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나한테는 통렬하게 그렇다.


열심히 살아야지.

현실을 보고 오랜만에 그렇게 맘 잡더라도

막상 우연히 얻은 혼자만의 공간에서

소울 넘버를 틀면은...


나약해진다.

한계 없이 흥청거리고, 취하고, 미루고, 게으르고 싶어진다.

죽을 만큼 동경했던 락스타처럼 살아보고 싶어진다.


십대 때 누구나 음악감상을 취미로 가질 순 있다.

다만 난 거기에 너무 많이 이입했다.

많은 이들은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구원으로, 음악을 받아들이고 깊게 빠진다.

그런데 난 그리 나쁠 것 없는 환경에서도 괜히 음악을 들어서, 헛바람 드는 방향으로 빠졌다.


잡았어야 할 기타,

불렀어야 할 보컬,

섰어야 할 무대,

썼어야 할 가사,

십 년 쯤 후에 성인이 되면 이것들을 전부 실천하고 있겠지. 라고 만족을 지연하며, 얌전히 공부했다. 공부하는 척이라고 누군가 그러면 그말이 맞다. 마음은 늘 딴 데 가 있었으니까.


십 년 동안 목소리 죽인 결과는 무언가?

임용고시 삼수. 이거만 끝나면 되는데. 이거 하나가 죽어도 안 끝난다.

이러느라 십대때 시작해도 모자랄 음악은, 몸 여기저기 고장나는 이십대 중반이 될때까지 시작도 못 했다.

대학교 공연동아리 하나 들어가보질 못했다. 일렉기타 하나 잡아보질 못했다.

음악 때문에 망한 나는, 겉보기 경력으로만 보면 따분하신 음악 미경험자다.


잡았어야 할 기타,

불렀어야 할 보컬,

섰어야 할 무대,

썼어야 할 가사,

저것들이 만들어지지 않은 채 내가 박살나는 동안,

세상에서 락스타는 유니콘처럼 허황된 존재라는 것, 내 몸으론 더 이상 아무것도 안 된다는 건 잘 알게 됐다.

그냥 락스타 흉내나 내려고 술, 커피 가짓수나 늘려왔더니 역류성식도염으로 이젠 평생 입에 댈 일 없어졌다.

인간관계는 이미 0이다. 동창생들끼리의 대화에서 '그 잘나가던 애 지금은 왜 아무 소식이 없냐?'의 대상이 나다.

이런 내가... 뭔 락스타냐?

이 시험 나랑 안 맞는다고- 도망치고 싶다고- 인간답게 살고싶다고- 수험생활 죽을맛이라고- 시험 말고는 아무 생각 말라는 부모 앞에서 올해 초까지 징징대던 놈이 락스타였다.


착하게 살게요. 이제 음악 안들을게요. 술도 안 마셔요.

정말 이어폰도 반납하고 노래재생 자체를 안하고 술커피를 안 한 근면한 맨정신의 수 개월 만에

'참으로 우연히' 알바자리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튼 게 오늘이다.


음악만 틀으면 

한계 없이 흥청거리고, 취하고, 미루고, 게으르고 싶어진다.

음악을 듣던 내가 이랬구나.

옛날의 내가 이랬구나.


저때로 돌아가서 뭣에다 쓰냐. 

오늘은 이런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