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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무튀튀한 그을음이 땅에 가득하고, 파괴된 철충들에게서 열기로 인한 아지랑이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을음 위에 누워있는 철충 감염체들은 전부 타격 부위로 추정되는 곳이 고열로 인해 녹은 흔적이 보였다. 파괴된 철충들의 개수는 총 34체. 꽤나 규모가 있는 자들이었다. 파괴된 철충 사이에서 왼팔을 잃은 레브가 서있었다. 레브의 오른손은 뜨겁게 달궈져서 주황색을 띄고 있었으며 오른손 주위에는 아지랑이가 일렁거렸다.


주위를 돌아보며 아직 정지된 개체가 있는지 확인하는 레브는 마침 조금조금씩 움직이는 철충을 보자 손가락 끝으로 다섯 갈래의 열 광선을 쏴서 그 개체를 완벽하게 정지시켰고 더 이상 움직이는 개체가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오른손의 열을 순식간에 식혔다. 레브의 왼팔은 조금조금씩 수리되고 있었고 아예 사라진 왼팔을 대신해 새로운 왼팔이 재생하듯 돋아나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 있는 초소형 나노봇들이 그녀의 사라진 왼팔을 다시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레브는 펙스 콘소시엄의 과학력이 한 몸에 결집된 결정체로서 이 정도의 기술력 정도는 너무나도 우스운 것이었다.


레브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파괴되지 않은 철충이 있으나 거의 파괴되기 직전이다. 그것은 매튜에게 잡혀서 이리저리 던져지고, 마지막에는 매튜가 주먹을 위에서 내리꽃아 완전히 파괴해버렸다. 레브는 매튜가 그 철충을 처치한 걸 확인하자 말했다.


"34 대 9!"


"네 능력이면 전부 처치할 수 있어. 반칙 아니냐?"


"그래서 10마리만 처치하라고 했잖아요?"


레브가 깔깔 웃는 소리를 내자 매튜는 혀를 차면서 고개를 돌렸다. 레브와 매튜는 해변에서 벗어나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있었다. 이 곳이 레모네이드의 세력권 아메리카 대륙임을 확인한 매튜는 레브와 함께 아메리카 대륙에서 벗어나고자 조선소를 향해 가고 있다. 조선소로 향하는 이유는 거기서 작은 보트를 하나 얻어 아메리카 대륙에서 빠져나가 레모네이드의 마수에서 완전히 벗어나고자함이었다. 레브의 우수한 성능 중에는 좌표 설정과 자세한 위치가 있어 레브의 안내에 따라 매튜는 레브를 따라가고 있고, 가는 도중 철충부터 시작해 레브와 매튜를 언제 감지했는지 모를 레모네이드의 바이오로이드까지 보았다. 전부 파괴하면서 나아가긴 했지만 아직 조선소로 가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지금, 과연 별 탈 없이 갈 수나 있을지는 모른다.


"아무튼 제가 이겼으니까 제가 말했던 대로 해주세요."


"대체 이걸 왜 내기로 부탁하는 거야..."


"그치만...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레브가 우는 소리로 말하자 매튜는 기겁하면서 그녀의 바램대로 해주기로 했다. 레브의 우는 소리보다는 저 대사가 이상하게 매튜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기에 그러는 것이었다. 매튜는 팔을 확 뻗어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자, 됐냐?"


"네!"


"다시 그런 개같은 말 하지마."


"재밌어서 또 할려구요."


레브가 부탁한 것은 매튜와 자신이 손에 손 잡고 사이좋게 조선소로 향하는 것이었다. 계속 한 자리에 있다간 철충과 레모네이드의 습격을 항상 받아내야하는 입장이라 둘은 조선소로 향하기로 정했고 최적의 최단 루트를 레브가 찾아내어, 그 곳으로 향하기 전 레브가 갑자기 손을 잡자고 부탁했었다. 그 정도 부탁이야 들어줄 순 있으나 조선소로 향할 때까지 손을 잡자는 말에 매튜는 거부했다. 레브는 끈질기게 잡자고 부탁했으나 매튜는 모르쇠였고 결국 레브는 내기를 통해서 잡을지 안 잡을지를 정했다.


레브의 승리로 끝난 이 승부는 그녀의 뜻대로 매튜와 함께 손을 잡고 조선소까지 향하는 것으로 되어버렸다.


"나도 잡았으니까 너도 약속 지켜라."


"저는 한 입으로 두 말 안 한다구요?"


"입도 없는 게 뭐라는 거야."


매튜 역시 끝까지 손을 잡고 간다는 것에 이상하리만치 부담감을 느꼈기에 조선소까지가 아닌 조선소로 향할 탈 것을 발견할 때까지, 혹은 조선소와의 거리가 딱 반 남았을 때 놓기로 했다. 레브가 말하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해서 꼭 지키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하는 매튜를 보며 레브가 그럼요 그럼요 하면서 그를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매튜는 만일 레브가 사람이나 바이오로이드였다면 매우 음흉하게 웃었을 거라 생각했다.


레모네이드가 그들의 소식을 알아차린 것은 너무나도 빨랐다. 레브 역시 레모네이드들의 지나치게 빠른 습격 때문에 어쩌면 조선소로 향하는 길에 병력이 깔렸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그러나 레브는 하나도 걱정하지 않았다.


에이다를 원형으로 하여 거기서 여러 단계를 위로 올린 업그레이드를 거친 자신은 펙스 콘소시엄이 자랑하는 최고의 바이오로이드이다. 레모네이드의 해킹도, 펙스 소속 바이오로이드들의 공격력도 자신이 전부 상회하는 수준이니 그 무엇도 걱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레브는 매튜가 걱정이었다. 매튜 역시 철충 9마리를 처치할 수준으로 강하고 오르카 호에서 탈출했을 때도 블랙 리리스를 일격에 기절시키고, 라비아타와의 근접전에서 승리한 전적이 있으나 레모네이드들이 총수들로부터 배운 교활함과 비겁함은 매튜 역시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래토록 걷다가 밤이 되고 둘은 휴식 시간을 가졌다. 레브는 휴식이 필요없지만 매튜는 필요했다. 위치 발각을 우려해 모닥불도 피우지 않아 차가운 바람을 가죽 모포로만 막아내는 매튜이지만 그는 떨지도 움츠려들지도 않았다. 매튜는 가슴의 구멍 근처를 만져봤다. 더는 아픔이 느껴지진 않지만 이 구멍에서 자신의 체력과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오르카 호에서 고통을 못 참아 몸을 있는대로 긁어대면서 피를 뿜어대고 살갗들을 뜯어낼 정도로 큰 상처들은 전부 치료되었지만 코나가 쐈던 알바트로스의 입자포로 인해 뚫린 이 가슴의 구멍은 메워지지 않는다. 레브에게 이걸 물어보아도 레브 역시 왜 그런지 모른다고 말하였다. 체력과 에너지의 빠른 소모 때문에 휴식이 잦고, 식사 역시 여러번 해야하기 때문에 이제 남은 물도 식량도 얼마 없는 상황이다. 남은 음식은 아껴먹는다면 2일치가, 물은 이제 딱 하루치가 남았으니 식량이 다 떨어지면 황무지의 벌레라도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물은....이 황무지에서 식수원이 있는가도 불분명했다.


매튜는 이제 자서 빨리 체력과 에너지를 회복하자고 생각해 쓸데없는 생각은 관두고 잠을 청하려고 할 때, 무언가가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에 벌떡 일어섰다. 레브 역시 무언가를 감지해 매튜를 데리고 바위 뒤로 몸을 숨겼고 곧이어 연이은 여러 폭발이 일어났다. 누군가들이 레브와 매튜의 위치를 알고 그곳을 향해 유탄을 쏜 것이었다. 매튜는 폭발의 연기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근처에 떨어진 2개의 돌맹이를 줍고 고개를 든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극도로 민감해진 감각을 여전해 자욱한 폭발의 연기와 어두운 밤의 환경에서도 7명의 인간 실루엣을 포착했다. 그가 돌을 던지자 2명의 바이오로이드의 머리를 터뜨렸고 그 즉시 아래로 굴러 자신에게 다가오는 1명의 바이오로이드에게 접근했다. 그 바이오로이드는 357구경 스놉노즈 리볼버와 경찰봉을 가지고 있었고 매튜는 이 무장을 보아선 미스 세이프티임을 알았다. 오르카 호의 그녀들이라면 매튜는 공격을 꺼릴 것이다. 정 공격한다 하더라도 죽이는 수준이 아닌 기절하는 수준으로 그칠 것이다.


그렇지만 레모네이드의 바이오로이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는 리볼버와 경찰봉을 빼앗자마자 경찰봉으로 미스 세이프티의 머리를 박살냈고 리볼버를 연달아 3번 격발해 3명의 바이오로이드들의 미간에 정확하게 꽂았다. 마지막 남은 미스 세이프티가 근처 바위에 숨어 엄폐한 것을 보자 그는 경찰봉을 던졌다. 경찰봉은 뒤의 바위에 튕겨져서 숨어있던 미스 세이프티의 등을 강타했고 곧바로 그녀가 숨은 바위 위에 올라온 그는 그녀의 이마에 대고 리볼버를 격발하여 7명의 습격자를 모조리 처치했다.


레브는 이런 광경을 볼 수록 매튜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가 7명의 미스 세이프티를 몰살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초다. 무척이나 빠르고 신중하고 확실한 공격으로 한명 한명씩 차례대로 살해하고, 마지막 남은 자가 엄폐하자 경찰봉을 던져 도탄시켜 그녀를 맞췄다. 이러한 행동이 고작 10초만에 일어났고 심지어 매튜는 표정 변화 없이, 망설이는 기색 조차 없었다.


"여기서 벗어나야겠군."


더 올 것이다. 추운 밤인데다 바람까지 불고 있음에도 위치 발각을 방지하기 위해 불도 피우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추적자가 금새 따라붙었다. 7명의 추적자들의 연락이 끊어졌으니 더 많은 추적자들을 보낼 것이 뻔해 매튜는 쉬는 것보다 좀 더 빨리 조선소로 향하는 길을 재촉하기로 했다. 미스 세이프티의 시체에서 무기를 노획한 그는 경찰봉 하나와, 357 매그넘 다수, 기관단총으로 스스로를 무장시켰다. 바이오로이드의 무장이니 철충에게 꽤나 넉넉한 피해를 넣을 수 있었다. 덤으로 유탄발사기까지 챙긴 그는 레브와 함께 조선소로 향했다.


"레모네이드가 언제 남미 지역까지 접수한 거지?"


매튜가 레브에게 물었다.


"남미 지역까지 접수한 것은 아마 최근일 거에요. 엘살바도르가 레모네이드의 주요 거점인 북미 지역과 거의 맞딱뜨린 곳이기도 하니까요. 저희들이 아무리 빨라봤자 결국 걷는 거니까 금방 따라잡힐 수 밖에 없어요."


"레모네이드의 통신망에 몰래 잠입하는 건 불가능한가?"


"그 정도야 쉽죠. 통신망 잠입에서 그치지 않고 아예 레모네이드의 통신망 자체를 소멸시킬 수도 있어요. 하지만 반드시 레모네이드가 알아차릴테죠. 레모네이드 역시 펙스 콘소시엄에서 꽤나 공들여 만든 거니까요."


"그런 거까지는 안 원해. 그냥 우리를 습격할 계획이라던가 그런 걸 알고 싶은 거지."


"다른 레모네이드야 속여넘길 수 있겠지만...."


단 한 명의 레모네이드가 걱정이었다.


"오메가. 그녀는 절대로 속아넘어가지 않을 거에요. 오메가의 케스토스 히마스를 해킹하다가 오메가에 의해 바이러스가 심어질 수도 있거든요."


"할 순 있지만 위험 부담이 너무 크군."


"저희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차린 것을 보면 방금 추적자들은 오메가가 보낸 것이 확실할테니 저희들은 최대한 몸을 사려야 하는 거 아시죠?"


"하아....그래도 무기라도 있으니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이는 군."


둘은 이후 도로를 발견해 그 도로를 타고 걸어갔다. 매튜는 밤에 보충해야하는 체력과 에너지를 보충하지 못 해 피곤하고 배고프고 목말랐다. 그래도 또 다시 추적자들이 따라붙을 수도 있어 내색하지 않고 참으면서 어서 빨리 가장 근처에 있는 조선소가 뿅 하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추적자와 거리를 벌리기 위해 낮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고 걸었지만 그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건 정말 빨랐다.


레브가 뒤를 돌아보고는 매튜에게 말했다.


"2km 정도 벌어진 거리에서 우리에게 오고 있는 추적자가 있어요."


"벗어나는 건?"


"불가능해요."


"하아....구성이 어떻게 돼?"


"몽구스 팀 소속 바이오로이드에요. T-14 미호, AS-12 스틸 드라코 6체, P-24 핀토 3체, T-60 불가사리 5체에요."


"홍련은 없나보군."


"C-77 홍련은 반드시 있을 거에요. 몽구스 팀은 항상 같이 활동하니까요. 하지만....감지는 안 되는데....일단 차량을 탑승한 채로 오고 있긴 해요."


레모네이드가 보낸 추적자, 몽구스 팀들이 차량을 타고 온다는 말에 매튜는 그녀들의 차량을 탈취하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고 레브는 딱히 말하지 않아도 그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등에 매고 있는 유탄발사기를 꺼내고 약실을 열어 유탄들이 전부 있는 것을 확인 후, 다시 약실을 닫고 견착했다. 차량을 파괴하면 안 되니 그는 살짝 아래를 조준하여 그녀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몇 분 후, 그녀들이 탄 차량이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레브는 곧바로 역장을 펼쳐서 미호의 저격을 막았다.


"언제 쏠 거에요?"


"내가 신호주면 내려."


좀 더 차량이 접근해야한다. 매튜는 그녀들이 탄 차량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유탄에 직격해도 파괴당하지 않는 내구도를 가진 것이지만 그는 차량이 비교적 멀쩡하기를 바랬다. 미호가 차량 위에서 저격을 멈추지 않았고 차량은 매튜를 들이박을 것 마냥 속도를 줄이는 기세도 없었다. 차량과 그와의 사이가 약 43보 정도 남자,


"내려!!"


레브에게 역장을 내리라고 지시 후, 역장이 사라지자 유탄을 도로 아스팔트에 쐈다. 유탄의 폭발이 아슬아슬하게 차량의 머리를 삼키진 않았으나 차량의 안면이 까맣게 그을릴 정도는 되었다. 그녀들이 탄 차량들이 무력하게 넘어졌다. 위에 있던 미호는 차량이 넘어지기 전에 내려왔으나 내려오자마자 매튜가 쏜 리볼버에 머리가 관통당해 즉사했다.


가장 성가신 저격수를 처치했으니 매튜는 다음 표적을 노렸다. P-24 핀토, 그가 노리는 것이었다. 비행이 가능한 핀토이니 저격수인 미호 다음으로 번거로운 상대이니 만큼 미호를 처치했다면 그 다음으로 즉시 노려줘야 했다. 겨우겨우 차량 뒷칸에서 나온 핀토 한 명을 침착한 사격으로 헤드샷을 맞춰 즉사시켰지만 다른 둘은 곧바로 비행하여 하늘 위로 올라갔다. 돌격소총으로 매튜를 겨눠서 난사하기 시작했지만 그녀들의 공격은 레브의 역장에 무의미하게 막혔다. 탄들이 땅을 구르자, 역장을 내린 그녀는 곧이어 뒤에서 자신을 공격하려는 불가사리를 향해 열 광선을 발사했지만 스틸 드라코의 방패가 열 광선을 막았다. 드라코의 방패에 막혔지만 방패가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뜨거웠다. 레브는 다시 열 광선을 쐈지만 이번에는 열 광선이 뻗어나가면서 광선의 궤도가 이리저리 꺾였고, 뒤에 있는 불가사리의 얼굴을 뚫어버린 후에 어느새 다가온 레브는 드라코의 머리를 손으로 쥐어 태워버렸다.


핀토들의 공격을 피하면서 자신도 공격을 가하던 매튜의 손에 총알이 박혔고 매튜는 손에 쥔 기관단총을 놓치고 말았다. 그는 핀토 두 개체의 화력에 벌집이 되기 전에 마침 다가오고 있는 드라코의 방패를 드라코보다 더 한 괴력으로 빼앗으면서 동시에 주먹으로 그녀의 머리를 터뜨렸다. 바로 방패로 핀토의 소총탄들을 막아내던 매튜는 측면에서 기습을 가한 불가사리의 공격에 그대로 당해 옆으로 날아갔다. 방패를 놓치고 땅을 구르다가 낙법으로 곧바로 일어섰다. 두 핀토는 탄집을 교체하기 시작하고 그 동안 스틸 드라코와 불가사리가 매튜를 몰아붙혔다. 매튜는 가장 먼저 달려드는 불가사리의 파일 벙커 공격을 흘리고 뒤로 가서 그녀의 파일 벙커 중 하나를 뜯어낸 뒤에 그대로 휘둘러 불가사리의 척추를 부러뜨렸다. 즉사한 불가사리의 시체를 방패 삼아 핀토와 드라코의 공격을 막아내다가 리볼버를 뽑아서 기습적 사격을 가해 핀토 하나를 추락시키고, 이번에는 리볼버를 부메랑처럼 던져 또 다른 핀토의 머리에 맞췄다.


그 핀토는 죽지 않았지만 머리에 피가 흐르고 시야가 흐릿하고 어질거리는 정도의 피해를 입어 잠시 뒤로 후퇴했다. 그는 불가사리의 시체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드라코의 방패에 던진 후에 경찰봉을 꺼내어 던져 뒤로 후퇴 중이던 핀토의 머리에 정확히 꽂았다. 3명의 핀토를 처치한 그는 이제 불가사리와 드라코만 남은 걸 알았다.


이제부터 그의 차례였다.


드라코의 방패를 빼앗자 드라코는 샷건으로 그의 얼굴을 조준했다. 물론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그가 휘두른 방패에 두개골이 박살났지만. 드라코를 발로 뻥 차고 그녀가 놓친 샷건을 주웠다. 일단 방패를 앞세워 다른 드라코들의 공격을 방어했다. 불가사리가 달려와 그가 뺏은 방패를 부수려고 했지만 불가사리의 스피드보다 그의 샷건 사격이 더 빨랐다. 샷건의 커다란 총성이 울렸고 불가사리의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 아무것도 없이 그저 피만 뿜어져 나왔고 그는 다가오는 불가사리들을 전부 그런 식으로 처치했다. 불가사리들이 전부 죽자 방패를 버리고 파일 벙커를 뜯어내 양손에 하나씩 장비하고, 드라코의 샷건을 회피한 뒤에 파일 벙커로 방패와 바이오로이드를 동시에 파괴하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스틸 드라코 역시 방패와 함께 자신이 파괴되었다. 매튜는 이제 주위를 둘러보며 이번 추적자들도 전부 처치했다고 보았다.


"후..."


매튜가 추적자들을 상대하고 있는 사이, 레모네이드가 보낸 몽구스 팀이 타고 온 자동화 차량을 해킹한 레브는 한 손으로 차량을 들어올린 후에 부드럽게 바퀴 쪽으로 땅에 놓았다.


"이 차는 이제 저희 겁니다. 저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다."


드라코의 샷건과 방패를 챙긴 그는 레브 쪽으로 걸어갔다.


"뭐하고 있나 했더니, 잘했다."


"이야, 이제 조선소까지는 금방이겠네요. 솔직히 손을 더 못 잡는 게 조금 아쉽지만요."


"난 아닌데."


"조금은 아쉬운 척이라도 해달라구ㅇ...조심해요!"


운전석의 문이 열리면서 거기서 피를 흘리며 나오는 홍련의 얼음 볼트가 발사됐고 그는 뒤로 돌아 등에 멘 방패로 그 공격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스틸 드라코의 방패는 공격을 막아주지 않았고 마치 연기를 가르듯 얼음 볼트가 그의 등에 꽂혔다. 얼음 볼트가 꽂히자마자 몸이 서서히 얼어붙었고 홍련은 그 즉시 레브의 열 광선에 당해 사살되었다.


"매튜! 매튜!"


매튜는 이전에도 홍련의 얼음 볼트에 맞아본 적이 있다. 너무 오래 전 일이다. 자신의 몸이 화학 물질로 넘쳐나던 소위 전성기라고 불리던 시절에도 홍련의 얼음 볼트에 맞으면 얼어붙어 제압당해야 했다. 레브는 당장 매튜에게 달려왔다. 다행히 그의 살짝 특별한 신체가 얼지 않기 위해 온 몸으로 열을 내고 있어 그는 쉽사리 얼어붙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미 얼음은 그의 배까지 올라온 상태였지만.


레브는 그의 몸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오른손의 온도를 조절해 천천히 그를 묶은 얼음을 녹였다. 너무 뜨겁게 열을 낸다면 얼음이 부서지면서 그의 신체에 막대한 상처가 날 것이고 그가 고통스러워할테니 무척 세심한 조절이 필요했다. 다행히 레브의 AI에게 있어 그 정도 일은 누워서 떡먹기였다. 얼어있을 땐 추운 걸 못 느꼈다가 얼음에서 완전히 벗어나자 체온이 뚝 떨어졌다는 것을 느낀 매튜는 덜덜 떨기 시작했고 레브는 왼손으로 그의 이마에 손을 댔다.


"세상에...27도에요. 어떻게 안 죽는 거에요?"


그는 입도 떨려서 말도 못 했지만 눈으로는 내가 죽기를 바라냐는 듯 물었다.


"농담이에요. 뭐....선을 좀 많이 넘긴 했죠? 아무튼 얼른 차에 타죠. 거기엔 모포도 있을 거고, 식량도 있을 거에요. 부축해줄게요."


레브의 부축을 받아 차량의 뒷칸에 모포를 덮고 누운 그는 안에 있는 초코 도넛을 보고 그것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현재 그의 뇌는 얼어죽지 않으려고 체온을 있는대로 끌어올리려고 할테니 그 사이에 많은 열량이 소모될 것이니 초코 도넛의 높은 열량으로 이 것을 커버하고, 뇌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도 함께 할 것이다. 2개의 초코 도넛을 먹은 그는 모포를 머리까지 덮고 몸까지 굽혀서 열이 모포에서 빠져나가지 않게끔 유지했고 레브는 그런 그를 위해 위에 모포를 2개 더 덮어줘서 열이 그대로 남게 하였다. 물론 3개를 더 깔아 그가 무거움을 느끼게 하려는 것은 덤이었다.


차량을 해킹하면서 가장 가까운 조선소까지 경로를 설정했기에 운전석에 아무도 없어도 차량은 제 스스로 움직인다. 시간이 꽤 지나 체온이 돌아온 그는 모포를 치우고, 안에 있는 차가운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그는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자동화 차량인데 왜 운전석에서 홍련이 나온 걸까요?"


다른 몽구스 팀 소속 바이오로이드가 보이지만 홍련만 안 보이는 건 확실히 이상했지만 왜 운전석에서 나왔는지는 몰랐다. 운전석에 있을 필요는 없어도 일단 운전석과 조수석이 있긴 하니까 거기에 앉은 것일 테다. 게다가 매튜는 오르카 호의 홍련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소란스러운 걸 싫어하는 홍련이기에 드라코와 핀토 때문에 시끄러운 뒷칸보다 비교적 조용한 운전석에 앉아 조용함을 즐기고 싶었던 거일 것이다. 매튜는 이렇게 몽구스 팀을 보고, 또 밤에 자신을 습격했던 미스 세이프티를 보니 오르카 호의 그녀들의 근황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커피를 마셔서 목마름을 해결하자마자 바로 커피를 내려놓은 그를 보며 레브가 말했다.


"지금 오르카를 그리워하는 건가요?"


"...잘 아는군."


"오르카 호를 생각할 때면 항상 표정이 똑같거든요."


자신이 그랬다는 것이 좀 못 믿긴다는 반응을 보인 매튜는 아직 남은 도넛을 하나 들고 씹었다. 쩝쩝 거리는 소리를 뒤로 하고 레브가 물었다.


"정말 이해가 안 되긴 해요. 당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게 오르카 호인데 당신은 그 오르카 호를 그리워하다니. 심지어 당신이 싫어하시는 여성 분도 계시잖아요?"


"...그렇지."


"왜 증오하지 않으세요?"


증오, 그 두 글자를 머리 속으로 되뇌이던 그는 반이나 남은 도넛을 한 입에 집어넣고는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목으로 음식물을 넘긴 그는 아직도 도넛이 많이 남은 걸 보았다.


"...증오하기엔 나도 이미 저질러버렸다."


약에 미쳐 거인으로 변이했던 자신을 떠올렸다. 알바트로스와 대결하면서 오르카 호는 천천히 파괴되다가 자신이 내지른 비명으로 파괴되고 자신은 해류에 휩쓸려 엘살바도르까지 가버렸다. 매튜는 지금의 감상을 말했다.


"알바트로스가 없었더라면 난 바이오로이드, 코나, AGS 가리지 않고 전부 몰살했겠지. 내가 해류에 휩쓸려서 엘살바도르까지 오게 된 건 나도 신기하다. 익사하지도 않았지."


핀토의 총알이 박혔던 손과 불가사리의 파일 벙커에 강타당한 옆구리의 상처는 전부 아물었다. 이전과 같은 치유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효과가 발휘되고 있었다.


"...대체 왜 살아있는지 모르겠다."


아쉽기라도 한듯, 정말로 궁금한듯, 이해가 안 가는 듯 그는 왜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있는지 도통 몰랐다. 다리를 껴안고 쪼그려 앉은 레브는 매튜가 느끼는 지금의 심리를 말해주었다.


"지금 당신은 '유사 죽음' 상태에요. 좀 어려운 의학 용어인데 죽음의 문턱에 갔다 돌아온 사람들은 살아있지만 자기 자신은 스스로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이 부질없다고 느끼며 무력한 기분을 느끼죠. 혹시 그렇게 느끼고 계신가요?"


"...잘 모르겠군. 일단 레모네이드 세력권에서 벗어나는 건 확실하게 생각하고는 있지."


"그럼 탈출 후에는요?"


탈출....그 이후의 일이 매튜의 머리를 지배했다. 모든 생각이 그것으로 대체되었고 모든 생각이 앞날을 생각하게 되었다. 탈출 후, 어디든 갈 수 있다. 든든한 친구와 함께라면 어디든 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탈출 이후 무엇을 해야할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할 때다.


오르카 호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해야만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은 나지 않았다. 지금 매튜에게 오르카 호를 걱정하는 마음은 있어도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없었다. 레브는 매튜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 그의 어깨에 머리를 댔다.


"오르카 호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해보셨어요?"


그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렵죠. 돌아가는 건. 사람은 자신이 죽을 뻔한 장소와 그 장소와 비슷한 곳을 꺼리니까요. 생명체라면 누구나 가지는 일종의 본능이죠. 운전 중 사고가 나서 죽기 직전에 간신히 살아돌아온 사람이 두 번 다시 핸들을 못 잡는 일은 흔해요. 오히려 그게 정상이죠. 전쟁터에서 총을 맞아 죽을 뻔한 군인이 그 때의 일이 계속 머리 속에 재생되고 거기에 큰 심리적, 정신적 충격을 느끼는 것. 매튜 씨가 무엇을 느끼는지는 잘 알고 있어요. 당신에게 있어 오르카 호는 죽음의 장소일테니까요."


그가 오르카 호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도 않는 것의 이유는 그의 심리적 영향이 가장 컸다. 레브가 보기에도 오르카 호로 돌아간다면 안 봐도 비디오일 것이 뻔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자신이 죽을 뻔한 그 장소에서 그가 그 곳에 이전처럼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갈 리가 없다. 하루하루 자신의 죽음을 마주해야할 것인데다 특히 매튜의 죽음은 무척 고통스러운 죽음이었으니 그의 죽음을 그가 마주한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 일 게 뻔하다. 그러면서 레브는 또 다른 걱정도 들었다.


"당신은 강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돌아간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더더욱 걱정돼요. 당신이 만일 당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그 선을 넘을지 아니면 기억으로 엄습해오는 고통을 느끼며 괴로워할지."


"무슨 의미지?"


"제 알고리즘으로 나온 결과에요. 코나, 라고 했던가요? 인류 최후의 여성을 마주하면 당신은 순간의 감정에 지배당해 그녀를 죽일 수도 있어요. 바이오로이드에게도 똑같이 할지도 모르죠. 물론 당신은 강한 사람이 맞지만 강한 사람일 수록 그 사람이 가지는 감정도 격렬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내가 그녀들을 죽일 수도 있다고?"


"추측된 결과로는, 네. 그래요."


그는 자신이 절대로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은 그런 짓, 결코 하지 못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오르카 호에 별 다른 생각도 감정의 치우침도 없는 제3자인 레브는 그의 돌발행동이 거의 무조건 벌어진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차라리 그가 그녀들에게 살의를 드러내도 그녀들을 죽일 능력이 없다면 그 편이 훨씬 안심이다. 하지만 그는 바이오로이드는 꽃 꺾듯 죽여버리는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으니 더더욱 문제가 된다. 레브는 잠깐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여기서 탈출해 배를 타고 오르카 호가 정박된 곳으로 가 그녀들을 만났을 때 매튜는 코나를 보자마자 달려들어 그녀의 머리를 쥐어잡아 으깰 것이다. 인간은 피를 보면 흥분한다. 이미 흥분된 상태에서 피를 보면 그 피의 맛을 더 보려는 미친 개처럼 날뛸 것이다. 시뮬레이션은 매튜가 분노를 제어하지 못 할 것이라고 확신에 차 말하고 있었다. 물론, 그는 제압될 것이다.


오르카의 바이오로이드 상당수를 죽인 후 말이다.


"그 추측은 잘못되었군. 난 그녀들을 죽이지 못 한다. 코나는....기분은 나쁘겠지만 죽이진 않겠지."


"알고리즘의 계산이 항상 정확하지 않다는 건 동의해요. 하지만 당신은 이미 여러 모습을 보여줬잖아요."


"무슨 모습?"


"미스 세이프티와 몽구스 팀 척살."


"그것들은 오르카 호의 바이오로이드가 아니었다."


저런 말이 나올 줄 알았는지 레브는 곧장 반박했다.


"하지만 모습은 똑같았죠."


"모습이 똑같다고 해서 내가 틀렸다는 건가?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니 뭔가 성능에 나사가 빠졌군 그래."


"그래요? 그럼 그녀들과 오르카 호의 그녀들이 뭐가 다른지 말씀해주실래요? 아, 그냥 말 안 하셔도 돼요. 당신과 함께 보낸 추억이니 뭐니 하고 말할 거니까요. 똑같은 개체이지만 엄연히 다른 바이오로이드를 죽여서 지금까지 거기에 죄책감을 가진 사람이잖아요. 당신이 저에게 말하셨죠. 그 때의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와 지금의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는 똑같은 자들이 아님에도 그녀들을 보면 그 때가 떠오른다고요. 당신은 아마도 미스 세이프티는 물론 몽구스 팀 역시 죽인 전적이 있겠죠. 그런데도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죽였잖아요.'


심지어는 무기까지 빼앗아 역으로 죽이고, 확실히 죽도록 급소만 노리며 망설이는 시간은 단 1초도 찾아볼 수도 없었다, 고 레브가 말하고 싶었지만 매튜가 표정으로 불편함을 그녀에게 표하고 있었다. 레브는 얼굴은 없어도 그가 지금 무슨 표정이고 무슨 기분인지 알 수 있었다.


"제 추측이 무조건 맞다는 말은 아니에요. 확률이 높다는 거죠. 그리고 왠만하면 이 확률로 정해진 일은 반드시 일어날 수 밖에 없어요."


"...."


"매튜 씨. 지금 당신은 확실하게 바이오로이드를 향해 살의를 가지고 있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오르카 호에도 있는 바이오로이드와 동형의 개체를 그렇게 망설이는 기색 없이 죽일 수 없어요. 정 제 말이 안 믿긴다면 당신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당신이 죽을 뻔한 장소에서, 당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자들이 그 곳에 있고, 거기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발휘한 사람이 거기 있어요. 정말로 날뛰지 않을 수 있어요? 진심으로?"


"이젠 시끄러워 죽겠군. 난 잔다."


더 이상 듣기 싫다는 의미로 매튜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하고, 레브의 물음을 피해 누웠다. 누울 때도 화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 행동 하나하나가 거칠고 난폭했다. 코 앞에 있는 초코도넛이 담긴 작은 박스를 바깥으로 던져버리기까지 한 매튜는 레브에게 등만 보였다.


물론 레브는 그가 저러면서도 자신이 한 말을 곰곰히 생각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녀가 맞았다. 매튜는 화를 식힐 목적으로 누웠다가 몇 시간 후엔 레브의 말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탈출한 뒤로 어떻게든 오르카 호를 찾아서 그녀들에게 돌아간다고 해보자. 모두가 보일 것이다. 자신을 발견해준 콘스탄챠와 그리폰. 호탕하게 자신에게 들이댔던 아스널, 전략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용, 누구보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라비아타와 리리스, 그리고 리리스를 비롯한 컴패니언. 항상 활기가 넘치는 브라우니와 그런 브라우니를 중재하는 레프리콘, 노는 것과 참치를 좋아하는 LRL, 항상 맛있는 식사를 대령해준 소완, 살짝 부담스럽지만 충성스러운 리제,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귀여운 동생처럼 보이는 닥터, 항상 아군이 되어준 포츈....그녀들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들을 생각하면 오르카 호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반대 역시 있었다. 명백하게 적의를 드러내었던 메이와 레아, 그의 모든 걸 거부했던 레오나, 가장 그에게 반발한 마리, 조용하게 거부감을 표했던 칸, 그 외 여러 바이오로이드들....마지막으로 항상 마지막에 이기는 미소를 지었던 코나까지. 그녀들을 생각하니 매튜는 오르카 호로 돌아가고 싶었다. 돌아가서 목을 비틀고 흉곽을 무너뜨리고 머리를 쪼개버리고 싶었다. 특히 코나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고통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녀를 죽지 않는 몸으로 만들어서 최대한 온갖 고통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만일 그 누구라도 자신을 막는다면....


그런 생각을 했던 매튜는 곧바로 부정했다. 아니야,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이래선 안 돼. 하지만....


이런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니 매튜는 자연스레 분노가 살아났다. 심지어 이 분노가 감히 그녀들을 해치려는 생각을 한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인지, 코나에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녀들에게 하는 것인지 그 자신도 잘 몰랐다. 목적이 없는 분노는 장작 없는 불이라 쉽게 꺼지는 법인데 지금 마음 속에 화재를 일으키고 있는 불은 장작을 넣은 것으로 모자라 기름을 호스로 뿌리는 것 마냥 맹렬히 타올랐다.


레브는 길에서 주운 탄피를 손가락으로 굴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잠을 자지 않는 그녀에게 있어 밤이란 시간은 아주 긴 시간이었다. 그래서 이 긴 시간 때 윌슨과 함께 대화하는 것을 즐겼다. 윌슨은 멀리 가기 귀찮다는 이유로 야영지에 그대로 있어, 지금은 대화할 수 있는 대상이 그 외엔 없었다.


"그런 생각이 원래 자연스러운 거에요. 당신은 예수도 부처도 아니니까요."


레브의 말을 무시한채 그는 자는 척 했다. 레브 역시 그를 깨우려는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니었다. 이건 지금 깊은 잠에 빠져 무엇 하나 들을 수 없는 그를 향해 말하는 것이었다.


"또, 개인적으론 전 당신은 안 돌아갔으면 해요. 친구된 자로서 제 친구에게 그렇게 심한 짓을 한 그녀들에게로 다시 돌아간다는 건....전 납득하지 않을 거에요. 하지도 못 할 테지만."


레브가 실수로 탄피를 떨어뜨리자 탄피가 땅에 2번 튕기고 곧 데굴데굴 굴렀다. 레브는 다시 그 탄피를 주우며 말했다.


"사실 목적이 그리 중요한가요? 전 친한 친구라면 어디든 좋은데."


"...."


"당신도 그럴 거라고 믿어요. 음, 아니지. 좀 그랬으면 좋겠네요."


말 없이 매튜는 정말로 잠들었고, 레브는 앞으로 3시간 뒤면 조선소에 도착한다는 걸 알았다. 차량을 살짝 조작해서 속도를 줄여 그가 편안한 잠을 잘 수 있게 만들고 되도록이면 그가 피로를 느끼지 않을 때까지 재워둘 예정이다. 레브는 항상 밤에 혼자 있을 때마다 보는 프로그램 기능을 켰다. 멸망 이전 인류에게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남녀노소 할 거 없이 모두 이거를 보며 웃었다고 한다. 레브 역시 인식이 인간 수준이 되었기에 그 프로그램을 보며 재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동 차량은 도로를 달렸다. 강한 듯, 약하게.



☆ ★ ☆ ★



조선소 안의 모습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지저분하고 눅눅하고 냄새 역시 별로 좋진 않았지만 인류 멸망 이후 100년 간 관리가 안 되었음을 감안했을 때 이 정도의 환경도 제법 양호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 조선소는 그저 배만 만드는 조선소가 아니었다. 해양형 AGS를 만드는 공장이기도 했다. AGS를 만드는데 쓰이는 합금은 녹이 잘 안 들기로 유명하고 특히 해양형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통상의 것보다 훨씬 더 오래간다. 둘이서 탈 거라 그렇게 좋게 안 만들어도 되지만 레브는


"이왕 하는 김에 좋은 거 하나 만들어보죠. 혹시 알아요? 보트를 또 쓸 일이 있을진."


"그래....난 일단 재료들을 찾아오지."


매튜의 말에 힘이 없자 레브는 차량 안에서 자신이 했던 말이 떠올라 그에게 물었다.


"아직도 삐졌어요?"


"안 삐졌어. 처음부터."


"누가 봐도 삐진 거 거든요. 그거."


"안 삐졌다니까."


"그럼 말고요. 목소리에 힘이 안 들어가서 그런 줄 알았죠."


그는 다시 조선소의 안을 훑어보았다. 이상하게 눈에 밟히는 곳이 많았다. 이 곳의 냄새는 금속과 바다, 먼지, 곰팡이의 냄새가 섞인 참 이상한 냄새였지만 그는 이 냄새 중 일부를 맡고 정말로 오래간만인 느낌도 들었다. 물건들의 배치....바닥의 금....


자세히는 모르지만, 매튜는 자신이 여기에 들린 적이 있다는 걸 알았다. 천인대 시절 임무를 위해 들린 적이 있다 생각하고 일단 이 혼란스러운 기분을 제쳐뒀다.


"...그냥, 여기에 오니까 뭔가 어지러워서 그래."


"....."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레브는 공장 안을 수색해보고 보트의 선체가 여럿 있는 것을 보았고, 이것들 역시 AGS 합금으로 만들어진 거라 녹슬지 않았다. 선체를 발견했으니 이제 다른 것들을 구하면 되었다. 그녀는 매튜에게 동력장치 및 자동식 운용기를 찾아달라 부탁했다. 매튜는 이상하게 익숙한 이 곳에서 능숙하게 동력장치와 자동식 운용기를 찾았고, 레브는 그에게 그것들을 받아 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레브가 보트를 만들고 있을 때 매튜는 식수를 찾으러 잠시 바깥으로 나왔다.


그가 먹을 물을 찾으러 잠깐 공장에 떨어져 있었을 때, 어느 바이오로이드가 저격 망원조준경으로 그를 관찰하고 있었고, 주위에 여러 바이오로이드들이 무장한 채 있었다. 바이오로이드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들과 반대편에서는 다수의 철충들이 나타났다. 철충들은 인간의 뇌파가 감지된 남아메리카 지역 공장으로 와보았고 거기서 아직 살아있는 인간을 발견했다.


그를 지금까지도 망원조준경으로 지켜보고 있는 건,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발키리. 레모네이드의 바이오로이드이었다. 그녀는 귀에 장착되어있는 이어피스를 누르고


"감마 님."


자신의 주인, 레모네이드 감마를 호출했다. 조그맣게 그 신호를 수신받는 소리가 들리자 발키리는 곧바로 보고했다.


"마지막 인간 남성과 펙스의 걸작품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다수의 철충 병력들 역시 그들을 노리고 왔습니다."


잠깐 조용해진 발키리는 이후 5초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발키리의 옆에는 아머드 메이든, 스트라이커즈, 캐노니어의 비스트헌터, 에밀리, 파니, 버뮤다 팀의 네오딤과 레이시, 스카디, 화이트셸, 스파토이아가 있었으며 그것도 꽤 다수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녀들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의 AGS들이 있었다.


"...예."


스파르탄과 비슷하게 생긴 AGS들이, 저격소총으로 그를 조준했고 발키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


"인류 최후의 남성, 매튜 에이번즈 생포 및 러브크래프트 Type-P의 무조건적 생포. 임무 시작합니다."


철충들 역시 조심스레 공장을 향해 천천히 접근하고 있다. 레브는 드디어 올 것이 왔나 싶었고, 매튜는 깨끗한 물이 흐르는 냇가를 앞에 두고도 사방에서 들려오는 여러 공격적인 소리 때문에 다시 공장으로 돌아갔다.


레브는 잠깐 보트 제조를 멈추고 자신의 시스템에 접속해 몇 가지 작업을 끝마쳤다. 아무런 추진 장치 없이 공중에 떠오르고, 주위의 여러 물질들도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녀의 몸에 보라빛 스파크가 일어나면서 그 스파크는 땅과 벽을 이리저리 긁고, 주위의 물체를 떠오르게 했다. 그녀의 몸에 회로 모양의 보라색 빛이 생겨났고 이목구비가 없는 그녀의 얼굴에 2개의 눈동자가 생겨났다. 하늘에 거대한 먹구름들이 생겨나 주위를 어둡게 했고 천둥 소리와 함께 거센 비를 내렸다. 번개가 땅에 내려치고, 공장 주위에 번개와 바람이 소용돌이쳤다.


러브크래프트 Type-G는 모든 걸 할 수 있는 AGS이고,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아주 정밀하고 중요한 것까지 할 수 있다. 거기엔 전투 역시 포함된다. 그리고 러브크래프트 Type-G를 포함한, 에이다에 파생된 업그레이드체들의 공통점은 몇 가지 기능을 비활성화시키고, 일부 기능을 대폭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 레브는 지금, 전투 기능과 인식 기능을 제외한 모든 기능을 꺼버렸다. 기상을 조작할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 오베로니아 레아와 똑같거나 혹은 더 강한 기상 조작, 버뮤다 팀의 초능력보다 더 강한 출력의 초능력. 지금의 레브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파괴의 화신이 되었다.


공장으로 돌아온 매튜는 레브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긴 했지만 앞으로 다가올 전투에 집중하기로 했다. 스틸 드라코의 샷건과 방패와 여러 무기로 무장한 그는 적이 오기를 기다렸다.


철충과 공장의 거리는 약 1km, 레모네이드가 보낸 습격자들과 공장의 거리는 64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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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출근 때문에 자야하는 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