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누가 좋을까

솔피가 제일 적절할 거 같다.






솔피는 항상 모든 면에서 돋보였어

머리도 좋고, 신체 능력도 좋았으니까.

그래서 언제나 자신이 1등인 것에 익숙하고,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남들보다 좋은 성적을 거뒀지.

가끔 그런 솔피가 마음에 안 든다고 시비를 거는 몬무스들이 있었어.

그리고 그런 몬무스들은 솔피에게 얻어맞고 눈을 깔고 다녀야만 했지.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된 솔피는, 당연하다는 듯 과탑을 먹고 특유의 시원시원한 성격과 뛰어난 능력으로 여러 사람에게 호감을 샀어.

그중 몇몇 남학생들은 솔피에게 고백을 하면서 사귀자고 했지만, 솔피는 왠지 흥미가 생기지 않아 전부 거절했지.

다른 몬무스들은 그런 솔피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어딜 가도 별종은 있기 마련이니 솔피가 그런 별종 몬무스 중 하나라고 생각했어.




시간이 흐르고, 4학년이 된 솔피는 학교 축제에 갔다가 학교에서 진행하는 퀴즈쇼를 발견해.

평상시였으면 그냥 지나쳤을테지만, 술에 취한 상태였던 솔피는 옆에서 부추키는 친구들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 퀴즈쇼를 했어.

퀴즈쇼는 단순한 십자말 풀이로 전부 완성하면 경품을 받아가는 구조였지.

친구들은 십자말 풀이를 받고서는 누가 가장 늦게 낼지 내기하자면서 각자 흩어졌어.

솔피는 적당히 떨어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지.

볼펜을 돌리며 문제를 풀려던 솔피의 눈에, 약간 떨어진 테이블에 한 남자가 앉는 게 보였어.

솔피는 살짝 장난기가 들어 그 남자를 가상의 라이벌로 삼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지.

평상시에 공부도 잘하고, 이런저런 상식도 많았던 솔피는 순식간에 빈칸을 채워나가기 시작했어.

애초에 축제 참가를 이끌어내기 위한 이벤트에 가까운 거라서 인터넷을 찾아봐도 상관이 없었지만 솔피는 그럴 필요조차 없었지.

막힘없이 문제를 풀던 솔피는 제일 마지막 문제를 보고 멈칫했어.

설명 자체는 익숙했는데, 자기가 알던 단어와 다른 글자가 껴있었거든.

설마 그동안 자기가 문제를 잘못 풀었나 다시 살펴봤지만, 이전 문제는 전부 확실했어.

솔피는 미간을 구기며 생각에 잠겼어.

그리고 마침내, 정답을 알아낸 순간 라이벌로 삼았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어.

솔피는 설마하는 마음으로 그를 눈으로 좇았지.

남자가 가져온 용지를 본 행사 진행 위원은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남자에게 경품권을 줬어.

남자가 경품권을 받자 그의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이 남자에게 대단하다면서 몰려들었지.

솔피는 그가 핸드폰으로 검색을 했을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그 생각을 하자마자 남자의 친구 중 하나가 남자에게 스마트폰을 돌려줬지.

순수하게 남자가 자신의 지식으로 솔피보다 먼저 십자말 풀이를 끝냈다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었어.

그 순간, 솔피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자리에서 일어났어.


"저기요."

"네?"


솔피가 부르자 남자가 뒤돌아봤어.

솔피는 그에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지.


"번호 주세요."

"... 네?"




솔피가 남자에게 번호를 땄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어.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더 많았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솔피가 번호를?


"솔피야, 축제 때 어떤 남자 번호 땄다며?"

"에이, 솔피가 딴 게 아니라 그쪽에서 달라 했겠지."


과 동기들이 서로 이견을 주고받으며 솔피에게 물어봤어.

대다수 사람들은 아닐 거라는 의견이었고, 솔피에게 물어보는 동기조차 긴가민가한 표정이었지.


"어. 내가 땄어."


솔피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어.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아무렇지 않지 않았지.


"진짜?"

"누구야?"

"왜?"

"뭐야, 진짜 솔피가 번호 딴 거야?"

"정말?"


놀란 친구들에게 솔피는 이어서 한 마디를 덧붙였지.


"그리고 어제부터 사귀기로 했어."

"꺄아아! 진짜?"

"누구야? 누군데?"

"다른과 2학년 남자애. 이름은 인남이래."


솔피의 주변으로 사람이 더욱 몰려들었고, 솔피에게 가지 않은 사람들조차 귀를 기울였어.


"누가 먼저 사귀자 했어?"

"내가."

"꺄아아아!"

"어떡해, 어떡해!"


솔피의 말이 이어질수록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었어.

그녀의 근처에 없는 사람들도 수근거리며 그 이야기를 반복했지.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지만, 어떤 형식으로든 놀라움을 포함하고 있었어.

특히 몇몇 남자들은 충격을 받은 듯 살짝 입을 벌리고 멍하니 솔피가 있는 곳을 바라봤어.

그날부터 며칠 동안, 솔피의 과 학생들 최고 이슈는 솔피의 남친이었지.




"기다렸어?"

"별로 안 기다렸어요."


솔피가 다가오는 걸 먼저 본 인남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어.


"난 기다렸어."

"네?"

"20분 전에 왔는데 네가 안 왔길래 화장실 다녀오는 길이야."

"20분 전이요? 그때면 저 여기 있었을텐데..."

"안 기다렸다며."

"앗!"


솔피는 자신의 유도심문에 넘어간 인남이의 머리를 헝크러트리듯 쓰다듬었어.


"누나가 먼저 나와서 기다리지 말랬지."

"헤헤... 그래도 빨리 누나 보고 싶은 걸 어떡해요."


인남이의 대답에 솔피가 더욱 인남이의 머리를 헝크러트렸지.


"악! 하지 마요, 신경 쓴 머린데."


투덜거리는 말과는 다르게 인남이는 웃고 있었어.

어느덧 둘이 처음 만난지도 반 년이 넘어가고 있었지.

처음엔 사랑보단 호기심이 컸던 솔피였지만, 지금은 완전히 인남이를 사랑하고 있었어.

그녀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인남이는 그저 십자말 풀이를 좋아하는 평범하고 착한 남자였어.

하지만 인남이의 모든 부분이 솔피의 마음에 들었지.

특히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인남이의 성실한 성격이었어.

인남이는 무엇을 하더라도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어.

공부와 운동, 그리고 사랑까지.


"그럼 오늘은 같이 미용실이나 갈까?"

"그럼 영화 예약 취소할게요."

"농담이야."


자신의 사소한 농담에도 일일히 성심껏 반응해주는 인남이의 모습은 솔피에게 묘한 만족감을 주었어.


"그럼 영화 보러 갈까?"

"네. 영화 보면서 먹을 거 살까요?"

"버터오징어 사가자. 세 개. 넌 뭐 먹을래?"

"전 콜라면 돼요."




영화가 끝난 뒤, 인남이와 솔피는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어.


"여기 좀 비싸지 않아요?"

"괜찮아, 괜찮아. 오늘은 이정도는 써도 돼."


인남이가 조금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솔피가 웃으며 말했어.


"그래도..."

"누나가 사주면 '감사합니다'하고 먹는 거야."

"..."

"음식 나왔습니다."


표값 같은 건 인남이가, 나머지는 전부 솔피가.

그들만의 규칙이었지.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인남이를 위해 솔피가 만든 규칙이었어.

사실 처음엔 솔피가 모든 데이트 비용을 내겠다고 했지만, 인남이가 강하게 반대해서 어쩔 수 없이 솔피가 양보했어.

항상 솔피의 의견에 맞춰주던 인남이가 그정도로 정색하면서 반대한 건 처음이었거든.


"맛있게 드세요."


종업원이 음식을 두고 가자, 솔피가 포크를 들어올리며 말했어.


"자, 먹자."


하지만 인남이는 식기를 잡는 대신 솔피의 얼굴을 바라봤지.

감정을 읽기 어려운 인남이의 눈빛에 솔피는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어.


"자, 아~"


그 감정을 지우기 위해, 솔피는 포크로 고기를 찍어 인남이에게 내밀었어.

다행히, 인남이는 그걸 받아 먹었지.


"맛있어?"

"네."

"그럼 나도 먹여줘."


솔피가 입을 벌리자 인남이는 살짝 웃으면서 그녀에게 버섯을 먹여줬어.


"난 고기가 좋은데."

"누나는 야채를 좀 먹어야 해요."

"네, 엄마."


솔피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인남이가 웃었어.

확실하게 인남이의 기분이 좋아진 것같아 안심한 솔피는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어.

인남이도 자신의 입으로 포크를 움직였지.


"누나 오늘 묘하게 기분 좋아보여요."


솔피가 종업원을 불러 수프를 더 달라고 주문한 뒤, 인남이가 말했어.


"나야 항상 기분 좋지."

"그거 말고도 뭔가 더 있는 거 같은데."

"히히, 그렇게 티가 났나?"

"뭔데요?"


인남이의 질문에 솔피가 핸드폰을 꺼냈어.


"짠."

"이게 뭔데요?"

"읽어봐."


인남이는 솔피의 폰을 받아 글을 읽기 시작했어.


"... 최종 합격되셨습니다.... 최종 합격? 누나 붙은 거예요?"


솔피는 대답 대신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어.


"와! 대박! 누나 진짜 축하해요!"


마치 자신이 합격한 것처럼 기뻐하는 인남이를 보며 솔피의 미소가 더욱 커졌어.


"그럼 언제부터 일하러 가는 거예요?"

"다음 달에 연수 끝나면 바로. 이미 집도 알아보는 중이야."

"집을 알아봐요?"

"응. 우리 집에서 다니기에는 조금 멀거든. 그래서 말인데..."


솔피는 살짝 긴장하면서 말했어.




"다녀왔어."

"누나 왔어요?"


솔피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인남이가 방에서 나오며 솔피를 맞이했어.

솔피는 자연스럽게 인남이를 껴안고 한참을 서있었지.


"하... 진짜 네가 집에 있으니까 너무 좋다."

"가방 이리 줘요. 걸어줄게."


솔피가 행복한 표정으로 인남이를 놓아주자 인남이가 가방을 받아들었어.


"오늘 어땠어요?"

"매일매일이 똑같지 뭐. 너는 뭐하고 있었어? 공부?"

"네. 과제가 하나 있어서요. 이제 다 끝냈어요."


솔피가 인남이에게 같이 살자고 제안하고나서 일 년이 지나 있었어.

항상 뛰어났던 솔피였지만, 처음 겪는 회사 생활은 그녀에게도 어려웠어.

학생 때 배운 것과 인턴 때의 경험은 전부 의미가 없었다는 듯 처음부터 이리저리 치이며 배워야했지.

그렇지만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인남이가 솔피를 반겨줬고, 솔피는 그걸로 힘을 낼 수 있었어.

옷방까지 솔피를 따라간 인남이는 솔피가 옷을 벗는 걸 도와줬어.


"오늘 저녁은 뭐야?"

"오불이요. 오징어 잔뜩 넣어서."

"맵게?"

"엄청 맵게."

"역시 인남이야."


말을 마친 솔피는 인남이에게 가볍게 키스했어.


"밥이랑 반찬도 다 있으니까, 꺼내 드세요."

"꺼내 먹으라고?"


인남이의 말에 놀란 솔피가 조금 큰 목소리로 되물었어.


"네. 꺼내 드세요."

"너는?"

"저는 이제부터 나가야 해요."

"어딜?"

"오늘 과제한다고 헬스장 안 갔거든요. 런닝만 좀 뛰고 올게요."

"안 가면 안 돼?"


솔피의 말에 인남이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어.


"금방 올게요."

"... 알겠어. 조심히 다녀와."

"밥 잘 챙겨 먹어요."


인남이가 나가고 난 뒤, 솔피는 주방으로 갔어.

인남이가 만든 음식들을 식탁에 놓은 솔피는 깨짝이며 밥을 먹기 시작했지.


"하아..."


뭔가 힘이 빠진 솔피는 밥을 먹다 말고 고개를 돌려 냉장고를 바라봤어.


"... 한 잔만 할까."




"저 왔어요."


한참 뒤, 인남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어.


"늦어서 미안해요, 누나. 그게..."

"야! 인남!"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며 보이지 않는 솔피를 향해 무언가 말하려던 인남은 자신의 이름을 크게 부르는 솔피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움찔했어.


"너 왜케 느저써!"

"... 누나 술 마셨어요?"

"내가 먼주 물었자나!"


취해서 얼굴이 빨개진 솔피가 비틀거리며 인남이에게 다가왔어.

인남이는 솔피가 넘어질까봐 그녀에게 다가가 팔을 잡았지.


"어후, 냄새. 얼마나 마신 거예요?"

"네가 안 오니까, 내가 이러케 마셔찌! 응?"

"미안해요."


인남이는 더이상 싸우기 싫어 사과했어.

하지만 술에 취한 솔피는 자신의 팔을 잡은 인남이의 손을 보더니 덥썩 인남이의 팔을 잡았어.


"어차피 힘도 나보다 약하면서 뭔 운동을 한다 그래?"


솔피의 말에 인남이의 표정이 굳었어.


"어차피 이 누나가 다 지켜줄 건데 뭐하러 운동을 해? 한 게 이거야? 이럴 거면 뭐하러 헬스장을 가는 건데? 응?"

"놔요."

"한 게 이거냐고. 응?"

"누나 많이 취했어요. 가서 자요."

"너도 따라와."

"씻고 갈게요."

"지금 와."

"씻고 간다고요."

"너 지금 나한테 짜증내는 거야?"


인남이는 대답 대신 솔피의 손을 떨쳐냈어.

솔피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깨닫지 못했어.

이어 인남이가 자신의 손을 뿌리쳤다는 걸 깨닫고 놀랐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인남이가 자신에게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놀라움은 분노가 됐어.

자신을 버려두고 혼자 헬스장에서 시간을 때우다 온 주제에, 자신을 뿌리쳤다는 것에 대한 분노였지.

솔피는 인남이의 멱살을 잡고 바닥에 넘어뜨렸어.


"컥!"


등에서 전해지는 충격과, 위에 올라탄 솔피의 무게에 인남이가 고통스러워했어.


"너, 너, 네가 어떻게, 응? 어떻게 나한테 이래!"


솔피는 고통스러워하는 인남이의 위에 올라타서 인남이의 몸을 마구 때렸어.


"내가 너한테,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 해줬는데! 왜! 나랑 같이 있는게 그렇게 싫어? 내가 그렇게 싫냐고!"

"적당히 해요, 좀!"


한참을 당하던 인남이가 솔피의 양손을 붙잡으며 말했어.


"누나가 맨날 술만 취하면 이러니까 나도 짜증이 나지!"

"뭐... 뭐?"


인남이가 소리치자 솔피는 놀란듯 멍하니 인남이를 내려다봤어.


"술 좀 작작 마셔요! 주정뱅이도 아니고 왜 술에 취하면 맨날 이렇게 자기 감정 주체를 못하는데? 예전엔 안 그랬잖아?"


인남이가 짜증을 내며 솔피를 쏘아붙이자 솔피의 손에서 힘이 빠졌어.


"이러려고 같이 살자고 했어요? 누나 술주정이나 들어달라고? 누나만 힘들어요? 나도 힘들어! 내가 왜 헬스장 다니는지 알기나 해요? 체력 안 키우면 정말 죽을 거 같으니까! 술 취하면 맨날 나 때리거나 억지로 벗겨서 하려 하고! 그래서 다니는 건데, 언제 물어보기나 했냐고요!"


말을 끝낸 인남이는 씩씩거리며 숨을 몰아쉬었어.

그때까지도 솔피는 놀라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지.

인남이는 그런 솔피의 몸을 밀어 아래에서 빠져나와 일어났어.

솔피에게 뭔가 더 말을 하려던 인남이는 고개를 숙이고 멍하니 있는 솔피를 보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

하지만 그렇다고 먼저 사과를 하기에는 자기가 잘못한 게 없었지.


"... 가서 먼저 자요. 치우고 들어갈게요."


그렇게 말한 인남이는 솔피를 내버려두고 주방으로 들어갔어.

식탁 위에는 인남이가 만든 음식들과 빈 와인병들이 잔뜩 있었어.

인남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욱신거리는 통증을 참으며 식탁을 치우기 시작했어.

헬스장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고장나는 바람에 그 안에서 한 시간을 넘게 갇혀있지만 않았어도 솔피가 이렇게 술을 마시진 않았을 거라 생각하면서.

먼저 반찬들을 전부 정리한 인남이가 와인병을 치우려 할 때, 솔피가 주방으로 들어왔어.

인남이는 솔피를 무시하려 했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자 그럴 수 없었지.


"누나, 울어요?"


인남이는 놀라 손에 든 것들을 전부 내려놓고 솔피에게 다가갔어.

솔피는 아무말 없이 인남이를 바라보며 눈물만 뚝뚝 흘렸지.

인남이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 솔피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다가 그녀를 품에 안았어.

인남이보다 살짝 키가 큰 솔피가 인남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지.

서럽게 우는 솔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남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어.




다음날 아침, 솔피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침대에서 일어났어.

작게 들리는 물소리가 인남이가 씻고 있는 걸 알려줬지.


"하씨... 내가 왜 그랬지..."


솔피는 어제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는 얼굴을 쓸어내렸어.

인남이를 볼 면목이 없었거든.

솔피가 얼굴을 부여잡고 후회하는 동안 인남이가 다 씻었는지 물소리가 멈췄어.


"... 후우... 그래."


솔피는 인남이에게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어.

솔피가 침대에서 나옴과 동시에 인남이가 욕실에서 나왔어.


"저기..."


인남이에게 사과를 하려던 솔피는 인남이의 몸을 보고 놀라 숨을 삼켰어.

어제 솔피에게 얻어맞은 인남이의 몸에 파랗고 보란 멍이 잔뜩 있었거든.


"그거... 괜찮아?"

"버틸만해요."


솔피가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인남이는 오히려 웃으며 말했어.


"운동한 보람이 있긴 하네요."

"미안해..."

"괜찮아요. 그것보다 오늘 휴일이죠? 해장국 해놨어요."

"생각 없어..."

"그러지 말고."


옷을 입은 인남이는 솔피의 허리에 손을 감고 그녀를 주방으로 데려갔어.

힘없이 인남이가 이끄는데로 자리에 앉은 솔피의 앞에 따뜻한 국과 밥이 놓였어.


"식기 전에 먹어요."


인남이가 말했지만 솔피는 차마 밥을 먹을 수 없었어.

그러자 인남이가 솔피의 옆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지.

인남이는 밥을 조금 떠서 국에 적시고 후후 불어 식혔어.


"자, 아."

"..."

"아."


인남이가 재촉하자 솔피가 마지못해 입을 벌렸어.

솔피의 약간 벌어진 입으로 밥을 먹인 인남이는 솔피가 그걸 먹는 걸 기다렸어.


"누나. 씹었으면 삼켜야죠."


느릿느릿 밥알을 씹은 솔피가 그걸 삼키지 않자 인남이가 말했어.

그 말을 들은 솔피가 몇 번 입을 움직였어.


"흐으응..."


하지만 끝까지 밥을 삼키지 못하고, 대신 우는 소리를 냈지.

그 소리와 함께 국물이 조금 밖으로 새어 나왔고, 놀란 인남이가 급하게 휴지를 뜯어 솔피의 입을 닦았어.


"누나, 뱉어요."


인남이는 솔피가 뱉어낸 음식물을 전부 휴지로 받아냈고, 솔피는 본격적으로 소리내서 울기 시작했지.


"흐에엥!"

"밥먹다 말고 갑자기 왜 울어요."

"나, 나하, 흐윽, 나 진짜, 흑, 개, 개, 개같은 년이야, 흐에엥!"


솔피의 자학에 당황한 인남이가 휴지를 대충 말아 던져놓고 솔피의 손을 잡았어.


"왜 그런 말을 해요."

"끄흑, 끅... 나, 나, 존나, 존나 나빴어, 으흑, 씨발, 씨발년, 조, 좆같은, 좆같은 년..."

"어허. 그런 말 하지 마."

"흐에엥... 너, 너, 너도, 너도 나빠, 크흡."


인남이는 뜬금없이 자신이 나쁘다고 말하는 솔피를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봤어.


"저요?"

"네가, 네가 다, 받아주니까, 끕, 그래도, 될 거, 같잖아, 힉, 막, 막, 그냥, 끅, 내 맘대로, 히끅, 흐으응..."


우느라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횡설수설하는 솔피의 모습에 인남이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어.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뚝."

"이런 거, 하, 하지 말라고, 나쁜놈아, 흐으읍..."

"그럼 뭐라해?"

"나도, 나도 몰라, 나, 나, 씨발, 히끅, 개년, 흐윽, 진짜, 나쁜년, 미친년, 씨발년, 흐끅..."

"씁. 하지 말래두."

"병신같은 년, 흐끕... 아니, 그냥 병신이야, 히흑, 흐에엥!"

"그래놓고 누가 자기 욕하면 화낼 거면서."

퍽.

"끄억!"


방심하다 솔피에게 어제 맞은 부위를 맞은 인남이가 비명을 질렀어.


"시, 히, 힉, 시끄러, 그냥 있어."

"으으... 알겠어요..."

"나, 나 진짜 개년이야, 흐에엥..."







뭐 대충 이런 이야기


이후엔 솔피가 술은 끊겠지만 그만큼 인남이한테 많이 달라붙고 또 많이 요구하겠지.


처음엔 솔피가 자기도 모르게 인남이 가스라이팅 하는 거 생각했는데 쓰다보니까 귀찮아져서 걍 잘 사귀는 커플이 한 번 투닥이는 걸로 끝냄.


누가 나 대신 써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