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


갑자기 튀어나와선 조선군은 갑옷을 입었을 리가 없다고 개소리 시전.





그래서 반박해줬음.그랬더니






이지랄함.


그래서 가져다줬음.




19일(무신) 맑음. 품방(品防)에 해자 파고 쇠사슬 구멍 뚫는 일로 아침에 군관을 정 해 보내고, 나도 일찍 아침을 먹은 뒤에 동문 위로 나가 품방 역사를 직접 독려했 다. 오후에 상격대(上隔臺)를 순시했다. 이날 분부군(奔赴軍) 7 백 명이 역사에 점고를 맞았다.

6일(병인) 맑음. 아침 먹은 뒤에 나가 앉아 무기를 검열해 보니 활, 갑옷, 투구, 전 통, 환도 등도 깨어지고 헐어서 볼꼴 없이 된 것이 많았으므로 색리(色吏)와 궁장 (弓匠), 감고(監考) 등을 처벌했다.

이순신 <난중일기 임진년 2월~3월 6일>


난중일기 기록.ㅇㅇ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3185


이 때의 원칙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2정을 1보로 한다. 둘째 토지 5결을 1정에 준하도록 한다. 셋째, 노자(奴子)도 봉족수로 계산한다. 넷째, 각 병종별 급보 단위는 갑사(甲士) 4보, 기정병(騎正兵)·취라적(吹螺赤) 3보, 평노위(平虜衛)·파적위(破敵衛)·근장(近仗)·별군(別軍)·보정병(步正兵)·대평소(大平簫)·기선군(騎船軍) 2보, 봉수군(烽燧軍)·방패(防牌)·섭육십(攝六十) 1보이다. 다섯째, 누정·누호에 대한 벌칙을 강화하도록 되어 있다.


보인둬서 혼자 안삼.


https://db.history.go.kr/item/level.do?setId=408&;totalCount=408&itemId=bb&synonym=off&chinessChar=on&page=1&pre_page=1&brokerPagingInfo=&types=r&searchSubjectClass=&position=20&levelId=bb_013r_001_03_0240&searchKeywordType=BI&searchKeywordMethod=EQ&searchKeyword=%E6%B0%B4%E8%BB%8D&searchKeywordConjunction=AND



謂感矣, 且頃因統制使狀啓, 戰船軍卒, 皆令着甲, 今又申明, 使之造作而一船, 例載九十人則當造鐵甲九十領

통제사의 장계에 따라 전선(戰船)의 군졸에게 모두 갑옷과 투구를 입히게 하였으며, 지금 또 거듭 밝혀 제조하도록 하였습니다. 배 1척에 90 사람이 승선하는 것이 예이니, 철갑(鐵甲) 90벌이 제조되어야 합니다.


전선 1척과 사후선 1척을 운영했을 당시에 작성된 함평현 읍지에서 <수군기물 목록>에는 함평현이 수군용으로 철갑과 투구 50벌씩을 보유했다고 적혀 있다. <영암읍지> 진보鎭堡 편에는 당시 영암현 관할구역에 위치한 이진진과 어란진에 각각 철갑과 철 투구 47벌씩 비치돼 있다고 기록됐다. 어란만호진은 전선 1척, 병선 1척, 사후선 2척을 운영하고, 이진만호진은 여기에 방선 1척이 더해졌는데도 철갑과 투구 보유량은 함평현보다 오히려 더 적다. 그런데 어란진은 피갑주皮甲, 즉 가죽찰갑으로 만든 갑옷과 투구 20벌을 추가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진도군은 전선 1척, 병선 1척, 사후선 2척을 운영했는데 철갑과 철 투구 69벌에 종이로 만든 엄두, 엄심갑 각 4벌을 보유했다.

병선의 승무원은 17명이며 이 중 격군은 12명이며,사후선은 5명 승무원 전원이 격군이다. 판옥선은 총원 130~200명 중 대선의 격군은 100여명이다. 판옥선은 격군의 수가 가장 작은배는 80여명인 경우도 있다.(김재근 저 우리배의 역사에서의 인용)

철갑 47벌에서 69벌이라면 판옥선 상장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수졸이나 병선 등 소형 함선, 혹은 사후선에서 노를 젓는 격군 대부분이 입을 수 있는 수량이다. 여기에 피갑주 20벌이나 엄심갑 등이 추가되면 기라졸과 사공 등 비전투원을 빼면 거의 100% 착용 가능한 셈이다. 참고로 판옥선 상장 안에서 충분히 보호받으며 노를 젓는 격군 같으면 갑옷을 입을 필요가 없다.

각 진과 보에 약 47~69벌의 철갑과 20벌의 피갑을 보유했다고 할 시, 판옥선의 승무원은 대략 130~200여명인데, 격군이 작은배일시 80여명이며 큰 배는 120여명인데, 그럼 나머지 인원은 대부분 갑옷을 입었다고 할 수 있다.




철갑 입혔음.


https://sillok.history.go.kr/id/koa_11007006_010

○備邊司啓曰: "戰用之具, 莫切於甲冑, 而武庫所儲, 其數不敷, 西北邊上留置之數, 亦甚零星。 當此調兵守禦之日, 許多軍士, 不可赤身赴戰。 頃間各道兵、水營及各官, 有月課措備之令, 想已准數措備, 今依別定差使員, 及今月晦日內, 沒數上送, 以備軍前之用, 爲當。" 傳曰: "依啓。"


비변사가 아뢰기를,


"전쟁의 용구는 갑주(甲胄)보다 절실한 것이 없는데 무고(武庫)에 저장된 것이 그 수가 많지 않고 서북 변방에 남겨 놓은 것도 심히 적습니다. 군사를 조련하고 지키고 방어하는 때를 당하여 허다한 군사가 맨몸으로 싸움에 나갈 수 없습니다. 지난번에 각도 병영·수영 및 각 고을에 월과(月課)로 조치하여 갖추라는 명령이 있었는데, 이미 수효대로 맞추어 조치하여 갖추었을 것이니, 지금 별정 차사원(別定差使員)을 보내서 이달 그믐 안에 전부를 올려와서 군용에 대비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를 보면 확실하게 군사가 맨몸으로 싸움에 나갈 수 없다 고 적혀있다.



맨몸으로 절대 전장 안나감.갑옷입고나감.



(조선의) 병사들은 단단한 가죽 갑옷을 착용하였고, 유럽인의 모자와 같은 철모를 쓰고 있었다. 그것들 중 어떤 것은 강철로 되어 있었고 그 밖에는 무쇠로 되어 있었다. 그들은 터키인의 활과 같은 작은 활을 매우 잘 다루고, 독을 바른 화살을 사용한다고 한다.








https://cultural.jp/item/iiifman-sagalibdb_06000002

울산성 전투기록 병사들 다 갑옷입음.두정갑.



일본기록.ㅇㅇ













그러니까 저지랄함.


그리고 순간 궁금해서 누군지 찾아봤음.


https://namu.wiki/w/%EC%B1%85%EC%82%AC%ED%92%8D%ED%9B%84?rev=362


책사풍후라고 유명한 레전드 일2뽕이였음.









나무위키 적힌거만 적자면 부모를 죽인다고 했지만 미수에 그치고 엄마목에 흉터낸거 인증하고


나중에 그걸 지적하면 고소한다 드립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편집]

환빠+국뽕+일2뽕+중2뽕+개독+스노브+음모론(종말론 등)

친일자국혐오 성향인 역사 갤러리에서도 가장 유명한 고정닉이라면 어떤 인간인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이다.[2]


디시인사이드의 역갤러. 환빠[1]+일2빠+개독+음모론이란 최악의 조합을 달성한 자. 모든 역사카페의 공공의 적.


라고도 적혀있고 방송에 나간적도 있는데 거기서도 전문가에게 공인받은 정신병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학력도 초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전드인 명대사도 날려줬는데


친구는 인터넷에 있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기다 
1989년 2월생이며 본명 최문석.

35살 먹도록 취직을 해본적이 없고.

부모 등골브레이커로 살면서 한다는게 일2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그걸 적었더니  하는게 고소드립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털어주니 여기서는 사라졌는데.


쫄보새끼.


그러더니 지 블로그랑 갤러리에 정신승리 시전.


그래봤자 역사는 지 뇌피셜로 안 돌아가고 증거는 명백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선군은 갑옷 다 입었다라는거.

그래서 정신병자라고 다시 팩폭 들어가니 고소드립하고


집에서도 안나가는 구라쟁이 일2뽕아 해봐 안쫄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2뽕이 하는 개소리가 잘도 고소가 돼겠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했더니 쫄보쉨 맞는지 하는게 글삭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따구로 왜 사는지 모르겠음



또 쳐발리니까 부들거리면서 이 글도 삭제요청때릴거냐? 해보던가 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봤자 다시 올림 그만이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