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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ㅡㅡㅡ
"자리 만석입니다!"
"닭꼬치 팝니다! 닭꼬치 세개에, 철전 열개!"
무림맹 앞 거리는 비무대회 전야제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유명한 악단이나 연극단이 와서 공연을 한다고 하기도 한단다. 가면극은 꼭 보고 싶었다.
아빠는 언니들과 같이 무림맹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친구들은 언니들과도 금방 친해졌다. 특히 지혜 언니랑 희원 언니가.
"근데 너희 괜찮겠니?"
"뭐가요?"
"우리 마교에서 온 사람들이잖아. 괜히 같이 있는 거 때문에 안 좋은 소문 나면 어쩌려고 그래."
아빠가 뒤따르는 친구들을 향해 물었다. 친구들이 그 말을 듣자 잠시 멈칫했지만 의외의 말을 꺼냈다.
"오히려 아저씨가 우리랑 가까이 지내면 마교에 대한 인식이 좀 바뀌지 않을까?"
"끄응....인식이 바뀌면 안되는데...."
"왜?"
아빠가 지혜를 바라봤다가 다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솔직히 이건 나도 궁금했다. 아빠는 특히 마교가 계속 사악한 무리로 회자되길 바랬다.
"위험이 없으면 사람은 나태해지고 약해지거든. 억지로 가짜 위험이라도 있어야 너희가 칼질을 배우는 이유라도 생기지."
"음......생각해보니 그렇네. 그럼 비무대회엔 왜 온거야? 사람들한테 욕 먹고 경멸 받을 거 뻔히 알면서."
"그야 당연히, 민심 안정을 위해서지. 비무대회에 우리를 초대함으로써 지금 정파 무림은 마교보다 위에 있다! 라는 걸 보여주고 양민들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야. 우리를 이기면 너희 명성도 높아질거고. 그리고 나는 어차피 마도를 걷는 사람이니까 이런 건 신경도 안 써."
아빠의 말을 듣고보니 이해가 간다. 마교라는 무리가 없었으면 정파 무림은 그 틈을 타 서로 최고가 되기 위해 엄청난 자존심 싸움을 펼쳤을 것이다. 서로 힘만 빼는 소모전 말이다.
그러니까 아빠가 대신 칼받이가 되어서 저들의 칼을 마교로 돌려 정파를 결속시키고, 강해질 명분을 주고, 무공을 모르는 양민들이 피를 흘리지 않도록 균형을 조율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진짜......대단하다는 말 밖에 못 하겠다.
"아저씨......진짜 대협이셨군요."
"대협은 무슨. 나 그런 대단한 사람 아니야."
"어째 저기 세가의 가주들보다 아저씨가 더 정파 사람 답지?"
"너무 뭐라하지는 마. 그 사람들이라도 있어서 지금의 강호가 있는 거니까."
어쩐지 아빠를 보는 시선이 뜨거워졌다. 말그대로 존경과 경외가 담긴 시선이었다. 이 녀석들, 드디어 우리 아빠의 진가를 알아본 것이다.
"그러니까 함부로 사람 죽이고 그러......"
"아빠?"
뭐지? 아빠가 갑자기 말을 멈추셨다. 아빠를 올려다보자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보니 호위무사들에게 둘러싸인 갈색의 머리칼을 가진 여자가 있었다. 같은 여자가 봐도 미녀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신기한 건, 그 여자가 아빠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짓고 있었던 것이다. 침묵을 깬 건 하영이의 목소리였다.
"어? 저 사람. 미노상단(美勞商團)의 상단주다!"
"미노상단?"
(*상단: 중국에서 상인단체가 시장을 지키려고 조직한 일종의 상인 연합과 사설 군대.)
미노상단은 나도 들어본 적이 있다. 상단주의 이름은 유상아. 옛날에는 보잘 것 없는 중소상단이었지만, 지금은 중원 삼대 상단 중 하나로 말 그대로 초거대 상단이다.
그런데 저 상단주 유상아라는 여자와 아빠가 아는 사이처럼 보였다.
"교주님."
"어? 아, 미안. 내가 어디까지 했더라?"
아빠가 어색하게 웃으며 우리를 돌아봤지만, 나는 이미 아빠가 평소랑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
허둥지둥 대는 모습은 아빠답지 않았다.
나는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저 사람, 누군지 아세요?"
"......글쎄다."
"근데 왜 저 사람이 이쪽으로 오는 거에요?"
정말 미노상단주가 우리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상단주의 돌발행동에 호위무사들이 깜짝 놀라 쫓아오는게 보였다.
이 유상아라는 여자, 나보다 고수다. 내 주변엔 왜 이리 고수들이 많지?
"......"
"......"
상단주가 아빠의 앞에 멈춰섰다. 아빠는 조금 심할 정도로 무표정이었고 상단주는 조금 슬픈 얼굴이었다. 우리는 지금 대체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려고 애썼지만,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하아......비유만 남고, 나머진 먼저 가서 구경 좀 하고 있으세요."
"여러분들도, 잠시 자리 좀 비켜주세요."
희원 언니가 고개를 끄덕이고 친구들과 저 멀리 사라졌다. 친구들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상단의 호위무사들도 떨떠름한 얼굴고 자리를 피해주었다.
"오랜만입니다."
"네, 거의 이십년 만이죠?"
"......"
진짜 옛날에 아빠랑 무슨 일 있었나보다. 대체 이십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 아이는......"
"아, 안녕하세요. 앞으로 천마신교를 이끌어갈 소교주 김비유라고 합니다."
"......그렇구나, 만나서 반가워 비유야. 난 미노상단의 상단주인 유상아라고 해."
우리가 통성명을 할 동안 아빠는 여전히 상단주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상단주 언니가 고개를 돌려 아빠와 눈을 마주쳤다.
"그간 많이 바쁘셨나봐요."
"그렇게 바쁘진 않았습니다."
"그럼 서찰이라도 한 편 보내주셨으면 정말 좋았을텐데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도 있잖습니까. 상단주님."
엄청 긴장된다.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다. 나누는 이야기만 들어보면 서로 원수는 아닌 것 같은데......
"뭘 새삼스럽게 상단주님이래......그냥 옛날처럼 편하게 말하세요."
아빠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번 했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어조로 나긋하게 말했다.
"그동안 별일 없었어?"
"네, 덕분에요."
"다행이네."
"걱정했어요?"
"옛날에는......"
"그럼, 지금은요?"
"......지금도."
"후후후."
아빠와 상단주 언니의 이야기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일방적으로 아빠가 대화를 피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치만 대화를 피해도, 시선은 여전히 상단주 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 아니에요?"
"그럼 뭐 땅바닥을 보면서 대화할까?"
"푸흐......아니에요. 근데, 여기는 대체 어떻게 온 거에요? 진짜 꿈에도 몰랐네."
"맹주님의 초대로, 비유도 내일 출전해."
"와, 중간에 돌아가려고 했는데 끝까지 보고 가야 겠네요."
상단주 언니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정말, 이곳에 다른 남자들이 있었다면 뒤로 넘어갔을지도 모를 만큼 아름다운 미소였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술이나 한잔 하러 갈래요? 아니면 차라도 한잔?"
"마교주랑 같이 어울린다는 소문 돌면 상단에 손해가 엄청날걸? 그리고 네가 술을 즐길줄은 몰랐는데? 많이 힘들어?"
"상단을 운영하다보니까 가끔씩 화가 나서 미치겠더라고요. 그때마다 한 두잔 씩 했죠."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몸에 안 좋아."
상단주 언니는 쿡쿡대며 웃기 시작했다. 아빠와 상단주 언니를 보니 나는 최근 읽고있는 <장씨세가 아가씨>의 한 부분을 떠올렸다.
사랑하던 두 남녀가 신분의 차이로 인해 헤어졌다가 오랜 시간 뒤에도 서로를 잊지 못해 다시 만나서 늦게라도 사랑을 시작하는 부분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소설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진짜가 눈 앞에 있었다. 나는 저 예쁜 상단주 언니가 지금까지 혼례를 치르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아마 세가 연합의 가주들이 상단주에게 엄청나게 혼담을 넣고 있겠지.
나는 둘의 분위기를 보고 곧 상단주 언니가 아빠의 이름을 지어주신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아주 오랜시간동안 서로를 사랑해왔다는 것도.
나는 눈치껏 자리를 피해줘야겠다고 생각해 슬쩍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런데 상단주 언니가 나를 불렀다.
"비유야, 어디가니?"
"아, 그 그게......좀 있으면 가면극을 한다고 해서......보러 갈려고요."
"가면극? 어때요? 같이 보러가실래요?"
"같이? 정말 괜찮겠어?"
"안 괜찮으면 어때요! 빨리 가요!"
상단주 언니가 아빠의 팔을 잡아 끌었다.
역시,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저기 저 얼떨떨한 얼굴고 끌려가는 아빠를 봐라.
분위기상 내가 빠져줘야 했기에 두번째 시도를 했다.
"저는 친구들 불러올테니까 두 분은 먼저 가서 자리 좀 잡아주세요!"
"응? 잠깐, 비유야?"
"아버지, 응원합니다."
나는 엄지를 척 들어주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아빠는 결국 내 장난스런 얼굴을 보시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시더니 상단주 언니와 걸음을 맞춰 걷기 시작했다.
이제 내 역할은, 응원하는 일 밖에 남지 않았다.
.
.
.
이런, 일이 제대로 꼬여버렸다.
여기서 상아를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저기! 바로 저기에요!"
나이를 먹을대로 먹었지만, 하는 행동이 영락없는 어린 아이였다. 진짜 이십년 동안 하나도 안 바뀌었네. 내 기억 속에서.
"무슨 생각하세요?"
"아무 생각 안했어."
"제 생각 하셨구나?"
"......아닌데."
"네, 뭐, 그러시겠죠."
돈 버는 일을 하다보니 눈치도 엄청나게 빨라진 모양이다. 앞으론 조심해야겠네.
"저...... 안 보고 싶었어요?"
"솔직히......보고 싶었지. 조금."
"저는 꼭 보고 싶었어요. 아직 당신한테 은혜도 못 갚았는데 말이죠."
"굳이 갚을 필요 없어. 그냥 내가 해야 할 일을 한 거 뿐이니까."
"그래요, 근데 그 덕분에 제가 이렇게 출세할 수 있었죠."
"그건 니가 내 이름을 지어줬을때 끝난거야. 난 그때 정말 행복했으니까."
"하지만......"
"그만, 그거면 된거야."
그래, 더 이상 이렇게 엮이면 안된다.
먼저간 동기들과 내가 죽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악인이 되어야만 했다.
"......"
"......"
또 어색해져버렸다. 내가 말을 좀 심하게 했나? 얘 입장에선 최대한 나를 위해 말한건데......그래, 일단 사과하자.
"저기......"
"......"
아. 그런 눈으로 날 바라보지마. 나는 그런 시선을 받을 자격이 없어.
"당신, 왜 그렇게 외로워보여요?"
"......그럴리가. 내 주변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진짜요?"
"진짜로."
"근데 왜 그런 얼굴이에요?"
"내 얼굴이 어떤데."
말하지 마. 나도 사실 알고 있어.
"옛날부터 당신 얼굴만 보면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았어요. 지금, 당신은......힘들어 하고 있어요. 그것도 아주 많이."
"......"
어렸을 때부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훈련을 받았을 터인데, 대체 얘는 어떻게 이렇게 잘 알아낸다는 말인가. 감정을 읽는 무공이라도 배웠나?
"스스로 지옥도를 걸으면서 세상에 광명을 가져다주는 사람. 그게 당신이잖아요. 그것도 혼자서."
"지옥도는 나만 걸으면 되. 우리 비유가 그 길을 걸을 필요도 없지."
"당신이 걸을 필요도 없어요."
유상아가 김독자의 팔을 조금 더 세게 쥐었다.
제발 더 이상, 그곳으로 가지 말라는 듯.
"당신도 그럴 필요 없단 말이에요."
"살아남았으면, 나 대신 죽은 사람들의 몫까지 대신 살아야 해."
"그것이 당신이 걷는 마도(魔道) 인가요?"
"그래."
"그럼 그 길은 잘못된 길이네요."
"......"
'내가 걷는 길이 잘못된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마도(魔道)란 그런 것이었다. 가시밭길처럼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는 길.'
그의 길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그의 인생 전체를 부정하는 말이었다.
"그럼, 나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건데?"
"그 반대의 길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에요."
"그건 불가능해."
"가능해요."
유상아가 그를 바라보며 간절히 말했다.
"제가 도와줄게요."
"어떻게, 무슨 수로?"
"불이 되어드릴게요. 당신이 길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당신을 막는 장애물을 전부 태워버리도록."
"......힘들거야."
"함께라면 힘들지 않을 거에요."
정말......믿어도 될까. 또 눈앞에서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또 나 빼고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
"우리 같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요."
"정말......괜찮겠어?"
"두 말하면 잔소리 아니겠어요?"
'저런 얼굴로 저런 멋있는 말을 하면 어떡하냐......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이었네, 너는.'
결심을 마친 김독자는 가면극 공연장까지 도착하는 내내 유상아에게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중간에 유상아가 화를 내며 입을 틀어막아버릴 정도로.
"......잘 할 수 있을까?"
"물론이죠. 전 당신을 믿어요."
"그래, 믿어줘서 고마워."
"그럼, 우리 관계도 다시 시작하는거죠?"
"으, 응?"
'설마, 다시 시작한다는 게 이 뜻이었나?'
옆자리에 앉은 유상아가 눈을 흘기며 김독자를 바라봤다. 정말 눈치 못챘냐는 듯.
"저 언제가지 노처녀로 살게 할 거에요? 세가들이 뒤에서 저한테 엄청나게 치근덕거리는 건 알기나 해요? 오늘도 세가에서 만나자고 한 서찰이 몇개나 온 줄 알아요?"
"아, 그, 그게......미안."
"모든게 다 끝나면 다시 만나자고 해놓고선. 다시 만나서 좋아한다는 말도 하고 싶었는데."
"미안해.....이 말 밖에 못하겠다."
"할 말은, 그게 다에요?"
"......좋아한다, 상아야."
"조금 더요."
유상아는 김독자의 시선을 피하며 멀리 있는 산을 바라봤다. 김독자도 조금 부끄러웠는지 헛기침을 몇번 하다가 속삭였다.
"크흠......그건 나중에."
"알겠어요, 꼭 해주시는 거에요?"
"근데, 왜 나같은 놈한테 이러는 거야? 너 나를 좋아하던게 아니라 동경하던 거 아니었어?"
"정략 결혼으로 일면식도 없는 가문이랑 연을 맺는 것보다는, 적어도 동경하는 사람이랑 하는게 더 좋지 않겠어요?"
그, 그건 그렇지. 아무래도 상아가 많이 시달리고 있나보네...
"어? 이, 이제 시작하려나 봐요."
"어, 응."
유상아가 김독자의 손을 꼭 쥐었다. 이십년 동안 반드시 잡아보고 싶었던 그 따뜻한 손이었다. 김독자도 머뭇거리다가 결국 손깍지를 끼었다.
와아아아아!!
한때 피와 흉터로 얼룩졌던 거친 손이었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구경꾼들의 박수와 함성소리 너머로 그 둘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비유가 있었다.
'다행히 아빠가 고자는 아니셨네.'
"비유야, 어디 봐? 공연 시작했는데...."
"응? 아, 아무것도 아냐!"
"또 닭꼬치 쳐다본 거 아냐?"
"아니라고!"
"얼굴 빨개진 거 보니 맞네, 맞아!"
"시끄러!"
그렇게 시작된 가면극은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막을 내렸다.
.
.
.
"와, 아저씨. 진짜 나쁜 사람이었네. 어떻게 이십년 동안 아무 말도 없이....."
"그러니까! 괜히 마교주가 아니었어."
"상단주 언니 힘드셨겠다......"
이곳은 미노상단이 소유하고 있는 거대한 장원이다. 우리는 상단주 언니의 초대를 받아 앞마당에 있는 팔각정자에 둘러앉아 나올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우리 아빠를 혼내면서.
"얘들아, 너무 그러진 마렴. 교주님 화나면 무섭단다?"
"그래도 아저씬 혼 좀 나야해요!"
"미안, 내가 악인이고 죄인이네......"
"흠, 천하의 마교주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을 줄은 몰랐군."
저 구석탱이에 앉은 유중혁이란 놈은 아까부터 계속 아빠한테 비아냥 거렸다. 진짜, 나이만 비슷했으면 바로 생사결인데.....분하다.
"중혁아, 이번엔 밥 말고 흙을 먹여줄까? 참, 너도 이제 장가 가야하지 않아? 요즘 만나는 사람은 있어?"
"......개같은 놈."
그래그래, 넌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라.
"근데 비유야, 넌 아까 닭꼬치하고 뭐 많이 사 먹었지않아? 밥이 또 들어가?"
"걱정 붙들어 매셔.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으니까."
"대단하다, 대단해."
내가 또 이런 맛있는 식사를 놓칠 수 없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처럼. 닭꼬치는 닭꼬치고, 식사는 식사다. 아, 음식 나왔다.
"독은 안 들었지?"
"풉...안 들었어요. 그보다 당신, 또 육포만 먹는다고 하는 건 아니죠?"
"먹으라고 하면 그것만 먹고 몇달은 버틸 수 있는데......"
"진짜 당신은 더 하면 더 했지 절대 덜하지는 않네요. 입 닫고 빨리 이거나 먹어봐요."
와, 아빠가 아무것도 못하고 계신다. 사실 진정한 천하제일고수는 상단주 언니가 아닐까?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음,음......맛있네."
"그때, 당신이 제일 많이 먹었던 요리에요. 기억나요? 나는 하나도 안 잊었는데."
"......미안."
언니들도 그렇고 파천문 친구들도 다 아빠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신기한테 오죽했을까?
"그래서 아빠, 대체 상단주 언니랑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아빠가 잠시 상단주 언니를 바라봤다. 정말 이야기해도 되겠냐는 듯. 상단주 언니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빠가 입을 열었다.
"이십년 전에...내가 중소상단이었던 미노상단의 상단주의 딸 호위무사로 고용됬던 적이 있었어. 마교를 뛰쳐나가서 떠돌아다니다가 돈이 없어서 일을 찾다보니 인연이 닿은거야. 얘가 자기도 검을 휘둘러보고 싶다면서 떼를 쓴 적이 엊그제 같네."
"크흠......그땐 진짜 멋있어 보였다고요."
"근데 검을 들지도 못해서 부들부들 대는 꼴이 우스워서 목검을 하나 만들어서 틈틈이 가르쳐줬지."
그럼 지금까지 상단주 언니는 일이랑 검술 수련을 병행해 왔다는 거다. 하루종일 검을 휘둘러도 실력이 늘지는 미지수인데, 엄청 대단한 사람이었다.
순간, 아빠의 표정이 슬퍼졌다.
"그러던 어느날, 일이 터졌지......습격이 있었어. 갑자기 괴한들이 쳐들어와 상단의 사람들을 전부 죽이기 시작한거야. 나중에 알고보니 다른 경쟁 상단이 미노상단을 제거하려 든거였지. 그땐 나도 죽을 뻔 했어...뭐, 결국은 다 죽이고 살아남았지만. 나중에 그 상단도 결국은 망했어."
상단주 언니의 얼굴이 착잡해졌다. 하루아침에 가족들이 전부 죽어버렸으니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아빠는 그날, 살아남기 위해 수십명을 죽여야 했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빠가 상단주 언니를 지켜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부터라도 저 두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때 분위기를 돌리려는 듯, 지혜 언니가 슬쩍 나를 도발하기 시작했다.
"야, 김비유. 이번 대회 우승은 내가 할 거니까. 너는 얌전히 이등상이나 가져가라."
"호오? 지금 이것은 위대한 대 천마신교에대한 도전이렸다?"
"아, 사저(같은 문파의 여자 선배를 부르는 호칭)! 이번에 제가 우승할 거 거든요?"
"뭐래? 이길영 너는 참가상이나 받아가."
"다들 꿈 깨라. 세가의 소가주들은 태어날때 부터 온갖 영약은 밥처럼 쳐먹고 수련한 애들이다. 쉽게 볼 상대가 아니야."
"하하하, 중혁이 말이 맞다. 정신 똑바로 차려, 알겠지?"
"비무대회니까 너무 격하게 하진 마렴. 언제나 자기목숨이 제일이니까."
그제서야 아빠랑 상단주 언니의 얼굴이 풀어지셨다.
두고보십쇼, 이 딸이 꼭 대환단을 얻어 오겠습니다.
.
.
.
다음날, 아침.
비무대회의 첫날이 밝았다.
상단주 언니의 장원은 말 그대로 낙원이었다. 없는 게 없었다. 잠도 푹 자서 상태도 최고였다.
아빠랑 상단주 언니는 무림맹의 손님으로서 비무대회 개막식에 참석해야만 했다. 희원 언니가 아빠의 수행원으로 따라가고 설화 언니는 이곳에 의료 봉사를 신청했기에 의약당으로 가셨다.
나는 괜히 설화 언니한테 들이댔다가 독에 중독되는 멍청한 남자가 없길 바랬다. 저들중에 일대일로 언니를 이길 사람은 구파의 장문인들, 아니면 세가의 가주들 정도밖에 없었기에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지만.
"근데, 쟤들 소가주들 아니야? 쟤들은 왜 관람석에 있어?"
"아, 너 몰랐구나? 세가의 소가주들은 이미 어느정도 실력이 있다고 인정되서 예선전 안 치르고 바로 본선전을 치뤄."
"그냥 특권 계층이 따로 없네."
"그래도 쟤들이 미리 올라갔기 때문에 다른 문파 애들이 본선에라도 나갈 가능성이 있는거지."
듣고 보니 그랬다. 쟤들도 예선을 치른다고 했으면 중소문파 애들은 고개도 못 들었으리라.
이걸 좋은 일로 받아들여야 할지는 모르겠다. 세가들의 갑질이 조금 심한 거 같지만......
"근데, 너 진짜 괜찮겠어? 저번에 소가주 애들한테 단단히 찍혔다면서? 쟤들이 벌써 소문내고 다녔을 수도 있어. 비무대회에 사악한 마교인이 출전한다...같은 소문이라던가."
"사실인데 뭐 어때? 그리고 그런 애들은 한 번 지면 입 꾹 다물걸? 만나면 목검으로 후두려패면 되지."
"과연 그럴까? 패배하면 마공(마교의 괴랄하고 사악한 무공)을 썼다면서 몰아세우지 않을까?"
나는 웃음이 나왔다. 마공? 웃기고 있네.
옛날에 아빠가 한 말씀을 이용해야겠다.
"우리가 익히고 있는 사람 죽이는 무공이 전부 다 마공 아니야? 무공에 옳고 그름이 어딨어? 죽느냐 죽이느냐의 문제지."
"......생각해보니 그렇네."
"음......"
"마공....정공....."
어째선지 다들 내 한마디에 조금 안색이 창백해졌다. 가끔씩 자기가 강하다고 잘난 척 하면서 뻗대는 애들이 있는데, 그건 그냥 "나 사람 잘 죽여요"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과 똑같다.
나는 목검을 쓰니까 누군가를 제압을 해도 죽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게 다 아빠의 큰 뜻인가?
"그럼 오늘부터라도 목검을 쓸까?"
"언니, 목검 차고 다니면 미친 사람 취급 받을 걸? 파천문한테도 아, 저기는 돈 없어서 애한테 목검을 쥐어보내는 문파구나....같은 소리 나올게 분명해."
"와, 골때리네 이거."
근데, 실력이 좋으면 진검을 쓰고도 충분히 제압이 가능하다. 문제는 상대가 진심으로 죽이려 들면 어쩔 수 없다는 거고.
"......진짜 복잡하다. 그냥 검기(劍氣) 한방 멎지게 촥! 날리고 싶다."
"우리는 아직 검에 내력을 담아넣는 거 밖에 못하잖아요. 검기 날리는 건 지금으론 어림도 없어요. 절정고수 되는게 어디 쉬운 줄 알아요?"
"쩝......쉬운게 없네."
외기발현의 절정고수.
말 그대로 체내의 기를 유형화 시키는 경지다.
이걸 무기에 담아 날리면 검기(劍氣), 도기(刀氣) 등등 쓰는 무기에 따라 다르게 불린다.
검기를 날리면 왠만한 바위 하나는 산산조각 내버릴 수 있다.
구파의 장문인들과 장로들, 세가의 가주들 같은 사람들이 절정고수 인만큼 강호에서 절정고수는 좀 드물었다.
물론 우리 교에서 아빠랑 좌사 아저씨, 설화 언니, 그리고 무력단의 몇몇 단주 아저씨들도 이 정도는 된다.
그리고 검기 위로, 검강(劍罡)의 경지가 있는데.
파괴력과 절삭력이 훨씬 뛰어나 절기(필살기)로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 내공 소모가 심해서 검강 한 번 쓸 바에야, 차라리 검기를 열 번 날리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한 세력의 수장이 되려면 이 정도 경지는 되어야 하는데 당연히 아빠랑 맹주님은 이정도는 되신다.
몰랐는데 희원 언니도 검강을 쓸 수 있다고 한다. 희원 언니가 지금까지 나를 봐주고 있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이제 개막식 시작하려나봐."
하영이의 말에, 우리 모두의 시선이 맹주님이 있는 단상 위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단상 한 쪽 구석에 우리 아빠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비유야, 괜찮아?"
"음......아니."
당연히 괜찮을 리가 없었다. 아빠가 자리에 앉자, 근처의 가주들이 의자를 살짝 빼며 멀어졌기 때문이다. 상아언니는 걱정스런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고 있었다. 민감한 내 귀에 이런 말이 들렸다.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군......"
"마교인들이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사정을 모르는 민간인들이 봐도 단상 위의 분위기가 부자연스러웠기에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 아빠는 그런 취급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하품을 한번 늘어지게 하셨다.
역시, 저게 우리 아빠다.
"뭐, 괜찮아 보이시네. 어제 잠을 설치신 거 같지만."
"그래? 그럼 다행이고......"
"비유 누나. 괜히 신경쓰지마."
"그래요, 비유 언니.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교주님이 훨씬 착한 사람이잖아요."
이 녀석들, 지금 나 걱정해주는건가? 너무 고맙다.
그때, 맹주님이 거대한 몸을 일으켜 조금 앞으로 걸어나와 모두가 들릴 정도로 크게 외쳤다.
"지금부터! 제 십삼 회! 후기지수 비무대회의 예선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
내공을 실어 말했기에, 저 멀리 있는 사람들도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역시 축제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가보다.
"그에 앞서! 이번 비무대회에 참석하신 특별 귀빈의 한 말씀이 있겠습니다!"
특별 귀빈이라는 말에 장내가 떠들썩해졌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벌써 아빠를 가리키며 수군댔다.
아빠가 자리에서 일어나 중앙으로 걸어가셨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걸음걸이에 당당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아빠가 입을 여셨다.
"처음 뵙겠습니다. 마교주 김독자라고 합니다."
"......"
"......"
나와 맹주님은 박수를 쳤고,
나를 제외한 무림맹의 모든 양민들과, 무림인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고요했다.
다음에 계속
ㅡㅡㅡㅡㅡ
독상은 못참지
이제 다음편부터 본격적인 비무대회임
기대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