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에 숨어있는 거대한 병원, 그 안에 숨어있는 작은 병실. 그 병실 안에 숨어있는 눈과도 같은 허연 머리카락을 내린 채로 병상 위에 누운 어느 여인, 이설화.
그저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이설화가 이름 모를 불치병에 걸린 지 천 하고도 하루 되는 날의 밤이었다.
끼릭.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들어온 사람은 지금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게이머이자 이설화의 연인인 유중혁. 그는 병상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자신이 들고온 사과를 과도로 깎으며 입을 열었다.
"이설화. 오늘은—."
이설화가 이름 모를 불치병에 걸린 지 천 일 동안 유중혁은 저 말을 시작으로 각기 다른 소재의 이야기를 만들어 이설화에게 말해주었다. 작가도 독자도 아닌 주인공이라는 사람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이설화는 웃기도, 울기도 하며 지난 천 일을 보내왔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내심 기대한 이설화는 유중혁을 바라보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여느 때처럼 미소를 지어주었고. 유중혁은 여느 때와 달리 이설화의 미소를 피하지 않고 생기를 잃은 입술에 자신의 연분홍빛 살덩이를 포개었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하면서도 그 느낌이 썩 좋았는지 이설화는 방금 유중혁과 닿았던 자신의 입술을 매만졌고 유중혁은 사과를 그녀의 입 앞으로 건네주며 입을 열었다.
"이설화. 오늘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가져왔다."
"다른 이야기요?"
"그래. 평소의 모험담과는 다른 이야기."
"중혁 씨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궁금해지네요. 어서 말해줘요."
이설화는 눈웃음을 지으며 손뼉을 쳤고, 유중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이설화를 보았다.
"너는 살 수 있다."
"...네?"
"네가 그 병에 걸린 그 날부터 천하고 하나 되는 이 날까지 우리는 치료법을 찾아나섰고, 마침내 네 병의 치료법을 찾아내었다."
"그럼 저는... 이제 나을 수 있는 건가요?"
"그래. 나을 수 있다. 갑갑한 병실에서 나와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으며, 어린 아이들의 미소와 아름답게 떨어지며 흩날리는 꽃잎을 볼 수 있다."
"흑... 고, 고마워요."
이설화의 눈에서 흐른 두 눈물은 뺨을 타고 흘러 이불을 적시기 시작했고, 유중혁은 코트 안주머니에서 작은 포션을 꺼내 이설화에게 건네었다.
"이것을 마셔라. 그리고 내일 아침, 모든 것을 털고 일어나라."
"...네!"
포션을 받은 이설화는 활짝 웃으며 포션을 마셨고, 이내 몇 번 꾸벅거리다가 잠에 들었다. 이설화가 잠든 것을 확인한 유중혁은 새 이불을 꺼내 덮어주고 그녀의 곁에 앉아 몇 시간을 바라만 보다가 병실을 떠났다.
천 하고도 하루 되는 날의 밤이 지나고, 천 하고도 이틀 되는 날의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평소와 다를 거 없는 아침. 그랬어야 했지만 이설화에게 있어 오늘은 평소와 다른 아침이었다.
"저 왔어요!"
병원 근처에 있는 공원. 그곳에는 유중혁과 이지혜, 신유승, 유미아가 있었고 그들은 피크닉이라도 나온 것처럼 돗자리를 펴고 앉아 음식을 준비 중이었다.
산산하게 부는 바람이 이설화의 원피스 자락을 흔들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시야가 가려져 당황해하는 그녀 앞으로 유중혁이 걸어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정돈해 주었고 그의 배려에 이설화는 미소를 지으며 유중혁과 함께 일행들이 있는 돗자리에 앉아 신유승이 만든 샌드위치를 먹고, 유미아가 산 음료수를 마시며 이지혜가 만든 어설픈 토끼 인형을 받았다.
천 하고도 하루 되는 날까지의 고통이 사라지고 새롭게 시작되는 행복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