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의역 O

 


이런 평온함은 과연 따뜻한 봄이 임박했다는 징조인가, 아니면 산비가 내릴 전조인가?

 


지상 시간, 2:30 PM. 성층권, 수송기 내부. 수송기의 날개가 구름층을 가르며 고공에 하나의 항적선을 남겼는데, 고도가 낮아지면서 현창 밖의 지표면이 점차 뚜렷하게 보인다. 고공에서 내려다본 폐허 도시는 운무로 뒤덮여 마치 황금시대에 투영된 신기루처럼 환각적인 번화가로 보인다. 가까워질수록 굽이굽이 가늘고 긴 검은 그림자가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나타나는데, 그것은 지진으로 인해 생긴 단층으로서 마치 주름진 피부처럼 납회색의 강철 정글 속에 눈부시게 각인되어 있다. 행성에 있어서 이건 단지 평범한 판 운동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이것을 집으로 삼는 인류의 눈에는 재앙이 남긴 상처이다. 단층 주변에는 드문드문 서 있는 파손된 건물들이 있고, 오래되고 보수되지 않은 구조물들이 지진과 함께 무너져 내려 일부 훼손된 흔적들이 검게 그을려진 채 크고 작은 탄갱들로 가득 차 있다. 

 


...

 


루시아: 지휘관, 착륙 예정 지점의 손상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하여 앞당겨 착륙해야 합니다. 

 

지휘관: 착륙 준비.


루시아: 알겠습니다. 수동 운항으로 전환해 비행 고도를 낮추겠습니다. 

 


엔진의 굉음과 함께 수송기가 하강하기 시작하고, 자신은 이미 익숙해져 끊임없는 난기류에 고개를 숙인 다음 이번 임무의 내용을 재확인한다. 

 


...

 


한 시간 전. 

 


세리카: 우리는 근 두 달 동안 지표면 각지에서 큰 강도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공중정원에는 탐지 장비가 거의 없어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전체적으로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번 지진의 대부분은 보육 구역과 상당히 가까운 곳에서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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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보육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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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보육 구역의 부지 선정을 할 때 보통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구역은 선택하지 않지.


세리카: 네. 기존 보고에 따르면 몇 차례 있었던 지진의 분포 범위가 매우……비정상적입니다. 그 구역이 있는 판의 지질 활동은 활발하지 않으며, 지진대나 그 변두리에 있지도 않아 이론적으로 말하면 이곳에서 심각한 지질 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은 비교적 낮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지역에 보육 구역을 우선적으로 설정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세리카는 홀로그램을 띄워 지진 피해가 있었던 지역을 지질 지도와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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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이렇게 보니 확실히 변동이 심하군.


세리카: 맞아요. 그리고――탐지에 나선 인원이 현지 퍼니싱 농도를 측정했는데, 지진 전후를 비교하니 평균 2.3%가 증가했습니다. 


선택 2

지휘관: 이 지역의 퍼니싱 바이러스 상황은?

 


세리카는 나를 올려다보고는 어김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세리카: 퍼니싱 바이러스의 농도는 지진 전후에 평균 2.3%가 증가했습니다. 


지휘관: 뭔가 미묘한 숫자네……


세리카: 이런 데이터만으로는 효과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없습니다. 최근 몇 차례의 재난으로 보육 구역 건설이 크게 지연되고 있으며, 지진으로 많은 건물과 에너지 시설이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정비 부대의 대부분이 이미 현장 지원을 떠났고, 일부는 달에 남아 기지 재건을 진행하기 때문에 집행 부대에 임무를 분배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우리는 지금 인력이 매우 부족합니다.

 


세리카는 조금 머뭇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손에 들린 전자 파일을 연다. 

 


세리카: 지상과 이곳의 통신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며, 재해의 구체적인 상황에 관해서도 집행 부대가 지상을 탐사해야 합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 이것이 바로 여러분의 임무입니다. 주둔한 부대와 합류하여 구체적인 피해 상황을 조사하고, 지진으로 손상된 설비를 복구하여 이상 상황의 원인을 조사하는 방향으로 협조해주세요. 구체적인 정보는 현장에 있는 팀이 제공할 것입니다. 


지휘관: 알겠어. 


 

상세 임무 내용은 세리카의 터치 동작과 함께 자신의 단말기로 전송되어 하나하나 확인해보니, 맨 끝의 참여자 명단에는 여전히 리의 이름이 빠져 있다. 

 


지휘관: 이번에도 역시……


세리카: 임무 사항에 대해 더 궁금한 게 있나요?

 


세리카는 산더미 같은 미결 사항에서 고개를 든다. 비록 피곤한 기색이기는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인내가 많고 신중하다.



지휘관: ……아니, 궁금한 건 없어.


 

지금 리와 관련된 일을 물어도 아마 이전과 비슷한 대답을 들을 것이다. 

 


지휘관: 우리는 간단하게 정비를 마친 뒤에 출발할게. 


세리카: 무사히 잘 다녀오세요. 

 


...

 


리브: 지휘관, 도착했습니다. 

 


리브의 목소리가 자신을 생각에서 끌어당기니, 수송기는 이미 지상에 평온하게 내려앉은 상황이었다. 그녀가 지도에서 인근 감염체와 이합 생물의 신호수가 안전범위 내에 있음을 보여주자 루시아와 리브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송기의 해치를 연다. 

착실하게 발을 디딘 찰나, 한순간의 현기증을 느낀 것 같았다. 발밑의 아스팔트는 작은 잔주름이 터지는 것처럼 땅속 깊은 곳에서 오는 떨림을 가져오고, 이것은 마음 깊숙이 퍼지는 듯하다. 마치 심장 박동과도 같다. 이 느낌은 자신의 환각만큼이나 빠르고 덧없다. 

 


리브: 지휘관?

 


갑자기 멈춘 나의 동작에 리브는 조금 걱정을 했는지 앞으로 다가와 묻는다. 나는 그녀가 신경 쓸 필요가 없도록 고개를 저으며 몸을 바로 세운다. 아무래도 수송기가 역추진할 때의 가속도가 주는 신경 자극이 아닌가 싶다. 스스로 생각에 빠져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이후로는 이러한 실수가 없도록 해야겠다. 

 


지휘관: 임무 수행 준비를 하자.


루시아: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길에는 수송기를 사용할 수 없어, 부근의 마중 나온 소대에게 그들의 소형 짐이 15분 후에 도착할 거라고 통지했습니다. 

 

지휘관: 일단 걸어서 합류 지점으로 향하자. 


리브&루시아: 알겠습니다. 

 


...

 


리브: 이게 다 지진이 남긴 흔적일까요……

 


루시아는 주변의 위협을 경계하고, 리브는 장착된 기록계를 사용하여 길을 따라 나오는 균열과 퍼니싱 농도를 분석하여――홀로그램에 표시한다. 

 


코퍼필드 해양 박물관 전투가 끝난 뒤 이합 생물의 위협도 퇴색한 적조와 함께 잦아들었다. 이합 생물이든, 증식하는 퍼니싱 이중합체든, 더 이상 예전처럼 대규모로 나타나지 않으며 눈에 거슬리는 거대한 주홍색은 일반적으로 위성 사진에서 자취를 감췄다. 

의회는 당분간 대량의 Ω 무기를 투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으로 월면 기지 재건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특화 기체의 연구 개발도 최신 자료 획득에 힘입어 새로운 진전을 보인다. 

전세의 변화는 마치 바다에서 기승을 부렸다가 다시 고요해지는 폭풍과도 같아서, 짧은 시간 내에 인류에게 숨돌릴 틈을 주었다. 

승리마다 빠른 속도로 민중의 귀에 들어와 모두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다. 이런 평온함은 과연 따뜻한 봄이 임박했다는 징조인가, 아니면 산비가 내릴 전조인가?

마음에는 줄곧 떠나보내지 못하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이와 같은 비슷한 이상 상황이 없었던 건 또 아니며, 연이은 기이한 지진이 이런 불안을 증폭시킨다. 마음속의 끈이 시종일관 팽팽하다. 이번에는 반드시 어떠한 실마리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만일 돌발 상황이 생기면 반드시 미리 준비해야 하며, 다시는 자신의 팀원이 혼자서 어떤 일에 직면하게 내버려 둘 수 없다.

 


루시아: 지휘관……? 안색이 안 좋으시네요.

 


루시아가 걸음을 늦추고 걱정스러운 듯이 바라본다. 그녀의 주의를 받고 나서야 자신의 미간이 혼신을 다해 찌푸려진 걸 알았다. 



지휘관: 괜찮아.


 

이번 임무는 단지 정찰에 협조하는 것일 뿐, 너무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행동하자마자 이미 그녀들에게 두 번이나 걱정을 끼쳤으니 면목이 없다. 

 


리브: 지휘관의 몸은 다 나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에요. 

 

선택 1
지휘관: 리브도 마찬가지야. 무리하지 마. 나는……아직 그렇게 연약하지 않으니까.


선택 2
지휘관: 리브도 마찬가지야. 무리하지 마. 나는……지금 10번 칠 수 있으니까!


리브: 알겠습니다. 그래도 지휘관의 몸 상태를 계속 지켜볼게요.


루시아: ‘네, 좋습니다.’

 


루시아는 갑자기 정색하고 눈썹을 찡그리며 평소 그녀의 스타일과 거리가 먼 한마디가 튀어나온다. 

 


선택 1

지휘관: ?


루시아: 그냥, 리가 있으면 이런 말을 꼭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루시아는 진지한 표정이었다가, 조금 걱정스러운 듯 복잡한 기색을 보인다. 


선택 2

지휘관: 음, 신기하네.

 

리브: 확실히 리 씨가 할 법한 말투네요.

 


리브는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쓴웃음을 짓는다. 


리브: 리 씨는 줄곧 조용히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늘 말로는 신경 쓰지 않는 척, 인정 없는 척을 하죠. 그리고……항상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지려고 하죠. 


루시아: 응……자신의 의견을 능동적으로 표현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지금도 그렇지. 

 


내가 아까 넋을 잃고 있었을 때, 그녀들도 아마 리를 생각했을 것이다. 묵묵하고 힘있게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지탱하던 리는 그동안 기체 적응으로 소대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는 일이 드물었지만, 그레이 레이븐과 관련된 일상을 게을리한 적이 없었다. 일의 대소를 막론하고 출전 전 단말기로 보내는, 비교적 상세한 지형 자료와 적세 분석. 그리고 기지에서 매번 세심하게 조정된 예비 외골격과 무기. 

 


리브: 그레이 레이븐은 언제 다시 다 같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요……


루시아: 새로운 특화 기체의 연구는 비밀사항이고, 지휘관이 알 수 있는 소식도 제한적이니까. 


지휘관: 리는……



입까지 다다랐던 말이 갑자기 울리는 통신음에 끊기고 단말기에서 통신 신청이 출력된다. 

 


리브: 이 코드는 부근의 보육 구역에 주둔하고 있는 정비 부대의 구성원이에요. 


(연결)


???: 테스트%&@――통신 링크 전환%¥#@――연결됐다! 그쪽! 들려?

 


신호음과 잡음 소리가 번갈아 나기 시작하더니, 이어서 그 속에서 시원시원한 소리가 들려온다. 

 


지휘관: 이쪽은 그레이 레이븐 소대다. 우리는 이미 합류점에 도착했다. 


???: 오오!!! 여기는 지원 부대, 이미 그쪽 위치를 확인했으니 곧 도착할 거야!

 

지휘관: 알겠다, 우리는 제자리에서 대기한다. 


 

10분 뒤, 시야에 세계정부 로고가 새겨진 소형 군용 차량이 등장했고, 능숙하고 거친 방식으로 폐허와 단층을 돌아 이쪽으로 질주해 온다. 이 광경은 아무래도 낯익은 것 같다. 생각하는 사이에 차량이 우리의 눈앞에 다가왔다. 

 


???: 여어!

 


차가 멋진 커브와 급제동 후에 길가에 안정적으로 멈추자, 익숙한 그림자가 창문으로 고개를 내민다. 

 


브리이타: 오랜만이야,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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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오랜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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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역시 브리이타구나……


브리이타: 먼저 차에 타. 구체적인 상황은 가면서 얘기해줄게. 

 


군용 차량은 보육 구역쪽으로 부드럽게 주행하고, 브리이타는 의외로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지 않는다. 차 안에는 또 다른 정비 부대의 구조체가 있었는데, 브리이타가 운전하는 동안 그녀와 임무 세부 사항을 확인한다. 

 


정비 부대 구조체: ……[kuroName] 지휘관, 대원 루시아와 리브, 일동……세 명, 확인 완료.

 

리브: 이건 우리가 오면서 수집한 데이터에요. 


정비 부대 구조체: 접수했습니다.



리브와 루시아는 내 곁에 앉아 레코더에 담긴 데이터를 전송한다. 

 


정비 부대 구조체: 매우 유용하네요, 감사합니다. 

 

브리이타: 고마워.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여전히 믿음직스럽네. 

 

지휘관: 지금 상황은 어때?


브리이타: 별로 좋지 않아. 지진이 일어났을 때 대피는 제때 이루어져서 인명 피해는 없었어. 근데 보육 구역의 많은 기반 시설이 지진의 영향을 받아 예비 발전 시스템을 써서 점차적으로 전력을 복구하는 중이야. 그리고 일부 통신탑이 파괴되었고, 정비 부대도 서둘러 보수하고 있어. 우리가 있는 이 지역의 통신은 내일이 되어야 전체적으로 복구될 거라고 예상해. 게다가 여진 발생 여부도 확실하지 않아. 적어도 현재는 지진 발생 빈도가 불규칙하거든. 우리 일손이 부족했는데, 너희들이 와서 정말 큰 도움이 됐어.

 

지휘관: 세리카도 지금 일손이 부족하다고 했어. 여기에 다른 집행 부대는 없어?


브리이타: 오전에는 지휘관이 구조체를 데리고 나간――임시로 구성된 소대는 있었어. 지금은 인근 보육 구역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그쪽은 피해가 더 심하고 감염체 반응도 나오고 있더라. 더 많은 인원을 파견해달라고 요청해도……요즘 집행 부대 내에서도 여러 가지 골칫거리가 있나봐. 

 

선택 1
지휘관: 골칫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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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네 말은……


정비 부대 구조체: ‘배신’.

 


침묵하던 정비 부대 구조체가 갑자기 입을 열었고, 머리 위의 백미러를 통해 살짝 들여다보는 그녀의 시선이 보인다. 

 


지휘관: ……


브리이타: ……하아.

 


브리이타는 선글라스를 벗고 한숨을 쉰다. 

 


브리이타: 의회가 의도적으로 모르는 척을 해도 이는 각 부대 간에 공공연한 비밀이야. 배신한 구조체의 수가 갑자기 증가해서, 이런 대원이 소속된 소대는 모두 임무를 중지하고 공중정원에 남아 조사를 받았어.

 


세리카가 사람이 부족하다고 말했을 때의 복잡한 표정이 떠오른다. 

 


지휘관: (말하자면, 바네사 소대의 테시우인가……)



나도 모르게 리브를 쳐다보니, 그녀 역시 굳은 기색이다. 

 


브리이타: 배신의 계기를 조사하기 전에 그들은 지상에서의 전투를 허가받을 수 없었어. 그래서 현재 집행 부대의 임무를 수행하러 오는 소대가 여기저기서 모이고 있으니 협력이 어려워. 


지휘관: 분명 한시가 급한데……


브리이타: 정보를 공유하며 가장 치명적인 무기를 보유한 군대에는 의심과 불안이 치명적이지. 


정비 부대 구조체: 한 명의 탈주 구조체가 승격자와 함께 나타나, 지상의 기지를 습격해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을 살해했다고 합니다. 그 구조체 때문에 제 친구는 지금까지 영창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지휘관: ……


 

브리이타는 손을 뻗어 옆에 있는 구조체의 어깨를 두드렸다. 

 


브리이타: 미연을 방지하는 것 자체에는 잘못이 없지만, 다만, 우리가 이 일을 어떻게 할 수 없을 뿐이야. 근데, 왜 이번에는 너희 셋밖에 없어? 다른 한 명인 리는 어쩌고?

 

지휘관: 그는 지금 다른 임무가 있어.


브리이타: 그렇구나. 그를 본 지도 오래됐네.

 


지난번의 공동 작전은 역시 모두의 힘을 다한 사투였는데, 이후로 나와 리의 몇 안 되는 대화는 단 한 번뿐이었다. 

 


지하 작전이 끝난 후, 대기실에서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리는 대기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는데, 평소 늘 입던 외투는 반듯하게 한쪽에 놓여 있었고, 인조 피부로 덮여있지 않은 기체의 일부가 노출되어 있었다. 리는 지금 자신의 팔을 수리하고 있는데, 오른팔의 기계 구조가 밖으로 드러났다. 그는 한 손으로 공구에 집착하며 그 속의 정밀한 기계 부품을 빈틈없이 조정하고 있다. 그의 표정은 평온하여 마치 해체된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보통 어디에나 있는 기계적인 도구들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리: ……얼마나 더 거기에 서서 볼 겁니까?

 


리는 손동작을 멈추지 않고, 오히려 어이없다는 듯이 입을 열어 그를 훔쳐보는 행위가 이미 발각되었음을 알려주었다. 

 


선택 1

지휘관: 이렇게 하면 의식의 바다 이탈률이 높아지는 거 아냐?


리: 자신의 기체를 정비하는 건 지휘관이 상처를 치료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전에도 자주 이렇게 했었기에 의식의 바다 이탈률이 높아지는 건 아닙니다. 


선택 2

지휘관: 이 상처는……


리: 이전 지원 임무에서 그랬던 건데, 손상이 심하지는 않습니다. 이번 기회에 출력 구조만 다시 조정해보려고요. 


지휘관: 이왕 이렇게 된 거 수리과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리: ……직접 하는 게 더 익숙합니다.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문제이니,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생명의 별 구조체 유지과에 도움을 청하러 가는 일이 드물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것이 결코 그가 다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는 늘 혼자 다니는 모습이었고,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냉담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리가 무언가를 숨긴다고 해도 단지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함이고, 이것에 익숙하다는 것을 안다. 리는 고개를 들지 않고 기계 팔에 몰두하고 있었고, 방에서는 금속 부속품이 맞닿아 내는 가벼운 소리만이 들려왔다. 

 


지휘관: ……내가 귀찮게 했어?


리: 아닙니다. 여기가 당신의 휴게실입니다. 

 


리의 눈썹 끝이 어이없다는 감정을 대변한다. 

 


리: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지휘관: 기체 적응은 어때?


리: 각 적응 실험에 대한 보고서를 당신의 단말기로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

 


코퍼필드 해양 박물관 전투 이후 자신의 고집으로 하산은 각 적응 실험의 진행 보고서 중 기체 상태와 관련된 정보를 동기화하는 데 동의했다. 다른 사항들은 ‘이 기체는 당분간 지휘관의 의식 링크 협조가 필요하지 않다’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러나 보고서의 내용은 나의 의문을 충족해주지 않았다. 

 


선택 1
지휘관: 다 봤어. 근데 내가 알고 싶은 건 보고서에 기입되지 않은 거야.


선택 2
지휘관: 다 봤어. 하지만 그건 제한된 데이터 기록일 뿐이야.


지휘관: ‘돌발성 의식 과부하’가 무슨 뜻이야? 그리고……어쩐지 요즘 네가 이상해.

 


마치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다. 

 


리: 하나씩 말하세요. 저는 입이 하나밖에 없어서 동시에 그렇게 많은 질문에 대답할 수 없습니다. 의식의 바다 과부하 문제……현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체 성능이나 전투 수행에 영향은 없습니다. 게다가 새 기체의 각종 지표는 모두 정상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상한 점은 없고요. 

 


/* 회상

리브: 리 씨는 줄곧 조용히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늘 말로는 신경 쓰지 않는 척, 인정 없는 척을 하죠.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우리가 리 씨를 도와준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루시아: 그는 항상 가장 사려 깊은 사람 중 한 명이었고, 비록 제가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대장이었지만 저도 모르게 그의 판단에 의존할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그가 주어진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낸다고 무의식적으로 느낍니다. 물론 실제로도 그렇지만요. 하지만 그에게도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어요……그도 그런 말을 꺼낸 적이 없고요.

 */



――어쨌든 리니까. 과묵하지만, 위험에 직면하면 항상 사람들 앞에 나서며, 신뢰할 수 있다.

 


지휘관: 그렇구나……


선택 1(리 웃는 스프라이트 출력)

지휘관: 내 대원들이 새 기체에 적응하는 장면을 맨날 놓치기만 하네. 적어도 이번에는 너희가 나를 필요로 할 때, 가장 먼저 곁으로 갈게.


리: ……전 지휘관이 그럴 거라고 믿습니다. 

 


리는 미간을 펴고 입가에 위안이 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선택 2
지휘관: 난 다시는 내 대원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걸 보고 싶지 않아.


지휘관: 나는 지휘관으로서, 나는 너희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어. 


리: 당신이 말할 법한 문장이네요. 안심하세요. 이번 적응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겁니다. 


지휘관: 난 네가 걱정거리 있다는 것쯤은 알아. 

 


단순히 한 사람으로서나, 지휘관으로서나 당신이 걱정됩니다. 그때의 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휘관: 난 리가 모든 걸 잘 해낼 거라고 믿어. 하지만 네가 항상 너무 많은 걸 혼자 짊어질까 걱정돼. 그 많은 일들을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어. 어쩌면 아주 중요한 것들을 침묵 속에서 놓쳤을지도 몰라. 

 


이 말을 할 때, 리가 살짝 다가온 것 같았다. 순간 눈이 자신이 아닌 다른 곳을 보는 것처럼 느껴져 손을 들어 그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지휘관: 리?


리: ……알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당신이 도움이 필요하다면……

 


리는 팔을 수리하는 동작을 멈추고 진지하게 올려다보았다. 

 


리: 저에게 와서 알려주세요.

 


...

 


리가 이렇게 얘기해도 과연 그가 그렇게 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선의의 위로인지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이후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곧 장비를 싣고 봉쇄 시설을 지나 목적지인 보육 구역에 도착했다. 

손상된 건물은 이미 임시 보강이 완료되었고, 정비 부대원들은 사방으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몇몇 사람들이 지나가며 브리이타에게 인사하자 그녀는 화답한다. 

 


브리이타: 우리의 임시 기지가 바로 거기에 있으니, 내가 먼저 너희를 데리고 갈게. 


구조체: 대장!

 


그때, 한 정비 부대 구조체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구조체: 드디어 돌아왔구나. 빨, 빨리 와서 이 데이터 좀 봐봐!


브리이타: 조급해하지 마. 어디 보자. 


 

브리이타는 구조체가 들고 있는 측정기를 받아 안에 있는 데이터를 열람하기 시작한다. 


 

구조체: 바로 방금, 자기 폭풍 수치가 또 새로운 최고점에 도달했어……


브리이타: 이건 이틀 동안 가장 높은 수치잖아……마지막으로 고점을 찍은 게 언제야?


구조체: 두 번째 여진인데……


 

구조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멀리서 한바탕 기괴한 굉음이 들린다. 뒤이어 발밑이 떨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