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살다보면 가끔씩 예상치 못한 일들도 생기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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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아이보리색의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유중혁은 유상아의 말을 들었다. 분명하게도 들린 것은 제 이름이었지만, 검은 강아지의 이름이었다. 둥근 장식에서 유중혁 이라는 세 글자가 빛에 반짝였다. 강아지에 제 이름을 붙였다고 했던가, 강아지의 주인은 제가 프로게이머일 적의 팬이었다고 했었다. 기다란 갈색 머리카락이 관중석에서 봤던 것 같기도 했다.
순한 인상이 어째선지 곁의 강아지를 닮은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며 유중혁은 유상아를 바라보았다.
"...었는 데, 이렇게 밖에서 마주칠 줄은 몰랐네요."
유중혁은 가만히 유상아의 말을 들었다. 자신의 팬을 마주하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더이상의 활동도 하지 않는 프로게이머를 여전히 좋아해주는 팬이 있을 줄은 몰랐다.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은 그 이유일지도 모른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은 매한가지지만, 팬이라는 것은 조금의 흥미를 더해줄 수 있는 연결고리였다. 팬의 존재와 그들의 선물은 피로를 덜어주곤 했었다.
"...공원에 자주 나오시나봐요?"
"강아지를 산책시키려 나올때만, 그때만 온다."
산책이라는 말을 들었는 지, 쓰다듬던 강아지가 두 발을 굴렀다. 당장이라도 달려나가려하는 기세를 못 본체 하며, 대신 간식을 물려 주었다. 그럼에도 발을 몇 번 구르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 지 금방 조용해진다.
"그러면 같이 산책하실래요?"
"무슨 말이지?"
"그냥, 산책 나오실 때 같이 다니자고요. 뭐, 견주끼리 개 키우는 팁도 공유하고요....안 될까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팬이었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다. 순전히 호감이 그 이유일지도 모르지만, 낯설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같이 산책하자며 말을 꺼내는 사람은 있어도, 약속을 잡으려 하지는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아닌가? 내가 뭘 믿고 그래야 하는거지?"
"별건 없어요. 집도 가까우신 것 같은 데, 그냥 이웃끼리 같이 다닌다고 생각해주세요. 근처에는 개를 키우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요. 명함도 드릴 수 있어요."
빳빳한 종이의 감촉이 손에 닿았다. 명함을 건네준 여자는 받을 때 까지 기다리다, 주변을 떠나갔다.
팬으로써의 호감일지도 모른다. 단지 한 번 쯤 더 만나고 싶다는 것 때문에 연락처를 준 것일지도 모른다. 명함은 수상하게 본 탓에 준 것이겠지. 그러나 호감이 기인한 것은 프로게이머 유중혁의 모습이지, 유중혁의 모습이 아니다. 보여줄 것만 보던 사람이다.
"내용이 뭐가 되었든, 곧 연락 주세요."
그렇다해도 정 유중혁의 모습에 질리게 된다면 떠나가겠지. 어찌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유중혁은 집으로 걸어갔다. 이상하게도 그렇게까지 거슬린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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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미친듯이 뛰어댄다. 목줄을 쥐고 걷다 보이지 않게 될쯤에는 집으로 뛰어들어온 유상아는 주저 앉았다. 긴장이 풀려서 인지, 다리에 힘이 풀렸다. 면접을 볼 때보다도 더욱 긴장되던 순간이었다.
상상만 하며 바라기만 했던 순간이었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일이다. 붉은 동이 터오르던 어느 새해 첫날에 나지막히 빌었던, 막연히 이뤄졌으면 하던 소원이었다.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이 아닌 것 같았지만, 쥔 목줄의 감촉이, 빤히 바라보는 검은 눈이 허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왕?"
"아, 별일은 아니야. 걱정해줘서 고맙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유중혁의 목줄을 풀어주며, 유상아는 그렇게 말했다. 강아지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제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대화나 한 번 할 수 있다면 천운이지 않을까 싶던 사람에게 대화는 물론 연락하라며 명함까지 주고 왔다. 기쁘지 않을리가 없다.
설레다 못해 벅차게 뛰어대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유상아는 입고 있던 겉옷을 벗었다. 벗은 겉옷을 옷걸이에 걸고 강아지를 한 번 안아준다. 마치, 아무일도 없는 평범한 날의 행동을 연기하듯이. 떨리다 못해 급하게 뛰어대는 심장을 숨기고.
그렇게 행동하다가도, 얼굴을 감싸며 주저 앉는다. 설마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팬이라고 소개하고서 갑자기 산책을 같이 하자고 하는 사람은 고운 시선을 받을 수가 없다. 화끔하게 달아오른 얼굴은 도무지 가라앉지가 않는다. 온갖 생각이 드는 머리를 차가운 물로 세수하며 식혔지만, 그런 생각들은 여전히 든다.
실수로 이상한 말을 한 건 아닐까. 강아지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해서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강아지의 이름을 듣고서 멍하니 바라보던 시선이 아직도 기억난다. 황급히 설명을 덧붙이고나서야 거두던 그 시선이. 유중혁으로 시작하는 생각들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붉어진 얼굴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넋놓은 멍한 상태는 계속 이어졌다. 혹시 꿈인가. 이렇게 달콤한 꿈이라면 깨지 않는 게 좋을텐데. 혹시나하며 볼을 꼬집어보자, 꼬집은 볼이 꽤 아팠다.
분명 꿈은 아니다. 볼을 대가로 얻어낸 사실에 안도하며 유상아는 사료 봉투를 뜯었다. 강아지가 검은 꼬리를 흔들며 주위를 맴돈다. 사료 그릇에 사료를 담은 유상아는 유중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쓰다듬는 검은 털뭉치를 닮은 머리카락이 스쳐 지나가다 사라진다. 생김새는 다르나 잠시나마 같은 것을 담았던 검은 눈이 아른거렸다.
"....미치겠다."
전광판에서 그를 처음봤던 날, 그 날처럼 유중혁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수정하고 더 써넣어서 하는 재업. 이번에는 제발 비추 좀 덜 받았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