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간단함. 피부색이 어떻건, 그들은 미국인임.

그래서 미국 흑인들이 아프리카의 국가와 민족을 보는 관점은 어디까지나 미국인의 관점이지, 아프리카인의 관점이 아님.


물론 자기들의 뿌리가 아프리카라는 것은 자각하고 있고, 그래서 아프리카라는 대륙에 대한 호감은 있음. 하지만 딱 거기까지. 아프리카에 있는 개별 국가와 민족에 대해서는 유럽이나 아시아 출신 미국인들과 같은 수준의 존경심만을 가지고 있음. 동질감? 전혀 없지는 않지만 별로 없음. 우리가 미국에서 인도인이나 태국인, 네팔인을 보면 같은 아시아에서 온 사람이라는 자각은 있을 것임. 대충 그런 정도.


해방 노예 출신 흑인들이 라이베리아에서 계급차별과 노예제도를 만든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개탄함. 하지만 그 상황은 결국 "남부 출신의 미국인들이 남북전쟁 이전 시대에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만든"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음. 물론 노예제도라는 건 어떤 배경이 있건 개탄할 만한 일이지만, 그 미국인들의 인종이 흑인이라는 점은 그렇게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었음.


"블랙 팬서" 시리즈에서의 흑인들 취급을 봐도 알 수 있음. 와칸다 자체의 (가상의) 역사를 제외하고 보면, "흑인들의 과거"에 대해 길게 다루는 것은 노예제도와 미국 흑인 이야기 뿐이고, 아프리카에 있을 주변국과의 외교관계나 아프리카 흑인 민족들은 관심이 없음. 그들은 기껏해야 위대한 와칸다인들이 "백인의 의무" 대신 "와칸다인의 의무"를 행할 시혜의 대상으로 단편적으로 등장할 뿐임.


흑인 클레오파트라를 보면서 왜 말리 제국이나 누비아의 여왕을 소재로 하지 않고 클레오파트라를 흑인으로 만드는가라는 의문을 품는다면, 답은 이것임. 우리가 보기에 누비아인들은 낯선 외국인이듯이, 미국 흑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임. 우리가 "같은 아시아인"인 태국의 나레쑤언이나 캄보디아의 수리야바르만 1세 보는 관점이나 마찬가지. 누비아의 여왕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여왕보다 선호할 이유가 그들에게는 없음.


따라서 흑인 클레오파트라에서도 클레오파트라는 그냥 "흑인"일 뿐임. 누비아인이라거나, 에티오피아인이라거나 그런 거 신경 안 씀. 그냥 흑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