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글 on
ㅡㅡㅡㅡㅡㅡ
"엉엉엉...!"
"혀엉...! 독자혀엉...!"
사방이 기쁜 울음소리에 가득 찬 이 순간.
나는 돌아왔음을 느끼고 있었다.
ㅡ 사라라락...
바람에 날리는 페이지.
병실 창문에 흩날리는 커튼에 가려졌다가 다시 드러나는 내 일행들의 환희에 찬 울상의 표정들.
나는 그 아름다운 면면들을 바라보지 못하고,
멍하니 활자들이 내게 흘러들어오는 창밖을 볼 수밖에 없었다.
차창너머로 부스러지던 내 손.
간절히 두드리던 그 소리.
결국 도망치지 못한.
나의 이야기.
[거대 설화, '운명대적자'가 한없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것을 잘게 부수어 흩트려 버렸는데도
일행들은 결국 그것을 하나하나 주워모았다고.
일행들의 설화가 말하고 있었다.
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도 맞이한 기분으로 슬프게 미소지었다.
...그렇구나.
죽음조차도 이 사람들을 못 막았으니.
어딜 가나 도망칠 수 없겠구나.
막을 치고 웅크렸던 내 비참한 유년의 단말을 일행들에게 보인것이 너무나도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도망치고 싶었었는데.
일행들이 결국 도망친 나를 잡으러,
우리가 찾은 행복한 현실을 내팽개치고.
다음 회차로 뛰어들었구나.
달리는 기차에 맨발로 뛰어들어서
나를 기어이 끌어내어버렸구나.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유중혁에게 건방지게 말하는게 아니였는데.
「그러니 제대로 ‘이 회차’를 살아.」
나는 그럴 말을 할 자격이 없었다.
결국 현실을 외면한건 나였고.
현실을 외면하게 만든것도 나였다.
그런 사실을 다 알고있음에도,
이미 날 용서해버린 사람들이 눈앞에 있었다.
ㅡ 괜찮아? 야아...! 김독자 ■ 자식아...! 너 괜찮냐구...! 흑흑...! 말좀 해줘...!
나는 차장에서 시선을 거두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꾸만 눈물이 나도...
네겐 그럴 자격 없다는거 너도 알겠지, 김독자.」
나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면서
한수영에게 미소지었다.
"...결국 너희에게 잡혀버렸내."
ㅡ ...흑흑...! 엉엉엉...! 엉엉엉엉...!
서럽게 우는 한수영.
숨박꼭질을 이기고도 너무나 슬퍼하길래
나는 가슴이 찢어질듯 아파서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나를 와락 끌어안는 한수영.
나를 와락 끌어안는 유승이.
길영이도.
비유.
상아씨.
...제일 크게 우는 이현성도 있다.
나는 방긋 미소지었다.
살면서 제일 크게 울었기에.
그걸 덮어보려고 최대한 크게 웃으려 노력한 대가였다.
입을 쩍 벌리고 짐승처럼 크게 웃었다.
침상 옆에서 하영이도 나처럼 그렇게 울고있었다.
"엉엉엉...!"
ㅡ 엉엉엉...!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말'을 잊은채로,
크게 울부짖으면서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ㅡㅡㅡ
"...바다로 가죠."
ㅡ ...
ㅡ ...
일행들은 울고 웃다가 지쳤는지,
나를 중심에 두고서 둘러앉아 조용히 침묵할 뿐이였다.
"...바다가 보고싶어요. 왠지... 답답해서 그래요."
일행들이 나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엉망으로 퉁퉁 부은눈을 한 유승이가 힘겹게 눈을 꿈벅거리더니 중얼거렸다.
"아저씨... 또 못된 계획 세우시는건 아니시죠...?"
"...아니야."
"...아니죠?"
"아니야, 유승아."
"......아니죠?"
"......그래. 절대 아니야."
내 대답에 유승이가 내 오른팔을 꼭 끌어안았다.
지쳐보이는 이길영은 그에 답하듯이 말없이 내 왼팔을 꼭 안았다.
그런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유중혁이 말했다.
"그럼 오늘은 다들 자야겠지. 내일 점심 즈음에 출발한다. 다들 지장이 없게 일찍 취침해라."
담담한 그 말.
마치 평소같은 유중혁처럼.
그 모습에 나는 놀라고,
일행들은 오히려 익숙한듯이 주섬거리며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탈진이라도 할것처럼 흐느적거리면서 병실 침상을 한곳에 모으는 일행들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나.
그런 나를 유중혁이 불렀다.
"김독자."
일행들의 사이에 홀로 우뚝 선 그가 잠시 침묵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잘 왔다."
일행들이 나를 힐끔거리고.
유중혁이 돌아서서 별실의 밖으로 나갈때.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녀석이 떠나는 소리를 들으면서
조용히 또 한번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ㅡㅡㅡㅡㅡ
ㅡ 그게 뭡니까, 희원씨?
ㅡ 저 인간 묶어둘거요.
ㅡ 흐흐흐... 너 ■된거 아니냐? 구원의 마왕?
조수석에서 밧줄을 정비하는 정희원.
운전하는 이현성.
뒷좌석에서 키득거리는 장하영.
그렇게 12인승 밴 차량에 나는 정확히 한가운데 끼여있었다.
내 왼쪽은 신유승.
오른쪽은 한수영이였다.
뒷자석에서 이길영이 한수영에게 경고하듯 조용하게 중얼거렸다.
"누나. 정확히 두 시간뒤에 바꿔. 1초라도 늦으면 정말 그때는 유혈사테인거야."
ㅡ 알았어! 그만좀 말해, 이 멍청아!
내 오른팔을 꼭 끌어안는 한수영.
나는 한숨을 깊게 푹 쉬고 물었다.
"애들도 아니고... 너 뭐하냐, 한수영?"
ㅡ 신경꺼. 니가 차에서 뛰어내릴지도 모르니까 내가 특별히 잡고있는거니까.
"...말을 해도 꼭 그런 재수없는 말을 하냐."
핀잔을 주려다 뭔가 야단맞은듯한 기분이 된 나는 이상하게 기분이 상해서 중얼거렸다.
왼팔 오른팔.
모두 저려올때쯤 내가 말했다.
"안 도망칠거니까... 이제 팔좀 놔주라, 너희."
ㅡ 도망치면 안되지. 니가 진정 사람 ■끼라면."
한수영은 차갑게 대답하며 내 팔을 더욱 꼭 끌어안았다.
나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이게 아마 전과자의 기분인것 같았다.
"현성 아찌! 저기야?"
ㅡ 아마 맞을겁니다.
뒷좌석에서 팬션을 보고 묻는 이지혜.
일행들이 모두 팬션을 보고서 감탄했다.
어제 병실에서 다같이 모여서 자고,
여행의 기대에 점심까지 참지못하고 새벽같이 출발한 우리.
해오름.
해가 떠오르는 그 광경.
멸망한 문명에 진정 야생이 된 아름다운 해변.
파도소리에 어울리는 하얗고 파란 색체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팬션이였다.
나도 잠시 넋을 잃고서
저런곳에서 방을 잡고 바닷가에서 놀면 정말 끝내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ㅡ 와... 방이 얼마나 클까? 현성씨, 설화씨가 뭐 해준말 없어요?
ㅡ 일단은 주소만 받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ㅡ 독자아저씨! 저랑 같은방 써요.
ㅡ 야! 신유승! 독자형은 무조건 나랑 같은방이야!
일행들이 행복하게 떠들기 시작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도 기대에 가득차서 미소지었다.
ㅡ 지이이잉...
이현성이 창문을 내리자 시원한 바람이 차 안을 환기시켰다.
ㅡ 날씨 한번 좋타!
한수영이 이를 씨익 드러내고 웃으며 소리쳤다.
그리고는 나를 올려다보고 말했다.
ㅡ 한 말씀 하시지? 잘난 <김독자 컴퍼니> 대표님?
나는 나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이는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창밖에 햇빛이 부스러지며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파란 바다를 보며 내가 말했다.
"이야 - ! 바다다 - !"
ㅡ ...풋! 아하하핫...!
ㅡ 아저씨 그게 뭐에요! 하하하..!
ㅡ 아하하핫! 골 때리내, 너 할말 없으면 차라리 '나는 구원의 마왕이다!' 이렇게 외쳐라도 보던가!
장하영과 일행들의 신랄한 매도를 들으며 나는 미소지었다.
시원한 바람.
탁 트이는 가슴.
힘겨운 이야기에서 벗어나는 일상.
지금 내가 꼭 필요로 하는 그것이였다.
나는 반쯤 미쳐서 소리쳤다.
"좋아! 나는 [구원의 마왕]이다!"
ㅡ 어후 미친! ■ 쪽팔려! 야! 창문 다시 올려!
한수영이 내 어깨죽지를 때리고.
ㅡ 아하하하핫...! 엉엉...! ■나 웃겨...!
ㅡ 아하하핫! 이 아저씨 정신 나갔어, 진짜!
장하영과 이지혜가 뒷자석에서 발을 구르며 즐거워한다.
"나는 '비스트 로드'다!"
"나는 이 서울을 멸망시킬 '충왕' 이시다!"
아이들은 언제나 그렇듯 나를 따라하고.
ㅡ 나는 '강철검제'다! ... 크억!
ㅡ 현성씨! 당신 나이가 몇인데...! 운전이나 똑바로 해요! ...너희 다 조용히 안해?
이현성과 정희원은 한결같은 사람들이였다.
팬션으로 가는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며.
우리는 마치 길처럼 술렁이는 마음을 여행의 즐거움에 맡기고서, 이리저리 행복하게 흔들리도록 놓아두는 중이였다.
ㅡㅡㅡㅡㅡ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