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 https://arca.live/b/reader/42655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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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었단다.”
“우와....! 너무너무 재밌어요!!”
흑요석 같은 단발에 매력적인 눈물점이 있는 어린 여자아이가 부모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하며 듣고 있었다.
“그다음은 어떻게 됐어요?”
“그렇게 자기가 마음을 열고 사랑했던 자신의 보옥의 수호자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저승을 습격했단다.”
“우와... 하지만 아무리 황룡이라도 그래도 되는 거예요?”
“물론 황룡은 이번 일에 대해서 쉽게 넘어갈 수 없었지. 청룡이 황룡에게 벌을 내려야 한다고 했고, 천신과 사신들 모두 동의했어.”
“청룡 나쁜 놈!!”
“하하, 청룡도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을 거야. 황룡은 수호자의 환생을 약속하고 자신의 보옥 안에서 깊은 잠에 빠졌단다.”
“...지금이면 깨어났을까요?”
이야기를 들려주던 어머니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후후,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황룡은 존재하지 않는 신수란다.”
“네? 왜요? 어머니가 지금...”
“내가 해준 이야기는 신화 속에 나오는 작은 허상에 불과해.”
“.....”
“각 방위를 지키는 사신들은 실제로 존재한다는 얘기가 떠돌지만, 황룡의 대한 이야기는 수백 년 전부터 전설 속의 신수로 기억되고 있단다. 그래서 사람들이 미신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렇군요.....”
“시간이 너무 늦었구나. 얼른 자렴 수영아.”
“네 어머니. 어머니도 안녕히 주무세요.”
그녀의 어머니가 아이의 이마에 작게 입맞춤을 하고 방을 빠져나왔다.
‘황룡은 존재할 거야. 내가 꼭 찾을 거야.’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한 아이는 그렇게 꿈나라에 빠졌다.
*
[깨어나셨습니까?]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유구나.”
보옥의 힘이 깃든 정령. 도깨비 비유가 내 머리 위에 있었다.
“내가 잠에서 깬 건가?”
[네. 수백 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근데 내가 어떻게....”
[천신께서 당신과의 약속을 조금 바꾸셨습니다.]
“어머니가?”
[네. 수호자의 환생을 약속하며 황룡께서 보옥 안에 잠드셨지만, 천신께서 수호자의 환생이 기약되면 그날에 보옥도 같이 깨어나기로 힘을 걸어두셨습니다.]
“....그랬군.”
[그 아이가 환생하고, 깊은 잠에 빠졌던 저도, 눈이 떠졌습니다.]
“사령수가 없는 나에게, 너와 같은 정령과 수호자를 거둘 수 있는 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제 목숨은 당신이 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전 당신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보옥의 정령이 된 것이고요. 그 뜻에는 변함없습니다.]
“그래. 그나저나 수백 년이라.... 이미 사람들에게는 잊혔겠네.”
[당신이 잠든 이후로 황룡의 대한 이야기는 전설로만 남게 되었으니, 그리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요.]
“...그 아이는? 잘 지내고 있겠지?”
[이번에도 인간계에 간섭하실 생각입니까?]
“아니 그냥. 물어보는 거야.”
[....일단은 그 아이는 안전하게 환생하였습니다. 평범하고 화목한 집안의 어린아이로 태어났더군요.]
“....다행이네.”
[황룡님, 그 아이는 더 이상 수호자가 아닙니다.]
“나도 알아. 어차피 내 힘도 거의 잃었겠다. 조금은 쉬려고.”
나는 보옥 안을 환하게 비췄다. 수백 년 동안 방치되어 곳곳에 먼지가 쌓여있었다. 그때 누군가 보옥 안으로 들어왔다.
“음? 너희는....”
“오랜만에 뵙습니다. 황룡님.”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두 남녀가 천천히 걸어왔다.
“남쪽의 사령수 유승이와.... 북쪽의 사령수인 길영이구나.”
“그동안 ‘영면’하셨는지요.”
“음...? 영...면?”
“이길영 이 멍청한 새끼야!!! 무슨 영면이야 영면은!!!”
“이거 아니야?”
유승이가 길영이의 등짝을 찰싹 때렸다.
“흠흠, 무례를 범해 죄송합니다.”
두 아이의 모습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그보다 여기까지 무슨 일로....”
“천신님의 부름입니다.”
“천계로 가시지요 황룡님.”
그래, 긴 잠에서 깨어났는데, 날 안 부를 리가 없지.
*
“황룡 김독자. 천신을 뵙습니다.”
“수백 년 만이구나, 독자야. 그동안 잘 지냈니?”
“뭐, 잠만 잤으니까요.”
황금빛의 커다란 옥좌를 중앙으로 양옆에 두 개의 의자가 있었고, 사신들이 앉아있었다.
‘못 본 사이에, 다들 강해졌네. 색이 짙어졌어.’
각 사신을 대표하는 청색, 적색, 백색, 흑색의 아우라가 사신 주변을 겉돌고 있었다.
‘뭐,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따져보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닌가.’
“그보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아이의 환생도 무사히 끝마쳤다.”
“네, 제 정령인 비유에게 들었습니다.”
“그럼 넌 이제 어떻게 할 셈이니?”
“예?”
“너의 벌은 그 아이의 환생이 결정된 순간 끝났다.”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옆에 있던 청룡이 말했다.
“선택하라는 뜻이다. 다시 신수의 왕, 세계의 수호신 황룡으로 돌아올지, 아님....”
그런 뜻이었나.
“저의 대답은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내 말에 사신과 천신 모두 귀를 기울였다.
“저는.....”
*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하신 겁니까?]
나와 비유는 천계를 빠져나와, 황룡의 보금자리로 들어왔다.
“아름답지? 이곳은 내 힘이 깃든 곳, 그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이지.”
[....신수의 힘이 깃든 허상의 공간이죠. 매번 올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맞아. 그 아이도 참 좋아했는데.....”
[.....]
짙은 안개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
“나으리!”
쾌활하고 명랑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넌....?”
“여기서 뭐 하십니까?”
그것이 나와 그 아이의 첫 만남이었다.
“아니, 이곳엔 어떻게 온 것이냐? 안개 속에 감춰져 있어서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면 찾기 힘든 곳인데.....”
“산에서 약초를 찾다가, 이상한 통로 같은게 보여서 들어와 봤더니 이곳에 나리가 있었습니다!”
“허.... 참으로 신기하구나. 그보다 난 나리가 아니다.”
“예? 하지만.... 나리의 복장이....”
나는 황금색의 용이 그려져 있는 곤룡포를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나리에게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무슨...!”
여인은 천천히 다가오더니,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포근하고... 따뜻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마치 인간의 기운이 아닌 것 같은...”
참으로 이상한 여인이었다.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항상 나를 보며 무섭다고 달아나던 인간들과 달리, 넌 온전한 나를 봐주었다. 인간의 모습인 김독자를.
“또 왔느냐.”
“마치 비밀 공간 같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곳에 오면 나리도 있고요.”
“...쓸데없는 소리 마라.”
“헤헤.”
그녀는 매일매일 내 공간에 찾아왔다. 하지만 나도, 그런 그녀를 거부하지 않았다. 어느 날엔, 내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너는 왜 내가 좋은 것이냐.”
“예?”
“매일같이 찾아오지 않느냐. 이유를 물으면 내가 좋아서 오는 거라고 하고.”
내 물음에, 그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리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지요?”
“.....!”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허나, 괜찮습니다. 사람이 무언가에 이끌리는 데에는 그저 작은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명?”
“네. 그리고 전 그 운명에 빠져든 것이고요. 나리가 인간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나리는 항상 저를 봐주시잖습니까.”
그때부터였을까. 너를 보면 가슴이 뛰고, 너를 보면 설레는 이 마음이,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계속 너를 보고 싶었다.
화아아악!
황금색의 아우라가 내 공간을 감싸기 시작했고, 내 등에서 황금빛의 날개가 나오더니 이내, 커다란 용의 모습이 되었다.
“....이게 내 본모습이다. 이래도 정말 내가 좋으냐?”
그녀는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며 내 이마에 손을 짚었다.
“신수 황룡..... 정말 있었군요.”
그녀의 손길이 느껴졌다. 두려움, 공포 같은 것이 아닌, 설렘, 걱정, 기쁨 같은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상을 떠받치는 부담이 얼마나 큰지 전 가늠조차 하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나를 동정하는 것이냐?”
“동정이 아닙니다.... 경외, 그리고 걱정입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세계의 수호신인 나를, 평범한 인간인 너가 걱정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너의 손길에 따뜻한 감정을 느꼈다.
“수영아. 내 보옥의 수호자가 되어줘.”
그리고 그렇게... 난 너를 좋아하게 되었다.
“황룡님. 만약 제가 기억을 잃거나 다시 태어난다면, 그땐 신수가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 만났으면 좋겠어요.”
“왜?”
“저는 황룡인 당신이 너무 걱정되거든요.”
“신인 나를?”
“아무리 신이어도. 걱정이 되는 건 마찬가지인걸요. 그리고.... 그만큼 널 좋아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뭐...?”
“못 들었으면 말고!”
“어, 야! 다시 말해줘!!”
그렇게 난 계속 너에게 빠져가게 되었다.
“다시 만나 김독자. 안녕.”
그리고 그런 너를 지키지 못하였다.
*
[무슨 생각을 그리하십니까?]
“....그냥.”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황군은 어떻게 할까요?]
“아직 내 힘이 온전치 않아서, 내 군세들도 잠에서 깨지를 않네.”
[그보다, 당신이 아까 그런 선택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선택하라는 뜻이다. 다시 신수의 왕, 세계의 수호신 황룡으로 돌아올지, 아님, 그만둘 것인지.”
“저의 대답은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그만두겠습니다.”」
“그래?”
[네. 이유가 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냥, 변덕이야.”
[변덕....이요?]
“응. 어차피 수백 년 동안 사흉들도 잠잠했고, 흑룡은 그 일 이후로 완전히 소멸했고, 이젠 나 없어도 사신들이 알아서 잘 지킬 거야.”
[하지만, 세계의 수호신의 공석은 꽤 클 것 같습니다.]
“뭐,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젠 그만할래. 어차피 힘도 거의 잃은 상태고.”
[당신의 뜻이 그렇다면.]
“그래도 어머니랑은 약속했어. 위험이 닥치면... 모르는 척하지는 않겠다고.”
[그럼 당분간 인간 세계를 지켜보실 겁니까.]
“응. 수호신을 그만둔다고 해서, 내 힘이 어디 도망가는 건 아니니까.”
나는 이제는 여자아이로 환생한 보옥의 수호자였던 한수영을 바라봤다.
그 아이는 잠꼬대하며 작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신수 황룡.... 내가 꼭 알아낼 거야... 음냐.....’
나는 그 아이를 보고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자 수영아. 좋은 꿈 꿔.”
그리고 나도 잠을 청했다.
세계의 수호신, 신수 황룡의 이야기는 그렇게 점차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지며, 영원히 전설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