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렸을 땐, 울다 잠든 서아의 모습만이 내 눈에 담겼다. 그 순간만큼은 <김독자 컴퍼니>의 누구도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저 멍하니 서아를 바라보았다. 하나뿐인 우리 딸. 순간, 무거운 돌덩이가 심장을 짓뭉개듯 가슴이 아파왔다. 무언가 샘을 자극한 것처럼, 마를 것만 같았던 눈물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독자야..."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표정은 복잡해보였다. 질끈 깨문 입술, 충혈된 눈. 억지로 울음을 참고계신 듯했다. 나는 감히 한마디도 입을 열 수 없었다. 오늘의 내 모습은 아마, 당신의 가슴 속 대못이리라. 머릿속에는 오직 한 문장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모두들..."
우지끈- 하고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희원 씨가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현성 씨가 필사적으로 그녀를 말리고 있었다.
"아니, 이거 잠깐만 놔 봐요 현성 씨. 죄송할 짓을 왜 해? 독자 씨 때문에 내가 화병으로 죽겠어요!! 무슨 사람이 그렇게 책임감이 없어요?"
그녀의 분노가 가슴을 찔러왔다.
"독자 씨는 그렇게 하면 좋아요? 네? 대답을 해 봐요! 연락도 안 받고, 이렇게 숨어서 누워있으면... 그렇게 상처를 주면 좋냐고!!"
희원 씨가 씩씩 대며 이내 분노가 치밀었는지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현성 씨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한 번 힐끗 바라보더니 희원 씨를 따라 나갔다.
"김독자."
"유중혁..."
"네놈은, 내게 삶을 살라 했다. 이 번 회차를 포기하지 말라 말했다."
"..."
"근데 네놈은 대체 뭐지?"
유중혁의 분노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난, 여전히 네놈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믿지 않는 것도 아니다. 네놈만큼 신뢰하고 있는 자도 드물지. 그러나, 네놈은 이미 한 번 우리들을 기만했다. 알량한 네 자존심으로, 우리들이 지난한 시간을 견디게 만들었다."
"네놈은, 그렇게 누워있을 자격이 없다. 동료들이 힘들었던 만큼 네놈도 그 값을 치뤄야겠지. 죽을 때까지 편히 쉴 생각하지 마라. 이 번이 네놈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다."
쿵-
유중혁은 할 말을 마친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사실관계의 여하를 떠나, 이들 눈에는 내가 삶을 포기한 것처럼 비추어질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신차리라는 수영이의 말을 듣지 못했다면, 서아를 두 눈에 담지 못했다면, 난 아마 영원히 꿈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할 말이 없었다. 잠시나마 현실을 외면한 것은 사실이었다.
"아저씨, 난 오글거리는 말은 못하지만, 동료들이 힘든 건 사양이야. 아저씨가 골골대는 것도 사양이고. 빨리 기운차리라고."
이지혜도 할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 나를 걱정스레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아저씨."
"아저씨는 지금도 제 배후성인 구원의 마왕인가요?"
나는 잠시 유승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맑고 큰 눈에선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물이 고여있었다.
"유승이 넌 내 하나 뿐인 화신이야."
유승이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떨어졌다.
"아저씨의 감정이, 저한테 느껴질 때도 있어요. 아저씨가 얼마나 힘들지 모르는 것도 아니에요. 그래도 아저씨는 혼자가 아니잖아요. 아저씨는 홀로 외롭게 빛나는 별이 아니에요. 주변에 우리가 있잖아요. 힘들면 저희한테 기댔으면 좋겠어요. 혼자 이겨내려 하지말고."
유승이의 진심어린 걱정이 나의 마음을 적셨다. 유승이의 말이 맞았다. 난 이들이 있어 돌아올 수 있었다. 소중한 서아 역시 이들 덕분에 만나게 되었다. 난 그런 동료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준 셈이었다.
"가볼게요 아저씨."
"푹 쉬세요. 독자 형."
눈물을 흘리며 나가는 유승이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나가는 길영이가 보였다.
"독자 씨."
"설화 씨..."
"몸조리 잘 하시라고 누누이 말했잖아요."
"죄송합니다."
"독자 씨. 약 받아가시고, 2일이나 연락이 안 됐어요. 알고계시나요?"
2일이라는 시간 동안 잠만 내리 잔 것일까.
"2일... 입니까?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는지 몰랐습니다."
"네, 2일이요. 연락도 안 되고 집에도 안 계셔서, 다들 걱정 많이 했어요. 서아가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도착해서도 왜 안 일어나냐고 서럽게 울길래 중혁 씨가 재워놓은 거구요."
"...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나는 잠든 서아를 품에 안아들고, 머리를 쓸어넘겨주었다.
"우웅.."
서아는 내 손길을 느꼈는지, 내 품에 더 깊게 파고들어 잠을 청했다.
"독자 씨는."
"본인을 돌볼 줄 모르는 사람 같아요. 짐이 무거워도 홀로 모든 걸 감당하려고 하시는 것 같아요. 독자 씨는 그런 방식으로 일행들을 지켜냈다고 생각하시지만 틀렸어요. 그런 생각들은 언젠가, 독자 씨 자신에게, 그리고 독자 씨의 일행들에게 큰 상처가 될 거에요. 예전처럼요.
누구도 잃고 싶지 않은 독자 씨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에요. 저 역시도 같은 걸요. 더이상 홀로 외로울 필요 없잖아요. 동료들을, 당신을 되찾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사람들을 믿고 기댔으면 좋겠어요.
제가 말이 너무 길었네요. 저는 이만 병원으로 돌아가봐야겠어요. 언제든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설화 씨는 빙긋 웃어보이곤 자리를 떠났다. 내 방엔 어느새 나와 가족들만이 남았다. 우리 사이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누구도 먼저 입을 떼지 않았다.
툭- 투둑-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유의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들이 하염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약속."
"지키기로 했으면서..."
"이렇게 외면해버릴 약속이었으면 대체 왜 그런 약속한 건데?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기는 알아? 여기로 달려오는 한걸음 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알아? 내가 느꼈을 죄책감이 얼마나 컸을지 아냐고!"
"..."
쏟아내듯 소리지르는 비유의 말을 묵묵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아빠가 얼마나 힘든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아빠를 믿는 사람들, 아니 하다못해 나한테라도 털어놓을 수 있던 거잖아..."
비유가 내 어깨에 고개를 박고 기대어 흐느꼈다.
"당신을 믿는 사람들을 조금은 믿어보란 말야."
비유의 말이 나를 아프게 찔러왔다. 서아, 비유, 어머니, 유중혁, 설화 씨, 희원 씨, 현성 씨, 길영이, 유승이, 지혜... 내가 걱정되어 한걸음에 달려와준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기대지 못했고, 또 그들에게 걱정을 끼쳤다.
내 행동들이 옳지 않았다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슬픔을 공유하기 싫었던 것 또한 아니었다. 그저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라 여겼고, 동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라 생각했다. 내 최선은 동료들에게 최악이 되었다. 생각이 복잡해졌다. 마음이 씁쓸해졌다. 머리가 아팠다.
"독자야."
"...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단다. 그렇기에, 네가 홀로 살아가는 독자가 아닌, 책을 읽는 독자(讀者)가 되길 바랐고. 모든 것을 홀로 감내할 필요는 없다. 네게는 너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기대고 싶지 않다면 기대지 않아도 상관 없어. 네 동료들은 네가 기대든 기대지 않든 널 도와줄 사람이니까."
어머니는 나와 내게 기대어 있는 두 아이를 보며 싱긋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렇게 있으니 참 보기 좋구나. 나도 이만 가 볼테니 몸조리 잘 하렴."
어머니의 뒷모습이 천천히 멀어졌다. 그리 넓지 않은 당신의 등이, 한 없이 넓어보이는 이유는 왜일까. 비유와 서아를 품에 그러안고 누워 어머니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네 동료들은 네가 기대든 기대지 않든 널 도와줄 사람이니까.'
막연한 말이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이길래 나를 위해 그렇게까지 해주는 것일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내 생각과 행동들이, 동료들에게, 가족에게 상처가 되었다는 것이다. 네가 봤다면, 날 다그치고 혼냈겠지. 품에서 곤히 잠든 비유와 서아를 보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정답은 없다. 나의 최선이 남들에게 역시 최선인 것 또한 아니다. 상처받은 일행들과 비유, 서아, 어머니, 그리고 너에게 속죄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아직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단지, 나는 독자(獨子)이자 동시에, 독자(讀者)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대화를 통해 그들 마음 속의 활자들을 꺼내 읽어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하나 둘 씩 읽다보면 최선에 가까운 정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렇게 속죄하는 삶을 살다보면, 언젠가 네가 웃으며 돌아와, 잘했노라고 말해줄 것 같았다. 그저 그뿐이다.
비유와 서아가 일어나 눈을 뜨면 서아에게 너를 보여주어야겠다 다짐하며, 잠시 눈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