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너도 벌써 아카데미에 갈 나이가 됐구나. 어느 학과로 갈지는 정했니? 역시 기사학과려나?"


"...저기, 아버지. 전 검과 창보단 붓과 펜을 잡고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제발 예술학과로 가는걸 허락해 주십시오."


"그치만 잭, 우리 집안은 명문 높은 기사가문이지 않느냐. 내 아버지와 선조님들은 물론이요 나와 네 엄마, 형, 여동생도 모두 기사다. 심지어 저택의 하인들도 대부분 은퇴한 기사거나 한때 기사를 꿈꿨던 자들이지. 근데 어찌 너만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이냐?"


"전 싸움에 소질이 전혀 없습니다. 애초에 싸움 자체를 안좋아하고요. 재능도 없고 흥미도 없는 일을 하는 것보단 어렸을때부터 꿈꿨던 예술가의 꿈을 이루고 싶습니다. 어차피 가문은 형님이 이어받으니 제발 허락해주십시오, 부탁입니다."


"허허, 네 뜻이 완고하니 이 아빠도 어쩔수 없구나. 그럼 선택지를 줄테니 둘중 하나를 고르렴."


"...?"


"첫째, 아빠 말 듣고 얌전히 기사학과를 간다.


둘째, 이 아빠한테 뒤지게 처맞고 기사학과를 간다."


"....."


"이 아빠는 우리 아들이 어떤 선택을 해도 존중할테니, 천천히 고르렴. 난 먼저 가서 갑옷과 검을 준비하고 있으.."


"얌전히 가겠습니다. 생각해보니 붓보단 검을 잡는게 더 좋을거 같습니다. 멋드러진 갑옷과 오러소드는 못참죠."


"허허, 역시 내 아들이야. 그럼 바로 신청하도록 하마."


아버지의 답정너 선택에 의해 결국 기사학과에 가버렸다.



"반갑다, 신입생들! 앞으로 5년간 너희들을 가르칠 빌헬름 경이다! 첫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혹시 지금이라도 기사학과를 그만두고 싶은 이들 있나!"


"저 그만두고 싶.."


"혹여나 그런 새끼가 있다면 내가 졸업할때까지 1:1 보충수업을 해줄테니 걱정말아라!"


"...."


"거기 핑크머리 학생! 손은 왜 들었나?"


"아, 그... 너무 신나서요...."


풍성하고 멋드러진 W모양에 콧수염과 대비되는, 모자람이 없는 머리를 가진 빌헬름 경.


그의 두 눈동자는 이 햇병아리들을 전부 어엿한 기사로 만들겠단 순수한 광기로 가득 차, 햇빛으로 달궈진 머리보다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

.


기사학과의 수업패턴은 끔찍하디.


아침 일찍 일어나 점심때까지 체력단련과 기초 다지기, 점심시간 이후엔 각종 기술과 승마, 무기술등을 배우고 대련 수업, 이것들을 하고 나면 지루한 이론수업 4시간으로 하루의 일과가 끝.


재능도 없고 힘도 없지만 체력만큼은 자신있기에 실전 수업까진 어떻게든 버틸만하다. 어차피 실전시간엔 아는 애랑 구석에서 적당히 논땡이 피우면 그만이니까.


근데 이론수업은 도저히 못버티겠다.


"...그리하여, 라이트웨즈 가문이 만들어낸 12가지의 오러소드 분류는 현대의 오러소드 분류의 시초가 되었으며, 이중에서도 특히 제 4형태인 외날 장검형은 그 특이한 형질을..."


하피교수님의 지루한 목소리가 하루종일 훈련하느라 피곤함에 찌든 정신을 자꾸만 꿈나라로 유도하면서도, 잠을 자면 그 즉시 분필과 함께 무거운 벌점이 부과된다.


이에 여러 학생들이 몰래 자볼려고 수없이 노력하긴 했으나,


"맨 뒷자리 남학생. 다 보인다, 그만 자라."


상대는 매의 눈을 가진 하피.


그녀의 감시망을 벗어나긴 불가능에 가까웠고, 나 또한 잠은 진즉에 포기하고 대신 다른 짓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미술학과엔 못갔지만, 그렇다고 그림을 그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교과서 빈 공간에 빼곡히 낙서 그리기.


생각보다 시간 떼우기 좋고, 그림 연습하기에도 좋아 지금은 아예 그림용 노트를 하나 사서 이론수업을 미술시간으로 써먹고 있다.


"잭 노르딘. 항상 필기를 열심히 하더군. 아주 좋은 자세다."


하피교수님도 낙서한다는 것까진 눈치 못채셨기에 그림은 갈수록 대담해졌고,



'이참에 더 과감한걸 그려볼까. 인체비례랑 골격 그리는 건 얼추 터득했으니, 이번엔 역동적인 포즈를 그려보자.'


'맨날 남자만 그리는 것도 질렸으니까 여자도 그리자. 여자는 골격이 다르니 좀 더 얇게 그리고, 가슴도 넣어서..'


'...좀 과격한 포즈도 해볼까? 슬랜더 엘프가 다리를 활짝 벌리고 가랑이를 강조하는 포즈를..'


"야 잭 그거 뭐냐? ...와 씨 대박."


절친이 우연히 내 노트를 본 것을 시작으로 반 애들에게 그림을 보여주게 되었으며,



"...이건, 물건이다."


"일어설수가 없다... 일어서서 일어설수가 없어...!"


"야, 다음 그림 없냐?"


남학생 전체가 열광하기 시작했다.



....

...어라?


.

.


[자, 덤벼라. 왜 그러지? 여자라고 얕보는 건가? 훗, 지고 나서 계집아이처럼 울지나 마라.]


[호에에엣♡!!! 안돼, 안돼!!! 이미 갔어! 갔다고! 더 이상하면 뇌가 녹아버렷!!]


"우오오오오오!!!!!"


"잭 그는 신이야! 잭 그는 신이야! 잭 그는 신이야!!"


"크으, 이 새낀 대체 기사학과 왜 온 거냐? 야 당장 미술학과 가라!"


"맞아! 나한테 이런 솜씨가 있었다면 아카데미 때려치우고 당장 미술가 했겠다!"


"이게 만화지 시발!"


기사 지망생들이 단체로 환호성을 지르고 펄쩍펄쩍 발광하는 현장.


"...입학식날 왕실기사단을 봤을때도 이렇게 흥분하진 않았던거 같은데."


"그만큼 네 만화가 개쩐다는 거지. 시발 엘프녀 가슴 예술이다 진짜."


"이 새끼 이거 곱상하게 생겨놓고 은근 경험 많은가 보네? 그림 그리는 거만 보면 아주 사칭가 VVIP가 따로 없어."


"잭 그는 신이야! 잭 그는 신이야!"


동급생들의 열광적인 반응.


"얘들아, 이무리 우리가 한참 그럴 나이라지만 이건 옳지 못해."


가끔 반장 같이 노트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반장, 12페이지 보고 다시 말해줄래?"


"12페이지? 거긴 왜... 앗."


"ㅋㅋㅋㅋ 반장 일어서지 못하는 봐라ㅋㅋㅋㅋ 엘프효과 죽이네ㅋㅋㅋㅋ"


"반장, 이 노트가 뭐라고?"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


노트를 한번 보고 나면 자리에 주저 앉으며 노트를 찬양했다.


처음엔 인체 연습에 불과했던 누드화들이, 동급생들의 열광적인 인기에 힘 입어 야한 만화, 지금은 하나의 시리즈까지 되었다.



비록 여학생들과 교수님들이 좀 걱정되긴 했지만,


"야 남자들! 그거 뭐냐?"


"아아, 이것은 공책이라는 것이다."


"공책인건 딱 보면 알거든? 대체 뭔 공책이길래 그렇게 우르르 몰려들어서 보는.."


"안돼!!! 오지마!"


"이 노트를 볼거라면 날 먼저 베어라!!"


"죽는 한이 있어도 노트 지켜!!!!"


"이 공책엔 우리들의 피와 땀으로 세계진 필기가 담겨 있다! 절대로 못넘겨!!!"


"아니 씹 공책 가지고 왜 저런데? 미친놈들..."


여학생들은 남학생보다 수도 적고 애들이 철저하게 수비하는 덕분에 별 탈 없었고(내 노트가 필립의 유치한 그림일기장이란 소문이 퍼진 이후론 관심조차 가지 않더라. 필립에게 감사와 애도를 표한다), 교수님들도 필기노트라고 생각하시는지 별로 신경쓰지 않으셨다.


그림연습도 되고, 애들한테 인기도 좋고.


'이제야 좀 살맛나네.'


덕분에 지옥 같던 기사학과도 점차 적응되어 갔다.


"야, 잭. 나 노랑노트 좀 빌려줘."


"노랑노트? 잠시만, 그건 가방 안에... 어? 어어...."


"왜 그래? ...잠만, 설마...!?"


"....이런,"


시발.


노트 한권이 사라졌다.


역바니걸 옷을 입고 손가락만으로 시오후키 절정하는 엘프 여기사 만화가 그려진 노트가.


.

.


대충 이론수업 가르치는 매 하피교수님(날카로운 눈매, 성감대 꼬리깃털)

주인공을 성실한 학생이라 여기며 아끼지만 우연히 노트를 보고 혼란중(그리고 교사와 학생이 야스하는 야한 만화를 보고 망상중)


대충 오빠가 걱정되서 아카데미를 찾아온 여동생(입양아)

근데 오빠의 노트를 우연히 보고 충격 받음(동시에 흥분함)


대충 무기술 가르치는 엘프 선생님(모솔처녀)

엘프 여기사가 자위하는 내용에 만화가 있단 소문을 듣고 그 만화책과 범인을 찾기 위해 수색중


대충 우연히 노트를 본 미술학과 여학생

그림실력에 감명 받고 주인공에게 비밀로 하는 대신 제자로 받아달라고 함(슴다체 쓰는 털털한 톰보이)


대충 주인공이 그린 만화에 숨겨진 팬인 같은 기사학과 1학년 여학생(천재, 수석, 엄격한 가문 출신, 레이피어 다룸, 찌머크)


대충 주인공이 그린 소년만화 보고 감명 받은 기사학과 여선배(열혈소녀, 노출 언더붑, 대검)


대충 도서관에서 만나 친구가 된 아싸찐따 마법학과 소녀(얀데레, 스토커, 집착)



별이삼샵이란 웹툰 초반에 주인공이 노트에 야한 만화 그려서 학교 짱한테 인정받는 내용 있는데 그거보고 끄적여봄



소재도 써주고,

설정도 써주고,

히로인들도 써줬다.


이제 약간의 필력과 성실하게 연재할 마음만 있으면 된다.


하렘+아카데미물인거 만으로 반은 먹고 들어가니 노벨피아 가서 주전부리 비용은 벌수 있을 거다.



그러니 제발 누가 좀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