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틀면서 감상 권장!
*
달맞이꽃
김독자가 돌아온 지 어느새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김독자가 돌아오자마자 우리는 큰 집에서 살기로 계획했고, 바로 건물을 구매했다. 한 달 동안은 김독자가 휴식을 취해야 했기에 놀지는 못했지만 그 뒤로는 김독자와 시간을 계속 보냈다.
“수영아, 독자 씨 좀 깨워줄래?”
식탁에 음식을 나르는 유상아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김독자 아직도 자?”
“응, 어제 세계 정부 일 때문에 늦게 오셨거든. 아마 새벽 늦게 잠들었을 거야.”
김독자는 돌아온 뒤 무너진 세계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김독자 컴퍼니〉 대표로써 질서를 바로잡았다.
“네가 있는데 꼭 자기가 하려고 한다니까.”
“어쩌겠어. 그게 독자 씨인데.”
“하긴.”
나는 피식 웃고 김독자 방으로 올라갔다,
김독자 방문을 똑똑 두들기고 말했다.
“야, 김독자~ 아직도 자냐? 나 들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웬만한 도서관의 한 책장보다 더 많은 책이 꽂혀 있었다. 김독자의 방은 지극히 평범했다. 검은색 베이스의 모던 향이 나는 방이었다. 그리고 되게 깔끔했다.
“……엄청 깔끔하네.”
나는 김독자의 방을 조금 둘러봤다. 김독자는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있었다.
“침대에서 자지……. 허리 아프게.”
김독자의 방은 깔끔하고 되게 평범했지만, 방 곳곳에 이상한 게 하나씩 있었다. 자세히 보니 김독자가 맨날 끼고 다니는 키링도 있었고, 꽃 그림이나, 작은 모형 꽃도 있었다. 꽃의 종류는 달맞이꽃이었다.
‘꽃? 김독자가 이런 취미가 있었나?’
나는 방을 둘러보고 김독자 옆에 앉아서 그와 똑같은 포즈로 마주 봤다.
나는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가느다란 흑발의 머리카락, 새하얀 피부, 오똑한 코, 긴 속눈썹, 차분한 인상의 산뜻한 느낌과 예민한 느낌이 공존하는 미남이다. 그의 얼굴은 유중혁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잘생겼다.
‘이렇게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인데, 진짜 잘생겼네.’
얼마나 그를 쳐다봤을까, 김독자가 잠에서 부스스 깨고 있었다.
검은색 커튼 사이로 창문에서 노을이 지는 주황빛의 햇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눈을 뜬 그가 자기 앞에 내가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다정한 표정으로 환한 미소를 짓더니 나에게 말했다.
“좋은 아침 수영아.”
김독자의 얼굴에 집중했더니 그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나는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얼굴과 함께 버벅거리며 말했다.
“조, 좋은 아침은 무슨! 벌써 해지고 있거든!”
김독자가 바깥을 잠시 보더니 다시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네. 근데 나 깨우러 온 거야?”
김독자가 내 옆머리를 따듯하게 넘겨주며 말했다.
당황한 나는 부끄러워하는 내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황급히 주제를 돌렸다.
“그, 근데! 너 방 곳곳에 꽃 같은 거 있던데, 저게 뭐야?”
“……누가 남자 방 함부로 둘러보래?”
“아, 아니 그, 그니까!”
“푸흡, 장난이야.”
“아이씨, 야!”
김독자가 서랍에서 키링을 하나 꺼내더니 내 손에 쥐여줬다.
김독자가 매일 끼고 다니는 키링과 같은 것이었다.
“웬 키링? 너 꽃 좋아해?”
김독자가 키링을 한참 바라보더니 아련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달맞이꽃이 좋아서.”
“너 이런 감성도 있었냐?”
“왜, 별로야?”
“아니 그냥. 좀 의외라서?”
김독자가 피식 웃더니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에게만 주는 키링이니까 잘 갖고 다녀.”
“진짜? 그렇게 말하니까 뭐, 잘 갖고 다닐게.”
나는 키링을 꼬옥 쥐고 김독자의 방을 나섰다.
“얼른 씻고 나와. 오늘 회식하는 날이잖아.”
오늘은 〈김독자 컴퍼니〉 멤버들이 큰 집에서 다같이 술판을 벌이는 날이었다.
김독자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김독자의 방문을 닫고 나왔다. 내 심장이 크게 뛰고 있었다.
‘하씨, 진짜 미치겠네.’
나는 김독자를 좋아한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를 좋아하는 것을 깨달았고, 이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김독자를 많이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에게 고백할 용기가 나지는 않았다. 내 인생에는 로맨스란 1도 없었고, 혼자 사는게 편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를 좋아하지만, 그가 나를 좋아할지는 미지수였다.
‘뭐, 계속 노력하다 보면 돌아봐 주겠지?’
나는 발걸음을 돌리고 거실로 향했다.
*
“독자 씨! 얼른 와요!”
“형! 제 옆으로 와요!”
“아니야! 아저씨! 제 옆에 앉아요!”
“아저씨 웬일로 늦잠 잤네? 항상 칼같이 일어나는 아저씨가.”
“피곤했으니까. 넌 과제 다 끝냈어?”
“말도 마. 짜증나 죽겠으니까.”
“혹여나 말하지만 도와달라는 말 하지 마라. 한수영이 눈에 불을 켜고 있으니까”
“아악! 과제하기 싫어!!!!”
“인간처럼만 내면 성적은 좋게 준다니까?”
“몰라!”
“중혁 씨, 요리는 다 됐어요?”
“거의 다 됐다.”
유중혁은 이설화와 같이 부엌에서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유중혁은 시나리오가 끝나고 이설화에게 고백해서 다시 연인이 되었다.
“자 먹어라.”
유중혁이 요리를 내왔고, 우리는 신나게 술판을 벌였다.
술에 취한 이지혜가 김독자에게 말했다.
“근데 아저씨이~ 아저씨가 항상 들고 다니는 키링. 그거 모야아~?”
이지혜의 말에 일행들 모두 김독자에게 시선이 꽃혔다. 심지어 유중혁도.
“……다들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궁금해서요. 독자 씨는 저희를 잘 알지만, 저희는 독자 씨를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아서요.”
유상아의 말에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냥 들고 다니는 키링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꽃이고요.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에이~ 그게 모야아~! 아저씨 원래 그런 거 잘 안 들고 다니잖아~”
“……독자 씨, 저희에게 말해주기 싫은 거예요? 저를 잊더니 이제는 말도 잘 안 해주시네요…….”
이설화가 시무룩하며 말하자 유중혁이 초월좌 기세를 내뿜으며 슬며시 칼을 쥐었다..
“알았어! 알았어! 말해주면 되잖아!”
그제서야 유중혁이 칼을 내려놨다. 그리고 일행들 모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도대체 뭐가 그리 궁금한 것인지…….
“진짜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예전에 저에게 소중한 사람이 알려준 꽃입니다. 시나리오가 끝나고 기억나서 들고 다니게 된 겁니다.”
식상한 대답에 일행들 모두 실망한 눈빛이었다.
“에이 재미없어.”
넌 좀 자라 지혜야.
“근데, 그 소중한 사람이 도대체 누구에요?”
“맞아요. 아저씨 친구 없잖아요.”
유승이의 말에 나는 한쪽 가슴이 아려왔다.
유승이가 당황하며 말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 제, 제 말은 그게 아니라…….”
나는 유승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그냥 저에게 희망을 심어줬던 소중한 사람입니다. 저도 자세하게는 기억이 잘 안 나요.”
“흐음, 그렇군요. 뭐, 독자 씨가 그렇다면 그런 거죠. 자, 짠!”
“짠~!!!”
그렇게 싱겁게 넘어가고 우리는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일행들 모두 술에 취해서 널부러져 있었다. 유상아는 잠시 화장실에 갔고 나는 잠시 바람을 쐬러 옥상으로 올라왔다.
“하아~”
입김을 부니 새하얀 김이 나왔다. 어느새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난간에 걸친 채, 밤하늘을 바라봤다. 환한 빛을 내는 수백 개의 별들이 밤하늘을 빛내고 있었다. 그리고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김독자?”
유중혁이었다.
“뭐야, 네가 웬일로 옥상에 왔냐.”
“바람 좀 쐬러 왔다. 네놈도 인가?”
“그래.”
나와 유중혁은 의자에 앉아서 서울 밤거리를 구경했다.
이제는 완전히 복원된 서울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름답지?”
“……나쁘지 않군.”
“네가 구한 거야.”
“무슨 소리냐. 네놈이 구한 거다.”
유중혁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나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같이 구한 걸로 하자.”
유중혁은 말없이 밤하늘을 바라봤다.
나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밤하늘 멀리서 환하게 빛나는 별을 보고서 입을 열었다.
“유중혁.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냐?”
“뭐지?”
“넌 ‘전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지금 회귀자인 나에게 지금 전생을 물어보는 건가?”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네. 내가 괜한 걸 물어봤네.”
“니르바나가 무슨 이상한 말을 한 것인가?”
“아니야. 그리고 걔는 환생자잖아. 전생이랑 엄연히 다르다고.”
“그렇군. 그럼 갑자기 전생에 관해서 얘기하는 이유가 무엇이지?”
나는 짧게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그냥……. 내 전생은 어땠을까 하고…….”
유중혁은 말없이 나를 쳐다봤다.
“재밌을 것 같지 않냐? 너도 전생엔 뭐였을지 안 궁금해?”
“궁금하지 않다. 지금 나는 그냥 나다. 전생은 필요 없다.”
“그래, 그게 너지.”
유중혁의 태도에 나는 피식 웃음이 자꾸 나왔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유중혁이 작게 말했다.
“……그래도 궁금하기는 하군.”
“그치?”
나는 밤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
“나리!!!”
한 청년이 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어째서 여기에 계신 겁니까! 얼른 돌아가셔야 합니다!”
“바람 좀 쐬자꾸나. 가끔은 이런 휴식도 괜찮지 않느냐?”
“하지만 나으리…….”
“오늘은 영감들 상대로 내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구나. 이해해다오.”
“하아…… 알겠습니다 나으리.”
그렇게 청년이 돌아갔고,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에 나는 그곳을 쳐다봤다.
“거기 누구냐?”
천천히 걸어오는 사람의 형상이 이내 보이기 시작했다.
한쪽으로 묶은 머리카락이 등까지 내려오는 흑발에 새하얀 피부, 눈꼬리가 올라가 있고, 왼쪽 눈 바로 아래에 눈물점이 있는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여길 어떻게…….”
“여기서 뭐하십니까?”
환하게 웃는 소녀가 나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이곳엔 어떻게 온 것이냐?”
나는 소녀를 경계하며 말했다.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이쪽으로 오게 됐습니다. 여기 풍경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소녀는 주변을 돌아보며 나에게 다가왔다.
“허…… 위험하니 다음부턴 오지 말거라.”
“영이야!!!”
누군가가 소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녀는 급히 내 손에 무언가를 쥐여주더니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급히 가보아야 하여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이건 예뻐서 드리는 겁니다!”
그렇게 소녀는 바람같이 사라졌다.
내 손을 보니 달맞이꽃이 쥐어져 있었다.
“무슨 저런 애가…….”
나는 환하게 웃는 소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내가 무섭지 않나 보군.”
하루가 지난 뒤, 나는 다시 그곳을 찾았다.
생각날 때마다 찾아오는 나만 아는 그런 곳이었다.
‘이제는 이곳을 아는 사람이 한 명 더 있군.’
나는 어제 찾아온 소녀를 떠올렸다. 눈물점이 매력적이고 환하게 웃는 얼굴이 매우 아름다운 소녀.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오늘도 오려나…….’
“나으리!!!”
생각하기가 무섭게 나를 부르는 소리와 함께 그 소녀가 나타났다.
나는 소녀에게 빙긋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내가 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소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내색하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싫습니다. 이곳에 오면 나리가 있지 않습니까.”
나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장난이다. 언제든 놀러 오려무나.”
“정말입니까?”
나는 소녀에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는 환하게 웃으며 내 머리에 꽃을 꽂아줬다.
“이게 무엇이냐?”
“꽃입니다! 나리와 잘 어울릴 것 같아 꺾어 왔습니다!”
“꽃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네, 좋아합니다! 나리는 집이 어디십니까?”
“멀리서 산단다.”
“전 여기 바로 아래에 작은 마을에서 삽니다!”
“그렇구나.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한 영이라 합니다. 편하게 영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알겠다 영이야.”
소녀의 볼이 살짝 달아올라 있었다.
소녀는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어딘가로 달려갔다.
나는 소녀의 뒤를 쫓았다. 소녀는 쭈구려 앉은 채, 꽃을 구경하고 있었다.
“달맞이꽃이로구나. 그 꽃을 매우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소녀가 조심스레 꽃을 파내었다. 그리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네, 정말 좋아합니다.”
소녀가 달맞이꽃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좋아하는 꽃이라더니, 이 꽃을 나에게 주어도 되는 것이냐?”
“달맞이꽃은 소원의 의미도 있지만 달이 떠야만 피어난다 하옵니다.”
소녀는 또 다른 달맞이꽃을 머리에 꽃으며 말했다.
“저는 달맞이꽃처럼 되고 싶습니다.”
“그럼 나는 달인 것이냐?”
“그렇습니다. 저는 나리가 없으면 활짝 피어나지 못합니다.”
소녀가 달맞이꽃으로 반지를 만들더니 내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제가 좋아하는 나리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소녀의 양 볼이 은은하게 홍조를 띠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에 껴진 반지를 보며 살짝 웃었다.
“좋구나. 아주 맘에 드는 선물이야.”
나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와 소녀는 우리만 아는 장소에서 행복하게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밤이 찾아왔고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환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나리, 좋아합니다.”
나는 깜짝 놀라며 소녀를 쳐다봤다.
“……지금 나에게 한 것이냐?”
“그럼 여기 나리 말고 누가 있습니까?”
소녀가 완고하게 나를 바라보며 못을 박았다.
나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나리는 절 좋아하지 않으신 겁니까?”
소녀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소녀를 달래며 다정하게 말했다.
“아, 아니다! 나도…… 조, 좋아한다.”
“정말입니까?”
소녀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합니다 나으리.”
소녀가 나를 꽉 끌어안으며 귀에 속삭였다.
나도 소녀의 귀에 똑같이 속삭였다.
“나도 사랑한다 영이야.”
그리고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에 포개졌다.
환하게 빛나는 달빛 아래에서 두 남녀가 사랑을 속삭였다.
*
‘어제도 안 오더니 오늘도 안 오는구나…….’
나는 어제부터 소녀를 계속 기다렸지만 소녀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디 아픈 것인가?’
그렇게 계속 하염없이 소녀를 생각하던 도중 나를 보살피는 청년이 나에게 달려왔다.
“나으리!!”
“조용히 하거라. 꽃들이 놀라지 않느냐.”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청년이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나는 무언가가 심각함을 깨달았다.
“무슨 일이냐?”
“항상 이곳에 찾아오는 소녀의 마을이 습격을 당했습니다!”
“뭐?”
“어젯밤에 오랑캐들로부터 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나는 손이 벌벌 떨렸다.
“영이는…… 영이와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됐느냐?”
청년이 고개를 젓더니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나으리. 소녀는 찾지 못했지만, 마을 사람들 대부분 죽어있었습니다.”
가슴이 쿵 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이내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나는 소녀가 준 달맞이꽃을 품에 꼬옥 쥐고 일어났다.
“내 무기와 말을 가져오거라. 그리고 병사들도 대기시켜 놓거라. 직접 오랑캐 놈들을 잡으러 갈 것이니.”
“하지만 나으리…….”
“내 말에 토달지 말고 얼른 가져오거라!”
“예, 옛! 알겠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말아라. 아직 살아있을 수도 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라 독자야.’
그렇게 나는 말을 타고 오랑캐들 본거지로 향했다.
*
“무, 무신(武神) 김독자다! 도망쳐라!”
오랑캐들이 꽁무니 내빼듯 도망치고 있었다.
“잡아라! 한 놈도 빠짐없이 잡아들여라!”
“나리! 이 근방에 있는 오랑캐 놈들은 모두 잡았습니다!”
“소녀는? 영이는 찾았느냐?”
“죄송합니다. 소녀는 아무래도 본 세력에게 붙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본거지는 내가 직접 가겠다. 너희들은 주변에 있는 모든 오랑캐들을 잡아들여라.”
“하지만 나으리! 혼자서는 매우 위험합니다!”
“그 아이가 내게 더 소중하다. 무영아, 네게 맡기겠다.”
“……알겠습니다 나으리. 부디 몸 조심하시옵소서”
나는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본거지로 달려갔다.
“무, 무신 김독자다!”
“놈을 한 명이다! 놈을 죽여라!”
나에게 달려드는 수많은 오랑캐들을 베어나갔다.
그리고 멀리서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오랑캐들의 목을 처참히 베며 소녀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소녀는 의식을 잃은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
“미안하구나. 너무 늦었구나.”
나는 소녀를 품속으로 끌어안았다. 소녀의 몸이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나, 나으리……?”
“그래. 나다. 알아보겠느냐?”
“오셨군요…… 보고……싶었습니다.”
“나도, 나도 보고 싶었다…….”
나는 소녀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소녀의 대답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소녀의 등에는 하나의 화살이 박혀 있었다.
“정신 차려라 영이야! 지금 자면 안 된다!”
“나으리…… 몹시 졸립니다……. 잠깐 눈 좀 붙이겠습니다.”
“안 된다! 눈 감지 마라 영이야.”
“나리…… 정말, 정말 좋아합니다.”
“나도…… 나도 좋아한다 영이야.”
소녀가 내 손가락에 끼여진 달맞이꽃 반지를 만지더니 작게 말했다.
“나리…… 달맞이꽃에는 소원의 의미가 있다고 했죠…….”
“그랬지…….”
“나리 소원은 무엇입니까……?”
내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이 소녀의 볼에 또르르 떨어졌다.
그리고 내 눈이 달빛처럼 새파란 빛이 나기 시작했다.
“소원…… 내 소원은 다음 생에도 너를 만나 너의 달이 되어주는 것.”
“……그렇군요. 나으리 눈에서 나오는 빛이 달빛처럼 아름답습니다.”
소녀는 환하게 웃으며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다음 생에 만나요 나리. 나리는 제 하나뿐인 달입니다. 사랑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소녀의 팔이 추욱 떨어졌다.
“영이야…… 영이야…… 눈을 떠보거라…….”
소녀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무신 김독자. 무신이라는 이름을 걸고 네놈들을 모두 처단하겠다.”
내 눈에서 빛나는 새파란 빛이 오랑캐들을 응시했다.
“저 눈빛은…… 저 작자가 무신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 달빛의 검신이다…….”
겁을 먹은 오랑캐들이 주춤주춤 뒤로 도망치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라.”
내 서늘한 목소리에 오랑캐들의 움직임이 얼음처럼 굳었다.
“내가 갈 것이다.”
내 신형이 쏘아져 나가며 오랑캐들의 목을 모조리 베었다.
오랑캐들을 모두 죽였지만 내 몸에도 화살이 박혀 있었다. 나는 입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나는 자리에 쓰러지고 하늘을 바라봤다.
“쿨럭……!”
내 몸에서 달맞이꽃을 꺼내들고 소녀의 가슴에 얹어주었다.
“너의 곁으로 가겠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다시 너를 만나러 가겠다.”
‘기필코 다음 생에도 너를 만나 너를 위한 달이 되겠다.’
그렇게 나는 소녀의 웃는 얼굴을 생각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들려왔다.
[당신은 ‘최초의 별’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설화가 해제됩니다.]
[설화, ‘달맞이꽃’이 당신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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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해서 잠든 한수영이 욱신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일어났다.
“이게 무슨 개꿈이야…….”
*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내가 유중혁에게 말을 걸었다.
“유중혁. 너는 내 별이 원래 있던 것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고 했지?”
“그랬지. 네놈이 ‘가장 오래된 꿈’이었으니 이 셰계를 꿈꿔온 것 아니냐.”
“아니, 그 의미가 아닌 것 같아서.”
“그게 무슨 소리냐.”
잠시 하늘을 바라보고서는 입을 열었다.
“내 별이 ‘최초의 별’이었기에 그렇게 느낀 걸 거야.”
“무슨 소리냐. 태초의 세계선에서 한수영이 그 소설을…….”
“아니 답답한 놈아. 빌어먹을 시나리오가 시작되기 전의 태초의 세계선 말고.”
“설마……?”
유중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래. 내 전생은 빌어먹을 세계가 시작되기 아주 오래전에 생겼던 별이야.”
“…….”
내 말에 응답하기라도 하는 듯 하늘에서 수많은 별 사이에서 유독 환하게 빛나는 별이 보였다.
[‘최초의 별’이 자신의 별자리를 환하게 빛냅니다!]
[당신은 ‘최초의 별’입니다.]
[당신의 모든 기억을 되찾습니다.]
[설화, ‘달맞이꽃’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내 설화를 본 유중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랬군……. 그래서 네놈이 항상 그 꽃을 가지고 다니는 거였군.”
“맞아.”
“그럼…… 그 소녀가…….”
“맞아. 한수영이야.”
“……재밌군.”
“그치? 나도 놀랐어. 내가 이 세계에서 최초로 태어난 별이라니.”
“그래서 다시 만난 소감이 어떻지?”
유중혁의 말에 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반갑지. 신이 있다면 그때 내 간절한 소원을 들어준 게 아닌가 싶어.”
“네놈은 그런 것도 믿었었나?”
“기적을 믿는 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나와 유중혁은 피식 웃었다.
“기적이 있기에, 네놈이 살아있는 것이고, 우리가 살아있는 것이다.”
“……그러게. 나도 기적을 믿고 있었나 봐.”
그러자 내 눈에서 새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전생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그 눈동자였다.
“그 눈이…… 네놈의 전생에서 빛났던 그…….”
“응. 달빛처럼 빛나는 새파란 눈. 신기하지?”
새파랗게 빛나는 내 눈동자와 함께 하늘의 내 별도 환한 빛을 띠었다.
“……아름답군.”
유중혁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나는 조금 놀랐지만, 이내 납득하며 웃었다.
“맞아.”
“그녀에게 말할 것인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글쎄다. 말한다 한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기적을 믿어라.”
“푸흡, 그래. 한번 믿어볼게.”
“조금 춥군. 난 이만 들어가 보겠다. 네놈도 얼른 들어가라.”
“그래.”
나는 한숨을 내쉬고 난간에 걸터앉았다. 차가운 밤공기가 나를 감싸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옥상 문이 열리더니 한 여자가 나타났다.
전생의 모습과 머리카락 길이만 다른 똑같은 그 소녀였다.
나는 그녀에게 살짝 웃으며 말했다.
“잘 잤어 수영아?”
“응…… 내가 이상한 꿈을 하나 꿨는데…….”
그녀가 눈을 비비며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내 눈을 본 그녀가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김독자…… 너 눈이…….”
나는 황급히 눈을 가렸다. 어느새 한수영은 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녀와 내가 마주 서자, 나와 그녀의 달맞이꽃 키링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최초의 별’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설화, ‘달맞이꽃’이 환한 빛을 냅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였다. 아무래도 말은 내색했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아주 오랫동안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한수영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어, 어떻게…… 내가 꾼 꿈이…… 개꿈이 아니었던 거야……?”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서 살짝 웃으며 말했다.
“무슨 꿈을 꿨는데?”
한수영이 말없이 나를 올려다봤다. 붉게 물든 눈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입이 작게 움직였다.
“나으리…….”
그녀의 말에 내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졌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한수영이 계속해서 내 얼굴을 어루만지더니 이내 싱긋 웃었다.
“……맞네 나으리. 그때랑 똑같은 아름다운 눈동자야.”
그녀의 눈동자에서 내 모습이 비췄다.
새파랗게 빛나는 눈동자에서 한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가 내 눈물을 닦아주더니 그때 그 모습처럼 환하게 웃었다.
“보고 싶었어요 나리. 조금 늦었네요?”
나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꼬옥 끌어안았다.
“보고…… 보고 싶었어 영이야…….”
“다시 만났잖아요. 나의 달이 되어 저를 활짝 피게 해주셨습니다.”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나리의 소원. 이루어졌네요.”
나는 그녀를 끌어안으며 귀에다 작게 속삭였다.
“사랑해 수영아.”
“나도 김독자.”
그리고 다시 그녀와 입을 맞췄다.
[‘최초의 별’이 자신의 작은 별을 빛냅니다.]
내가 왜 ‘최초의 별’이 됐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신의 변덕일지도, 기적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나는 그녀의 달이 되었고, 그녀는 나의 꽃이 되었다.
그리고 우린 다시 만났다. 오래전에 만났던 달맞이꽃과 함께.
새파랗게 빛나는 달빛 아래에 두 남녀가 환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