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통제할 수 없고, 시도때도 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은 언제나 안나 크로프트를 괴롭게 했다.
신기해하며 먼저 다가와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안나 크로프트를 미친 사람으로 볼 뿐이었다.
“신내림 뭐 그런 거야? 무당?”
“왜 저런 애랑 같은 반인 거야.”
“귀신 씌인 거 아니야?”
이런저런 모욕 속에서 안나 크로프트는 학교 생활을 잘 견뎌 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어느정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세상을 어두운 밤으로 만들어버린 사건이 찾아왔다.
“내일 돼서야 갈 거 같아. 너무 늦게 들어가지 말고, 밥 잘 챙겨 먹고.”
“알아서 할게요.”
그 날은 그녀의 엄마가 직장 때문에 집을 비운 날이었다.
엄마의 전화를 받고 밥을 먹고 문단속을 하고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방 문을 여는 순간.
안나 크로프트는 보고싶지 않았던 미래를 보게 되었다.
[오늘 아침 7시 경 고속도로에서 추돌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피해 차량에 타고 있던 부부는 사고 현장에서 숨졌으며...]
일반 사람이었으면 단순히 불안해하며 넘겼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일반 사람이었으면.
“전화 좀 받아봐...”
수십 번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이내 배터리가 다 된 것인지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음성메시지만 들리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TV에선 그녀가 이미 본 뉴스가 흘러나왔다.
안나 크로프트의 세계는 이 날을 기점으로 밤이 되었다.
*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어느덧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세상에는 ‘신’이 원해 개최되는 게임이 생겼고 모든 사람이 참여 대상이었다.
능력을 제어할 수 있게 된 그녀는 이를 이용해 게임을 해쳐나갔고 주위 사람들도 도왔다.
하지만 그녀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완벽해야 했고, 그녀의 능력은 사람들을 위해 쓰여야 했다.
안나 크로프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그녀의 밤은 점점 완전한 어둠이 되어갔다.
[다음 게임은 징검다리 건너기입니다.]
“김독자입니다.”
게임 시작 전 만난 왠지 모르게 익숙한 남자.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같은 팀인 이상 돕는 것이 그녀의 원칙이었다.
“다들 잘 들으세요. 다리는 두 개고...”
“한 쪽은 무너질 겁니다.”
“...어떻게 알고 있죠?”
김독자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순순히 정체를 밝히세요. 당신은 누군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안나 크로프트.”
그렇게 안나 크로프트의 인생이 다시 한 번 바뀌기 시작했다.
[한 다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무너지는 가짜 다리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 오른쪽이에요.”
미래를 볼 수 있는 안나 크로프트는 어느 다리가 무너질지 미리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다리의 중반부까지 수월하게 갈 수 있었다.
“다리가...”
이제 그들의 눈 앞에 놓인 다리는 세 갈래였다.
“다음은 어느 쪽인가요, 안나?”
“......”
“안나?”
“나는 특정 다리에 올라갔을 때의 미래만 볼 수 있어요. 이제까지는 한 쪽이 무너지면 반대편은 무너지지 않으니 올 수 있었지만...”
“가운데입니다.”
“...네?”
“가운데가 진짜 다리입니다. 가시죠.”
김독자의 말대로 가운데 다리는 무너지지 않았다.
자신도 알지 못한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안나 크로프트를 혼란스럽게 했다.
“구분하는 방법을 아는 건가요?”
“다 똑같이 생겼는데요.”
“그럼 어떻게...”
“미래 정보를 아는 것은 당신만이 아닙니다, 안나 크로프트.”
“순순히 정체를 밝히세요. 당신은 누군가요?”
“다음은 왼쪽입니다. 서두르죠.”
안나 크로프트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김독자는 앞으로 나아갔다.
김독자를 놓치면 다리를 선택할 수 없어 안나 크로프트와 그 일행들도 서둘러 김독자를 따라갔다.
몇 개의 다리를 더 건너니 도착지점이 보였다.
“마지막 다리에서 기다려요. 건너가면 죽어요.”
“... 네?”
“그 잘난 ‘미래 정보’에도 이건 안 나오나 보죠?”
“...”
안나 크로프트의 말처럼 김독자와 안나 크로프트의 일행은 마지막 징검다리에 서서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어느새 뒤따라온 사람들이 몰려 줄을 만들었다.
“왜 안 가는 거야?”
“빨리 좀 가!!”
그 중에는 빨리 가라며 언성을 높이는 사람도 있었다.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먼저 가면 죽습니다.”
하지만 안나 크로프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한 그룹이 앞으로 나섰다.
“그렇게 미적될 거면 비켜. 우린 가야겠으니까.”
그 말과 함께 남자 한 명이 다리를 건넜다.
“멀쩡한데요?”
“기다리세요.”
남자가 다음 게임을 향해 발을 떼는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
[다음 게임은 ‘지뢰찾기’입니다. 지뢰를 밟지 않고 모든 지뢰의 위치를 표시하세요.]
“왜 이게 벌써...?”
“지금부터 신중하게 움직여야 해요. 발 밑 조심하고요.”
김독자는 머릿속 의문은 잠시 제쳐두고 게임에 집중했다.
“첫 번째 줄은 1, 5, 9, 12, 17, 20번이 지뢰입니다.”
다른 일행들이 김독자의 말에 따라 지뢰의 위치를 표시했다.
“잠시만요!!”
“네?”
“17번은 지뢰가 아니에요. 19번, 19번이 지뢰에요.”
안나 크로프트가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17번 발판을 밟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신이 어떻게 미래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행동 때문에 미래가 바뀌기도 해요.”
“...”
“나는 당신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어요. 같이 가요.”
“...”
“... 알았어요, 솔직히 난 당신이 필요해요. 내 능력으로도 볼 수 없는 게 있으니까...”
“좋습니다.”
안나 크로프트가 처음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긴 순간이었다.
그녀가 속마음을 드러낸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안나 크로프트와 김독자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가며 게임을 수행했고 마지막 게임만을 앞두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이네요.”
“끝이 있긴 한 게임이었군요.”
“고마워요. 꼭 말하고 싶었어요.”
“...”
“어릴 때는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정신병 취급받았고 어느정도 능력을 제어할 수 있게 된 후로는 나한테 의지하는 사람들 때문에 조금도 쉬지 못하고 달려왔어요.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는.”
“다행이네요.”
“전까지 내 세상은 항상 ‘밤’이었어요. 희망이라곤 없는... 그런데 나는 또 그런 세계에 익숙해져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밤은 점점 어두워졌죠. 그런데 당신이 내 세계를 밝혔어요. 마치 ‘별’처럼... 게임이 끝나도 같이 있어요. 내 새로운 새계의 별이 되어줘요.”
“죄송하지만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가야 할 곳이 있어서요.”
[다음 게임은 ‘제비뽑기’입니다. X표를 뽑은 사람은 사망합니다.]
“왼쪽 맨와 가운데에서 오른쪽 카드가 X 맞습니까?”
“...네.”
“이번에는 안 바뀐 것 같군요.”
김독자와 안나 크로프트는 각자 카드 하나를 들어 뒤집었다.
[두 분 다 O를 뽑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어딜 가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만나게 될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김독자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
[‘김독자’가 기억 체험 ‘미래를 보는 아이’를 클리어했습니다.]
[해당 체험의 난이도는 ???입니다.]
[클리어 시도 횟수는 1회입니다.]
+
<히든 시나리오 – 미래를 보는 아이>
분류: 히든
난이도: ???
클리어 조건: 안나 크로프트의 트라우마를 해결하고 그녀를 깨우십시오
제한 시간: 없음
보상: 안나 크로프트 복귀
실패시: 없음
+
“감사합니다, 강철의 주인. ‘오즈’의 힘을 빌려주신 덕분에 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그런데 이렇께까지 한 이유가 있습니까?”
“마지막 선물입니다. 이 세계를 지켜준...”
“잘 끝냈나?”
“모르지. 이제 안나 크로프트의 몫이야.”
“수고했다. 좀 쉬어라.”
“그럼 니가 좀 보고 있어. 깨나면 부르고.”
유중혁에게 안나의 간병을 맡기고 나는 옆방에 가 누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김독자!”
“왜? 일어났어?”
“그렇다.”
유중혁의 부름에 서둘러 안나의 병실로 달려갔다.
“구원의 마왕.”
“...”
안나 크로프트는 병실 침대에 기대 앉아있었다.
“잠깐 나가 있어줘.”
“그러지.”
“당신이었군요.”
“...”
“고마워요. 덕분에 남한테 의지하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게 됐어요.”
“...”
“나도 집단회귀에 함께 하고 싶었어요. 당신과 조금 더 같이...”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안나 크로프트가 그 누구보다 이 세계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강하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그녀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사랑해요. 구원의 마왕.”
“저도 사랑합니다. 안나 크로프트.”
“졸리네요. 한 숨 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