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https://arca.live/b/lastorigin/30055745


2편 : https://arca.live/b/lastorigin/30209595


3편 : https://arca.live/b/lastorigin/30369956


4편 : https://arca.live/b/lastorigin/30490834


5편 : https://arca.live/b/lastorigin/30485059


6편 : https://arca.live/b/lastorigin/30826035


----------------------------------------------



#18. 아! 남자의 검은 소중하죠! 그렇고 말고요!



이른 아침, 그는 닥터에게 용건이 있어 찾아간 겸 자신의 건강검진을 명령했다. 

닥터는 밤을 샜는지 피곤한 표정으로 슬리퍼를 질질 끌고 전반적인 건강을 살폈다.

건강검진을 진행하며 닥터는 그에게 발키리를 데려갈 AGS로 로크를 추천했고, 그는 순순히 받아들이곤 부관 업무를 맡겠다던 라비아타에게 로크와 발키리를 이전에 정박했던 섬으로 이동시키라고 명령했다.

답지 않게 순순히 닥터의 의견을 받아들인 이유는 이 곳 오르카 안에서 자신의 명령을 거부할 개체는 없다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음, 전반적으로 신체 상태는 양호 하지만 긴 동면상태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문제들이 있어."


"예를 들어?"


"근육량도 매우 적고 호르몬 분비 또한 매우 적은 상태야."


"해결 방법은?"


"호르몬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 받아야지. 아, 그리고 근육도 재활운동을 꾸준히 해야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은데.. 그는 셔츠의 단추를 밑에서부터 하나 하나 잠구며 고민했다.

닥터는 바이오로이드 중 두뇌에 있어선 돋보적인 존재다. 분명 다른 방법이 있겠지.


"다른 방법은 없어?"


"당연히 하암.. 있지. 오리진 더스트랑 호르몬주사를 혼합하여 놓으면 되는 시술인데, 문제는 한번 투여하는데 소모되는 자원이 많아서.."


닥터는 잠결에 말하곤 아차 싶어 끝을 흐렸지만 그는 미소 지었다.

옛날엔 빚을 져 바이오로이드를 구매하곤, 바이오로이드를 노동시켜 빚을 갚는 자들도 분명 있었다.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필요한 재료가 있다면 바이오로이드들이 구해오면 되는 것 아닌가.


"당장 준비하지, 닥터. 필요한 재료들하고 자원 다 전송 시켜놔. 명령이야."


그냥 피곤해서 건강검진을 시켜본건데 예상 외의 수확이 있었네. 자신의 낙원을 만들 생각에 그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곤 패널을 켜 닥터가 전송한 물품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추천 대원 목록. 더치걸.. 으음.."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패널을 보곤 나즈막히 하품한다.

아무래도, 라비아타에게 명령하고 잠이나 자야겠어. 라고 중얼거리며 함장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19. 의도가 좋다고 결과도 좋으리란 보장이 있나요?



출격 명령을 받고 로크 위에 올라탄 발키리를 레오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올려다봤다.


"...미안해."


"사령관 각하께선 저희를 구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실겁니다."


레오나는 고개를 푹 숙이곤 주먹을 꽉 쥐었다. 발키리 답지 않은 부드러운 미소를 보니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

이 모든 문제의 원흉이 자신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발할라에서 뵙겠습니다. 레오나 대장님."


담담하게 내뱉는 발키리의 말에 레오나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대원들의 발할라에서 보자는 말은, 죽음을 각오했을 때나 하는 말이다.

분명, 발키리는 사령관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레오나의 그런 마음을 아는건지 발키리 역시 대답을 들을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려 로크에게 출발해도 괜찮다는 말을 했다.

로크는 자신이 발키리를 제압하여 사령관 앞에 대령할 계획이니 걱정할 것 없다는 말을 할까 고민했지만, 그녀들의 감동적인 이별을 방해할까봐 말하지 않았다. 그러곤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이해와 공감이란 AGS에게 불필요한 요소이지만 어떤가, 나는 결국 그것마저 학습을 마쳤다.

자신의 주인인 앙헬이 이런 모습을 보면 높은 확률로 자신을 폐기했을 것이라는 결과를 도출하며 엔진을 가동시키기 시작했다.


[출격합니다. 주의하시길.]


로크의 엔진에서 발생화는 굉음에 레오나와 발키리는 귀가 먹먹해졌다.

그러곤 부상한 오르카호의 거대한 문이 열리고 엄청난 바람과 함께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20. 리오보로스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연금술.. 아니 이게 아닌가?



"주군을 위해 준비한 베이스캠프가 어떠한가?"


역시는 역시랄까, 마리 밑에서 고생한 스틸라인 대원들은 어째서인지 다방면으로 출중하다.

뭐라고 해야할지 형용할 수 없지만, 군용으로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들이 시멘트 건물을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니 몇번을 봐도 놀라운 모습이다.


"대원들이 고생했겠구나. 미안하게.."


"하하! 주군을 위한 고생이라면, 무엇이 될지라도 영광스러운 일이니 그런 말 하지 말게."


섬에 지어진 베이스캠프라기엔 뭔가 호화로운 건물들을 보고나니 어쩐지 이프리트의 눈 밑에 다크써클이 더 진해진 기분이다.


"그래도 휴식은 보장해줘야지. 대원들 전부 개인정비시간 가지게 해줘."


요안나가 웃으며 병사들에게 손짓하자 오와 열을 맞춰 서있던 대원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역시 힘들었구나..


"하하.. 면목없군. 대원들도, 나도 주군을 오랜만에 볼 생각에 들떠있어서 그렇네."


사령관은 멋쩍게 웃는 요안나의 어깨를 토닥이곤 주변을 살폈다.

해가 조금 저물어 지르르르 울기 시작하는 풀벌레들, 바람에 이끌려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엔진음..

음? 엔진음?

뒤로 몸을 확 돌리자 검은 그림자가 졌다.


"로크?"


[아, 다시 뵙게되어 반갑습니다. 사령관 각하.]


사령관은 갑작스러운 로크의 등장을 이해하기 위해 맹렬하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머리를 굴리는 것도 잠시, 로크가 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발키리? 로크, 놓아줘!"


사령관의 외침에 로크는 손에 쥐고 있던 발키리를 내려놓았다.

정신을 잃은 듯 조용히 두 눈을 감고 잠든 발키리는 어째서인지 가녀린 손목을 등 뒤로한채 수갑이 채워져있었다.


"수갑 풀어줘, 로크."


[권장 드리기 어려운 명령이로군요, 사령관 각하.]


발키리에게 달려가 가볍게 발키리를 들어올리던 사령관은 발키리가 항상 챙기던 개인 화기, 모신나강이 사라져있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이곳에 있는 것도 이상하거니와, 목숨 같이 여기던 개인화기를 두고 온 것에 커다란 위화감을 느꼈다.


"내게 설명할게 있지?"


[그렇습니다. 영민하신 사령관 각하. 다만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녀의 구속은 풀지 않는 것을 권장하지요.]


"주시게. 주군, 발키리양은 짐이 수복실에 데려가겠네."


가만히 로크의 말을 듣던 요안나는 사령관의 손을 통해 발키리를 조심스레 들어올리곤 대원들이 정성스레 지은 건물로 향했다.

사령관은 멀어지는 요안나를 쳐다보다 고개를 돌려 로크를 올려다보았다.


[휴가를 보내신지 이틀정도 되었습니까?]


"정확히는 이틀째지. 설명해줘. 왜 발키리를 기절시키고 구속한거야?"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을 해칠 수 없게 설계되었으나, 예외인 경우가 있죠. 인간이 인간을 해치라고 명령했을 경우, 바이오로이드는 '인간'보다 '명령'을 우선시 하게 됩니다.]


사령관은 잠깐 생각했다. 답은 순식간에 나왔다.


"얼마 전 구한 인간의 명령?"


[그렇습니다. 그는 오르카호를 점거하였습니다.]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의 명령을 듣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오르카호에 있는 대원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분명 거부 모듈을 달고 있는 개체들도 적지만 존재하고, 대부분은 군인이기 때문에 최고 명령자인 자신을 제외하곤 명령을 내릴 수가 없을텐데..?

사령관은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을 했으나 명확한 답을 내지 못하곤 로크에게 질문했다.


"그게.. 가능해?"


[사령관 각하께선 배려와 존중으로 오르카호를 이끄시지요. 그러나 인간에게 호감을 가지고, 충성을 바치고, 명령을 따르는 바이오로이드들과 인간은 다릅니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 정의, 가치관.. 단어는 그럴 듯 하지만 그것들은 욕망이 되기도, 분쟁이 되기도 합니다.]


로크는 너무 고성능의 AI를 지니고 있어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곤 한다.

그러나 로크가 뱉는 말은 절대적으로 유용하기 때문에 사령관은 로크의 말을 경청한다.


[고귀하신 분. 멸망 전 블랙리버와 삼안산업은 다가온 멸망에 대응하고자 손을 잡았었습니다. 동맹의 증표로 삼안의 가장 고성능 바이오로이드인 '라비아타'와 블랙리버의 가장 고성능인 '무적의 용' 개체를 교환하였으나 저의 옛 주인, 앙헬공은 삼안의 총수, 김지석을 믿지 않았습니다. 전쟁동안 안전을 도모하고자 080 요원들과 블랙리버 최고의 개발진들을 모아 동면장치를 개발해내었습니다.]


"그럼 우리가 구한 인물이 앙헬 리오보르스라는거야?"


사령관의 물음에 로크는 웃었다.

마치 재밌는 말을 들었다는 듯 붉은 안광이 깜빡였다.

그 모습을 본 사령관은 자신이 오르카로 돌아가거든 닥터가 로크에게 무슨 장난을 쳤는지 추궁하리라 다짐했다.


[하하 흥미로운 추측입니다만, 앙헬공과 비교하기엔 그의 수준이 너무 떨어지지 않습니까? 앙헬공은 그 누구도 믿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위해 동면장치를 개발한 바이오로이드와 개발자조차 믿지 않았지요. 결국 자신과 생물학적으로 가장 인접한 후안 리오보로스의 아들을 동면장치에 집어넣었습니다.]


후안 리오보로스..

사령관은 과거 기록에서 후안 리오보로스와 앙헬 리오보로스에 대한 기록을 열람한 적이 있었다. 서자인 앙헬 리오보로스가 마고 인터내셔널의 후계자가 되기 위하여 암살한 리오보로스 가문의 적자.


"아무리 그래도 조카를.."


[앙헬공에게 가족따위는 유사한 유전자를 지닌 존재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그러나 바이오로이드들에겐 다르겠지요. 후안 리오보로스의 아들이자 앙헬 리오보로스의 조카, 블랙리버의 정당한 후계자이기에 바이오로이들의 명령권자가 된 것입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 블랙리버 소속 바이오로이드들은 그렇다쳐도, 대원들 전부가 블랙리버 소속인 것은 아니잖아."


[삼안과 블랙리버가 동맹을 맺은 시점부터, 양측은 서로의 바이오로이드들의 명령권을 입력해주었습니다. 두 회사 소속이 아닌 개체들도 분명 존재하지만 지휘관 개체들은 대부분 블랙리버와 삼안산업 소속입니다. 그러니 소속이 다르다고 해서 다를 것은 없습니다.]


깊은 불안감에 빠졌다.

잠시 잊었던 구인류의 추악함과 폭력성이 떠오르고, 그의 명령을 들어야하는 자신의 대원들이 떠올랐다.

반드시 막아야하지만, 요안나와 대원들의 병력은 오르카에 비하면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아니, 요안나조차 그의 명령을 따르게 된다면 상황은 정말 최악으로 치닫는다.


[고뇌하시는군요. 그렇다면 저의 제안을 들어보시겠습니까?]


로크의 안광이 다시 반짝였다. 

사령관은 어째서인지 닥터가 눈을 반짝이며 설명해주는 모습이 겹쳐보였다.

...다시 돌아간다면 로크의 정비를 다시 맡겨야겠다. 닥터는 말고..


----------------------------------------------------------------


사실 공식만화에서 앙헬 얼굴을 보자마자 금태양이 떠올랐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아,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