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는 소꿉친구다.

그녀는 소위 말하는 '착한' 여자는 아니다.

그러나 타고난 스펙은 뛰어났다. 

귀염성있는 커다란 눈, 오똑한 코, 작지만 가지런한 입,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그녀는 자신의 외모를 무기로 사용할 줄 아는 여자였다. 

남의 호의를 이용할 줄 알고 적당히 허영심도 있다.

그렇다고 그녀가 나쁜 여자인 것은 아니다.

호의를 받으면 감사할 줄 알고, 버스에서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가끔은 부모님에게 안마도 해드린다.

반면에 그는 소위 말하는 '착한' 남자다.

항상 웃으며 친구들이 부탁하면 거절도 잘 못한다.

지나가다 노숙자가 있으면 지갑을 털어 1000원이라도 손에 쥐어주고 비를 맞고 있는 고양이가 있으면 어쩔 줄 몰라한다.

그리고 10년을 넘게 한 여자만 바라봤다.

5살, 같은 유치원에서 처음 만난 그와 그녀는 초등학교,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단 한 번도 멀리 떨어진 적 없이 같이 보내왔다.

그리고 그는 5살에 눈물콧물을 질질짜며 유치원에 처음 등원한 그 순간부터 새로 맞춘 교복을 입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그 순간까지 계속 그녀를 좋아했다.

그리고 매 년 그녀의 생일인 3월 2일, 그는 그녀에게 고백한다.

하지만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미안.

그녀에게 그는 너무 평범해보였다.

공부? 잘하긴 하지만 학생 눈에 공부 잘하는 것이 얼마나 큰 메리트로 다가오겠는가.

운동? 못하는건 아니지만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다.

외모? 그렇게 잘났으면 그녀가 고민을 했겠는가.

그녀 역시 그가 싫지는 않았지만 연애의 대상이냐고 물어보면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원하는 운명적인 사랑과 10년을 넘게 볼 꼴, 못 볼 꼴을 전부 본 그는 너무 멀어보였으니까.


-


2월 28일.

그가 그녀에게 밥을 먹자고 불러냈다.


"그럼 11시까지 너희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보자"


"뭐 먹으러 갈건데?"


"네가 지난 번부터 먹고싶다 노래를 불렀던 찜닭. 별로야?"


"좋아! 역시 오래 봐서 그런가, 나에 대해서 모르는게 없다니깐?"


"좋아하니까 그렇지."


"또 그러네. 꿈 깨세요. 남동생하고는 그런 생각 안들어."


"와, 굳이 따지자면 내가 네 오빠지! 무슨 남동생이야?"


"풋! 오빠같은 소리하네. 내가 너 콧물을 몇 번을 닦아줬는데 오빠야? 알았으니까 내일 봐, 내일. 끊을게."


그녀는 기분 좋게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하고는 항상 이런 느낌이다. 

귀신같이 자기가 먹고 싶은거, 보고 싶은거, 하고 싶은거를 알아내서 권유한다.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면 편안하고 즐겁다.

그래도 연애감정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와 함께하는 것은 분명 편안하고 즐거운 일이지만 심장이 터질듯한 두근거림은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에 빠지기에는 너무 오래 알아버렸다.

그 왜, 너무 오래 같은 시간을 보내면 이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매년 고백해오는 그에게는 미안하다.

보통 친구 관계에서 고백했다가 차이기라도 하면 친구 관계가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가 자신을 볼 때 속으로는 괴로워할 것도 알고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와 친구 관계로 있고 싶다.

이런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녀가 그의 호의에 어리광부리고 있을 뿐임을 그녀 자신도 잘 알지만 어쩔 수 없다.

그가 처음 그녀에게 고백한 6살 이후로 쭉 이어져 온 이 애매한 관계를 정리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


3월 1일. 고등학교 입학 전 날.

남녀가 둘이 만나서 노는 것.

보통은 이걸 데이트라고 부르지만 그녀는 애써 무시했다.


"맛있어?"


"응응. 생긴지 얼마 안 된 곳 같은데 어떻게 알고 데려왔어?"


"다 방법이 있지요. 사랑의 힘이랄까?"


"우웩."


"...너무한거 아니야?"


둘이서 점심도 같이 먹고.


-


"영화? 요새 뭐 재밌는거 하는 거 있어?"


"조용히 따라오시기나 하세요. 언제 내가 추천해주는게 재미없던 적도 있어?"


"뭐야, 이 자신감? 맞는 말이라 더 재수없는데?"


"나 진짜 마상입는다? 아, 팝콘은 캬라멜로, 음료는 사이다. 맞지?"


"진짜 재수없어..."


팝콘 하나만 사서 옆자리에 앉아 영화도 같이 보고.


-


"자, 눈물 닦고, 코도 좀 풀고. 다 큰 여자애가 그러면 쓰나."


크ㅡㅡ응!


"그치만... 히끅! 주인공... 히끅!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히끅!"


"그만 울어. 뚝! 이러고도 누나 행세할라고?"


"히끅! 짜증나... 히끅! 후우우우... 히끅! 후우우우...."


"좀 진정됐어? 너 눈 엄청 새빨간데 가서 잠깐 세수라도 하고 와."


"응..."


"그럼 나 가서 커피 시키고 있는다? 카페모카에 휘핑크림 많이?"


"응..."


슬픈 영화에 눈물콧물 다 빼는 그녀를 위해 잠깐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


집 앞의 공원, 그와 그녀가 걸었다.


"아, 재밌었다. 오늘 평생 울 거 다 운 것 같아."


"너 겨울방학 때도 그 소리 했었거든?"


"아무튼!"


그의 옆에서 걷던 그녀가 총총걸음으로 그를 앞질렀다.


"오늘은 고마웠어. 손수건은 빨아서 학교에서 돌려줄게."


"딱히 안 돌려줘도 되는데."


"싫어. 내가 언제 빚지고 산 적 있어?"


그녀는 그의 제안을 아주 완강히 거절했다.

그에게는 충분히 많이 받고 있다. 

물질적인 것마저 받기 시작하면 둘의 관계는 정말 완전히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녀의 거절 이후 잠시 아무 말도 없이 걷던 그가 입을 열었다.


"있잖아. 할 말이 있는데."


그가 멈춰섰다.

앞장서서 나가던 그녀도 멈춰서서 그를 향해 뒤돌았다.


"오늘, 아직 3월 1일인데."


그가 고개를 저었다.


"내일. 진짜 마지막으로 물어볼거야. 정말 안되면 나도 마음 접을게. 그냥 좋은 친구 사이로 지낼 수 있도록."


"...지금처럼?"


잠깐의 침묵 후, 그가 대답했다.


"...혹시 지금 우리 관계가 정말 우정만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거야?"


그는 그녀를 바라보고 알 수 없는 미소를 살짝 지어보였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던 그는 이윽고 발걸음을 옮겼다.


"뭐해. 집에 안갈거야? 집까지는 바래다줄테니까 같이 가자."


그녀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를 향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일단은 여기까지

존나 뻔한 내용이고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하고 싶음

어쩔수없는 순애충인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