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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와르 사령관 1 , 2 /느와르 리리스 / 느와르 아르망 


느와르 팬텀 - 느와르 레이스 /느와르 닥터


느와르 금란 123


느와르 감마 / 느와르 장화과거 / 느와르 엔젤


느와르 더치걸느와르 리앤



ㅡㅡㅡ


어두운 방안의 천장이 울렁거렸다. 흐물거리며, 끄물덩거리며 교미하는 뱀 처럼. 적어도 백사 같은 여자, 천아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사실, 한 가지를 정정해야했다. 백색’이었던’ 여자. 백옥같은 얼굴와 머리에 끈적하게 달라 붙은, 새하얀 도화지 위에 붉은 매화를 치덕스럽게 바른 듯한 모습이었다. 날에 어울리지 않게 두껍게 여맨 하얀 테크 웨어 점퍼와 녹색 하이탑 러닝화도 나름 괜찮은 붉은색 데코레이션이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다리를 탁자에 턱하니 올려놓고는 소파에 앉아 입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담배를 잘근잘근 씹어대며 어린애처럼 킥킥대거나 발을 동동 굴렀다. 이리저리 움찔거리기도 하고 머릿속에서 윙윙대는 콧노래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무도 제지하는 이는 없었다. 그런 이들은 이미 바닥과 한 몸이 되거나 벽에 박혀 박제된 동물의 기분을 느낄새도 없이 눈을 감았다.


천아의 다른 손에 쥔 나이프의 칼날이 바닥을 향해 흔들거릴 때마다 피가 조금식 뚝뚝 떨어졌다. 허공을 그어내기도 하고 흩뿌려져 선을 만들기도 했다. 끈적거리는 지방들이 바닥에 척하고 달라 붙었다.


새하얀쪽에 가까운, 복숭아색과 견줄만한 입이 조금씩 열리며 담배 연기를 허공에 내뱉었다. 그녀는 그것을 보며 킥킥대었다. 하지만 이내 그런 웃음을 싹 멈췄다. 철 냄새 가득한, 질척거리는 머리가 서서히 굳어가고 있었다.


가벼운 한 숨이 허공을 그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이프의 선. 휘둘러진 은빛의 칼날이 의미 없이 슥슥 움직였다. 그녀는 지루하고 춥고 배고팠다. 기다림에 지쳐 갈라진 혀를 쉭쉭 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천아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그 무엇보다도 강한 확신. 자신이 아는 그년이라면 반드시 올 것이라고. 그리고 그년의 앞에서 물건을 던져버린다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목에 와이어를 감아버릴까? 아니라면 몸을 던져 잡아낼까. 어느쪽이던지 흥미로운 사색거리였다.


그녀는 책상위의 모듈 하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과거에 사랑해 마지않던, 어쩌면 가장 증오스러웠던 ‘여왕님’의 목줄. 마리아 리오보로스라는 이름하에 죽고 죽이던 삶을 강제한 족쇄. 어찌나 잘 관리되었는지 흠집 하나 없는, 아름답게 찢어 부셔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콧노래가 방안에 흥얼거렸다. 무턱대고 위 아래로 움직이는 나이프의 칼날과 흥에 겨워 까딱이는 어깨. 그리고 발소리. 담배가 필터 가까히 다 타버렸을 때, 그녀는 격하게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기억하는 이. 증오스럽고 사랑스러운 여제의 첫 번째 개. 장화가 눈 앞에 우악스러운 표정과 함께 서 있었다.


“장화. 왜 이리 늦게와. 존나게 기다렸는데. 나 안 보고 싶었어?”


“너...! 왜 이제와서!”


“왜라니? 나도 한 번쯤은 해도 되잖아?”


장화의 붉은 머리와 와이어가 움찔거렸다. 그와 동시에 천아의 칼날이 모듈의 위까지 턱하니 올려졌다. 그 둘에겐 익숙한 구도였다. 익숙하지만 잊고 싶었던 기억.

천아는 그저 고개를 까딱거리며 싱긋 웃어보였다. 오히려 끈적거리는 피내음을 맡은, 핏덩어리가 바닥을 기어다니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역겨웠다. 여제에게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를 잃어야 했다. 그것이 엠프레스 하운드의 법칙. 그리고 그것이 눈 앞에 버젓히 보여지고 있었다.


“벌써 잊었어? 이게 우리의 룰이잖아.”


“하. 좋아. 뭘 원하는데.”


“응?”


순간적인 대답에 천아는 믿을 수 없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눈꼬리를 올렸다. 입에서 터져나오는 담배 연기의 잔해와 더불어 웃음이 허공에 둥둥 떠다녔다. 여전히 장화는 쏘아보는 눈으로 와이어를 매만지고 있었다.


칼날의 끝으로 들썩들썩거리는 모듈이 격하게 움직였다. 정육면체로 되어있는, 각진 변들이 탁자에 맞닿아 작은 소리를 만들 때 마다 웃음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조소였다.


“이야. 미친년. 네 입에서 뭘 원하냐라는 대답이 나온다고? 빼앗기만 했던 네가?”


“내가 그걸 원하니까.”


“장화야. 말은 똑바로 하자. 네가 아니라 그 뷰웅신이 원하는 거겠지? 그... 누구였더라? 사령관이라고 하던가...?”


그 즉시 얇은 와이어가 천아의 목을 스쳤다. 증오스런 장화의 얼굴을 보인채로. 그녀는 더욱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새 장난감을 선물 받은 어린아이처럼. 물론 받은 적은 없었지만.


반대로 장화는 자신도 어째서 손이 나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가족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충성을 다할 주군도 아니었다. 그저,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순간적으로 나빠진 기분과 얼굴의 일그러짐. 그것들이 자꾸 입 밖으로 그리고 몸 밖으로 튀어나오려 발버둥치고 있었다.


천아는 나이프로 와이어를 툭하고 잘라냈다. 그녀에게 있어 이제 장화는 아무런 관심 대상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을 사령관이라는 남자가 가져간 듯 했다. 지난 백 년동안 어디 하나 정착하지 못한 그녀를 묶어둔 족쇄가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모듈은 아니었을 것이었다. 이 목줄은 여제만이 쥘 수 있었으므로.


“날이 좀 춥지 않아?”


“말 돌리지 마.”


“아니, 너무 추워. 씨발. 뒤지도록 추워. 그러니까... 이리 올래?”


“내가 널 믿으라고? 이제야 나타난 네 말을?”


“왜? 쫄려? 후달려? 이거 가져가야지. 사냥개 아가씨.”


다시 박장대소. 천아는 끅끅거리며 점퍼의 안 쪽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이 일고 연기가 올라왔다. 한 모금 후 내 뱉어지는 매캐한 연기. 사령관의 달콤한 초콜릿 향과는 다른 이질적인 역겨움이었다. 그녀는 다시 모듈을 까딱거렸다. 장화는 그 모습에서 여제의 모습을 보았다.


와이어가 질질 끌려 자국을 만들어 냈다. 끈끈한 점액들이 밀려 카펫 위에 마른 선을 만들어냈다. 그녀가 다가왔다 천천히, 한 발자국씩 다가갈 때 마다 천아는 밀려오는 고양감에 입꼬리를 올렸다. 옆으로 새어나오는 담배는 툭하고 떨어졌다.


“그런 표정 짓지 마. 존나 무섭잖아.”


“지금 내가 니 대가리 안 부수는 걸로 만족해.”


“하. 씨발년. 자존심은 존나게 높아. 그치?”


장화는 천아에게 더욱 가까히 다가갔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나이프를 치우고 모듈을 턱하니 집었다. 원래부터 자신의 것이라는 듯. 사냥개가 자신의 목줄을 다른 이에게 바치려고 하고 있었다. 지배를 누구보다 싫어하는 여자가 굴종을 종용하듯 머리를 숙였다. 천아는 그것을 보고 아이러니라고 여겼다. 모순이라고도 생각했다. 과거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 비슷하면서 상반되는 여자였다.


“그래서, 원하는게 뭔데.”


“아. 그거? 간단해. 귀 좀 대봐.”


붉은 머리와 담배 연기가 남아있는 복숭아색 혀가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순간, 천아는 팔을 뻗어 장화를 안았다. 따스한 체온이 식어버린 피가 끈적거리는 피부에 옮겨졌다. 차가움이 미지근함으로 변할 때, 새하얀 이빨이 분홍빛이 도는 목을 가볍게 물었다.


잘근거리며 씹히는 피부엔 피가 조금 새어나왔다. 가장 따뜻한, 뜨거운 감정. 장화는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붉으스름한 액체가 여자의 입에 서서히 담겼다. 마치 물을 탐하는 뱀처럼. 두 갈래로 갈라진 혀가 쉭쉬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천히 떼어지는 피부 사이에는 다시 차가움이 맴돌았다.


“미친년.”


“뭘, 새삼스럽게. 나 원래 이런년이잖아. 해보고 싶은거 다 하고 사는 또라이.”


“그래. 그게 너지. 그래서, 이번엔 여제님 흉내고?”


“응. 한 번쯤은 그렇게 해보고 싶었거든. 근데, 별로 좋지는 않네. 그 썅년. 살아 있을 때 싸대기 한 번 날려야 했는데. 뭐. 왜 그런 눈으로 봐?”


“왜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났는데?”


“이거 주러. 그거 뿐인데? 보고 싶었다거나 그립다는 단어가 우리 사이에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고. 뭐야. 그런거 기대했어?”


“꺼져.”


“퍼킹 빗치년. 말 이쁘게 한다.”


하얀 뱀은 씨익 웃었다. 하지만 장화는 웃어주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함으로 일관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리며 모듈을 허리춤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더 이상 미련은 없었다. 그래야했다. 천아는 마지막 남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잘근거리는 필터가 세 번 쯤 짓이겨졌을 때 끝에 불이 붙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 턱하니 올려지는 물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법한, 싸구려 핫팩이었다.


“뭐야. 서비스야? 우리 장화. 마음씨 참 곱다.”


“뒤지려면 나 안보이는데서 뒤져.”


“그러게. 그러면 나 죽으면 묻어 줘.”


“지랄하네.”


“네네. 사냥개 아가씨.”


장화는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천아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분명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음을. 그럼에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것이 장화의 마지막 자존심이었고, 바뀌고 있다는 것이기에. 


더 이상 목줄의 주인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


“돌아가는 길에 무서운 언니들 있더라. 아유. 그 썅년들. 떼거지로 몰려다니면서 삥이나 뜯고. 그치?”


ㅡㅡㅡ


다시 적막이 가득한 방 안에서 하얀 뱀이 쉭쉭 거렸다. 몸을 배배 꼬며 천아의 몸을 타고 목을 감는 뱀은 적당한 조임으로 그녀의 목을 죄었다. 마치 벌을 내리는 것 처럼.


담뱃재가 배 위로 툭하고 떨어졌다. 치우지도, 날아가지도 않은 재가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도 듣을 수도 없는 방 안에서 웅얼거렸다.


“아주 지극정성이야. 미친년. 정 한 번 주면 머리 숙이는 년이 자존심은 존나게 높네.”


하얀 뱀의 머리가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어졌다. 그녀가 생각을 정리할 때마다 하는 행동이었다. 쉭쉭거리는 뱀의 소리와 방안의 바람 소리가 겹쳐졌을 때, 천아는 목을 꺾어 소파에 기대듯이 누웠다.


“마리아 리오보로스. 썅년아. 네가 지껄인 말 기억하지? 우리는 행복하지 못할거라고?”


천아는 웃음기 가득한, 깔보는 듯한 표정과 함께 검은 천장에 붉은 물감으로 얼기설기 뿌린 듯한 중지를 치켜들었다.


“좆까. 갈보년아.”


ㅡㅡ


보자마자 삘 받아서 바로 썼다. 장화때도 이랬는데 뭔가 느낌이 좋으면서도 애매하네


엠프레스 애들은 죄다 느와르 특화 느낌이라 쓰기 편한 것도 있고


아직 성격이나 이런게 나온건 아닌데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어서 써봄


이러다가 감마 처럼 정 반대 성격 나오면 좆되는건데...


어쨌든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