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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을 잃은 이 방은 이제 드나드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항상 수없이 드나드는 이들로 인해 북적이고 어수선했던 곳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활기가 느껴졌었던 이 방을 저 또한 가만히 생각에 잠기고 싶거나, 책 몇 권을 챙겨 시간을 죽이고 싶을 때만 찾게 됩니다. 

자주 드나들고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지만, 방에 들어설 때는 항상 아무도 듣는 이는 없을텐데도 읊조리듯 '죄송합니다.' 라고 말해버리고 맙니다. 

방 한 켠에 놓인 책상에 앉아 늘 피곤에 절어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던 그 분이 계실 것만 같았기에, 노크 하나 없이 드나드는 것이 무례를 저지른 것만 같아서, 제가 미처 예지하지 못한 사이에 다시 돌아와 계실 것만 같아서 자그마한 기대와 송구스러움을 갖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폐하께서 떠나시고 한 달이 흘렀습니다. 



저는 무능하게도, 폐하께서 떠나신다는 미래는 전혀 예지할 수 없었습니다.

예지가 빗나가는 것은 한 번 뿐이라고, 더 이상 빗나가는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 일까요. 근래에 들어서는 이 예지가 좀 처럼 들어맞는 일이 없습니다. 

예지가 적중했다해도 커다란 테두리만 그려볼 뿐, 테두리 안의 내용물을 모두 파악하지는 못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예를 들자면 샬럿, 그녀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그녀에 한해서는 더더욱, 제 예지가 들어맞았어야 했습니다.

두번째 폐…사령관님이 오시고 나서 사소한 것 부터 차츰 변화한 그녀는 겉으로는 그다지 변한 듯한 인상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이들보다 두번째 사령관에게 보다 큰 관심을 가지던 그녀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폐하께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두번째 사령관을 우려하고 어색해하던 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지요. 폐하와 사령관, 두 분 모두에게 성심성의를 다하는 듯한 그 모습이 몇몇 이들에게 감돌던 어색함과 어수선함 마저 걷어내주는 듯 했습니다.






분명, 그 때 부터였습니다. 

함교에서의 사건으로 폐하께서 실신하셨던 뒤, 처음으로 가졌던 회의 이후.

제 무능력함을 절실히 깨달은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 회의가 끝나고 함교에서 애써 모른 척 하시며 숨을 돌리시는 폐하의 옆에서 저는 떨림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제껏 보지 못한, 너무나도 허망해보이면서 깊은 수심이 담긴 눈을 하고계신 폐하를 보고 견딜 수 없었습니다.

샬럿에게 따져 묻자고 정한 뒤, 폐하께 양해를 구하는 것도 잊은 채 빠른 걸음으로 함교의 출입구로 향했습니다. 

행위에 대한 것이 아닌, 본분에 관한 것을 따져 물을 셈이었습니다.

그녀는 여러모로 무모한 면이 있었어도,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이전에 없던 분노를 키우고 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따져묻는 상황 자체를 만들어선 안됐을 제가 태연히 폐하를 수행한다는 것이 견딜 수 없었습니다. 



"아르망."



깊은 눈 만큼이나 깊은 목소리에서는 애써 평온함을 눌러담은 기색이 느껴졌습니다.

등 뒤에서 들려온 그 목소리에, 저는 조심스레 돌아 고개를 살짝 숙였습니다.



"괜찮아, 그런 표정 짓지마."



저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폐하께서 저렇게 근심어린 표정으로 말씀하시는 걸까요.

폐하를 마주 뵐 수 없었습니다. 

오르카의 그 누구보다도 하루 중 폐하를 수행하는 시간이 가장 긴 저였기에 더더욱 뵐 수 없었습니다.

양 어깨에 손길이 느껴집니다. 다시 한번 아르망. 하고 불러주신 그 목소리는 방금과는 다르게 따뜻함만을 머금고 있습니다.

고개를 들어 뵌 폐하의 모습이 물결쳤기에 저는 다시 시선을 피해버리고 맙니다. 

그런 저를 다정히 안아주신 채, 폐하는 말씀하신 겁니다.



"항상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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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서는 하루가 너무 짧다고 쓰게 웃으시면서, 한숨을 쉬시는 날이 이전보다 빈번해졌습니다. 


이전보다 더욱 시간에 쫓겨 식사는 하는 둥 마는 둥 하셨고, 수면시간보다 패널과 바이저를 끼고있는 시간이 더욱 많아지셨습니다. 각종 결제서류와 보고서를 돌아 볼 시간은 없었습니다. 지휘관들과 참모들이 거들기는 했지만 섣불리 손 댈 수 없는 사안 또한 많아졌기에 서류더미는 하루가 멀다하고 사령관실 한켠에 쌓여 갔습니다.




이전에는 휴식을 권해드려도 곧잘 거부하시는 폐하를 참모들이 합심해 강제로 쉬게 한 적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럴 때 마다 폐하께서도 난감한 기색을 아주 잠깐 내비치기만 하셨을 뿐, 너무나 따뜻한 미소로 고맙다고 말해주시는 폐하셨기에 다소 무례한 조치는 사소하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폐하께는 그렇게까지 할 수 없었습니다. 아뇨,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매달리듯이 이를 악 문 것만 같은 표정으로 서류와 패널과 바이저를 다루시고 함교와 사령관실을 쉴 새 없이 드나드는 폐하는 무언가에 쫓기듯 초조해 보이셨기에, 반대로 매달리듯이 직무에 의존하는 것 처럼 보이시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절박하게 느껴져, 감히 휴식을 권해드릴 수 없었습니다. 이런 날이 계속되면 머지않아 건강을 해칠 것을 알고있었음에도, 저는 그저 묵묵히 폐하를 수행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나날들의 연속에서 두번째 사령관의 방문은 그 무엇보다도 갑작스레 느껴졌기에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내민 서류에 적힌 내용은 당황스러움을 넘어서서 불온하게 마저 느껴지기까지 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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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있었나요?"


이 방 한켠에 놓여있는 소파에 앉아 작은 창에 시선을 고정한지도 꼬박 한나절이 흘렀습니다.

오전 무렵에 들어와 지금까지 느낀, 수면에서 내려오던 빛은 온데간데 없어졌으니 굳이 시계를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소파에 아직까지 폐하의 향과 온기가 남아있지는 않을까하여 저는 조금 애달픈 손으로 소파를 매만져봅니다.


"사령관실이 바뀐 지 언제인데 계속 여기에 틀어박히는 건가요?"


절 찾아온 그녀, 샬럿은 기가찬다는 듯이 혀를 차고는 도로 나가며 한 마디를 더합니다.


"폐하께서 찾아요. 어서 가보는게 어때요?"


그를 폐하라고 칭하는 그녀에게, 창 밖에 비춰진 바다의 수심만큼의 증오와 가증스러움을 느끼면서, 또 그만큼의 아쉬움을 소파에 남겨놓으면서 두번째 사령관이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지나가면서 마주친 몇몇 이들이 인사를 건내왔지만 그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제게 와있는 용건을 최대한 빠르고 조용히 끝내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어서와요. 아르망."


새 사령관실에 들어서자 간사해보이면서도 속을 알 수 없는 인상의 남자가 맞이해줍니다.

다수의 이들이 이 남자의 외모를 구석구석 칭찬했지만 제게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더하여 꺼림칙함마저 느낍니다.

꾸벅, 고개만 가볍게 한 번 까딱이고 그가 앉은 책상까지 다가갑니다.


"당신이 필요하다고 호출한 숫자가 꽤 되는데, 혹시 전달받지 못했나요?"


누구나가 칭찬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물어오는 그 였지만, 저는 함구 할 뿐입니다.


"아 물론 참모로서의 당신을 찾은거에요."


구태여 덧붙일 필요 없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저는 그가 최대한 무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무심하게 말했습니다.


"용건만 하시길."


"그렇다면야 뭐."


제 태도야 별거 아니라는 듯, 그는 가볍게 손사래치고는 책상에 있던 서류 한 장을 제게 내밀어옵니다.


"그 누구보다 아르망한테 먼저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번 봐줄래요?"


한 손으로 낚아채듯 그 서류를 받아들고는 무신경함을 유지한 채 저는 서류로 고개를 내렸습니다.

그 서류는 그가 직접 작성한 사령관 명의의 서류이기도 했고, 지시사항 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서류의 내용은 서두부터가 제 눈을 몇 번이고 의심하게 만들만한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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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아르망은 앳된 외형과는 달리 오르카의 그 누구보다도 성숙함이 느껴지는 소녀였다.

어쩌면 그 외형 때문에 되려, 보다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 내가 아는 그런 인상은 온데간데 없이 아르망은 내 허리춤을 감싸앉고 무릎꿇은 채 하늘이 떠나가라 목놓아 울고있다.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던 여러 감정은 때마침 다시 내리기 시작한 소나기에 꺼져버린지 오래였기에 나는 그녀의 눈높이에 맞춰 몸을 내리고, 안아주기에는 망설임이 있어서 어깨만을 빌려주기로 했다.


어느정도 감정을 쏟아 낸 아르망이 몸을 추스르기 시작하자 소나기는 그쳤다. 

아르망의 손을 잡고 같이 일어난 뒤에,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아르망이 다시금, 폐하를 뵙습니다."


울음기가 아직 덜 가신 채 애써 미소지으며 말하는 그 얼굴이 한 때의 그녀에게서는 그다지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기에 나는 무심코 작은 웃음을 흘렸다.


"…오랜만이야. 아르망."


젖은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거슬렸기에 머리를 한번 슥슥 털고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일단 자리를 옮기자."


오른 팔로 아르망의 어깨와 목을 감싸듯 안고 더치 걸과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발키리에게 눈을 까딱이니 바로 이해했다는 듯 내 뒤에 서서 그보다 더 뒤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를 경계하며 뒤따랐다.

감싼 어깨는 아직 울음기가 다 가시지 않은 탓에 오른 팔을 통해 떨림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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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 내려온 산의 어귀에서 최대한 테마파크가 보이지 않는 곳에 터를 잡았다. 

모닥불을 중심으로 조금 넓게 둘러감싸주는 나무들이 사뭇 아늑히 느껴졌다.

아이들 또한 나와 비슷했는지 식사를 마치고는 얼마안가 꾸벅댔기에 아이들을 텐트로 들이고 다시 모닥불로 돌아온 참이었다.

근처의 나무를 등지고 서있는 발키리에게 말했다.


"식사는 해라."


발키리는 고개를 까딱였지만 신경쓰이는게 있다는 눈치로 자리를 지키는 채 였다.


"명령은 상관말고 와서 먹으랄 때 먹어."


그렇게 말하고도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발키리는 단념한 듯 다가와 내 반대 편에 앉았다.


바로 옆에서 머그 잔을 홀짝이는 아르망은 내 여벌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모닥불을 맞아 벌개진 모습이, 옷 사이즈가 맞지않아 박시한 핏을 내는 그 모습이 아이들과는 또 다른 보호본능을 자극했다.

아르망은 머그 잔을 홀짝이며 모닥불이 주는 포근함으로 아련한 눈을 한 채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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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쓸 수 있으면 이어 씀. 아 배고프당


재밌게 읽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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