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서큐버스 리마엘은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묶여 있는 인간에게 소리쳤다.


그녀가 이 정도의 분노를 느낀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분노는 희노애락 중에서 서큐버스의 매력을 제일 많이 깎는 위험한 감정인 만큼, 서큐버스를 교육할때 제일 먼저 다스리는 감정이었다. 


분노란 그만큼 자극적이면서도, 요령만 익힌다면 다스리기 제일 쉬운 감정이었다.


분명 그럴 터인데, 그녀는 분노하고 있었다. 그것도 눈앞의 '인간 포로' 하나에게.


얼룩덜룩한 천 옷을 걸치고 있던 인간 포로가 씨익 웃었다.


"아니, 포기 한다니깐. 대신 뉴욕에 있는 '롬바르디아 피자' 집에서 치즈 피자 두조각만 나한테 주면 된다니까. 하나는 타바스코 뿌려서."


인간 포로는 질리지도 않는지, 알아듣지도 못할 단어들의 궤변을 계속해서 늘어놓았다. 벌써 2일째였다.


"멍청한 자식. 너, 지금 고위 서큐버스가 직접 평생의 쾌락을 약속하는게 얼마나 큰 자비인지 모르는거야?"


그 말을 들은 포로가 픽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러니까 고맙긴 한데... 난 이왕이면 좀 지적인 여성이 타입이라."


서큐버스의 자존심이자 모든것인 '매력'을 무시하는 그의 답변에 리마엘은 뒷목이 뻐근해지며 머리가 뜨거워 지는 것을 느꼈다.


"이.... 이..... 이 열등한 인간 따위가....!!!"


심문실에 인간 포로가 비겁한 수를 쓸 경우를 대비해 설치된 마법 억제기가 아니었더라면, 리마엘은 마법으로 인간 포로의 뼈 마디마디를 분쇄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원초적인 본능을 따르는 것, 즉 물리적인 무력 투사 뿐이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포로의 얼굴이 홱 돌아갔다.


"어으..... 주먹이 꽤 쎈데....?"


여전히 그 능글거리는 목소리로 신음하는 포로를 앞에 두고 리마엘은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한채로 씩씩댔다.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이 인간 포로는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인간들과도 달랐다.


정신 지배 마법이나 세뇌 마법, 행동 통제 마법이 일체 말을 듣지 않았다. 


라미아 마도사들 말마따나 '마치 마나 자체를 경험해 보지 못한 인간 같다' 라고 했지만, 그럴리가 있겠는가. 정신 지배 방어 술식이 귀족들이나 정보원들에게 걸려있는 경우는 자주 있는 일이었다. 


단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방어 술식이라 라미아 마도사들이 감지를 못하는 것 뿐이라고 리마엘은 생각했었다. 


어찌 되었건,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 필요했기에 다른 방법을 통한 '심문' 전문가인 그녀가 호출된 것이다.


분명, 자신의 손길 하루면 모든 인간들은 흐물흐물해질 터였다. 농노든, 기사든, 산골의 모험가든, 사냥꾼이든 마법사든 상관 없었다.


아무리 단단한 갑옷을 입고있어도 마음 속을 어루만져 준다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제일 귀찮은 부류인 성직자들도 하루 내내 '설득' 하다보면 마음에 금이 가는 것이 보였다. 육체적 '순결'이 날아간 뒤에 마음의 순결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마치 수완 좋은 상인같이 실실대는 것 같으면서도, 속을 결코 내보이지 않았다. 


부드럽고 매혹적인 말을 던져도 능글거리는 표정으로 의미없는 말만 돌려주었다.


행동으로 보여주고자 옷을 벗어 요염한 몸매를 드러내도 휘파람만 한번 불며 "이야, 이 호텔 서비스가 죽이는데!" 같은 소리나 했다.


그가 지금껏 말한 일관성 있는 정보는 단 한마디였다. "미첼 핸슨 대위, 미합중국 해군 소속, 군번 784-12-0827."


그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나라였다. 아무리 작은 백작령이라 해도 하피 서기관들 한명쯤은 알 터였지만, 아무도 들어본 바가 없었다. 분명 거짓말 투성이의 의미 없는 헛소리였다.


제대로 된 정보를 얻고자 손으로 살짝 살짝 그의 물건을 건드리며 애태워도, 그의 몸을 긴 혀로 핥으며 부드러운 살갗의 감촉을 느끼게 해줘도 결국 말하는 것은 그 한마디 정보 뿐이었다.


결국 참다 못한 그녀가 4시간 내내 감옥의 차가운 돌바닥에서 서큐버스가 경험시켜줄 수 있는 극한의 쾌락을 보여주며 그의 바닥까지 짜내기도 하였다.


마침내 정신을 잃어버린 그가 몇분 뒤 깨어나자, 그녀는 결정타를 날리고자 '방금의 경험이, 평생동안 당신의 것이 될 수 있어요... 나에게 말만 몇마디 해준다면 말이에요.' 라고 그에게 음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그가 감옥 바닥에 가쁜 숨을 쉬며 엎어진 채로 한 말은 "이야, 너 진짜, 진짜 섹스 끝내주게 잘한다." 한마디 였다.


그러고는 끝이었다. 이전에 다뤘던 인간들처럼 눈이 풀려 정보를 술술 불지도 않았고, 복종 선언을 하지도 않았으며, 육욕을 해결하고자 추레하게 덤비지도 않았다. 그냥 그 한마디가 끝이었다.


그녀에게는 마치 일생동안 그녀 나름대로 마음속에 만들어 두었던 인간을 다루는 매뉴얼이 한순간에 쓰레기가 된 느낌이었다.


분명 인간을 쥐고 흔드는 고위 서큐버스인 그녀가 여기서 인간 하나한테 온갖 조롱을 듣고 있다니.


화가 안풀린 그녀는 다시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려다, 포기한 듯 감옥 한 구석의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그녀는 얼굴을 감싸쥐고 한숨을 푹 쉬었다. 


"난 평생 동안의 행복과 쾌락을 약속하고 있는데, 대체 거절하는 이유가 뭐야?"


의자에 묶인채로 '어우, 코피...' 라 중얼거리던 포로가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리고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뭐, 니가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이 매일 매일 섹스만 하는건 아니잖아?"


"결국 행복하면 그만 아냐? 당신같은 일개 병사에게 주어지는 알량한 명예도, 돈도, 결국 술이든 여자든 결국 쾌락이 목적 인건데, 내가 지금 평생 누릴 수 있는 지름길을 제시해주고 있잖아!"


"으음.... 그런가...?"


"당신 왕이 이런다고 알아줄 것 같아? 많고 많은 병사들 중 하나를?"


"뭐, 왕이 아니고 대통령이긴 한데..."


"무슨 상관이야, 어찌됐건 그가 당신이 이렇게 버틴다고 알아줄 것 같아?"


"으음... 생각해보니 그럴것 같진 않네. 난 공화당원이라서 말이야. 하하!"


또, 또 저 개소리. 리마엘은 지친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킥킥대던 포로가 작게 웃음지으며 말했다.


"근데 내가 알잖아."


"뭐...? 그게 무슨 상관ㅡ"


"자, 내가 좋아하는 시 구절이 있어. 들어봐."


일개 병사가 자신의 말을 끊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상한 그녀였지만, 일개 병사가 어떤 시를 읊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기에 그녀는 잠자코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었다.


"문이 얼마나 좁더라도 - 아무리 많은 형벌이 날 기다릴 지라도 중요치 않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요,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다."


병졸 주제에 어디서 주워 들은건 있나보군. 


"난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왕이나, 돈을 위해 움직이는 단순한 꼭두각시 병사나 용병이 아니야."


언제나 능글맞던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진지해졌다.


"난 윌리엄 포크너의 책을 즐겨 읽는 문학가이고, 동시에 매 달 배를 타고 낚시를 가는 낚시꾼이야. 한편으로는 매주 토마호크 스테이크를 손수 준비하는 요리사이기도 해. 또 포드 89년형을 차고에서 만지작대는 기계공이기도 하고, 종종 근처의 산을 올라가는 등산가이기도 하지. 누군가의 술친구이자, 국민이며, 교관이자, 후배이며 선배이고, 전우이자 아들이지. 미합중국 해군 소속 대위는 나를 정의하는 많은 말 중 하나일 뿐이야.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네 성도구 되는것 하나를 위해 포기하라고?"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저으며 픽 웃었다.


"아마 평생을 누군가의 소작농이나 기사, 왕의 노예로만 살아온 사람들에겐 충분한 딜이겠지만, 나한테는 아니야."


"...."


라미엘은 평소의 능글맞기만 한 인간 포로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것 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뭐, 당신들이 저 '인류 제국' 인지 뭔지 이상한 광신도들... 여튼, 그 사람들을 설득시킬땐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면 일찌감치 포기 하는게 좋을거야. 대부분의 우린 누군가를 위해 사는게 아니라 '우리'들을 위해 살거든."


그렇게 말하던 그가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 


"....너는, 너를 위해 살고 있어?"


정신이 퍼뜩 든 그녀는, 감히 인간 주제에 고위 서큐버스인 자신에게 기어오른다는 분노와 가소롭다는 감정이 끓어올라 그의 목을 한 손으로 조르며 말했다. 


"하, 나? 인간 주제에 어딜 감히.. 나, 리마엘이 얼마나 우수한 혈통의 서큐버스인지 똑똑히 알려주지!"


갑작스러운 목을 옥죄는 힘에 그가 놀란 얼굴로 켁켁 댔다. 그녀는 아랑곳 않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말을 이어갔다.


"우리 어머니는 여왕님의 비서까지 할 정도로 우수한 서큐버스셨고, 나 또한 서큐버스의 최고중의 최고만 뽑힌다는 서큐버스 여왕의 직속 정보부 소속인데, 어딜 감히!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손수 서큐버스의 최상위 마법부터 교육시켜 주신 몸이란 말이다! 난..."


어렸을땐 메이드 서큐버스들을 따라서 요리를 배우고 싶었는데.....


기억 저 편에 덮여있던 오래된 생각 한 조각이 머리를 지나가며, 갑자기 그녀의 입을 닫게 했다. 


리마엘의 분노에 찬 표정이 복잡한 감정으로 변하며, 그녀는 잠시간 아무말 없이 있다가 그의 목을 붙들고 있던 손을 내려놓았다.


갑자기 그의 목을 잡고 있던 힘이 사라지자, 그는 그대로 감옥의 딱딱한 돌바닥에 내팽겨쳐졌다.


손이 뒤로 묶인채 차가운 돌바닥에 엎어져 콜록 대는 그를 뒤로 하고, 그녀는 말없이 감옥을 빠져나왔다.


"콜록... 콜록.... 마지막 말은 하지말걸 그랬네..."


바닥에 엎어져 있던 핸슨 대위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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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응기잇 노예가 되버렷 하는건 많이 봤으니까 안되는 것도 보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