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무성한 초록빛 잎사귀 사이사이로 따사로운 햇살이 반짝이고 있다.
머리맡은 흙으로 까끌거리고 풀과 들꽃의 내음이 향긋하다.
이따금씩 먼 곳에서 새소리가 들려온다. 어딘가의 나무 위 높은 곳에서.
어떤 새인지는 모르겠다. 까마귀도 뻐꾸기도 종달새도 아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다.
나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누워 있다. 새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이 살랑이는 소리에 어쩐지 조금 나른해진다.
새의 지저귐이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들려온다.
모로 누워 풀 내음을 맡으며 그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어떤 깨달음이 머리를 스친다.
엄마는 그때 그래서 그런 것이었구나. 그 아이는 그래서 나에게 실망하고 나를 손절했던 거구나.
알고 나니 명쾌한 것들인데 어째서 그때는 몰랐을까.
보이지 않는 새야, 이름 모를 새야, 나는 정말 멍청했어. 네가 아니었으면 평생토록 몰랐을 거야.
점점 더 가까워지는 새의 노랫소리가 천사의 속삭임처럼 황홀하게 들린다. 바흐나 쇼팽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노래는 내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을 들추고 위로해준다. 그 고통, 그 수치심. 그 후회를.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그땐 그게 최선이었구나. 그리고 그게 내 한계였구나.
막힌 혈이 뚫린듯한 후련함과 형언할 수 없는 슬픔에 나는 웃고 또 운다.
새의 노래는 이제 지표면 언저리, 아주 가까이에서 들려온다.
이런 노래가 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응어리진 슬픔을 인내하며 살아가는 지상의 저 수많은 사람들, 자살하지 않아야 할 당위성을 찾으며 필사적으로 환상을 붙잡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저 숱한 불행한 사람들에 대한 노래가.
그러나 어느 순간 새는 노래를 멈춘다. 숲은 침묵한다.
부탁이야. 더 들려줘. 제발 더 많은 것을 들려줘.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줘.
그러나 고개를 아무리 돌려도 어디에서도 새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있는 게 분명한데도.
이윽고 새가 다시 노래하기 시작한다.
이제는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저 다정한 지저귐. 저 아름다운 노랫소리.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란 이런 것일까. 자아가 흘러내린다.
이윽고 새는 나의 귀에 부리를 바짝 대고 태곳적부터 내려오는 비밀을 속삭인다.
그렇구나.
이 우주는 그런 곳이구나.
보이지 않는 새야, 이제 됐어. 끝내줘. 너의 노래를 잊게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