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망설이는 이현성과 한명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서 저 철문 너머에 있는 녀석에게 죽든가, 아니면 열차 밖으로 나가서 운을 시험해 보든가. 어느 쪽을 고르실 겁니까?”
“으, 으으······.”
“독자 씨, 저 철문 너머에 있는 게 꼭 적이라는 보장은 없지 않습니까?”
“다른 칸에서 넘어온다면 생존자일 가능성이 높을 텐데요. 한 번 만나보는 것도······.”
나는 대답 대신 피투성이가 된 객실을 훑어보았다.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움직인 이현성과 한명오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순간 두 사람도 자각한 것이다.
다른 칸의 생존자들도 우리와 같은 일을 겪었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들에겐, ‘곤충’이라는 행운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도.
“······제가 경솔했습니다.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보죠.”
“잠깐 아까 저 애새끼를 구타하던 남자 이름이 성진우라고 했나? 저 청년이 저 녀석을 막아 줄 수 있잖아.”
아 이런 여기서 성진우를 걸고 넘어질지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역시 삶에대한 의지는 정말 강하단 말이야. 여기서 성진우의 반응이 중요할건데..
“내가 저녀석을 상대하라...분명 가능하긴 하겠지만 애초에 저녀석은 객실의 모든 녀석을 죽인 것 같은데...코인도 나보다 많이 벌었을 거고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들이 휘말릴 것 같은데?”
성진우의 적절한 선동으로 인해서 불안감이 더욱 고조된 탓일까 아까까지는 죽어도 안가겠다는 사람이 갑자기 적극적으로 밖으로 향하는 개폐구를 찾고 있었다.
“나, 나가자! 빨리 나가자고!”
“이쪽은 고장 났어요!”
“젠장, 이쪽도 안 돌아가!”
이현성과 한명오의 외침을 들으며, 나 역시 개폐구를 확인했다. 아까는 결계가 쳐져 있었던 개폐구에 이제는 손을 댈 수 있었다.
통로를 잇는 개폐구를 제외하면 지하철 한 량의 출입 개폐구는 총 8개. 그리고 아직 확인하지 않은 출구는 총 3개였다. 그리고 3개 중 하나만 작동할건데 말이야.
쿵!
철문은 이제 1분을 채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
아무리 주인공이라고 해도 초반이라 근력 레벨이 충분하지 않을 텐데, 저 두꺼운 철문을 부술 생각을 하다니 역시 우리의 개복치는 몸쓰는건 정말 잘한다니까.
“독자 씨! 여기―”
그사이 유상아가 멀쩡한 수동 개폐 장치를 발견했다.
“엽니다!”
그러나 개폐 장치가 매끄럽게 돌아간 것과는 별개로, 문은 한 번에 열리지 않았다. 오분의 일쯤 열리던 문은 턱에 걸린 것처럼 도중에 멈춰 섰다.
“······여기도 고장 난 것 같군요.”
“다른 곳은 어때요?”
“그나마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는 곳은 이곳뿐입니다.”
아이라면 모를까. 성인 남녀가 빠져 나가기엔 좁은 틈이었다. 한명오와 김남운이 문 한짝씩 이현성이 문 사이 틈새를 붙들고 기를 써댔으나, 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성진우가 김남운을 무자비하게 지하철에 박아버린게 문을 뒤틀리게 한 것 같았다.
“이현성 씨. 스킬을 쓰세요.”
“예? 스킬이라 하심은······.”
나는 조용히 [등장인물 일람]을 가동했다.
[전용 스킬, ‘등장인물 일람’이 발동합니다.]
<인물 정보>
이름 : 이현성
나이 : 28세
배후성(背後星) : 강철의 주인
전용 특성 : 불의를 외면한 군인 (일반)
전용 스킬 : [총검술 Lv.2], [위장 Lv.2], [인내심 Lv.2],
성흔 : [태산 밀기 Lv.1]
종합 능력치 : [체력Lv.8], [근력Lv.8], [민첩Lv.7], [마력Lv.5]
종합 평가 : 전체적인 능력치가 매우 준수합니다. 불의를 놀랍도록 잘 참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좌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또 다른 계기가 될 것입니다.
역시 전체적인 능력치는 저번과 동일하니 분명 ‘태산밀기’를 사용한다면 쉽게 문을 열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뒤로하며 이현성에게 스킬의 사용법 정확히는 성흔의 사용법을 가르쳤다. 솔직히 가르쳤다고 말하는것도 무리가 있는데 그냥 저번처럼 말만 해줬다.
“아까 특성창 여셨을 때 확인하셨을 텐데요. 이현성 씨는 군인이시니까 분명 이 상황에서 쓸 만한 스킬이 하나쯤 있을 겁니다.”
“그게··· 하나 있긴 합니다만, 어떻게 쓰는지―”
“속으로 그 스킬을 사용한다고 생각하세요.”
“······그걸로 되는 겁니까?”
“돼요. 저도 아까 해봤으니까요.”
이현성은 설마, 하는 표정을 짓더니 뭔가를 결심한 듯 숨을 몰아쉬었다.
“흐아아아아압!”
문을 붙잡은 이현성의 이두박근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무사히 [태산 밀기]가 발동한 모양이었다.
드드드드드.
마치 거대한 태엽을 돌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야! 이 친구 완전 장사였잖아!”
“됐다! 정말 됐어요!”
[등장인물 ‘이현성’이 당신을 신뢰하기 시작합니다.]
[등장인물 ‘이현성’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무사히 문이 열릴거라는 생각과 달리 문은 굉음만 토해놓고 절반정도 열리다가 말았다. 역시 문이 뒤틀린게 맞는 것 같다.. 저 이현성이 열지 못하다니... 김남운이나 유상아 정도라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틈이 넓어졌지만 여전히 이현성이나 나같이 평범한 남성들은 통과하기 힘든데...이를 어쩐다..
“아...안돼..”
“젠장 일단 이렇게 된 이상 넘어갈 수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넘어가야만 해 언제 저 녀석이 문을 부수고 쳐들어 올지 모른다고.”
“그럼 문을 통과 못한 사람들은 죽어야 한다는 소리야?”
“살 사람은 살아야지.”
“젠장...”
살아남은 생존자 사이에서 소란이 일고 그나마 통과할 수 있을 사람들은 미리 건너가는 것으로 일단락 되면서 체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때 녀석이 나섰다. 어떤 방면으로 보자면 그 천하의 ‘유중혁’마저 한 수 아니 세 수 정도는 접고 들어가야 할 만큼 집요함과 광기(?) 강함을 보이는 ‘성진우’가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
“네? 그게 무슨 말...”
“비켜라 방해된다.”
그 말과 함께 녀석은 깔끔한 뒤돌려차기로 반쯤 열려있던 문을 그대로 걷어차 날려버렸다.
“이제 모두 나갈 수 있겠군. 어서 움직이지 뒤쪽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녀석의 행동에 모두가 잠시 벙쪄있었던 것과 달리 일행들이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리죠, 어서!”
하지만 안심하긴 일렀다. 나는 이길영을 들어 이현성에게 건네주었다.
“이현성 씨. 아이를 업어요.”
“알겠습니다.”
이제 철문은 거의 다 부서져 있었다.
[······이것 참.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아까 제가 말했죠? 아무데도 가지 말라고. 젠장! 아직 시나리오 준비가 안 끝났는데―]
화가 난 듯한 모습의 비형이 동호대교 상공에 떠 있었다.
“으아아!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나오지 말자고 했잖아!”
머리가 터질 거라고 생각했는지 한명오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감싸 쥐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휴······ 뭐 어쩔 수 없죠. 정말 운이 좋은 인간들이라니까.]
왜냐하면 바로 열차의 문을 여는 순간부터가 ‘두 번째 시나리오’의 시작이니 말이야.
자아. 이번에는 어룡에 빠지지 않게 최선을 다해 달려주겠어.
[두 번째 시나리오가 도착했습니다!]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