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편 안 읽어도 이해는 다 가지만, 전편 안 읽어보면 후반부 개연성에 의문을 가지게 될 수 있음 귀찮음 걍 본문만 읽어도 무방함




1. 리리스의 악몽 https://arca.live/b/lastorigin/9753634


2. 리제의 악몽 https://arca.live/b/lastorigin/9781860


3. 에밀리의 악몽 1 - https://arca.live/b/lastorigin/10612586


4. 에밀리의 악몽 2 - https://arca.live/b/lastorigin/11391835


5. 소완의 악몽 - https://arca.live/b/lastorigin/11401468


6. 발키리의 악몽 - https://arca.live/b/lastorigin/16904142





1




그녀의 예지는 절대적이다. 모든것을 볼 수 있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그녀는 근심할 일이 없었다. 적어도 어제까지는 그랬다.


“...” 


아르망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예지와 마주하고 절망했다.

잘개 찢긴 사령관의 몸과 ,그것을 경멸하듯 내려다보는 티아멧의 모습이라니, 모듈이 고장나기라도 한 것일까? 

당황한 그녀의 예지 속에 또 다른 장면이 잡힌다.


“이건..또..무슨..”


머릿속의 영상은 금세 전환되었다. 이번에는 겁에 잔뜩 질린 레이시가 온 몸이 구워진 사령관을 보고 절규하는 모습이다. 

농담도 이 정도면 재미없어, 아르망은 드물게 울것 같은 얼굴을 했다.


“....페하.”



그녀는 떨리는 손을 방 문고리를 잡았다. 바이오로이드로서 주인에게 그 위험을 전달하는 것은 아르망의 의무로, 

잔인하게도 그녀는 그녀가 본 것을 곧바로 보고해야만 했다. 

그것이 사령관의 안전과 관련된 것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떨리는 손으로 방문을 열자, 예상대로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사령관이 그녀를 마주본다.


"무슨 일이야, 아르망?"


한치의 오차도 없이 행동하는 사령관의 모습에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절망으로 떨리는 몸, 하지만 야속하게도 계속되는 그의 물음에 그녀는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폐하…티아멧양과..레이시양의 정신 감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뭐?”


짧은 물음에 그녀는 예지의 내용을 말했다. 

불안정한 정신의 그녀들로 인해 그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것, 그녀들의 정신을 온전하게 보존할 필요가 있다는 것 따위를, 

놀란 듯 커진 사령관의 눈동자와 격하게 뛰는 심박은 아르망에게도 온전히 전해져 왔다. 


“...아르망.”


“네, 폐하.”


흔들리는 사령관의 눈빛에 아르망은 애써 떠오르는 예지를 부정했다.

제발, 제가 아는 상냥한 폐하라면 그러시지 않겠죠, 제 예지가 틀렸다고 말해주세요. 페하.


“지금 가서 티아멧과 레이시를….”


예정된 결말을 듣고 싶지 않아 손이 떨려온다. 아니겠죠, 폐하? 부디 아니라고 해 주세요.


"처리하렴."


명령이란다, 라는 말을 잊지 않고 덧붙인, 상냥하지만 잔인한 목소리에 아르망은 비명을 삼켰다. 

레이시와 티아멧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녀를 따를 것이고, 곧 라비아타라는 처형인이 대기하고 있는 방에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예, 폐하.”


레이시와 티아멧은 어떠한 의심도 없이 아르망을 따랐다. 

아니, 의심했더라도 사령관의 명령이라는 말에는 저항할 수 없었겠지. 

철충을 조각내기 위해 만들어진 커다란 대검은 망설임 없이 전투 모듈이 제거된 자매들의 몸뚱아리를 반으로 갈라버릴 것이다.


그녀들을 도살장으로 몰아넣은 뒤, 돌아서는 아르망의 머릿속을 또 다른 예지가 덮쳤다.


“...흑..”


티아멧의 죽음에 분노한 네오딤과 에밀리의 폭주에 휘말린 사령관의 모습과,

그녀들의 죽음에 분노한 캐노니어 대원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예지 또한 여과없이 사령관에게 전달되었다.


“..모두, 처리하렴.”


영문을 알지도 못한 채 끌려가는 대원들과, 그런 그녀들을 본 바이오로이드들의 반응은 거의 같았다. 

브라우니들이 퍼트리기 시작한 ‘사령관이 미쳐서 우리를 모두 죽이려고 한다’는 소문은 전 오르카호에 금세 퍼졌고, 

그에 따라 아르망의 예지도 미친듯이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아..아..”


아르망은 눈물을 흘리며 기계처럼 예지를 토해냈다. 

레아의 죽음에 분노한 아쿠아가 산성액을 사령관의 얼굴에 뿌릴 것이라는 것, 

어린 아이의 죽음에 분노한 용이 함대의 포를 오르카호로 돌린다는 것.

그리고 그 함포를 막을 바이오로이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까지도.


그녀의 절망적인 예지에도 사령관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는 그저 얼굴에 띄운 희미한 미소를 유지한채 기계적으로 ‘처리하렴, 명령이란다.’ 

라는 말을 다정하게 내뱉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르망은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들을 모두 라비아타의 칼날 아래 밀어넣었다.


각 부대의 대장들은 그들의 부대원들을 위해 사령관에게 반기를 들려 했으나. 

그것은 모두 아르망의 예지 앞에 무력화 되었다.

팬텀은 소중한 친구를 지키려 사령관에게 칼을 들이밀었다는 이유로 사라졌다.

컴패니언들조차 그녀들의 자매를 위해 사령관에게 칼 끝을 돌렸다.

하지만 그 어떤 행동도 사령관의 명령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만...제발...:”


아르망은 애원했지만 그녀의 예지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라비아타의 칼날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르망은 문득 그녀와 라비아타를 제외한 모든 바이오로이드가 ‘일어나지 않을 미래의 일로 인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싸울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은 커녕 당장 오르카호를 움직일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조차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철충과의 전쟁에서 완벽하게 패배한, 한심한 사령관을 공격하는 자신의 모습을 예지했다. 

그리고 그 예지 역시 여과없이 사령관에게 전달되었다. 


“...폐하…”


“하하..주인을 무는 개는,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곁에 둘수는 없는 법이지, 그렇지 않니? 라비아타?”


이제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있는 사령관은 나긋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그녀의 죽음을 선고했다. 

아르망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았다. 그곳에는 피를 묻은 대검을 든 라비아타가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폐하..부디..”


아르망은 자비를 구걸하며 주춤주춤 물러섰지만 라비아타의 칼날은 지체없이 그녀의 몸을 둘로 갈랐다.

아르망은 이건 절대로 꿈 따위가 아닌, 생생한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하며 칼날이 자신의 몸 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2




“하하...하하하하!!!”


멍청한 살덩이들 같으니! 사령관의 모습을 한 그것은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사령관의 이상을 감지한 아르망이 그의 발밑에서 움찔거렸으나, 

웅덩이가 생길 정도로 잔뜩 피를 흘린 바이오로이드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멍청한 것들! 모든 것은 그분의 뜻대로구나!”


처음부터 모든것은 성공적이었다. 

먼저 가장 거슬렸던 리리스,리제, 소완을 악몽의 늪에 빠트리고 ,

오르카호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발키리의 정신은 무너트린다. 

그리고 사령관이 가장 애정하는 에밀리까지 죄책감에 빠지게 하는 것으로 그의 계획은 완벽하게 완성되었다. 

사령관은 쓰러진 아르망의 몸을 발로 짖밟으며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사령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령관의 모습을 한 ‘그것’의 눈동자가 철충의 핵처럼 붉게 빛나며 점멸했다.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은 자멸했고 우리들은 승리했다! 

이제 이 얼간이 같은 살덩이 안에 들어가 있을 일도 없겠지. 

그것은 승리의 기쁨을 느끼며 귀찮은 살덩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을 움직었다.

쩌적거리는 기분나쁜 소리와 함께 인간의 형체를 가진 사령관이 천천히 일그러지며 에일리언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갈라진 몸뚱이에서 검은 형체가 튀어나왔다.


[흐흐.. 이 몸은 간만이구나]


철충이라기보다는 검은 애벌레에 가까운 형태의 그는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라비아타의 절망스러운 얼굴을 감상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대상의 모든 것을 망가트리고 그 절망스러운 얼굴을 감상하는 것, 

그것은 오로지 잠입을 위해 태어난 철충인 그가 가진 악취미 중 하나였다.


[...응?]


라비아타의 얼굴은 분명히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 표정에 담긴 것은 절망이 아닌 경멸과 모멸의 감정 이었다. 

깔보아진 것을 느낀 철충이 분노를 토해내기도 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철충의 등 뒤에서 들렸다.


"역시 그렇게 된 것이였군요. 당신은 폐하가 아니였어요."


[뭐?]


그것은 분명 숨이 끊어져 나뒹굴고 있어야 했을 아르망의 목소리였다.

급히 뒤를 본 철충의 시야에 비틀비틀 일어나고 있는 사령관과, 그를 부축하고 있는 아르망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르망의 발치에는 가짜 피가 가득 담겨 있던 주머니가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었다.


[..!!!]


속임수였나!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철충은 몸을 빠르게 돌려 다시 인간의 몸에 파고드려 했다. 인간의 몸만 차지할 수 있다면, 

다시금 빠져나갈 수 없는 완전한 명령으로 오르카호를 침몰시킬 수 있다!


"어머나~ 주인님의 몸에 위해를 가하려는 해충은 제가 용서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 시도는 푸른 방어막에 막혀 무산되어버리고 말았다.

핵도 막아낸다고 알려진 리리스의 방어막은 사령관과 아르망을 빈틈없이 감싸고 있었다.


[너는 분명!!]


분명히 리리스를 처리하라는 명령을 내렸을텐데! 

라비아타의 뒤에서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리리스의 모습에 철충은 경악하며 사령관을 돌아보았다.


"..안타깝겠네, 우리 애들이 좀 똑똑해야지."


[뭐!?]


"요즘 악몽을 꾸는 애들이 너무 많아져서 말이야...탈론패더가 널 잡느라 고생좀 했지."


이미 사령관에게 기생했던 것을 알고 있었나!

사령관의 서툰 윙크에 철충은 이 모든것이 자신을 끌어내기 위한 함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젠장!!]


"앗!?"


철충은 리리스의 블랙맘바가 불을 뿜기 전에 재빠르게 그녀의 다리 사이를 기어 열린 문 틈으로 돌진했다. 

그래, 다시 어둠속에 숨어 , 악몽을 퍼트리며 기회를 노리면 언젠가는...


"해츙!!"


[끄아아악!!]


하지만 그 시도는 무산되었다. 

강철보다 단단한 철충의 몸을 쉽게 갈라버리는 리제의 칼날이 철충의 꼬리 끝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요리재료로도 쓰지 못할, 몹쓸 벌레로군요, 어서 소각해버려야 겠사옵니다."


"명령만 내려주시면 당장 이 철충의 목숨을 끊겠습니다."


"나..너..용서 못해.."


리리스에 이어 리제, 소완, 발키리 그리고 에밀리까지.. 자신이 선사했던 악몽의 주인공들이 속속 나타나는 것을 본 철충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도망..가야..]


철충은 필사적으로 몸을 흔들고, 벗어나려고 했으나 바닥 깊숙히 박힌 리제의 가위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런 그의 뒤로 지이잉 하고 제녹스가 충전되는 소리가 들린다.


"...사령관한테 까불지마."


오르카호를 좀 먹으려 한 철충이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레일건에서 뿜어져 나오는 죽음의 빛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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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해를 돕기 위한 철충의 상상도임.




뭔가 급하게 끝낸 악몽 시리즈.. 

최대한 단편식으로 이전작을 안봐도 가볍게 읽을수 있게 쓰고 싶었는데

글재주가 딸려서 그런지 잘 안되더라. 

좋아하는 애들만 우겨넣으려다보니까 뭔가 스토리가 이상해지는거도 같고

아무튼 늘 재미있게 읽어줘서 고마워.

악몽 시리즈는 이게 마지막일거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