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선악과를 심어볼까요

선한 것과 악한 것을 알기 위해서는

줏대나 기준따위가 필요하겠죠

우리가 아는 선한 것과 악한 것을 심어봅시다

깊고도 치밀하게 온 땅에 뿌리뻗도록

줏대있는 기준있는 사상을 만들어봅시다


시간이 지나 아름드리 나무가 자라납니다

자본주의, 성역할, 문화적 관습이 열립니다

역사와 적국, 우호적 관계의 국가가 열립니다

선악과는 떨어져 후대를 위한 밑거름이 됩니다

사상이 빈틈없이 스며든 이 광야에서

우리는 새빨간 선악과를 머금은 채, 죄를 머금은 채 태어났습니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후손입니다

우리는 죄의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우리는 선악과가 뿌려진 대지에서 자라났습니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무엇이 선한 것이고

무엇이 악한 것인가요?


우리는 겪어보지 못한 역사에 분노합니다

우리는 고정된 성역할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웁니다

우리는 어떠한 이유도 없이 문화를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선과 악을 판단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줏대와 기준은 어디에 있나요?

우리는 과 악을 판단하고 생각하고 있나요?


죄의 터에서 자라난 우리의 생각은

죄에 수긍하고 굴복하고 회개하거나

죄에 맞서 저항하고 반발하고 싸우거나

그런데 우리는 그 외의 생각은 할 수 없는 건가요?

무한히 존재할 이 에덴 동산 위에서

우리의 나무를 가꿀 수는 없는 걸까요?


선과 악이 어지러이 뒤섞여 시끄러운 광야 위

새 역사의 씨앗은 비난의 역사에 침식되고

논리적 가지에서 벗어난 잎사귀는 이단아가 되고

그저 선악과만이 무수히 쌓인 피의 재앙 위

푸른 세상을 떠다니는 상상을 하는 우리의 나무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모두의 손에 졸려 질식하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