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어이, 일어나!”

 어느 남자의 외침에 오쿠하시는 눈을 떴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어둠이었다. 누군가 그의 머리에 두건을 씌운 것이었다. 그는 두건을 벗기 위해 팔을 들어올리려 했지만 당연하게도 그의 몸은 의자에 꽁꽁 묶여있었다.

 “아, 오쿠하시씨, 일어났냐.”

 그 남자의 목소리는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았다. 낯익은 목소리였다. 두건은 완전히 빛을 차단하지 않았다. 천을 통해 자신에게 걸어오는 누군가의 실루엣을 볼 수 있었다. 그 껄렁거리는 몸짓을 본 오쿠하시는 그 남자가 누군지 알아챌 수 있었다.

 “하나야마, 네 자식이냐. 니지키 새끼. 결국 그새끼였군. 베짱도 좋아. 엔도조 부두목인 나를 납치하고 말야. 새꺄, 내가 누군지 알고서 이러는 거야? 이러고도 엔도 형님이 니들을 가만히 둘 거 같아?”

 “글쎄. 애초에 엔도씨가 먼저 이쪽에 싸움을 건 것 아닌가? 이쪽도 아버지뻘 되는 조직에 싸움을 걸고 싶을 리가. 그보다도 왜 마에다를 죽인 거지?”

 “싸움 걸고 있는 건 그쪽이잖아! 게다가 뭐가 엔도씨야. 엔도 형님은 니 형님이 아니냐? 어디서 씨를 붙이고 있어?”

 하나야마는 오쿠하시에게 주먹을 날렸다. 두건에 피가 튀겼다. 오쿠하시는 아린 뺨을 문지르고 싶었지만 그의 팔은 움직일 수 없었다. 어금니도 아파왔다. 그 충격에 위치가 어그러진 것인가. 입 안에는 피가 고였지만 두건을 쓴 그는 피를 뱉을 수도 없었다.

 “그 술잔은 마에다가 죽은 날 깨졌어. 말단 조직원들 죽어나갈 때는 니지키 형님께서도 설마 엔도씨가 우리를 공격할 거라고는 믿지 않았단 말야. 마에다가 죽은 날, 우린 깨달은 거야. 엔도씨가 우리를 얼마나 호구로 보고 있는지를. 그래서, 마에다를 왜 죽인 거야?”

 “나는 모르는 일이야! 엔도 형님은 네놈들이 설마 우리에게 싸움을 걸지 않았는지 아직도 걱정하고 있다고! 니놈들이 감히 우리를 배신했을 거라는 생각도 못하고 나한테 아직 니지키 새끼를 믿어보라고 했다고. 시발 새끼들이.”

 하나야마는 다시 주먹을 날렸다. 이번에는 반대쪽 얼굴이었다. 그의 입에 머금고 있던 피가 두건에 터지고 입가로 흘러내렸다. 그의 턱을 타고 내려간 피가 목에 묶인 두건에 고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새끼 말이나 들어봐라. 뭐라고 지껄이는지.”

 그는 조금 옆으로 걸어가더니 누군가의 입에 붙인 테이프를 뜯었다.

 “그래, 씨발, 내가 그 새끼를 죽였어! 원래는 니지키 쇼 본인까지 죽일 생각이었는데 내가 운이 나쁜 건지 그 새끼가 운이 좋은 건지 마에다? 그 새끼만 죽었어. 자, 잠깐! 지금 뭐하는 거야!”

 전기모터가 도는 소리가 들렸다. 위이이잉. 하는 소리가 오쿠하시의 귀를 찌르는 듯이 요란하게 울렸다. 톱이 사람의 살을 써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피가 솟구치는 소리, 목으로 피가 역류하면서 자신의 피에 익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씨발! 지금 뭐하는 거야! 씨발!”

 마구잡이 튄 피는 오쿠하시에게도 날아왔다. 한두방울이 날아오는 수준이 아니었다. 거의 피를 통에 담아 뿌린 것 마냥 오쿠하시에게 피가 쏟아졌다.

 “들었냐? 방금 죽은 새끼는 스즈무라 켄이치야. 엔도조의 말단의 말단인 새끼지. 이새끼를 찾는데는 시간이 좀 걸렸어. 별의별 조직을 다 찾아다니느라 늦은 거야. 존나게도 머리를 썼더라? 여러 조직을 통해 명령을 내리고 돈도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근데 결과적으로는 죄다 존나게 쓸모없는 짓이었어. 그래봐야 직접 실행한 건 니들 조직이었으니까. 치밀하면서도 허술한 트릭이었지. 그래서 말야. 언제 불거야. 먼저 시비를 튼 건 니들이잖아.”

 “뭔 개소리야! 이건 모함이라고. 누가 두 조직을 싸움 붙인 거라고! 우리가 니들 쳐서 볼 이득이 뭔데!”

 “바이오로이드 사업.”

 “뭐?”

 바이오로이드. 하나야마의 입에서 들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단어였다.

 “니지키 형님에게 엔도씨가 덴세츠의 그년을 소개시켜준 뒤로 우리도 덴세츠가 주는 바이오로이드 사업을 일부 시작했단 말야. 그리고 이쪽도 나름 열심히 해서 그 일 좀 키웠지. 엔도씨 입장에서는 배가 아팠던 거야. 지들게 될 수 있는 사럽인데 괜히 덴세츠에 소개를 해줘서 그 사업이 다 우리에게 빼앗긴 거니까. 그래서 그걸 지들걸로 하겠다고 싸움을 건 거 아냐?”

 “생각을 해봐! 엔도 형님이 니지키에게 덴세츠의 아마미야를 소개시켜준 건 파이를 나눠가지려는 게 아니었다고. 니지키에게 다른 파이를 준 거야! 그걸 나눠먹고 싸우고 할 건 없다고! 우리가 뭐가 부족하다고 니들 사업을 빼앗아가겠어!”

 “세상에 부족하지 않은게 어딨어. 돈 통에서 헤엄을 쳐도 부족한게 이 세상의 돈 아니겠어?”

 오쿠하시는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부정해야 했다. 그것이 그의 유일한 변명이 될 수 있으니까.

 “잘 생각해봐! 우리 두 조직이 싸우면 누가 이득을 볼 지를! 이 두 조직이 작살나면 누가 이득을 볼지 생각해봐!”

 “이간질은 개뿔. 누가 야쿠자를 이간질을 해. 경찰이 그러겠어, 신센카이가 그러겠어? 집에서 꼬추 긁으면서 야쿠자영화라도 보는 거야? 영화 말고 현실을 봐. 현실을. 세상은 그런 논리따윈 없어. 야쿠자들끼리는 인의따윈 없고 수틀리면 서로 칼빵이나 찌르려고 눈치보는게 세상이야. 설마 평생을 야쿠자짓 하면서 살아오고선 이제와서 모른척 하려는 건 아니겠지? 오쿠하시씨, 인정할 건 인정해. 그쪽에서 먼저 이쪽 조지려고 싸움을 걸었고 우리는 보복을 한 것 뿐이라고. 그편이 신센카이의 큰형님들에게 엔도씨가 목숨줄이라도 쥘 수 있는 거 아니야?”

 “왜, 그래서 내 목으로 싸움의 맺음이라도 짓게? 엔도조와 전쟁이라도 벌이고 조직이 멀쩡하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오쿠하시의 위협에 하나야마는 어이없다는 듯 비웃었다.

 “엔도조.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지금 이시간 쯤이면 엔도조 사무실 대부분이 털렸을 거야. 존나게 죽어나갔겠지. 야쿠자는 군대가 아니야, 멍청아. 기습을 당하면 아무리 쪽수가 많아도 털리는게 야쿠자 새끼들이야. 니들도 경쟁조직 그렇게 조져왔으면서 그거 하나 몰라? 하긴 그걸 모르니 이렇게 여기 처잡혀온 거지. 내일 즈음 해서 니지키 형님이 엔도씨를 만날 거야. 그리고 그 자리에서 모두 싸움의 맺음을 짓겠지. 당신네들이 모든 책임을 지고 우리는 보복을 한 것 뿐이라고. 니들에게는 명분이 없어. 별것도 아닌 이유로 선빵을 때린 새끼들이 무조건 잘못한 거지. 내가 틀렸어?”

 틀렸다. 오쿠하시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엔도조에서 벌인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가 엔도조와 츄신구미의 사이를 이간질한단 말인가. 그것으로 이득을 볼 집단이 누구란 말인가. 그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누군가가 이간질을 했다면.

 “아냐, 아냐. 우린 그저 놀아나고 있는 거라고. 누가 우리를 싸움을 붙인 거야.”

 “병신새끼. 오쿠하시씨. 또 그 소리야? 아직도 음모론 주장이나 하게? 지겹지도 않아? 차라리 우리들이 잘못했습니다. 하면 내일 엔도씨 앞에 무릎 꿇리고 이쪽의 주장의 근거로라도 써먹었을 텐데. 죽은 저 새끼가 한 말처럼만 했어도 이러진 않았을 거야. 야, 그거 들고와!”

 “뭐, 뭘 들고 오는 거야! 뭔 짓을 하려는 거야!”

 오쿠하시는 발버둥쳤지만 의자에 묶인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원형톱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만 들리고 두건을 쓴 그는 볼 수 없었다. 그것이 그의 공포심을 더욱 자극했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시발! 우리가 아니라고! 우리는 놀아난 거라고! 미친 새끼들이 우리를 이간질한 거라고! 들어봐! 내말을 들어보라고! 으아아악!”

 피가 튀었다. 톱이 살을 자르는 소리를 내었다. 오쿠하시의 목은 조금씩 잘려나갔다. 죽어가는 오쿠하시는 무언가를 깨닫고 말았다. 누가 이간질을 시켰는지를. 두 조직의 싸움으로 두 조직의 힘이 빠지면 누가 이득을 보는지를.

 누가 두 조직과 같이 연관을 맺고 있는지를. 깨달은 것이 너무 늦어버렸다. 하루만 더 일찍 그 사실을 눈치챘다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총성으로 가득한 이 전쟁이 일어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모든 후회나 미련이 그렇듯, 늦어야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시발, 덴세츠라고, 덴세츠! 그는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그의 목은 이미 피로 가득찬 뒤였다.

 “하 시발,”

 하나야마는 들고 있던 원형톱을 바닥에 던졌다.

 “야쿠자 아니랄까봐 개같이 질기네. 야, 니네들. 이 새끼들 시체 처리해. 뭐 좀 되려나 했더니 괜히 데려온 거였네.”

 손에 묻은 피를 대충 오쿠하시의 시체의 옷에 문지른 하나야마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네, 형님. 오쿠하시는 처리했습니다. 이쪽의 의견에 따를 생각은 없던 것 같더군요. 자기들이 한 짓이 아니라고 끝까지 발뺌했습니다. 어떡할까요? 그냥 이대로 가는 건가요?”

 -이미 예상은 했던 바야. 내일 내가 엔도 형님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할 거야.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니 최대한 애들 모아서 가야 할 거 같아. 철포 하나씩 몸에 들고 가고.

 “진짜로 하는 겁니까.”

 하나야마는 걱정이라는 듯 말했다. 오쿠하시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양 말했지만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다. 엔도조에서도 가만히 자신들에게 당할 리가 없었다. 보복을 보복을 낳기 마련이다. 엔도가 니지키를 만난다는 것은 만나 직접 죽이려는 셈일 수도 있었다.

 -뭐 어쩌겠어. 마에다가 죽은 그날, 이미 선은 넘었어. 총성이 울린 게 많이 늦어졌을 뿐이야. 그럼 처리하고 오늘은 들어가봐.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니까.

 전화를 끊고 주머니에 넣은 하나야마는 눈앞에 쓰러진 오쿠하시가 뒤집어쓴 두건을 들추었다. 피가 쏟아지듯 흘러내렸고 죽은 오쿠하시는 비명을 지를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야쿠자의 말로는 이런 식이었다. 불쾌한 것을 본듯한 얼굴을 지은 하나야마는 두건을 덮어 그 끔찍한 얼굴이 보이지 않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