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내용은 성경 해석이 아니며 신학과도 전혀 관련이 없음.

* 항상 하는 말이지만 법학도 법학자가 읽을만한 글 아니니 가볍게 볼 것.

* 그렇다고 비판과 첨삭을 받지 않겠단 뜻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 것. 오히려 환영함.



이전 목수와 채권의 목적 글에서 옛날 중동의 어떤 목수가 한 말을 통해 채권의 목적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다.

채권이 무엇이고, 어떠한 종류가 있으며, 그 목적에 따라 어떻게 분류되는지를 알아보았으니,

이번에는 채권의 효력과 관계된 내용에 대해 한번 알아보고자 한다.


 이전에 언급했듯 채권은 특정인이 다른 특정인에게 특정 행위(급부)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때문에 채권은 기본적으로 채무자에게 급부를

청구할 수 있는 청구력과, 채무자가 한 급부를 수령하여 보유하는 급부보유력을 가지고 있다. 채무자가 일정한 급부를 이행하여야 하는 의무를

채무라고 함은 이미 살펴본 바 있다. 

 그렇다면, 채권자의 청구에도 불구하고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이것이 바로 채무불이행이며, 오늘의 주제이다.


 채무불이행이란, 채무자가 채무내용에 따른 이행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채무불이행이 되기 위해서는 채무자가 이행을 하지 못한 데 대해 

고의나 과실이 있어야 하고,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그 불이행이 위법해야 한다. 즉,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데 정당한 사유가 있거나, 법적으로 

타당한 사유가 있어서 채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면 채무불이행이 되지 않는다.


 채무불이행이 발생하면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자의 귀책사유 없이 이행할 수 없게 된 때는 청구할 수 없다.(390조)

채무는 본래 반드시 이행하여야 하는 것이어서 그것이 이행되지 않았다는 것은 채무자의 관리영역에서 문제가 생겼음을 의미하므로 채무자의

과실은 추정된다. 즉, 채무자가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없음을 증명해야 한다. 이 390조는 모든 유형의 채무불이행에서

적용되는 일종의 일반조항이다.


 이쯤에서 저번 그 목수의 이야기를 한번 해보자. 이번에 목수가 있는 곳은 속주 수도에서 제일 큰 건물로, 얼마 전에 목수가 우리 아빠 집에서

꺼지라면서 건장한 경호원 수십명을 상대로 채찍을 휘두르고 책상과 좌판을 집어던지며 무쌍을 찍었던 그 건물이다. 그곳에서 목수는 시비걸러

온 건물관리인들한테 가불기를 날려서 닥치게 한 다음 제자들에게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 마태복음 21장 28~31절

 

 이 말을 한번 채권계약과 엮어보자. 일단 노동법과 가족법은 제쳐두고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두 아들과의 사이에 아들들의 과수원 일일노동력

제공을 채권의 목적으로 하는 구두계약을 체결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급부유형은 행동이 목적이므로 작위급부이며, 또한 하는 급부이다. 계약

체결 시 아들은 아버지에게 포도원에서 노동력을 제공할 채무를 지게 된다. 


 이제 첫째아들의 상황을 살펴보자. 첫째아들은 아버지에게 가겠다고 언급하여 구두로 노무제공계약을 체결한 셈이 된다. 이로서 아버지는

아들이 오늘 하루 과수원에서 일할 것을 기대하게 되고, 이는 계약내용에 따른 정당한 기대이다. 하지만 그는 가지 않았다. 아버지와의 계약으로

인하여 지게 된 노무제공의무를 거부한 셈이며, 이는 채무내용에 따른 이행을 하지 않은 것이고, 채무자의 과실은 추정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채무불이행이 된다.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아들이 노무제공을 하지 않음으로서 과수원 노동자 1명을 새로 고용해야 했을 터이고, 그로

인하여 아들이 갔더라면 지출하지 않아도 되었을 비용을 지출하게 되었다. 즉, 손해가 발생하였으니 아버지는 390조에 근거하여 첫째아들에게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큰아들이 배상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없음을 증명해야 한다.


 둘째아들은 어떨까? 일단 둘째아들은 나는 과수원이 싫어요 함으로서 계약 자체를 거부했다. 즉, 계약은 성립되지 않았으므로 둘째아들에겐

채무가 없으며, 아버지도 채무를 이행할 것을 요구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러면 재미없으니까 일단 계약은 이전에 성립해있는 상황을 가정하자.

즉, 이미 일하기로 계약을 했었는데 그날은 둘째아들이 싫어요 한걸로 가정해보자. 노무제공의무가 존재하지만 제공 전 이행을 거부한 셈인데,

이런 경우는 어떻게 처리될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채무불이행의 세부적인 유형을 알아보자. 


 채무불이행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이행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이행지체, 채무자의 귀책사유로 이행이 불가능해진 이행불능, 이행을 하긴

했는데 일부만 한 불완전이행, 아예 이행하는걸 거절해버리는 이행거절. 유형별로 각각 알아보도록 하자.


 이행지체는 채무를 이행할 때가 되었는데도 채무자가 이행하지 않을 때 일정한 책임을 지게 하는 형태로 적용된다. 기한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 채무(확정기한부 채무)라면 채무자는 그 기한이 도래한 때부터 지체책임을 진다.(387조 1항 전단) 물론 별도로 증서 등을 교부하는 채권

(증권적 채권)이라면 기한이 도래하였어도 채권자가 그 증서를 제시하기 전까지는 지체책임을 지지 않고, 쌍무계약에선 상대가 자신의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이행지체가 되지 않는다.

 반대로 언제 기한이 도래할지 확실하게 정해져있지 않은 경우(불확정기한부 채무)라면 채무자가 그 기한이 도래함을 안 때부터 지체책임이 

있다. 만약 불확정한 사실이 발생한 때를 이행기한으로 정한 경우라면, 그 사실이 발생하거나 발생이 불가능하게 된 때 이행기가 도달한 것으로

본다.(387조 1항 후단)

 기한을 아예 약정하지 않은 채무도 있을 수 있는데, 이 경우 채무자는 채권자로부터 이행청구를 받은 때부터 지체책임을 진다.(387조 2항) 단,

예외적으로 반환시기 약정이 없는 소비대차에서 대주는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반환을 촉구해야 하므로, 채무자는 촉구의 통지를 받은 때부터

이행지체책임을 지지 않고 그로부터 상당한 기간이 경과한 때부터 진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무는 기한이 없는 채무지만 공평의 관념상

채무 성립과 동시에 청구 없이도 당연히 이행지체가 된다.(74다1393) 

 조금 다른 케이스로, 채무자가 담보를 제공해야 하는 계약의 경우, 그 담보를 손상/감소/멸실하게 했거나 아예 담보를 제공하지 않았을 때는

기한의 이익을 주장하지 못한다.(388조) 기한의 이익이란 이행기가 도래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얻는 이득을 말하는데, 예를 들어 돈을 갚아야

하는 기한이 1년이라면 1년 동안 채무자는 빛 상환을 독촉당하지 않고 빌린 금전 사용에 제약을 받지도 않는 것이 있다. 보통 기한의 이익은 

채무자를 위한 것으로 추정하므로, 이 조항은 쉽게 말해 채무자가 위 388조의 행위를 했다면 채권자가 당장 돈 갚으라고 청구해도 아직 기한이

남았다고 항변하지 못하고 바로 갚아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즉, 채무자가 388조의 행위를 하면 채권자는 그때부터 언제나 채무이행을 청구할

수 있고, 그러면 채무자는 이행지체책임을 지게 된다.

 

 지체책임은 곧 이행지체의 효과이며, 이행강제, 지연배상, 전보배상, 책임가중, 계약해제이다. 이행지체가 발생하면 채권자는 소를 제기하여

강제집행을 할 수 있으며(이행강제), 그 지체로서 손해가 발생했다면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지연배상). 만약 채무자에게 이행을 촉구해도

이행하지 않거나, 이제와서 해도 아무 이익이 없다면, 채권자는 수령을 거절하고 그에 갈음하는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전보배상, 395조). 

 또한 채무자는 이행지체 중에 손해가 발생했다면 제 시점에 이행했더라도 손해가 발생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없어도 

배상하여야 하는 가중책임을 지며(책임가중, 392조), 계약에서 이행지체가 발생한 경우라면 채권자는 상당기간을 정하고 이행을 촉구할 수

있고, 그래도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계약해제, 544~545조)


 이행불능은 채무자의 귀책사유로 채무이행이 불가능해진 경우를 말한다. 불능은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경험이나 거래관념상 채무자의 이행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로서, 목적물의 멸실, 분실, 도난 등이 해당된다. 이행불능인지를 판단하려면 채무의 이행기가 도래하여야 하지만, 멸실마냥

보나마나 이행이 불가능한 것이 확실하다면 그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곧바로 이행불능이 된다. 이중양도, 가등기, 가압류, 가처분, 임대인의

소유권 상실 등은 놀랍게도 이행불능이 아니다. 단, 저 상태에서 추가적인 상황(소유권이전등기, 변제자력 상실, 무자력상태 등)이 발생한다면

그때부터 이행불능이 된다.


 이행불능의 효과는 급부의무 면제와 손해배상, 계약해제, 대상청구권 발생이다. 이행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급부면제는 당연하고, 그에 따른

손해배상을 하여야 함도 당연하다. 만약 채무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 이행불능이 된 경우 채권자는 나머지 급부를 청구함과 동시에 불능부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으나, 나머지를 이행하는 것이 채권자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다면 그때는 일부불능이 아닌 전부불능으로 본다.

 만약 계약에서 이행불능이 발생했을 경우, 채권자는 즉시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 전으로 원상회복하라고 청구할 수 있다.(546조) 물론 채권이

어떤 특정한 물건을 사용 혹은 보관 등을 위한 목적이었는데 그 목적물이 멸실하여 이행불능이 되었다면 계약은 급부불능으로 당연히 소멸하며

해제를 논할 여지가 없게 됨은 당연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조금 특수한 경우를 생각해보자. 인도할 물건이 화재로 멸실되었으나 그 대신 화재보험금을 받았을 경우는 어떻게 될까? 이 경우

본래라면 물건을 받았을 채권자에게 그 대신 발생한 보험금을 넘겨주는 것이 공평의 이념에 부합할 것이다. 이러한 경우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급부 대신 취득한 대상의 양도를 청구할 권리를 대상청구권이라 한다. 대상청구권은 비록 명문의 규정은 없으나 만법 1조(조리), 2조(신의칙),

390조(채무불이행책임)에 근거하여 인정되는 권리로서, 계약해제권과 택일하여 행사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된 특이판례로서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된 토지를 소유자가 매도한 사안에서 그 매각대금에 대해 시효취득예정자가 대상청구권을 행사하려면 그 전에 취득시효를 원인으로 하는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행사하였어야하고, 그렇지 못했다면 대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판례가 있다(94다43825)

 

 불완전이행은 의무를 일부만 이행하거나, 일부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상대에게 부가적인 손해를 입힌 경우이다. 일부만 이행한 경우는 나머지

이행이 가능하다면 이행지체로, 불가능하다면 이행불능으로 처리한다. 불완전한 이행으로 부가적 손해를 준 경우는 채무자가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되는데, 일반적인 손해배상과는 달리 그 손해발생에 대해 예견할 수 있었을 때에만 손해배상을 하게 된다. 즉, 부가적인 손해의 발생을

누구도 예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채무자는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행거절은 이행기 도래 전에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할 뜻이 없음을 밝히는 경우이다. 이 경우 채무자의 이행거절 의사는 명확하게 표현된 것만

유효하며, 단순히 지급을 계속 연기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행거절이 있을 경우 채권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채무자는 채권자가 계약을 해제하기 전까지 이행거절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있고, 채무자는

이행지체책임을 지게 된다. 이행거절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기준시가는 목적물의 이행거절 당시 시가를 기준으로 한다. 


 특정 채무불이행 상황에서는 채무자에게 고의나 과실, 즉 귀책사유가 없더라도 귀책사유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경우도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

이행보조자의 귀책사유를 채무자의 귀책사유로 보는 경우(391조)가 그렇다. 이행보조자란 법정대리인과 피용자를 합하여 지칭하는 말로서,

여기서 말하는 피용자는 채무자의 의사 관여 아래 채무를 이행하는 행위에 속하는 활동을 하는 이를 말한다. 즉, 채무 이행을 단순히 보조하는

수준이라면 채무자의 지시나 감독을 받는 위치가 아니어도 해당될 수 있으며, 단순 호의관계나 일시적인 활동 뿐인 관계라도 그것을 채무자가

용인했다면 피용자가 된다. 예를 들어 택배로 채무이행하는 경우 택배배달원은 채무자와 고용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용자로 볼 수 있다. 

 반대로 단순 보조가 아니라 아예 채무 전부나 일부를 채무자 대신 이행하는 자는 이행대행자라고 하며, 일반적으로는 이행보조자로 볼 수 없다.

단, 채권의 급부가 지니는 성질상 이행대행자를 쓰는 것이 허용되는 경우라면 이행보조자로 취급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하도급이 있다.

 이러한 이행보조자의 고의나 과실로 채무불이행이 발생할 경우, 그 고의나 과실은 앞서 언급했듯 채무자의 고의나 과실로 간주하니 채무자는

본인에게 귀책사유가 없더라도 채무불이행의 효과를 받게 된다. 즉, 해제권 행사대상이 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둘째아들의 상황을 다시 나타내보자. 채무가 있는 상황에서 가기시러 잉잉 했으니 채무이행을 거절한 셈이 되며, 이는 

채무불이행 유형분류상 이행거절에 해당한다. 이행기 전에 거절한게 아니지 않냐 할 수 있는데, 보통 8시부터 일을 시작하려면 적어도 그 전에

준비를 끝내야하므로 둘째아들이 아버지에게 가지 않겠다고 한 건 이행기 전이 맞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행거절이 성립하며, 이 경우 아버지는

둘째아들과의 계약을 해제할 수 있고, 둘째아들의 자리를 메꿀 용역을 추가로 고용해야 하므로 해당 비용만큼의 손해를 입게 된다.

 따라서, 아버지는 둘째아들에게 해당 금액만큼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이 생긴다. 가기 싫다고 한 아들이 뉘우치고 과수원에 가서 일한 것이다. 이 경우 어찌 되는가? 만약 이미 아버지가 계약을

해제했다면 이 행동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는 내용은 없으므로 아직 계약 해제 전이라 가정한다면 아들은 이행거절 의사표시를 철회한 

셈이 된다. 이 경우 계약은 존속하며, 대신 둘째아들에게는 이행지체의 법리가 적용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행지체의 효과는 이행강제, 지연배상, 전보배상, 책임가중, 계약해제이다. 이 중 이행강제와 계약해제는 아들이 결국

노무를 제공하였으니 행사할 수 없는 권리가 되었고, 아버지가 아들의 노무제공을 막았다는 말이 없으므로 전보배상도 청구할 수 없다. 즉,

아버지는 아들에게 늦게 일하러 가서 손해를 끼친 만큼 지연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만약 그 날 아들이 처음부터 일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

손해를 입었다면 그 손해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행지체 중에는 채무자의 책임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이제 목수의 질문에 대해 결론을 내보자. 두 아들 중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는가? 아버지의 뜻이라 함은 아들들이 계약을 충실히 이행하여

자신에게 어떠한 손해도 끼치지 않을 것을 기대한 것일텐데, 첫째아들도, 둘째아들도 둘 다 손해배상채무를 지게 되었으므로 결국 두 아들놈 다

아버지의 뜻대로 안 한 셈이 된다. 고로 답은 두놈 다 뜻대로 못했다가 정답일 것이다.


 그럼 그중에서 그나마 나은 놈은 누구인가? 첫째아들의 경우 390조에 근거하여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있으며, 금액은 과수원

노동자 1일치 임금이다. 둘째아들의 경우 387조에 근거하여 이행지체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있으며, 금액은 (일하지 않았던 시간)x(과수원 

노동자 시급)이다. 일하지 않았던 시간이 아무리 많아봐야 1일보다는 적으므로 첫째아들의 손해배상채무 > 둘째아들의 손해배상채무가 되고,

따라서 정답은 둘째아들이 그나마 나은 놈이 된다. 목수의 질문을 받은 제자들도 그리 답했으니, 보편적인 답일 것이다.


 다들 아버지가 일 도와달라고 하시면 잡소리 말고 가는 챌럼들이 되도록 하자. 




+

 여담인데, 목수는 채무불이행을 굉장히 싫어하는 것 같다.

 물론 채무불이행 좋아할 사람이 어디있겠냐만은, 난감한 상황일지라도 의무가 있다면 충실히 행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랍비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카이사르의 것이니이다"

  "그런즉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 마태복음 22장 15~22절



 위 상황은 목수가 정적들에게 가불기를 쳐맞은 상황이다.

 티베리우스에게 세금을 내지 말라 하면 로마 제국이 가진 국세채권에 근거하여 납세의무자의 조세채무불이행이 되고,

 세금을 내라 하면 이집트왕자와 목소리가 체결한 십계 1조에 근거하여 유일신숭배의무자의 우상불숭배의무불이행이 된다.

 즉, 뭘 선택해도 채무불이행이다. 어떻게 해도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목수가 가불기를 회피한 저 방법은 참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논리적인지 여부를 떠나 양쪽을 다 닥치게 만들 수 있는 재치있는 회피기동이었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지혜로운 판결의 대명사는 보통 솔로몬의 재판인데, 난 이 가불기 회피기동이 더 마음에 든다.


 또한 현실로 보자면 두 채무를 모두 이행하는건 상당한 고역일 텐데, 목수는 그렇게 하라고 한 데에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근데 요새 목수 제자들 세금 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