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요한 침묵.


"조금...조금만 더요."


조금 물기를 머금은 듯한 유상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녀의 손등에는 힘줄이 솟아나있었다.


그 목소리와 느껴지는 손의 힘에, 김독자는, 그저 천천히 손을 들어 품에 안긴 상아의 등을 토닥였다.


"......미안해요."

"......"


애처롭게 떨리는 어깨.

고개를 푹 숙여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그녀의 얼굴 표정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만 같았다.


김독자는 또 다시 그들의 곁을 떠날 것이다.

73번째 마계를 향해오는 별들의 재앙을 막기 위해.

막을 방법은 없다.


한참의 침묵 후.

상아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흐...독자씨."

"네."

"......독자씨."

"네, 상아씨."


아직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그의 이름만을 부르는 상아였다.

독자는 몇번이고 그 부름에 대답해주었다.


"우리...다시 만날 수 있는 거죠?"

"물론입니다."


독자는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그러나 상아의 불안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정말이죠?"

"네.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어요."

"......그런데....그런데 왜...."


상아는 이를 꽉 깨물었다.

그녀도 안다. 자신이 이럴수록 독자는 점점 더 힘들어한다는 것을. 더 떠나기 힘들어한다는 것을.


그걸 알고 있는 그녀였지만......불안했다.

상아는 호흡을 고른 다음, 고개를 들어 독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눈물이 그녀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독자는 차마 그 눈물을 닦아주려고 손을 들었지만...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한테선...향기가 나요."

"...향기요?"


뜬금없는 소리였지만, 상아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아무리 같이 있어도...꼭...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향기요."

"......"


독자는 침묵했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스스로 많은 단어를 알고 있다고 자부했지만...도저히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건네야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독자는 시선을 돌려 자신을 잡고 있는 상아의 손을 보았다.

얼마나 억세게 쥐고 있는지 가늠이 안될 정도였다.

조금 시선을 움직여 그녀의 팔목으로 향했다. 김독자 그가 선물한 팔찌였다.


어떤 특별한 장식도 없는, 멸망 전에도 흔히 볼 수 있었을 것만 같은, 그런 투박한 팔찌였다.

순간 그 팔찌가 자신이 그녀에게 씌운 짐이고, 죄 인것만 같았다.


독자는 손을 들어 상아의 손등을 덮었다.

작은 손이었다.

얇은 팔목이었다.

그의 눈에는 너무나도 연약해 보이는 동시에, 이 세상 무엇보다도 강해보였다.


죄책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그를 괴롭혔다.


이 작은 사람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운 것은 아닐까...하는 죄책감과.

이 사람이면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안도감이.


독자는 용기를 내어 손을 들고 그의 얼굴에 눈물을 닦아주었다. 상아는 불거진 눈으로 그를 계속 바라봤다.


계속되는 침묵이었다.

독자는 상아의 눈을, 상아는 독자의 손길을, 서로 피하지 않았다.


틱-틱-


집무실 안은 시계 초침 소리밖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은 그런 침묵이었다.


독자는 상아의 뺨에 손을 올린 채로 있었다.

손 끝으로 잠깐 숨결이 느껴졌다.


그는 손을 떼어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계속 이대로 있고 싶다는 충동이 그의 정신을 지배했다.


상아도 손을 들어 독자의 뺨에 살짝 손을 얹었다.


"흐릿하네요...대체 왜 이럴까..."


중얼거림같은 한탄.

상아의 입술이 살짝 달싹였다가, 호흡을 고르고 다시 열렸다.


"독자씨."

"네."

"여기...있어요?"


흐릿한 얼굴 때문에 벌써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여기 있냐고 물었다.


"눈 앞에 있습니다."

"정말요?"

"네."

"그러면......"


몇번이고 자신을 안심시키는 독자를 향해.


"그러면....저에게...입...맞춰 주세요."


독자는 조금 동요했다. 그러나 동요가 보이진 않았다. 상아의 얼굴은 얼핏 초연해 보였다.


독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몸을 기울였다. 어느새 숨결이 느껴지는 거리까지 다가왔다.

상아는 눈을 감지도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끝까지, 독자를 눈에 담겠다는 듯.

독자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 거리를 좁혔다.



입술이 닿았다.

서로 맞닿자 그의 입술로 도톰한 무언가가 비집고 들어왔다. 독자는 입을 살짝 열어 그것을 받아들였다.


몇 초뒤, 둘의 입술이 떨어졌다.


상아의 상태는 방금 전 보다 훨씬 진정되어 있었다.

독자는 그 차분한 얼굴을 보고 안심한 듯 살짝 미소지었다.


안심했기에, 둘은 서로를 믿었다.


사라질 것만 같았던 향기는 어느새 그들 주위에 은은히 퍼져있었다.


그 향기는, 3년이 지나고, 환생을 하고, 회귀를 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ㅡㅡㅡㅡㅡ

독상 받아라 전붕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