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에 따라 몰려다니는 고교 애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속으로 비웃기나 하고

인문학적 겉멋에 취해 고고한 척 학자연이나 뽐내는 티가 잔뜩 나는 한글파일들이

자서전이랑 성욕에 가까운 주제는 암호에 갇힌 채 곱게 누워 있었다

교과서 수준에서 주워들은 겉멋 든 수식어들 범벅이라 몇 개 보고 읽는걸 포기했다


저 시절 내내 '내가 가는 길은 틀리지 않았다'고 한 치도 의심 않았지.

나는 진심으로 내가 '한국 문학의 적통을 이을 절세의 문장가'라고 굳게 믿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성공하는 삶의 태도'같은 건 내 지금 모습과 완벽히 들어맞아서 배울 필요가 없었다

즉, '똥 만드는 기계였다'는 것만이 진실이었다

이런 허황된 믿음이 누구나 겪는 과정이라면, 그만큼 나는 값싸다


자의식과 아집만 나 자신에게 확신시켰으니 

치열한 고민의 효용을 난 이제 믿지 않는다

인생은 방향이 틀리면 아무 소용 없는 것이다

내가 쓴 생활기록부 교과세특은 나를 영원히 더렵혔다


내가 4언절구 5언절구 한시나 지어주면서 인문학적 우월성을 확인하는 데 써먹었던 기숙사 방 친구들은

자의식과 아집으로 시원하게 망한 뒤 씹덕 짤이나 올리며 단톡방에 히히거리다가 한번 더 몰락하고 연락을 끊은 사회경험 0의 백수를 나의 가장 최근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다

청춘의 시행착오라기엔 난 너무도 오랫동안 납작 엎드려 있다


아. 난 평생 나 자신을 비웃기나 하다 죽을 운명인가 보다

잘못 꿴 시작단추도 고쳐진다는 믿음조차 그시절의 맹신이었다

제 살길은 제가 찾아야한다는데

자려고 누우면 '오늘 하루도 병신같이 지나갔구나'가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다


소망과 갈망은 한가지씩 퇴색되어 간다

여행. 취업. 문화생활. 인맥. 나만을 위한 엘도라도가 준비되어 있다고 믿었었다

실망할 내가 두려워 기대를 내려놓는 연습이 너무 잘 된다





ps) 쓰레기 문장을 생산하는 글쓰기를 지속시킨 건 가뭄에 콩 나듯 페이스북에 좋아요 한번 눌러주던 공립고 교사들의 인정 뿐이었다

그 의도도 효용도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에 

난 이제 누구에게 좋아요를 주기를 극도로 꺼리는 사람이 되었다 - 이리 보면 경험은 최고의 무기이면서도 감옥이다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는 인생의 히든 퀘스트는, 나에게 올 리가 없다

그저 오늘도 내일도 나만, 어제랑 같은 골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