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발걸음 소리, 작지만 발랄한 콧노래, 희미하게 퍼지는 향수와 샴푸냄새가 섞인 향.
그것 들이 내 뒤에서 멈췄다.
그리고 작고 부드럽고 따뜻한 손이 내 눈부위를 가린다.

"누구게요!"

적당히 높고 올곧고 맑은 목소리다. 그녀의 목소리는 잊지 않는다. 정확히는 못 잊는다.

"장님의 눈을 가리고 누구냐고 묻는거는 놀리는건가요?"

그러자 그 손이 황급하게 떨어졌다.
나는 앉아있던 벤치를 잡으며 일어섰다.
그러자 얼른 와서 나를 부축해준다.

"오늘은 어디로 끌고 갈겁니까?"
"글쎄요, 서점이나 갈까요?"
"장님과 서점이라니."
"서점 냄새는 좋잖아요?"

어이없다는 듯 웃자 그녀도 웃음소리를 냈다.

"이런 말 실례되는건 알지만."
"네?"

말을 몇번씩 씹어본다. 가시가 있진 않는가. 뼈가 있진 않는가. 없는걸 확인하고 입밖으로 꺼낸다.

"언제나 느끼지만 제 또래같은데 왜 저 같은거랑 상종합니까? 더 멋들어지고 잘난 남자는 많을텐데."

그러자 김독자가 아하하하고 멋쩍게 웃었다.

"글쎄요, 그쪽이 잘 생겨서려나요?"
"눈에 흉진 사람한테 잘생겼다니, 빈말이 심하군요."
"됐고, 시각장애인 책 찾아올테니까 여기 앉아 계세요."

더듬거리며 의자를 찾았다.
그 의자를 만져가며 형태를 잡았다.
그리고 부축까지 받아가며 앉았다.
나를 앉힌 그녀가 만족한듯 말했다.

"금방 돌아올게요!"

그리고 총총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내 주위에서 사라졌다.
조용하다.
서점이기에 그런걸지도 모른다. 옛날같았다면 좋은 정적이였겠지만 빛을 잃은 지금은 싫다. 정확히는 끔찍한 수준이다.
조금만 조용해도 어둠에 먹혀버리는 기분이다. 그때의 장면이 아직도 아른거리며 보인다.
차와 부딛쳤다.
그 과정에서 유리가 깨져 각막에 손상이 왔다.
그리고 빛을 대부분 잃었다.
그게 끝이다.
그 장면만 계속 보인다. 그 고통이, 그 허무함이, 무력감이 탈력감을 느끼게 한다.
아직도 5분이 안 됐나.
슬슬 걱정이 된다.


*


유리조각만 지금 100번은 본 것 같다.
이쯤되면 5분은 커녕 10분도 지난 것 같은데.
나는 지팡이를 들어 탁탁하고 바닥을 쳐가며 움직였다.
욕설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책이 넘겨지는 소리도 난다.
맞게 가고 있다는 의미일까.
몇번이고 왔던 서점임에도 눈이 없으니 불편하다고 생각할때쯤 누가 내 손을 잡았다.

"죄송해요! 책좀 고르느라 늦었어요!"

지친듯 한 목소리가 얼마나 급하게 왔는지 알려준다. 이 여자, 나를 이렇게나 아껴주는거였나.
나는 그 손을 잡고 말했다.

"좋아합니다."
"예?"
"좋아한다구요."


*


"중혁씨 뭐해요?"

나는 소리가 난 부분으로 손을 뻗었다.
부드럽고 여러가닥인 감각이 느껴졌다.
그 감각을 느끼며 올라갔다.
그러자 둥근게 느껴졌고 그것을 쓰다듬었다.

"난 언제나 네 생각뿐이야."

내가 생각해도 오글거린다.
그걸 캐치한듯 김독자가 놀리듯 말했다.

"그런 말 다른 여자한테 하면 죽어요?"
"응."

그녀의 얼굴은 모른다. 피부색도, 머리카락색도. 하지만 확실한건 알 수 있다.
그녀가 어떤 모습이든 난 사랑할 수 있다.
나는 허공을 더듬으며 그녀에게 팔을 뻗었다.
그러자 품에 감각이 느껴졌다.

"이거, 제 첫 허그란거 기억해둬요."
"음."

그러자 김독자가 내 가슴팍에 뺨을 비비며 말했다.

"감상은?"
"···가슴이 꽤 크군."
"변태같은 감상이네요."

그런 말에도 웃음이 베어나왔다.
이런 삶이 오래 갈 줄 알았다.
결혼을 할때까지는 말이다.


*


"이제 슬슬 일어나···"

나는 더듬거리며 잘터인 김독자를 잡았다.
이상했다.
몸이 굳어있다.
차갑기도 했다.
나는 놀라 그녀가 숨을 쉬는지 살폈다.
그리고 심장이 뛰는지 확인했다.
늦었다.
그녀가 죽었다.
그녀는 주변인이라고는 나 하나뿐이였다.
그랬기에 장례식도 치르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이 되면 슬플줄 알았다.
솔직히 처음에는 놀랐다.
눈물도 왈칵 쏟아졌다. 하지만 곧 멎었다.
무덤덤하다. 내가 감정이 매마른건 아니다.
가슴이 미어진다.
감정이 죽은게 아니라, 현실감이 사라진 것이다.
나는 울지 못했다.
3일 뒤, 그녀의 의사라는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처음에는 보이스피싱인가 싶었다.
하지만 만나자는 곳도 카페라 믿어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그녀 없이 걸었다.
휘청거리기는 했지만 다행히 안정되었다.
나는 겨우 카페에 들어서 그를 만났다.
그의 얘기는 간단했다.
첫째, 본인은 종합의(이 팬픽에서만 존재하는 설정, 뇌과, 안과 등 대부분에서 전문의를 취득한 엘리트중에서도 엘리트)라는 것.
둘째, 김독자는 심장병과 백혈병을 앓고 있었다는 것.
셋째, 김독자는 죽기 전 하나의 장기를 내 앞으로 남겼다는 것.
이 말을 듣고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현실감도 없었다.
그리고 수술을 들어갈때도 현실감이 없었다.
프로포폴이 들어갈때조차 현실감이 없었다.
그리고 수면에서 깼다.
예전 습관때문인지 눈을 뜨게 된다.
어차피 안 보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보였다.
하얀 침대, 푸른 커튼.
하얀 환자복, 회색 난간.
그때서야 현실감이 느껴졌다.
그녀는 죽었다.
믿지 못했다.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눈으로 세상의 빛을 볼때마다 믿게 된다.
그녀는 이제 없다.
심장병으로 죽었다.
툭툭하고 눈물이 시트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줄기가 거세지더니 멎지 않을 정도까지 거세졌다.

"하,하아!"

숨도 거세졌다. 미어지던 가슴이 괴롭다.
숨이 잘 안 쉬어진다.
가슴을 부여잡고 울었다.
거의 30분을 울자 눈물이 멎었다.
숨이 진정되는데까지 10분이 걸렸고 퉁퉁 분 얼굴을 눌러댔다.


*


사후치료가 다 끝나서야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의 유골은 내 눈높이에 안착해 있었다.
깔끔한 유골함은 역시 그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유골함 문을 열고 그녀가 생전 좋아했던 물망초꽃을 넣었다. 밝게 웃는 그녀의 사진이 보였다.
찌를듯 날카로운 눈빛에 긴 쌍커풀이 큰 눈을 그윽하게 감싸고 있었다. 날카로운 콧날, 작은 콧망울, 수평으로 다물었지만 살짝 올라간 입꼬리, 하얀 피부는 그녀가 어떤 사람이였는지 다시금 각인시켜주었다.
나는 다시 터지려는 눈물을 머금고 유골함을 닫았다.







쓰다보니 뭔가 급전개가 된 것도 같고 대충한 감도 있네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