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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짐없이 다 챙겼죠?"

"네, 두 번 확인했어요."


아빠의 말에 희원 언니가 말했다.

아빠는 어제 하루종일 짐 챙기는데 바쁘셨다.

일 안하고 놀러가는 거라며 더욱 열을 올리셨다.

나도 아빠랑 놀러가는 건 처음이라 무진장 기대된다. 아빠가 말씀하시길, 들렀다 갈 곳이 몇군데 있어서 조금 일찍 출발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행이 길어지면 나도 좋다.

그만큼 놀고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니까.

강호의 모든 맛집들은 각오를 해야 할 것이야.


"자, 그럼 출발!"

"출발!"


아빠의 외침에 마부 아저씨가 힘차게 마차를 출발시켰다. 설화 언니는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근데 이렇게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저렇게 편안한 자세로 자다니......설화 언니는 분명 엄청난 고수가 틀림없다.


아님 말고.


"사천으로!"


사천. 아빠가 볼일이 있다고 하는 곳이다.

대충 사천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문파가 많다. 유명한 사천당가, 청성파, 점창파, 아미파. 명문세가랑 거대 문파 무려 세 곳이 똬리를 틀고 있는 무시무시한 냉전지대다.


'마도는 힘에 미쳤고, 흑도는 돈에 미쳤고, 백도는 명예에 미친놈들이다.'


이건 옛날에 아빠가 하신 말씀이다.

아직은 강호초출이라 잘 모르겠지만, 왠지 틀린 말은 아닐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오늘은 여기서 쉬었다 가죠."


마부 아저씨는 근처 마굿간에 말을 맡기러 가셨고, 우리는 객잔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늦은 밤이고 시골이라 사람이 없어서 한적하고 좋았다. 나는 아빠에게 눈빛을 보내고 객잔에 오면 꼭 해보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이보게, 여기 오리고기와 소면, 그리고 죽엽청을 주게!"


객잔에서 절대 매진되지 않는다는 음식 세개. 이거면 우리 모두 배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아빠는 만족하셨는지 나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주셨다. 근데 어째선지 나를 쳐다보는 언니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좀 걱정스러워하는 표정? 이었다.


왜지? 아빠가 읽으시던 책에선 분명 이렇게 주문을 하면 된다고 나와 있었는데?


"아니, 애한테 뭘 가르치신 거에요?"

"뭘요? 주문 한번 잘 했구만."

"10년 전에도 그렇게는 주문 안 했을걸요?"


언니들은 아빠를 한심하게 쳐다보셨다.

어째선지 아빠가 불쌍해보인다.


'아버지 힘내십쇼. 제가 대환단에 밥 한 번 야무지게 비벼 드리겠습니다!'


내가 대환단에 밥을 비빌 생각을 하던 그때, 마부 아저씨가 자리에 앉은 다음, 꾸벅 인사했다.

나도 꾸벅 인사해주었다.


"오리고기 좋아하십니까?"

"예, 뭐든 좋습니다."


마부 아저씨는 아빠와의 대화가 익숙하다는 듯 농담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내가 이래서 우리 아빠랑 마교가 좋다.

직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위기 말이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내가 주문한 요리들이 나왔다. 고아 였을때는 제대로 먹지 못했고, 마교에선 늘 영양가 잡힌 최고의 식사만 했다. 외진 곳의 요리는 처음이라 내심 기대됬다. 어디 한번 먹어볼까?


다들 배가 고팠는지 조금 빠른 속도로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나는 밥상머리의 예절을 한 번 지키고 소면을 후루룩 입에 넣었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어도 나름 입에 맞았다.

오리고기도 간이 적당히 맞춰져 있어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었다.


객장의 문 바깥으로 하늘을 수놓은 찬란한 별들이 보였다. 아름다웠다.


그렇게 강호에서의 첫날이 저물었다.


.

.

.


사천에 도착했다.

마부 아저씨와는 작별이다. 직접 마차를 모는 경험도 하게 해주신 착한 아저씨다. 아빠는 돌아가시는 마부 아저씨의 손에 돈을 꼭 쥐어주셨다.


"항상 큰길로 가시고 몸조심하십시오."

"예, 이만 가보겠습니다. 보중하십시오."


마부 아저씨는 나에게 한 번 손을 흔들어주신 뒤 마차를 움직여 길을 나섰다.


"근데 아빠, 사천에는 왜 들른거에요?"

"아,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그게 뭔데요?"


아빠는 나에게 거짓말을 하신적이 한 번도 없다.

비밀이라고 말씀하신 건 있어도, 때가 되면 전부 말해주셨기에 이렇게 물어본 것이다.


그러나 대답한 것은 설화 언니였다.


"약초랑......"


언니가 귀를 가까이대고 속삭였다.


"당가의 독들."


나는 깜짝 놀랐다. 진심인가? 지금 이사람들은 당가를 털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돌아보니 아빠랑 언니들이 키득거리고 있었다.


"당가의 보물창고엔 왠만한게 다 있지. 귀한 약초나 독초는 물론 암기나 무기들도."


나는 무기라는 말에 귀를 쫑긋했다.

드디어 나도 검이 생기는 건가?

아빠가 내 눈빛을 파악하셨는지 피식 웃었다.


"하하, 검은 비무대회 끝나고 사주마."


젠장. 괜히 기대했다.

이번에 대환단 얻으면 그냥 내가 낼름 먹어버려야 겠다. 저 사악하고 쪼잔한 마교주에게 그런 보물을 쥐어줄 순 없지. 암 그렇고 말고. 꼬우면 직접 대회 나가든가.


"우리 비유가 삐졌구나, 그럼 사천식 매운 음식이나 먹으러 가자!"


아빠는 먹는걸로 말을 돌리셨다.

물론 삐진 건 먹는거랑 별개의 문제였다. 절대 음식에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 그치만 사천에 와서 사천 요리를 한 번은 먹어줘야 도리 아니겠는가? 암, 그렇고 말고.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 시켜야만 했다. 나는.오늘도 천마신교의 명예와 위엄을 챙겼다.


아빠는 이곳을 많이 와보셨는지 길을 안내했다.

근데 문제가 생겼다.


"와, 저 사람들 좀 봐."

"어머, 진짜 잘 생겼다......"


아빠와 언니들의 얼굴이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야시장 한 가운데의 길이 양옆으로 갈라졌다.

여자들은 아빠의 얼굴을 보고 수근거렸고, 반대로 남자들은 언니들의 얼굴을 보고 수근거렸다.


인정한다. 우리 교에는 미남 미녀들이 많았다.

십만대산에 있는 한명호, 공필두, 아저씨들도 중후한 미남상이었고 좌사 이현성 아저씨도 잘 생겼다.


"사람이 많네...."


걸어걸어 도착한 곳에 사람이 많았다.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물론 그만큼 맛집이라는 뜻이리라. 그래도 조금 기다리자 자리가 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사람들 중 몇몇이 우리를 쳐다봤다. 그런데 아빠랑 언니들은 익숙하다는 듯 음식이나 고르고 있었다.


역시 경험에서 나오는 여유가 있었다.


"......이거랑 탕초리척(탕수육) 대자 하나로 주세요. 두강주도 주시고, 술잔은 세개만."


주문이 끝나고 아빠가 입을 여셨다.


"비유야, 옛날에 내가 무림공적으로 낙인 찍혀가지고 도망다닐때, 여기서 밥을 먹었거든? 근데 여기 탕초리척이 진짜......"


무림공적 서열 일순위. 아빠는 무림맹에 쫓길때도 일등이셨다. 사천은 그야말로 정파의 한 가운데라 볼 수도 있는데 그곳에서 밥 한그릇 태연하게 먹었다니. 이쯤되면 아빠가 정파를 가지고 놀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왜요, 천라지망도 뚫었다고 하지?"

"하하하하."


희원 언니가 농담조로 말하자 아빠는 머쓱하게 웃으셨다. 나는 순간 아빠가 진짜 천라지망도 뚫어본 적이 있는 거 아닐까......생각했다. 


아님 말고.


잠시 후, 요리가 나오고. 젓가락질을 했다.

사천 특유의 매콤한 맛과 달콤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언니들도 한 입 먹고 시동을 거셨다.


그리고 젓가락을 마치 비무 하는 것 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엄청난 속도에 내가 머뭇거리자 아빠는 그 속에서 태연히 탕초리척을 하나 집어 나에게 건네주셨다.


역시 하늘같은 우리 아버지.

이제 검 하나만 사주면 최고의 아버진데. 이걸 안 사주네.


식사는 행복하게 끝났다.


.

.

.


숙소를 잡고, 짐을 풀었다가 모두 아빠의 방에 집합했다. 특이한 점은, 아빠랑 설화 언니가 온통 시커먼 흑의로 전신을 둘렀다는 것.


마치 어둠이 덩어리가 되어 걸어다니는 것 같았다.


"그럼, 다녀올게요."

"내가 이번에 교주님 걸린다에 은전 하나 걸게요."


아빠랑 설화 언니는 진짜 당가의 보물창고로 빠르게 몸을 날리셨다. 지붕을 딛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빠는 경공도 뛰어나신가 보다.


아빠랑 설화 언니가 저멀리 사라지자 희원 언니는 나에게 온천을 가자며 이끌었다.


이 숙소는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라면서.


"으하......"

"좋다......"


뜨끈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니 절로 감탄이 나왔다. 약재를 섞었는지 피로가 알아서 풀어졌다.


나는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겨 입을 열었다.


"언니."

"응?"

"언니는 왜 교에 들어오셨어요?"

"음......"


희원 언니는 조금 뜸을 들이셨다.


언니는 검술 실력이 마교 내애서 아빠 다음 가는 고수다. 이 정도 실력이면 정파에서 한 문파의 문주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멋진 별호도 하나 가지고 있었겠지.


예를들면 '염화검제' 라던가 '심판검제' 같은.

나도 그런 별호 하나 가지고 싶다.

이번 후기지수 비무대회에서 우승하면 나도 하나 생기겠지? 

제발 목검왕(木劍王) 같은 별호만 아니길 빈다.

그런 별호를 가질 바에 차라리 맨손으로 싸울거다.


"옛날부터 내가 검을 진짜 좋아했거든? 근데 가르쳐줄 사람이 없었어. 가난하기도 했고......"


언니는 일곱 살 부터 검을 잡고 막 휘둘렀다고 했다. 검을 배우고 싶어도 언니가 살던 곳의 검문은 오직 남자만 입문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무인이 수련하는 것을 훔쳐보는 것은 금기시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어깨너머로 배우지도 못했다.


그래서 저잣거리에 파는 가장 기본적인 삼재검법만 수련했다고 한다. 베기, 찌르기, 막기. 수년동안 이 것만 연습했다고.


그러다가 옆마을의 문주의 눈에 띄여 입문했다가, 그 문주에게 강간당할 뻔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문주를 죽이고 도망치고 도망치다 마교에 입교 한 거라고. 배신감이 너무 컸다고.


"그 자식 죽이니까 속이 시원하더라."

"그렇군요. 힘드셨겠네요......"


역시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나도 외로움이라는 상처가 있다. 분명 아빠도 현성 아저씨도, 설화 언니도 마음속에 상처 하나씩은 가지고 있겠지.


나는 희원 언니의 상처를 알게 됨으로써 언니랑 더욱 친해지고 더욱 언니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언니가 현성 아저씨처럼 착한 남자를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

.


"후아......이번에도 무사히 성공했네요."

"고생하셨습니다."


누가봐도 한 두번 한 짓은 아닌 것 같았다. 설마 사천에 올때마다 이런 도둑질을 하는 것일까?


"교주님이랑 나만의 연례행사라고 보면 된단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이러니까 마교가 심심할 틈이 없었나보다. 하나하나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 모여있으니,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 것이다. 


그 와중에 설화 언니는 원하는 걸 얻어서 기분이 좋아보였다.


새삼, 당가를 자기 집처럼 드나드는 아빠랑 언니를 보고 있자니 당가의 가주가 불쌍해보였다.

자기가 마교주에게 아낌없이 퍼주고 있다는 걸 알면 과연 어떤 반응일까?


교에 있을때는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니, 앞으로도 자주 강호행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아무래도 이게 여행의 묘미인 것 같다.


우리는 그날, 사천당가에서 울리는 사자후 소리와 침입자 경보를 자장가 삼아 깊은 잠에 들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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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 부터 무림맹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