. 잘 지내고 있겠지."

[아아, 맞다! 방금 네가 그 말 해서 생각난건데. 해도 돼?]

"해."

자신의 말이 전부 들린다는 걸 알면서도 그 이름을 내뱉어버린 스스로를 비난하며 카카는 짧게 대답했다.

[보통 윗세계로 가는 방법은 잘 없기도 하고, 보통 가려고 하지도 않지만 돈만 있으면 갈 수 있어.]

"......"

[그러니까 네가 그렇게 죽고 못 배기는 여동생을 만나러 갈 수 있다는 거지. 어때, 구미가 확 당기지 않아?]

그 말에 카카의 서로 다른 색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왜... 카쿠스를 만나러 간다는 생각을 못 한 거지...?'

워낙 실험실의 통제된 상황 아래에 오래 있어 무의식중에 카쿠스를 영원히 만나지 못 할 거라 생각했던 카카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멍하게 울려왔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헤어졌을 때까지.

단 하루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지내왔던 카쿠스.

4년이 가까운 시간이 흘렀어도 잊혀지지 않는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자 카카는 목소리에게 다른 의도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입을 열 수 밖에 없었다.

"윗세계로 가는 돈. 얼만데?"

=*=

그 후로 카카가 윗세계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첫 의뢰를 시작한 뒤로 1년 반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나서였다.

카쿠스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매일매일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급해졌지만 카카는 그런 충동을 애써 참으며 총을 쏘는 걸 반복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왜 죽여야 하는지.

그런 건 카카에게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 일을 해야 카쿠스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오직 그것만이 중요했던 카카는 매일 목소리가 주는 의뢰를 완수하기에 바빴다.

그 후로 몇 건이나 되는 의뢰를 받았을까.

일일이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카카는 1년이 넘는 시간동안 목소리가 주는 의뢰를 수행했다.

누구를 죽이는지, 어떻게 죽이는지보다 그들을 죽여서 얻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던 카카는 매번 아무 감정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아무리 뒷세계라고는 해도 가끔 덜미가 잡힐 뻔한 적이 있었지만 그런 일의 처리는 목소리가 모두 해주었다.

그런 수고에 따로 감사의 말을 할 필요도 느끼지 못 하고 매일 같은 생활을 하던 중.

카카의 삶에 아주 작지만,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목소리가 제공해준 거주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건설현장.

의뢰를 마치고 오는 길에 우연히 본 그곳을 바라본 카카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공사장이네."

[그렇네. 왜, 관심 있어?]

목소리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카카는 인부를 구한다는, 넝마가 된 현수막을 보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쾅, 쾅!

시끄러운 바퀴소리와 기계소리. 그리고 인부들의 땀과 시멘트 냄새가 가득한 건설현장에 들어온 카카는 가장 가까이에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포크레인 안에서 한창 인부들을 감독하느라 바쁜 나머지 코를 골며 졸고있던 그는 일부러 내는듯한 발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눈 앞에 작은 키를 한 은발의 소녀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인 그는 멍청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 아빠 찾으러 왔냐?"

"아니. 여기 인부 구한다는 거 보고 왔는데."

"아, 그래? 흐아아암... 그럼 난 자고 있을테니까 너도 집에 가서 잠이나 자."

그 말을 한 남자는 이번엔 아예 계기판 위에 얼굴을 대고선 잠에 들려 했다.

그런 그를 보며 할 말을 잃은 카카는 인상을 확 찌푸렸다.

작은 얼굴에 어딜 봐도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인상을 쓰자 제법 매서워보이는 표정을 본 남자는 어깨를 한 번 으쓱여보였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였어?"

"진심이야."

"하아... 하다하다 이제 이런 꼬맹이까지 인부를 하겠다고 오네. 뭐, 좋아. 대신 일 못 할 것 같으면 쫓아낼거야. 불만 없지?"

그 날 이후.

카카는 의뢰가 끝난 날이면 공사현장으로 가 인부 노릇을 하곤 했다.

들쭉날쭉하게 나오는 데다가 어린 여자아이라는 것 때문에 다른 인부들이 아리송한 시선을 했지만 오직 일에만 집중하는 카카의 모습은 작업반장에게 꽤나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농담처럼 한 말이긴 했지만 카카는 아예 이쪽으로 전향하라는 말까지 들으며 공사장에서 땀을 흘리곤 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 참견해올 줄 알았던 목소리는 의외로 별다른 말을 해오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 의뢰에 대한 얘기만 하기 바쁜 목소리의 얘기를 들으며 카카는 1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후우."

막노동을 끝내고 난 밤.

땀에 잔뜩 젖은 몸을 씻고 나온 카카는 소파에 앉아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아직 졸음이 오지 않았던 그녀는 팔걸이에 팔을 걸친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

[심심해 보이네? 내가 같이 놀아줄까?]

"필요 없어."

[놀아주는 게 싫으면, 음... 좋은 소식이 하나 있는데. 들어볼래?]

"좋은 소식? 말해봐."

[이제 슬슬 여동생을 만나러갈 돈이 모였어. 와 기뻐라~]

"...그렇구나."

짧게 말한 카카는 눈을 지긋하게 감았다.

안 그래도 빛 하나 켜두지 않아 어두캄캄했던 방 안에서 시야가 완전히 새카매진 카카의 눈에는 카쿠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릴적부터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까지.

그녀의 모습 하나하나를 전부 기억하고 있던 카카는 감았을때만큼 느릿하게 눈을 뜨며 말했다.

"언제 갈 수 있는데?"

=*=

목소리가 마련해준 루트를 따라 이동하는 카카의 가슴은 쉴 새 없이 뛰어댔다.

실험실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됐을 때 이후로 이런 격한 감정을 느끼는 게 오랜만이었던 그녀는 한 사람이 통과하기도 힘든 벽 사이에 잠시 멈춰섰다.

"...카쿠스. 잘 지내고 있겠지."

여태 목소리가 별 탈 없이 살고있다고 말해주는 것만 들어왔던 카카는 조금이라도 빨리 자신의 눈으로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그리고 사라진 5년동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어떤 것도 아직 제대로 생각하지 못 했지만 카카의 발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이후에 떠올렸을 때 가장 고생스러웠던 루트를 통해 윗세계에 도착한 카카는 도시 한복판 낡은 건물의 화장실에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오랜만이네."

1년 365일이 어둡고 칙칙한 날씨인 뒷세계와 다르게 밝은 햇빛이 비추고 있는 윗세계의 모습에 카카는 인상을 작게 찌푸렸다.

아직은 빛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눈을 잠시 쉬게 해준 뒤.

사람들이 분주하게 걸어다니는 거리에서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는 여태 꺼내지 않고있던 휴대폰을 손에 쥐고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5년이 지났다고... 택시가 없어지지는 않았겠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멀리에서 다가오는 택시를 잡아탄 카카는 이전에 살았던 집을 말하고선 시트에 몸을 털썩 맡겼다.

"......"

그러자 5년동안의 피로가 순식간에 몰려오는 것 같았던 그녀는 현기증 같은 걸 느끼며 이마를 짚었다.

우우우우웅!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택시 안에서 고개를 살짝 돌린 카카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창에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그녀는 멀리에서 카쿠스를 보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5년이라는 시간.

이미 자신이 없는 생활에 익숙해졌을 둘.

그런 둘의 잔잔한 생활에 파문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 카카는 그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끔씩만 와서... 건강하게 지내는지만 보고 가면 될 거야. 그 정도는 해도 되겠지."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린 카카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운전수의 솜씨가 좋아서일까, 부드럽게 굴러가는 차 안에서 한 번도 깨지 않은 카카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사거리에 도착하고 나서야 일어나 택시에서 내렸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카쿠스, 판과 수도 없이 다녀보았던 사거리.

옷을 함께 샀던 기억과 함께 외식을 했던 기억.

그 밖에도 여러 기억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카카는 잠시 멍하니 거리를 바라만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거짓말처럼 눈 안에 판의 모습이 들어오는 걸 본 카카는 작게 아 하는 탄식을 내뱉었다.

5년이 흘렀는데도 전혀 나이들어 보이지 않는 모습과 그때처럼 차분한 눈빛.

처음 봤을 때 신기해했던 머리의 하얀 두 뿔과 사뿐한 발걸음.

그 긴 시간이 지났어도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선생님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에 카카는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선생님은 봤으니까, 이제 카쿠스만 보면 되겠네.'

카쿠스는 어디쯤 있을까, 생각한 카카는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

재빨리 걸음을 옮기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발은 머리의 말을 듣지 않고서 뿌리라도 박힌듯 그 자리에 서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 손에는 커다란 장바구니를 든 채 다른 한 손에 든 영수증을 확인하느라 아직은 눈치채지 못 했지만 이대로 걸어오면 판은 자신과 마주치게 될 것이었다.

그러면 자신이 생각했던 계획이 틀어지게 되는데도 카카는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머리는 계획대로 하라고 수도 없이 외치고 있었지만 몸은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며 고집을 부렸다.

'지금이라도 옆 건물로 들어가면, 안 만나고 끝날 수 있어.'

하지만 판이 점점 더 가까이 오자, 계획을 외치던 카카의 머리도 그녀를 만나고 싶다는 말을 조금씩 내뱉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로의 거리가 열 걸음도 채 되지 않는 거리가 되고 나서야.

카카는 자신이 처음부터 판과 만나고 싶어했다는 걸 알아챘다.

"...선생님."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작게 뱉은 그 말은 판에게 닿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판은 한창 읽고있던 영수증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

너무 빨리 자라 자신이 항상 신경써줘야 했던 긴 은발 머리.

기분이 뚱하지 않아도 습관처럼 내밀고 있던 작은 입술.

자신을 올려다보던 파랗고 순수한 눈.

어떤 것 하나도 잊을 리 없는 그 모습에 판은 작게 입을 벌렸다.

쨍그랑!

장바구니가 떨어지고, 안에 들어있던 와인병이 깨져 도로를 빨갛게 물들이는 것도 개의치 않은 채 달려나간 판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카카를 끌어안았다.

5년동안 키가 조금 크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신보다 큰 판의 품에 안긴 카카는 너무 낯선, 하지만 익숙한 따뜻함에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 말해야 한다는 생각에 입술이 조금씩 뻥긋거리긴 했지만 그 뿐.

몸에 스며드는 따스함을 느끼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카카는 그제서야 떠올릴 수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보다도 더 많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걸.











회상편 끝






읽어주셔서 ㄱㅅㄱ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