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https://arca.live/b/reader/42864495

"야, 김독자! 갑자기 멈춰서 뭐 하냐?"


눈 앞에.

내가 그토록 그리던

웃고있는 눈부신 네가 서 있었다.


"야, ㅁ...뭐... 뭐야 뭔데...? 왜 우는데? 뚝. 울지마. 오늘 좋은 날이라고 나왔잖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나오고, 네가 나를 달래주었다.


"...었어..."

"뭐라는 거야?"

"웃고 있는 네 모습이 보고 싶었다고."


나는 환하게 웃으며 수영이를 와락 끌어 안았다. 내 품에 안긴 한수영은 당황하는 것 같다가도,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하여간 알 수 없는 애네."


한수영이 나의 볼을 콕하고 꼬집고 그제서야 나는 어렴풋이 눈치를 챌 수 있었다.


'꿈이구나.'


"멈췄다가, 울다가, 웃다가, 표정이 나빠졌다가. 가지가지하네. 볼 꼬집는 게 그렇게 싫었냐?"

"아냐... 그런 거"

'이 꿈에서 깼을 때, 널 마주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는 속마음을 감춘 채 씨익 웃어보이며 수영이의 손을 잡았다.


"가자. 오늘 좋은 날이잖아."


기억 난다. 너와 함께 이 길을 걸었던 날, 화창한 날씨. 내가 답답했는지, 네가 먼저 결혼하자 얘기해준 날. 나의 생일.

아마도 이 달콤함에 취하는 순간, 나는 차가운 현실을 맞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것은 간사한지라 나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만끽하고 싶어졌다. 오늘, 꿈 속의 너에게, 그리고 힘들었던 나에게 행복한 하루를 선물해주어야겠다.


우리는 손을 잡고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강변에 누워 강가를 바라보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산책로에서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다.

너와 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나는 이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으나, 시시콜콜한 말들로 침묵을 깼다. 하루 종일 너를 업고 다닐 수 있다는 나의 말에 너는, 평소에 안하던 짓을 왜 자꾸 하냐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크게 웃어버렸다. 내 웃음을 본 순간 네가 나에게 달려든다. 너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풀밭에 넘어진 우리의 그림자가 이내 가까워진다. 한참을 누워있던 우리는 마주보며 웃었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의 벤치로 자리를 옮긴다.


"수영아."

"왜?"

"사랑해."

"뭐야 갑자기..."

"나랑 결혼해 줘."


나의 말을 곱씹다 놀란 너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눈물을 글썽였다. 너의 입이 벌어져 무어라 말을 건넨다. 내게 안긴다. 점점 너의 목소리가, 너의 체온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익숙한 향이 내 코를 자극하고, 몸에서 점차 뻐근한 감각이 느껴졌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을 감고 있으면, 어둠 속에서 환하게 웃던, 놀라서 울던, 행복해보이던 네 모습이 아직 선명하게 비친다. 눈을 떴을 땐, 어둠이 걷히고 밝은 빛이 네 모습을 빼앗아 갈까 두려워 눈을 뜰 수 없었다. 비참하다. 내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너는 이렇게 누워있는데, 난 행복했던 때의 너를 그리며, 지금의 너를 바라보기 두려워하는 내가 너무 싫어졌다.


한참을 그렇게 엎드려 있다 이내 고개를 들고 너를 바라보았다. 조금은 수척해진 얼굴, 관리하지 못해 자라난 머리카락.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는 편안해 보이는 너. 꿈 속의 너와 대비 돼 어둡게 보였다. 그저 내 마음이 어두워진 걸지도 모르겠다. 너를 보고있자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네게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네가 볼세라 성급히 눈을 가렸다.




더이상 자리를 지키기 힘들었던 나는, 비유가 깎아두었던 과일을 다급하게 챙기고는 설화 씨를 불렀다. 무슨 일이 있을까 걱정이 되었던 설화씨는 빠르게 병실로 와주었다.


"설화 씨. 죄송합니다. 제가 몸이 너무 안 좋아진 것 같아 가보려고 하는데, 혹시 수영이... 곁을 좀 지켜주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할게요... 걱정 마시고, 본인 몸부터 챙겨요 꼭. 수영 씨도 많이 수척해지긴 했지만, 독자 씨는 더 심해요. 꼭 건강 관리 잘 하세요..."

"노력해 볼게요. 아, 그리고 제가 요즘 잠을 잘 못자서 그러는데, 적당한 약좀 처방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그렇게 해드릴게요. 어서 쉬세요."


설화 씨는 내 손에 처방전을 쥐어주시고, 나를 배웅해주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병원을 떠나는지 알았다면, 저렇게 나를 걱정해주었을까? 의미 없는 생각이다. 나는 약국에 들러 약을 받은 뒤, 모두가 사는 곳이 아닌, 개인 자택으로 몸을 옮겼다. 지금 모두를 만나면 무너질 것 같았다. 받아온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곧 졸음이 내 정신을 앗아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눈을 떴을 때, 내 눈엔 집의 천장이 아닌 우아한 장식이 곁들어진 천장이었다. 요즘 꿈을 꾼 적이 없는데, 오늘만 벌써 두 번째다. 불길한 생각이 들어 곁을 둘러보았을 때,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는 네 모습이 보였다.


"일어났냐?"

"..."


이건 그 때의 기억. 눈이 내리던, 2월 15일의 기억. 너를 다시 보니, 또 한 번 눈물이 왈칵 쏟아져내렸다.

"어?야, 너... 울어?"


놀란 녀석의 눈동자 위에 내 얼굴이 비친다.

그 때와는 다른 기억, 다른 전개. 그럼에도 상냥한 너는, 나를 달래줄 것이다. 언제 챙겼는지 모를 호주머니 속 사탕을 꺼내 내 입에 물려주겠지. 나는 다시 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전했다.


"보고 싶었어."


이 말 역시, 그 때와는 다른 말. 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 됐지만. 네 모습을 볼 때마다. 난 진심으로 얘기할 것이다. 보고 싶었노라고.


너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당황하다 피식 웃으며 나의 볼을 꼬집었다.


"귀엽기는, 울 정도로 내가 보고 싶었냐? 울지말고 이거라도 먹어."


장난스러운 얼굴로 레몬사탕을 건네던 너는 이내 사라지고, 주변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잠시 후 나는 잠에서 깨었다. 우울함이 나의 몸을 지배했다. 미칠 것 같았다. 맨정신으론 슬픈 마음을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다급히 약을 삼켰다. 어딘가에서 어렴풋이 진동이 느껴지는 듯했다. 진동을 무시한 채 잠에 들고자 노력했다. 아니, 행복하게 웃고 있을 네가 나오는 꿈을 꾸기 위해 노력했다.


꿈은 계속해서 바뀌었다. 내가 다시 돌아온 날. 행복했던 네 표정이 보였다. 큰 집을 계약하고 김독자 컴퍼니 모두를 불러 모은 날. 너는 나와 함께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너와 처음으로 데이트했던 날.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커피를 마시며, 온종일 너와 소설 얘기를 나눴었다. 네가 웃으며, 내게 써 줄 소설의 초고를 보여주었다.

"너만 보여주는 거야."

손에 꼽을 정도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너와의 첫키스. 너와의 첫경험. 관음증이 도진 달은 밤새 우리의 시간을 훔쳐보았다. 너와의 결혼. 조촐한 자리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축복해주었다. 드레스를 입은 너는, 너무나도 눈부셨다.


서아를 가질 때쯤부터 너는 갈수록 허약해졌다. 너는 몸 속의 서아가 잘못될까 두려워 약도 제대로 챙겨먹지 않고, 몸을 돌보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약해지는 너를 보기 힘들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되새긴다. 추억들은 늘어진 테입처럼 조금씩 흐려지고, 갈라졌다. 선명했던 꿈은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무색의 꿈 속에서 네가 내 양 볼을 잡고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너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너의 입 모양을 자세히 보았다.

[... 려... 자!]

잘 들리지 않던 말들이 서서히 제 색을 찾아가고,

[정신차려 김독자!]

너의 말이 명확히 들려왔다.

너의 호령에 눈이 번쩍 뜨인 나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내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다.


내 곁에는 침대에 누워 울다 지쳐 잠든 서아와, 나를 힐난하듯 노려보는 <김독자 컴퍼니>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