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약적으로 말하겠다.

이 세상은 좆됐다.

뭐 별건 아니고, 그냥 변화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세대의 변화, 사람들의 변화, 문화의 변화, 인식의 변화.

그런것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커다란 변화가 말이지.

나는 잠시 담배를 들어올려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쓰으읍..후우.."

그러자 슬프게도 내 폐 속을 가득 채우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담배 연기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것인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야 당연하다. 이건 진짜 담배가 아니라 텍스트로 만들어진 담배 비스무리한 것이니까.

나올리가 없지, 덱스트 박이 썅년들이 지구 보호니 뭐니 금연구역이니 지랄을 해대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이내 자조적인 헛웃음을 지었다.

하긴, 이제와서 무엇이 중요할까.

이젠 나도 그짓을 하며 벌어먹고 있는데.

"하아아.. 시바랄 세상.."

나는 시바랄 세상에 한탄을 하며 반쯤 핀 담배를 꾸깃꾸깃 접어 모니터로 집어 던졌다.

그러자 담배가 저항감 없이 모니터로 쑥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건 나중에 꺼내서 피워야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

아 그래, 세상이 이 꼬라지가 된 이유.

존나게 큰 변화, 그리고 더 존나게 큰 변화.

이 두개가 만나면 세상이 좆망하더라.

"좆같은 지구작가. 헌터물 드리프트를 틀거면 제대로 하던가. 이건 완전히 판타지잖아."

나는 입 밖으로 지구작가 험담을 좀 늘어놓았다.

후. 이제 좀 심신의 안정을 되찾은것 같다.

자, 이제야 준비가 되었다.

우선 첫번째 좆같은 변화에 대해 설명하겠다.

과거에는 게이트. 현재는 조직성 다차원 아공간 파편이라는 별 좆같은 이름으로 불리는것이 변화의 첫 징조였다.

물론 이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오고, 사람들에게는 상태창이 생기고, 웬 좆밥 짐꾼이 각성하더니 다 때려잡는 일만 생겼어도 세상이 이 꼴이 나지는 않았을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지구작가님은 클리셰를 싫어하셨나보다.

그 게이트에선 몬스터가 아니라 이종족이 튀어나왔으니, 거 참.

뭐, 여기까진 OK다. 이해해줄 수 있는 선이다.

그런데 중요한건 여기가 끝이 아니란 점이다.

이 이종족이란 족속들은 존나쌨다.

진짜 좆같이 쌨다.

인간들을 다 씹어먹고도 남을만큼 쌨다.

그래서 망했다.

와! 인간좆망!

여기서 눈치좋게 이종족 밑으로 살살긴 나라들은 살아남았고, 아닌 나라들은 다 뒈졌거나 뒈지기 일보직전의 상황에 몰렸다.

미국은 이런 다양한 인종에 관해 무척이나 개방적(?)인 나라라서 그러신지 제일 먼저 엎드렸으며, 당연히 미국쪽 영향력이 짙은 우리나라 또한 같이 엎드렸다.

아마 그 덕에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뒈지지 않고 살아있을 수 있던거겠지.

"후.. 덱스트 박이 정박아련들.."

그리고 이미 좆망해버린 인류에게 찾아온 두번째 변화!

이 세상엔 너무나도 많은 이종족들이 넘어왔다.

이번년도에 새로 들어온 이종족이 제
1827번째의 이종족이라고 했던가?

매달마다 꼭 한번씩은 있던일이니 뭐 이젠 새롭지도 않다.

아무튼! 이 쓰잘대기 없는 얘기중에 중요한것은, 이렇게 넘어온 이종족 중에서 영상이나 매체에 맛과 향 그리고 영양가와 지닌바 생각을 담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종족이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먹방영상을 진짜로 보기만해도 맛을 느낄 수 있고 향을 느낄 수 있으며 실제로 몸 속에 그 영양분이 들어온다.

게다가 그 영상을 제작할때 제작자의 감정 또한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지닌것이다.

좆되는 능력이다.

하지만 바로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능력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들의 능력은 처음에는 터부시 되었으나, 점점 환경오염과 농•식품의 생산이 필요가 없는 이들의 생존 방식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리곤 그 능력을 상용화 시킬 순 없는건가 하는 연구가 개시되었고.

그래서 시발 이렇게 된거다!

"애미 씨발 연기없는 담배! 와아아아아!"

나는 그렇게 말하며, 아까 모니터에 대충 던져넣었던 담배를 다시 꺼내 입에 꼬나물었다.

다시금 말하지만, 이 세계에서 인간은 최약체다.

그리고 무려 이 '연기 없는' 담배께서는 꽤나 고급품 취급이신지라 가격이 꽤 되신다.

딱 나같은 인간 나부랭이들이 대충 뻑뻑 피워되기에는 조금 부담이 될 정도로 말이시다.

그런 담배를 이렇게 피워댈 수 있는 배경에는 '예전에는 이게 도움이 될까 싶었던 일인데 살다보니 도움이 된 일' 의 덕이 컸다.

그 일이란 바로 폰트 디자인이다.

나는 이 세계에서 폰트 디자인 일을 한다.

다시금 말하지만, 이 세계는 글과 그림에도 감정과 맛을 담을 수 있다.

그렇기에 그중에선 맛과 향, 그리고 영양분이 빠진 불량식품 또한 존재한다.

오로지 감정만이 담긴 그런 글과 그림이 말이다.

그리고 바로 내가 쓰는 이런 글이 그런 불량식품에 속한다.

그래. 나는 일종의 폰트 디자이너중에서의 야짤작가다.

우선 이 글을 쓰기위해서 어디선가 감정을 복사해온다.

주로 폰러브나 꺼토미가 이에 해당된다.

물론, 저작권이 있는 녀석들은 건드리지 않는다.

그렇게 엄선한 감정중에서, 또 폰트에 어울릴만한 감정을 찾는다.

이제 이 다음 과정에선 중간업자가 필요한데, 그건 벌써 5년째 나와 함께하고 계신 sjen2 분이 맡아주고 있다.

그러면 나는 내가 작업한 폰트와 함께 복사해온 감정을 sjen2님에게 보낸다.

그럼 그분이 그걸 잘 섞어주시고 펙시브나 팩트리온, 핀박스에 업로드 한다.

그러고 나면, 벌어들인 수익은 나와 7:3으로 나눠먹는 구조이다.

아 물론 내가 3이다.

이번에는 4로 올려준다고 했으니 한번 믿어봐야겠다.

사실 보통 이런 계약으론 9:1, 8:2도 허다하니, 나정도면 계약을 잘한 편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때였다.

"어. 문자네?"

문자가 와서 살펴보니, 그 문자의 주인은 바로 sjen2. 그 내용은 이랬다.

[작가님, 언제 한번 시간 되실까요?-그저께]

[웃고있는 이모티콘-그저께]

[작가님~ 오늘은 안되시나여?-어제]

[작가님? 어디세요? 시간안되시나요?-오늘]

그녀는 요즘들어, 자꾸 나와 만나자고한다.

제정신인가? 내가 만나게.

나같은 인간 나부랭이는 길을 걷다 누구와 잘못 부딪혀도 죽을 수 있는 몸이다.

그런 내가 같이 일을 한 것을 제외하면 생판 모르는 남인 sjen2를 만났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줄 알고 그녀를 만나겠는가?

그러니 당연히, 오늘도 거절할 생각이었다.

이 문자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늘도 발 빼시면 6:4로 갱신해준다던 계약, 파기하고 다시 8:2로 올리겠습니다.-오늘]

[00시 00구 카페에서 만나요-오늘]

정신을 차려보니 난 이미 작은 가방을 매고 나갈 준비를 마쳐있었다.

그래. 곧 뒈져도 월급 동결도 아니고 인하는 아니될말이다.

그리고 커뮤니티보면 이종족들도 의외로 착한사람이 많다던데 그녀도 그렇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나는 혹시 거인족에게 밟힐까 싶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긴장속에 찰나와 같은 시간이 지나고보니, 나는 어느새 약속장소 앞에 도착해있었다.

나는 불안한 마음을 겨우 억누르며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sjen2에게 채팅을 보냈다.

[저 도착했습니다.-오늘]

그러자 채 1초가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어디세요?-오늘]

내가 그 말에 답장을 하려던 찰나, 미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저기 계시네. 여기에요 이쪽!"

"..? sjen2님?"

"아 네. 저에요."

목소리가 들린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미형의 여성이 보였다.

그녀는 부드러운 갈색의 단발머리와 색감이 인상적인 초록색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길을 걷다보면 한두명쯤은 돌아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외모였다.

하지만 정신차리자. 결국 그녀도 이계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의 앞에 앉았다.

그리곤 말했다.

"그래서 임금인상에 관한 일은.."

"그 건은 됐어요. 6:4로 하죠."

? 이렇게 쉽게?

나는 그녀의 칼같은 대답에 약간의 허탈감을 느꼈다.

요 며칠 채팅으로 이 얘기를 꺼낼 때마다 얼마나 사납게 굴었으면서, 이렇게 얼굴을 보자마자 쉽게 협상해주다니..

며칠간의 노력이 다 멍청한 짓거리가 된것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조금 허탈한 마음으로 말했다.

"그럼 이대로 쫑을.."

"무슨 소리세요. 카페에 왔으면 커피도 마시고, 대화도 하고, 서로 눈도 마주봐야죠."

이번에도 그녀의 반응은 칼같았다.

눈빛이 차가워서 베여버릴것만 같다.

무섭다. 무서워 죽겠다.

내가 이래서 밖으로 그렇게 나오기 싫어했던건데!

하지만 또 그녀의 말을 듣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버릴 순 없는지라,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녀의 눈치만 보며 커피나 쪽쪽 빨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기도 잠시, 그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그 모습에 움찔하니, 그녀가 허리에 손을 얹으며 약간 화난티를 내며 말했다.

"하아아.. 됐어요. 그냥 저희 오늘부터 1일 해요."

"..네..?"

"저희 사귀자구요. 이렇게 티를 내 줬는데 어떻게 계속 눈치를 못 챌 수가 있지?"

내가 잘 못 들은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눈을 깜박이고 있자, 그녀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 귀에 속삭였다.

"그럼 내일봐요 자기."

그리고 나는 그녀가 떠나간 자리에서 거의 다 먹은 커피컵을 들고 꽤나 오랬동안 멍을 때렸다.

그러니까 지금 이게..

무슨..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