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으로 향하는 길, 반대편에서 너와 비슷한 누군가가 걸어온다.
너일까, 아닐까.
점점 가까워질 때마다 발걸음을 저절로 늦춰진다.
너인지 확인하고 싶으면서도 네가 아니길 바라는 이 감정은 대체 뭘까.
차라리 멈춰 서고 싶었지만 이제 와서 멈춘다거나 돌아가거나 할 수는 없었다.
어느덧 그녀와 나의 거리는 가까워졌고, 난 그녀가 너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너였다. 한 번쯤은 다시 마주치고 싶었던 너.
너의 옆에 내가 있었을 때
"독자씨."
"네?"
정희원이었다.
분명 계약은 성공적으로 체결된 것 같았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아니면...... 역시 눈치챈 거겠지.
"한수영 닮았다고 생각했죠? 아까 그 사람."
"......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내가 봐도 생각날 정도로는 비슷하던데."
정희원이 보기에도 닮았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녀의 말대로 아까 계약을 진행하면서 상대측에서 한수영과 꽤나 비슷한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충분히 한수영을 떠올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차라리 그냥 한번 직접 보러 가라니까요? 답답해서 내가 다 못 봐주겠네."
"이미 끝난 사인데 제가 어떻게......"
"그럼 앞으로도 매번 이렇게 포기 못한 채로 계속 끙끙대고만 있을 거예요?"
나도 안다.
계속 이러고 있어서는 안된다는걸.
앞으로 이런 비슷한 일이 몇 번이나 더 생길지도 모르는 건데, 그럴 때마다 대표인 내가 한수영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수만은 없다.
"차라리 한번 부딪혀보는 게 후회도 없지 않을까요? 혹시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거고."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 우리는 입을 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나서야, 나는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수영이는...... 요즘 잘 지내겠죠?"
"글쎄요? 궁금하면 직접 알아보라니까요?"
다른 누군가가 본다면 나를 놀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것이 그녀 나름대로의 배려라는 걸 알기에 나는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엘리베이터가 2층에 멈춰 섰을 때, 정희원이 먼저 내리며 말했다.
"오늘은 이만 퇴근하시죠. 어차피 계약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대표가 계속 있어야 할 만큼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도......"
"어차피 여기 남아있어 봤자 한수영 생각에 아무것도 못할 거잖아요. 그냥 빨리 집에 가시죠?"
그대로 문은 닫혔고, 나는 정희원의 말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1층으로 내려와 회사문을 열고 나서니 도로를 지나가는 차들과 제각기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직 해가 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남은 늦은 오후였다.
혼자 거리를 걸으니 수많은 네가 보이고 들리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네가 회사로 찾아온 적도 있었고, 너와 이 주위를 걸었던 적도 있었지.
내가 너의 것이라고 말하던 너의 모습이 아직도 내게는 생생하다.
당장이라도 나를 부르는 네 목소리가 들릴 것 같은데, 내 이름을 부르며 그대로 내 품에 안길 것 같은데, 이미 그것은 한참 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이제 나는 너의 남자친구가 아닌데, 내가 없는 너의 하루는 어떤 모습일까.
한 번이라도 헤어진 걸 후회한 적이 있을까, 아니면 그냥 아무 미련 없이 잘 살고 있을까.
'너는 나를 한번이라도 그리워 했을까.'
우리가 함께 했을 때,
그때가 어땠는지 너에게 직접 들어보고 싶다.
우리가 함께 했을 때,
그건 절대로 잊지 못할 시간이었으니까.
어떤 연인이든 대부분 그렇겠지만, 우리의 시작은 좋았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했던 우리였고, 그 생각에 주위 사람들도 대부분 동의했었으니까.
너는 사귀고 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 얘기부터 꺼낼 만큼 들떠있었고, 그런 너와 같이 들떴었던 나였다.
네가 나를 기다려주었던 시간이 얼만데, 서로가 서로를 위해 이미 몇 번이나 희생을 거듭한 사이인데, 결혼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앞으로 위기가 닥칠지도 모르지만 둘이 힘을 합치면 극복하지 못할 건 없다고 생각했다.
너는 나의 이해자였고, 나 또한 너의 이해자였으니까.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는 그 오만한 생각이 문제였던 걸까.
시간이 흐르며 문제는 생각지 못한 곳에서 조금씩 생겨났다.
우린 조금이라도 각자의 생각에서 벗어나는 서로의 행동을 이해해 주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기대치는 높은 상황이었고, 한발 물러서 생각하기보다는 서로의 감정을 쏟아내기에 급급했다.
나는 너를 내가 아는 '한수영'에 집어넣으려 했고, 너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컸지만, 반복되는 다툼에 그것이 서서히 무뎌져간다고 느낄 때쯤 너는 이별을 말했고 나는 받아들였다.
나는 너를 붙잡으려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고, 우리는 각자 아무렇지 않다는 듯 뒤돌아섰다.
누구 하나 자존심을 굽히려 하지 않는다는 점마저 비슷했던 우리였다.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이제 와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그때는 그렇게 싸웠다는 게 마냥 씁쓸할 뿐이다.
차라리 서로를 잘 모른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다면, 우리의 끝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너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많이 다투지는 않았을 텐데.
아니면 그때라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너를 붙잡았다면...... 그랬다면.
유중혁과 설화씨는 내년 봄에 결혼식을 올린다는데, 우리도 그때 같이 결혼식을 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아무 의미 없는 질문인 걸 알면서도 스스로 가정에 가정을 펼쳐본다.
서로를 좀 더 이해해 보려 했다면, 그렇게 매달리고 싸우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러지만 않았다면 과연 우리가 헤어질 일이라는 게 있긴 했을까.
우리가 헤어진 뒤로도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고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았다.
[김독자컴퍼니]의 사장으로, 인기 웹소설 작가로, 바쁘게만 살아갔다.
헤어졌다고 해서 모든 게 끊긴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남보다도 못한 어색한 사이가 되었을 뿐.
가끔 모임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서로를 피하기에 바빴다.
어쩌다 대화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서로 대화를 자르듯이 끝맺을 뿐이었다.
너와 이별하고도 벌써 계절이 몇 번은 바뀌었다.
그동안 너를 잊으려는 노력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여러 소개팅을 나가보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밀려온 것은 너에 대한 후회뿐이었다.
애초에 너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는 채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주위에는 잘 돼가는 것처럼 말했다.
소중한 사람들이었기에 걱정시키지 않고 싶어서.
그리고 혹시나 내 소식을 전해 들을 너에게도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서.
사실은 아니었다.
너와 헤어진 후에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평생을 함께할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었기에, 네가 없는 나를 그려본 적이 없었기에, 계속해서 방황하는 중이었다.
너와의 이별과 함께 나에게는 목표도, 꿈도 사라졌고, 그 공허함을 반복되는 일상과 스스로에 대한 혹사로 애써 채워 넣고 있을 뿐이었다.
과거를 되돌릴 수 있다던가,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만 수도 없이 해보았다.
너의 집 앞을 맴돌다 결국 단념하고 돌아온 적도 몇 번 있었다.
나와 헤어진 후에 네가 다른 사람을 만났는지는 모르겠다.
물어본 적도 없고 다른 누군가가 알려준 적도 없으니까.
그렇게 바쁘게 작가 활동을 하면서 내가 아닌 누군가를 만날 여유는 없지 않을까 하는 추측만 해볼 뿐이었다.
얼마나 걸어왔을까.
아까보다는 차선이 몇 개 줄어든 도로가 펼쳐져 있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곳으로 나는 와 있었다.
집으로 가봤자 혼자일 거라는 생각이 드니 딱히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근처에 같이 얘기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낼만한 사람이 있나 연락처를 뒤적이던 그때 알림이 떴다.
너의 소설의 최신 화가 업로드되었다는 내용의 알림.
난 여전히 네 소설을 읽고 있었다.
아직 네가 쓰고 있는 로맨스 소설은 3천 편을 넘지 않았으니까.
물론 3천 편이 넘어간다고 해도 계속 볼 것이었다.
내가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걸 네가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지키고 싶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너와 내가 헤어지고 몇 달 지나지 않아 헤어졌고, 재결합은 아직까지 없었다.
다른 독자들은 감정묘사에 대해 극찬을 하고 있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조금 달랐다.
예전에, 그러니까 내가 너의 남자친구였을 때, 너에게 그 소설의 전체적인 줄거리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물론, 작가인 너는 독자의 감으로 맞춰보라며 알려주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때 너는 말했었다.
만약 주인공이 헤어지게 된다면, 무조건 다시 만나도록 만들 거라고.
언젠가는 소설 속의 남자와 여자가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네가 구상한 이야기인 만큼 그것에 전혀 문제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나였다.
네 이야기가 지나치게 생생한 탓인지, 볼 때마다 너와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너는 이미 털어버렸을지도 모르는데, 그냥 자신이 하는 일이 글을 쓰는 것이기에 최대한 몰입되도록 쓴 것뿐일텐데.
아니면, 정말, 정말로 어쩌면, 너도 내가 찾아오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그러나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우린 이미 너무 멀어져 버렸으니까.
시간으로도, 공간으로도, 그리고 마음으로도.
언제까지 너와 함께했던 시간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고, 이제 현실을 인정하고 나아갈 때라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예전처럼 자주, 아무 생각 없이 사랑 노래를 듣지는 못하고 있다.
가끔 유난히 네 생각이 많이 나는 날이면 이별 노래를 몇 곡 정도 듣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조금씩 받아들여야 한다.
나를 걱정해 주는 주위의 좋은 사람들이 많았기에, 행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내가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인데, 내가 이렇게 계속 멈춰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너와의 행복 외에 다른 행복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 네가 없는 행복을 찾아 나서야 한다.
나에게 남아있는 네가 얼마나 희미해져야 나는 그것을 꿈꾸기 시작할 수 있을까.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들이 너에겐 어떤 의미였니.
너에게 그 대답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올까.
네가 들을 일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들리지 않게 속으로 말해본다.
적어도 나는, 앞으로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아.
너의 옆에 내가 있었을 때를.
너의 옆에 내가 있었을 때,
나의 옆에 네가 있었을 때,
내가 너의 남자친구였을 때,
내가 가장 나일 수 있었을 때,
평생 너와 함께일 거라 생각했던 때,
서로를 정말로 끔찍이도 사랑했던 때,
그렇기에 결국은 헤어지게 될 줄 몰랐던 때.
편의점으로 향하는 길, 반대편에서 너와 비슷한 누군가가 보인다.
바로 앞에 이미 목적지인 편의점이 있는데도 나는 발걸음을 멈춘다.
너일까, 아닐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방향을 바꾼다.
'저쪽에도 편의점이 하나 더 있으니까...'
부정할 수 없다. 너라면 마주치고 싶어서 그런 거라는걸.
너일지도 모르는 그녀에게 점점 가까워질 때마다 발걸음을 저절로 늦춰진다.
너인지 확인하고 싶으면서도 네가 아니길 바라는 이 감정은 대체 뭘까.
차라리 멈춰 서고 싶었지만 이제 와서 멈춘다거나 돌아가거나 할 수는 없었다.
어느덧 그녀와 나의 거리는 가까워졌고, 난 그게 너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너였다. 한 번쯤은 다시 마주치고 싶었던 너.
오랜만에 너의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서로 바라보기만 해도 시간이 멈춘 듯 느껴졌던 예전과는 달리, 시간은 생각보다 느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너는,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듯, 그럼에도 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티를 내며 고개를 먼저 돌려버린다.
우리를 제외하고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는 거리.
그 속으로 너는 다시 사라져 버렸다.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힘겹다.
아마 오늘 밤에도 나는 너와 함께한 시간에 둘러싸인 채로 밤을 지새우겠지.
그럼에도,
우리가 함께 했을 때,
그리고 정말로 사랑했었을 때,
그때가 너에게도 좋은 기억이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 「너의 옆에 내가 있었을 때」 fin
안쓰다가 오랜만에 글쓰려고 하니까 진짜 안써지는듯
쓰고 있는 시리즈물이랑 야설은 완성되는데로 틈틈히 올려보겠음
이번건 나도 딱히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아무튼 잘봤다면 개추랑 댓글 부탁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