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러다 죽겠어요.”
그 말과 동시에 김남운을 막으려고 한 유상아는 곧 김독자에 의해 저지되어졌다.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요.”
김독자의 손에 붙들린 팔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떨림을 숨기려는 듯 주먹을 꼭 쥔 유상아가 말했다.
“알아요, 알지만......!”
“지금 가면 유상아 씨가 죽습니다.”
유상아의 동공이 두려움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도....남을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으려고 하다니... 이 여자는 멸망(시나리오)이 시작되기 전에도 남들을 위해서 살았지 않았을까...
[성진우 곧 있을 충격에 대비해.]
[충격?..알았다.]
콰아아앙―!
“와아악! 뭐야!”
폭발음에 귓가가 먹먹해지며 열차의 선체가 기우뚱 흔들렸다.
사람들의 비명. 바로 앞 칸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이쪽 객실로 넘어오고 있었다.
[시작됐다. 녀석이 움직였어.]
[녀석?]
김독자는 오른발로 있는 힘껏 바닥을 박찼다.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 사람들을 지나쳐, 할머니가 있는 방향을 향해서.
“뭐야? 어어억!”
김독자와 정면에서 부딪친 김남운이 괴성을 지르며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얼핏 보면 그가 할머니를 구한 듯한 상황이었지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눈빛으로 보아서 저 녀석이 노린 건 그게 아니었다. 하기야 구할려면 진작에 구할 수 있었겠지...폭발 속에 넘어지면서도 할머니를 향해 발을 내뻗는 사람들. 그 지옥의 한가운데에서 아까 곤충 채집망을 들며 부모와 웃고 있던 아이가 울고 있었다. 그렇군 곤충도 생명이니까 곤충을 죽여도 충분하겠군. 시나리오의 처음부터 살인을 하면 상당히 기분이 더러워질 뻔 했는데 말이야.
“잠깐 실례 좀 할게.”
김독자는 아이에게서 채집망을 빼앗아 들었다.
망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메뚜기 한 마리를 꺼내어 꼬마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돌아섰다.
“다들 멈추세요. 그 할머니를 죽여 봤자 당신들은 살 수 없으니까.”
폭발 후의 일시적인 정적 탓에 김독자의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게 들렸다. 하나 둘, 사람들이 그 쪽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할머니를 죽였다고 칩시다. 그 다음은 어쩔 겁니까?”
흠칫, 놀라는 표정들이 역겨웠다 알면서도 모른 척한건지 아니면 머리가 거기까지밖에 돌아가지 않는건지...
“저 할머니가 죽으면 도깨비가 말한 ‘최초의 살해 행위’가 인정되니까 잠깐 시간은 벌 수 있겠죠. 하지만 그 다음은요?”
“아.......”
“도깨비의 말이 사실이라면 결국 여러분들은 각자 한 사람의 몫을 죽여야 합니다. 그래서 할머니 다음엔 누굴 죽일 겁니까? 여러분 옆에 있는 사람을 죽일 겁니까?”
그제야 뭔가를 떠올린 사람들이 서로를 보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공포에 질린 눈빛들.
사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는 그저 시작일 뿐이라는 걸.
흔들리는 분위기를 붙잡은 것은 김남운이었다.
“하하, 다들 뭐가 걱정이야? 다음엔 저놈을 죽이면 되지! 겁쟁이들. 미리 자기 차례부터 걱정하지 말라고! 확률은 반반이니까!”
저 김남운이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슬슬 끼어들어볼까. 나는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
“그런 도박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살인자가 되지 않더라도 당신들이 살아날 방법은 있어요.”
“뭐?”
“그, 그게 뭔데요?”
크게 술렁이는 사람들. 김남운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잊었습니까? 시나리오의 클리어 조건은 ‘사람을 죽여라’가 아니었을 텐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몇몇 사람들은 뭔가 알아챘다는 얼굴이었다. 친절하게 나는 김독자를 가르켰다. 정확히는 김독자에게 있는 곤충들을.
[하나 이상의 생명체를 죽이시오.]
그랬다. 시나리오의 내용에는, 처음부터 ‘사람’이라는 말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하나 이상의 생명체 살해.
그 말은 곧,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이야기.
눈치 빠른 누군가가 김독자의 손에 쥐어진 채집망을 향해 외쳤다.
“곤충! 곤충이다!”
채집망 안에서 펄쩍 펄쩍 뛰는 메뚜기와 귀뚜라미들. 사람들의 눈빛이 번뜩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곤충이죠.”
사람들이 몰려들자 김독자는 재빨리 채집망에 손을 집어넣어 메뚜기 한 마리를 꺼냈다.
“그, 그걸 내놔! 빨리!”
“한 마리만! 한 마리만 있으면 돼!”
손을 뻗으며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며, 김독자는 천천히 한 발짝 씩 물러선다.
할머니를 죽이려던 폭발적인 광기들이 이제 그를 향하고 있었다.
설핏 웃음이 나온다. 도와달라고 한마디만 했으면 그래도 도와줬을건데 말이야.
자 김독자 이상황을 어떻게 해결할꺼지?
“드릴까요?”
김독자는 맹수 무리를 도발하는 조련사처럼 채집망을 흔들어 보였다. 성질이 급한 몇몇이 몸을 일으켜 김독자를 향해 달려들려는 그 순간.
“그럼 가지세요!”
그는 손에 쥐고 있던 메뚜기를 박살냈다.
[‘최초의 살해’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추가 보상으로 100코인을 획득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 쥐고 있던 채집망을 힘껏 던졌다. 정확히는 할머니와 사람들이 몰려 있던 통로의 정 반대쪽을 향해서.
“저런 미친!”
허공에서 풀려난 곤충들이 자유를 향해 있는 힘껏 도약하고 있었다.
객실 곳곳을 뛰어다니는 곤충들을 보며,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이, 이봐요! 왜 그런 짓을―”
사람들이 멍하니 경악만 하고 있는 사이, 판단이 빠른 몇몇은 나를 밀치고 지나갔다.
“두고보자 씨발놈아.”
“......빨리들 찾는 게 좋을 겁니다. 이제 3분밖에 안 남았으니까.”
김독자의 그 말을 신호로 사람들은 이성을 상실한 짐승들처럼 지하철 좌석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잡았다! 아아악!”
운 좋게 곤충을 손에 넣은 사람들의 환희와, 다시 그 사람을 공격하는 악의가 어우러져 객실 안은 난장판이 되고 있었다.
“어이,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그냥 곤충을 내줘도 됐잖아?”
옆을 돌아보니 김남운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수상쩍게 목을 푸는 김남운을 빤히 바라보며 그 대신 대답했다.
“객실에 남은 사람의 숫자는 열둘이야.”
“......응?”
“채집망에 남은 곤충은 세 마리고.”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짓던 김남운이 파안대소를 했다.
“12 대 3? 하하하핫! 그러네. 어차피 모두 살아남을 수는 없다 이거지? 그래서 저걸 던진 거다?”
“그래. 아마 그렇겠지. 그렇지 않나? 김독자.”
“웃기지 마.”
“......?”
“상식이 제대로 박힌 인간이라면 그딴 이유로 저런 짓을 벌이진 않아.”
“이봐 김독자라고 했나? 솔직히 말해봐. 넌 그냥 저 광경을 보고 싶었던 것 아니야?”
“나랑 같이 팀을 짜자. 어때? 아 옆에 너도 원한다면 끼워줄 수 있어.”
“팀...팀이라...”
“그래 팀. 앞으로 이 정신나간 세계를 같이 해쳐나가는거야!”
“나쁘지 않은 생각이긴 한데... 거절하지.”
“그래? 흠, 아쉽게 됐네.”
가볍게 입맛을 다신 김남운이 내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럼 이제 좀 비키지? 난 뒤쪽 할망구한테 볼일이 있으니까.”
할망구, 이라는 말에 뒤를 돌아봤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할머니가 가까스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무슨 볼일?”
“몰라서 묻는 거야?”
“곤충은 안 잡는 거냐?”
“곤충? 내가 그딴 걸 왜 잡아?”
김남운이 비릿하게 웃었다.
“눈앞에 이미 다 잡아 놓은 벌레가 있는데.”
김남운의 살기가 코앞에서 느껴졌다.
[김독자 이새끼 죽여도 되나? 상당히 건방지군.]
[죽이지는 마 쓸모가 있을거야.]
“뭘 봐? 빨리 비키라니까?”
“그건 힘들겠는데.”
“뭐?”
“비켜줄 수 없다고.”
“하하, 이제 와서 정의의 사도 흉내라도 내겠다는 거야? 그럴꺼면 아까 저녀석이 곤충 채집망을 던질 때 막았어야지 혹시이중인격이냐?”
“이거, 알고 보니 내가 제일 싫어하는 종류의 인간이었네. 역시 나이든 새끼들은 다 똑같다니까.”
“정의라...정의같이 거창한 이유는 아니고 그냥 거슬려서.”
“??? 뭐? 혹시 또라...”
“시끄럽군. 다 잡아놓은 벌레 운운할 때가 아니라 너의 목숨을 걱정해야 할 때인걸 몰랐나.”
그 말과 동시에 나는 녀석이 나에게 보내던 갖찮은 살기를 뛰어넘는 살기를 살짝 맛만 보여주었고 조절한다고 조절했는데 녀석은 그것도 버티지 못하고 졸도했다. 그리고 나는 졸도한 김남운의 뺨을 때리며 녀석을 깨웠다.“
“어이 일어나.”
“허어어억.”
“야.”
“이..이게무슨...”
아직도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한 건가. 시나리오가 시작되자마자 약자부터 찾아서 폭행하던 전의 모습과는 매우 다른데...이러면 실망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녀석의 머리를 잡고 아무 말 하지 않고 지하철 문에 갖다 박았다.
한 번으로는 모자랄 것 같아서 녀석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살살 박아댔다.
쾅
“끄아아악.”
쾅
“크어어어억.”
쾅
“잘..잘못했ㅇ.”
쾅
“사, 살려줘.”
쾅
“살려달라고! 제발! 살려주세요!”
“내가 왜?”
쾅
“사, 사람 목숨은 중요하잖아! 그게 당연한 거잖아!”
“그건 ‘예전 세계’의 법칙이겠지. 네가 말했잖아. 새로운 세계에는 새로운 법칙이 필요하다고.”
쾅
“싫어, 싫어! 죽기 싫어! 으아아아아!”
쾅
“살려주세요.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당신의 부하가 될게요. 제발 목숨만...목숨만...”
녀석의 입에서 내가 만족한 답이 나올 때까지 지하철 문짝에 박은 결과 지하철의 문은 김남운의 머리 모양의 자국이 남았고 김남운의 얼굴은 과거의 모습을 찾기 힘들 정도로 망가졌다. 얼굴 곳곳에는 멍이 들었고 코뼈는 부러진 듯 했으며 이빨도 몇 개 빠진 듯 했다. 이정도면 됬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김독자를 돌아보았다.
[아 김독자 말한대로 죽이지는 않았는데 이정도면 괜찮겠지?]
[....]
[김독자?]
“야 이 또라이야.”
이건 무슨 개소리지 김남운 저 녀석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나. 목숨을 건져줬더니 은혜를 모르는군. 다시금 녀석의 얼굴을 쳐박기 위해서 걸음을 옮길려고 하는 찰나.
“누가 사람 얼굴을 이렇게 걸래짝으로 만드냐.”
“뭐야 김독자였나.”
[영혼으로 대화해도 됐는데 왜 굳이 육성으로 말하나.]
[그만큼 놀라서 그랬다 이 새끼야. 아니 미친 쓸만하다고 했었는데 저 정도면 있던 쓸모가 없어지잖아.]
[그럼 죽여도 되나? 슬슬 시나리오를 깨야 할 것 같은데.]
[되겠냐? 그리고 분위기 어쩔거야. 너가 김남운을 초주검으로 만들고나서 열차안 분위기가 이상해졌다고.]
[...확실히 겁을 먹었는지 움직임들이 없긴 하군. 언제 잡혀서 죽을지 모르니까 그런 것인가.]
[그래 이 분위기라면 여기서 동료로 삼을 인물들의 호감도까지 낮추는 행위란 말이야.]
[그건 너가 알아서 할 문제 아닌가?]
[뭐?]
[영웅이 되려면 가장 필요한게 뭔지 아나? 바로 악당의 존재다.]
[그리고 그 악당의 역할을 너가 해주겠다고?]
[못할 것도 없지. 일단 열차의 분위기부터 환기시키는게 좋겠군. 너가 할거냐 아님 내가 할까.]
[내가 할게. 너가하면 사람 하나 더 초주검으로 만들 것 같네.]
[저 한명오라는 인간이 거슬려서 본보기로 삼을려고 했는데 아쉽군.]
[진심이냐?]
[당연히 농담이지. 저런 훌륭한 고기방패를 쓰지도 않고 버릴만큼 난 악랄하지 않아.]
[....]
한동안 안 올린지 좀 되는것 같아서 올려봄. 근데 솔직히 이거 재밌게 보는 새끼들이 있나 싶어. 다들 야짤과 광기에 미쳤지 않았나 싶은데 혹시나 이거 더 볼 새끼들은 ㅈㅇㄹ에서 따로 찾아서 보삼. 링크올리면 ㅈ목이라 짤릴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