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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 헌터가 단단히 화가 나서 자신을 날려버리려고 한 사건 이후, 리마토르는 아주 중대한 교훈을 하나 얻었다. 사령관과 지휘관들에게는 신용을 얻는데 성공했을지라도, 아직 대다수의 바이오로이드 저항군 구성원에게는 자신이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신뢰받지 못한다는 것이 단순히 피상적인 말의 수준 그대로일지라도, 어제 비스트 헌터가 지휘관인 로열 아스널이 직접 말리려고 하기 전까지 진짜 나를 정조준해서 가루로 만들려고 한 걸 생각해보면 내가 취해야하는 노선은 확고한 상태야.

 

난 아주 무해한 인간이고, 그저 연구를 하는 학자라는 것이지.’

 

기존의 노선을 고수하는 방침을 세우려고 했으나,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머리를 감던 리마토르는 순간 자신이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맞아, 내가 본질을 놓치고 있었어. 내가 무해한 사람임을 최대한 알리더라도, 인간의 명령권이 있는 이상 나는 존재만으로 언제든지 반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걸로 간주될 거야.

 

인간이 바이오로이드보다 위에 있다는 사실로 인해 문제가 된다는 건데.... 이걸 뭔가 깰 수 있는 방법이 없으려나?’

 

샤워를 마치고 옷매무새를 다듬는 내내 고민하던 리마토르는 아침 식사를 먹으면서도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 탐색에서 잔뜩 발견된 해물비빔소스 통조림을 최대한 빨리 먹어치우라는 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진 이후의 아침 식사였기에 모두가 고통스러워하는 와중에도, 혼자 무표정하게 식사를 이어가는 그의 모습에 브라우니들 사이에서는 그가 미각상실이라는 음모론이 또 퍼져나갔다.

 

음식 맛을 거의 못 느낀 채로 생각에 젖어 식당을 나온 그를 본 사령관은 그가 혹시 비스트 헌터가 저지른 무례로 인해 분노에 찬 것이 아닌가 우려했다. 팬텀을 시켜 그의 뒤를 밟게 했으나, 그가 만약 구 인류처럼 타락해버린다면 거기에는 필시 자신이 부하관리를 하지 못한 책임이 있을 것이기에 사령관은 자신이 지게 될 달갑지 않은 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그의 속을 떠볼 방법을 나름대로 고민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복도를 걷던 리마토르는 ‘인간과 바이오로이드가 동등하다’라는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계속 머릿속 수레바퀴를 굴렸다. 머리가 굴러간다는 말이 비유가 아닌 진실이었으면 그의 머리는 이미 360도로 돌고 있었을 정도였다.

 

방에 들어와 문을 닫고 침대에 풀썩 누운 그는 좀처럼 해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에 답답함을 느껴 한숨을 쉬었다.

 

“젠장, 분명 답이 있기는 할 건데...”

 

미간을 찌푸리고 로댕의 ‘생각하는 인간’ 자세로 고민에 빠진 그는 문제 해결을 위한 책들을 떠올려보다가, 순간 자신이 <자유론>과 함께 읽으려고 한 책을 생각하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거다!!!”

 

끊어진 전선이 이어져 감전된 것 마냥 머릿속에 찌릿한 감각이 지나간 후, 그는 자신이 써뒀던 메모를 들고 급히 안드바리를 향해 뛰어갔다.

 

그 모습을 은폐장 너머에서 지켜보던 팬텀은 사령관에게 ‘두 번째 인간이 반란 계획을 수립했다’라고 보고했다. 그 말을 들은 사령관은 드디어 리마토르가 타락했다고 판단하여 그녀에게 반란 계획을 상세히 입수해 오라고 지시했다.

 

그런 사정을 알 턱이 없는 리마토르는 오늘 강연 주제가 잡혔다면서 부푼 마음을 안고 안드바리에게 달려갔다.

 

“안드바리, 책 하나만 찾아줄래...요...?”

 

“앙? 좀 더 똑바로 들라고요!”

 

“히익... 알겠느니라...”

 

“으아앙~ 베라 언니~!”

 

그가 안드바리를 찾아 창고 앞에 도착해서 그녀를 불렀을 때, 한 손에 소위 ‘빠따’라고 불리는 야구방망이를 들고 LRL과 알비스에게 손을 드는 처벌을 지시하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LRL과 알비스의 목에는 각각 ‘저는 참치캔을 훔쳤습니다. 죗값을 치르겠습니다.’, ‘저는 초코바를 훔쳤습니다. 제 죄를 헤아리겠습니다.’라는 팻말을 걸고 울면서 팔을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처량해보였으나, 안드바리가 저렇게까지 화를 낼 정도면 대체 LRL과 알비스가 얼마나 털어갔을까 가늠하던 리마토르는 저 둘이 대털이라도 되는가 생각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그의 존재를 인지한 안드바리는 그가 무슨 일로 창고를 방문했는가 물었다. 리마토르는 그제야 생각에서 벗어나 <De I'esprit des lois>를 꺼내달라고 요청했고, 안드바리는 LRL과 알비스가 벗어나지 못하게 감시해달라고 말한 뒤 책을 찾으러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두 번째 권속이여, 속박에 사로잡힌 진조의 프린세스를 구해줄 수 없겠느니라?”

 

“리마토르님, 알비스 좀 풀어줘...”

 

안드바리가 잠시 시야를 돌린 틈을 타서 LRL과 알비스는 그에게 SOS를 쳤으나, 괜히 그녀들을 풀어줬다가 안드바리에게까지 신뢰를 잃을까 우려한 그는 둘의 부탁을 외면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해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그는 벌이 끝나면 자신의 방에 찾아오라고 살짝 귀띔해주었다. 같이 참치캔을 먹자는 말을 하자 귀가 솔깃했는지 LRL이 고개를 끄덕이자 알비스가 같이 눈을 빛냈다.

 

셋이 서로 소곤거리는 사이 안드바리는 그가 요청한 책을 찾아서 건네주었다. 한 번 내용을 훑어본 그는 자신이 고민한 답이 여기 있음을 다시금 확신하며 씩 웃더니 방으로 돌아갔다.

 

그의 모습을 본 팬텀은 저 책이 필경 반란 계획에 절대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책을 탈취해야겠다고 결정했다. 그가 빈틈을 보이면 바로 책을 은폐장 속에 감출 생각이었으나, 책을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고 눈이 튀어나오라 읽는 그를 보며 그녀는 그의 인내심이 자신보다 암살자에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책의 뒷표지를 덮은 그는 A4용지에 강의 내용을 적기 시작하며 말문을 열었다.

 

“이름이 팬텀 양인가요? 모습 드러내도 되니까 얼굴 보고 이야기해요.”

 

그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팬텀은 흠칫 놀랐다. 자기 스스로도 은폐장의 성능은 완벽하다고 자부하는데, 최첨단 신체를 가진 바이오로이드도 아닌 평범한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꿰뚫어보자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 개인적인 추측입니다만, 일단 거기 계신다면 들어주세요. 아니면 꽤나 부끄럽겠지만요.

 

당신이 사용하는 은폐장은 아마 광학미채로 추정되네요. 빛을 주변으로 흘러내서 투명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인만큼 멸망 전 인류라고 해도 완벽한 투명 인간을 구현하지는 못했죠.

 

즉, 당신이 있는 곳을 유심히 관찰하기만 하면 힘들지만 대강 윤곽을 잡을 수 있어요. 식당에서부터 반 박자 늦은 걸음걸이가 희미하게 들렸죠.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근처에 있는가 싶었는데,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걷는데도 그런 소리가 들렸다는 건 누군가 저를 따라온다는 의미였겠죠. 여기까지는 제 과민 반응 같았는데, 아까 침대에서 고민하는 도중에 방 한 귀퉁이를 보니까 벽 아래가 살랑거리더라고요. 

 

제가 닥터 스트레인지거나, 액체 금속으로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가 오르카호에 합류한 게 아닌 이상 누군가 거기 서 있다는 판단을 하는 게 맞을 거에요. 그래서 그런 능력을 가진 이가 누가 있나 생각해보니, 당신이 사용하는 은폐장이 그럴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이렇게 말하는 건 혹시 제 방에 있나 싶어서 해보는 말이에요. 너무 불안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돼요.”

 

그의 추리를 들은 그녀는 모습을 드러냈다. 은신하는 데에 있어 1류라 자부할 수 있는 자신의 은폐를 파훼한 그에게는 더 이상 모습을 감춰봤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이런 남자가 세운 반역 계획은 사령관을 죽음에까지 몰고 갈 거라고 생각했다. 칼을 꺼내 그의 목에 갖다 댄 그녀는 나직히 중얼거렸다.

 

“리마토르, 당신이 세운 반란 계획을 전부 실토해.”

 

그녀의 말을 들은 그는 푸훗 소리를 내며 웃더니 말했다.

 

“제가요? 반란이라니 말도 안 되는군요.”

 

“거짓말 마. 네가 사령관을 쫓아낼 방법을 찾고 있는 건 모두가 다 알아.”

 

그녀가 자신의 협박이 단순한 빈말이 아님을 강조하듯 그의 목에 칼날을 더욱 바짝 붙였다. 힘을 조금만 더 주면 살이 찔려 피가 흘러나오기 일보직전이었음에도, 리마토르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제가 사령관님을 쫓아낼 이유는 하등 없습니다.

 

오르카호에 합류한지 겨우 며칠 된 제가 최고사무를 관장하는 사령관 역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사령관의 권한을 부러워하여 그 자리에 오르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보이나요?

 

저는 그저 학자입니다.”

 

“.....”

 

그의 말을 듣던 팬텀은 그의 행보를 되짚어보며 그가 반란을 저지를 의사가 없다는 것은 최소한 거짓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반란을 일으킬 완벽한 조건인 ‘새로운 인간의 등장’이라는 상황 하에서, 그는 자신의 곁으로 바이오로이드들을 포섭하기 보다는 조용히 고립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제시한 답도 그녀 입장에서는 체제 전복을 목적으로 두고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웠기에 그녀는 혀를 차며 칼을 거두었다. 그녀에게 칼을 치워준 것에 감사를 표한 그는 추가로 덧붙였다.

 

“사령관님에 대한 충성도가 이렇게 높은 분들이 많은데, 제가 어떻게 반역을 생각하겠습니까?

 

애시당초 바이오로이드와 인간이 동등할지라도, 전 사령관님과 동등한 존재가 될 수 없어요.”

 

“...그게 무슨 뜻이지?”

 

인간과 바이오로이드는 동등한데, 인간 대 인간으로써 동등할 수 없다.

그 말을 들은 팬텀은 고개를 갸웃였다. 리마토르는 그녀의 질문에 답해주겠다며 책을 들고 복도로 나가며 말했다.

 

“오늘 강의에 그 답이 있을 겁니다. 한 번 들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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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 올리네. 늦어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