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 위 주전자 -









물을 쏟아넣자 수만 개의 거품이 일었다가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은광으로 빛나던 주전자는 세월과 같이 늙어갔는지, 아니면 손때를 많이 타서 그런지 예전과 같은 광택을 보여주진 않았다.

느긋하게 많이 끓이라고 했던 어머니의 말에 따라, 한 컵만 더 부어 넣고는 마침내 주전자는 스토브 위에 올랐다.



가스불을 올리고 주위를 살피면 잘 정돈된 집이 눈에 띄었다. 마지막으로 정리한 후, 집에 돌아올 시간도 없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부엌 선반 위에는 그릇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다다미 8칸 크기의 방에 허점이란 내가 어제 들어오며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셔츠와 넥타이뿐이다.



스쳐 지나가는 계절의 바람이 습해, 문득 열려있는 창 밖을 바라보면 급한 걸음의 무리가 지나가던 중이었다. 어둡게 하늘을 장식한 구름이 짙어지는가 싶더니 금방이라도 비가 내리려 한다. 텁텁한 공기의 향을 맡으면 속의 울렁임이 멈추질 않는다.

창문 너머로 보이던 얼굴이 커튼 너머로 가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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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툭 반복적인 소리가 울렸다. 그가 손을 까딱거리고 있었다.



손을 까딱하는 버릇은 어린 시절부터 이어졌다. 친척들이 주변에 살고, 해마다 사람이 늘어나니 불안함도 늘어나는 것이다. 거만한 사람들이나 그러는 것이라며 꾸중을 듣기도 했지만 고쳐지지는 않았다.

어릴 적엔 주전자 수증기 소리에 깨어나, 어머니의 등을 바라보며 습관적으로 손가락을 식탁에 두드리곤 했다. 기다림이 늘어갈수록 불안함을 숨기기 힘들었다.



책상위를 습관적으로 툭툭 두드리면서 생각하면, 이미 늦고 있었다.

......몇시에 만나기로 했더라...

그런 말을 하며, 다시 시계를 확인하면 분명 11시 정각에 그녀가 우리 집으로 온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삼십 분을 훌쩍 넘긴 분침에 항의하듯, 미간이 살짝 찡그려진 그의 얼굴이 바로 앞 모니터에 적나라하게 비추어졌다.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항상 자신 혹은 누군가에게 상처로 돌아옴을 알고 있음에도.

결국 끝은 자신의 사죄라는 행위를 반복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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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켜지면, 적적한 공기 속에 약간의 흐름이 생긴다. 연차를 내고도 메일함을 확인해 별다른 일이 없다는 것을 인식한 후에야 그는 숨을 돌렸다.

이제 더 할 일이 없음을 알고 있는데도 손은 일거리를 찾고 있었다.



사내의 사람들은 그를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사실은 그런 평가를 받기 위해 성실함을 연기한 것뿐인데.

자신이 맡은 일을 하는 것뿐으로 그런 평가를 받는다는 것을 그는 꺼렸다. 현실에 존재하는 자신보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자신이 더 빛난다는 게 마냥 좋지는 않았다.



창 너머로는 사람이 실제보다 더 밝게 비추어 보일 때가 있다.

낮에는 햇빛에 빛나는 사람처럼, 밤에는 달빛에 비치는 사람처럼. 창 너머로는 실제로 그 사람이 가지지 못한 것들까지 비추어 보인다.

정말 그리 빛나진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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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딘가에 몰려있는 사람처럼 취직해서 주변의 부러움을 살 시간도 없이 일에 적응하려 노력했다.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아니 꽤 유명한 회사에 취직했다.

단번에 바뀐 주위 분위기와 상사의 바람 잡기 속에서도 굳건히 한 자리를 잡기 위해서 그는 일했다.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는 그의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사소한 실수에도 꼬투리를 잡히고는 매일같이 동료의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겉으로는 따뜻한 사내 분위기라는 간판을 걸친 것인데 그 따뜻한 미소로 그들은, 사람을 죽여갔다.

머리 위로, 어깨 위로 느껴지는 건 일 더미가 아니었던 것을. 네 번은 포장되어 속을 모르게 되어버린 말들이 더 두려웠다.



친하게 지내던 다른 부서의 동료가 해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진정으로 자신이 얇은 얼음판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오싹한 한기가 목을 타고 넘어왔다. 잘게 부서진 조각들이 발에 파고드는 고통을 무시하고 뛰쳐들어갔을 땐 이미 늦었다.

너는 입으로 사업을 해도 되겠다.

내가 그에게 말했던 게 모두 나에게 돌아와 나를 사정없이 때렸다. 환한 미소와 거침없는 입담, 그 속에는 대체 무엇이 있었는지. 밤을 새워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 끝에 밀려오는 고통을 느낄 틈 없이, 그는 다음 날 다시 회사로 향했다. 옷 주머니에 든 사직서를 습관처럼 손가락으로 몇 번이나 건드리지만 결국 그 종이를 잡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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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자에서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뚜껑이 덜썩 움직였다.

익숙한 소리였기에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연인과의 문자 내용을 확인하던 그가 갑자기 멍청한 소리를 냈다.

...아.

설마, 하는 생각이 스쳐 갔다.

전화를 받지 않아서 문자를 보냈다.

어디 있어?

아직 집이야?

급한 일이 생긴 건 아니지?

문자 메시지 보면 연락 부탁해.

한쪽 손으로는 상을 두드리고, 다른 한쪽 손은 입에 가져다 대어 불안한 듯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에게는 줄다리기를 하는 실 위에 서서 좌지우지되는 것 같은 일렁임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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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학 시절 술자리나 모임에 가면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었다. 집에는 어떻게 가려고 그리 마시느냐, 너무 늦으면 위험하니 먼저 돌아가겠다, 절대 술 마시고 운전하지 마라, 취해서 실수하면 안 된다.

오지랖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를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평소 행실이 바르고, 항상 밝은 모습에, 사람들은 그가 가식 없이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터다.



자신이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바로 그였다. 또래의 친구들이 무모하게 하천에 뛰어들거나, 도로에서 장난을 치면, 어찌 저리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있지? 하고 생각하며 진심으로 그들을 걱정하며 말렸다.

한 발짝 늦은 것으로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잃었던 그의 과거가 만든 결과였다.

그녀와 처음 만난 것도 그런 오지랖부터 시작이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넓을수록 좋다 하여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말 한마디의 역겨움에 구역질을 해도 또다시 나와, 그것만으로 속앓이를 하는 때도 있다.

떠돌던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마 내 옆자리에 앉았던 그녀였는지,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었다.

괜찮으세요?

그녀가 걱정스러운 안색으로 그에게 물었다.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그녀의 얼굴에는 떠도는 말과 같은 추악함은 드러나지 않아, 다 끝내 못 마친 역겨움이 속을 타고 올라왔다.

아, 아아.. 속이 좋지 않아서요. 잠깐 화장실에 좀..

그리곤 모두 쏟아냈다. 어떻게 그녀를 다시 보아야 할지, 앞이 막막했다. 항상 했던 대로 하던 오지랖의 말이 다 끝나지 않은 구토처럼 탁, 막혔다.



마시고, 뱉고, 마시고, 뱉고. 엉망진창인 채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그의 모습에, 더는 사람들의 화제는 그녀가 아니게 되어있었다. 그는 그것도 모르고 평상시와 다르게 혼자 들어부었다. 결국, 몸을 가눌 수도 없게 되어, 부끄럽게도 그녀에게 부축 되어 집까지 돌아왔다.

그..그뤄니까아.. 아, 안되는 데에....

기억엔 없지만, 집에 가는 도중에도 나는 계속 그녀를 걱정하는 말 가득이었다고 했다. 그녀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나를 부축했다.

하아.. 제 몸도 못 가누시면서.. 적당히 마시라고 했죠!

그녀는 지친 기색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미안해요..우..우욱..

그리고 그녀는 아무도 모르던 그의 주사가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옷은 더러워졌지만, 그 작은 인연과 더러움이 그들 사이에 작은 인연을 만들어 준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 반전이란 드문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었다. 많은 사람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내심 안심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했던 그 결심은 단 한 사람에 의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두 명뿐이라는 어색함에 벗어나려고 해도 그녀는 쉽게 보내주지 않았다. 왠지 모를 그녀의 친구들 응원을 받아가며, 자연스레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거리를 두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분명 내가 피하면 더는 사람들은 다가오지 않았었는데, 그녀는 달랐다.

도저히 털어내기 위해 그녀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고 생각하자, 그녀와 입을 맞추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눈이 올 뿐이었을. 특징이라곤 첫눈이었다는 것 빼고는 없는.

그랬던 한 차가운 날, 나에게는 더없이 차가워야 했을 날, 가슴 속 깊숙이 한 줄기 실이 그녀와 나를 이었다.



서로 고백이라는 낭만도 가지지 않은 채로 연인이라는 관계가 되었다.

아니, 그땐 이미 서로의 마음을 재확인하는 불필요한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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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계절이 몇 번 바뀌었는지 모른다. 그녀와 같이 보았던 벚꽃이 셀 수 없이 많았던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큰 싸움 없이, 이상적인 연인으로 행복하게 오랫동안 이어진 것으로 증명되어, 그 실은 절대 끊어지지 않는 견고함을 겉으로 두르는 듯했다.

항상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고, 내가 의지해주고 싶은 사람이 바로 연인이다. 회사에서의 일로 고통스러워 할 때에도 푸념 아닌 푸념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그녀에게 끝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야.'라고 곧 있으면 인정받을 것이라며 자신을 격려해주던 모습을 그는 소중한 추억으로 올리곤 했다.





"사람 일은... 정말 아무도 모르는구나.."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술잔을 걸치며 그의 상사는 그에게 말했다. 믿어왔던 노력이 소용없게 되는 건 한순간이었음을 알려주는 그 말은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오히려 상사의 말이 더 납득이 가고 있었다. 부정하고 싶어도 머리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모든 노력을 별거 아닌 일로 치부하는 것 같았다. 한 때 자신에게 가장 위로가 되었던 그 말도 더는 깊이 와 닿을 수 없다.





주전자는 아까 전부터 계속 소란스럽게 울어댔다. 스크롤 바를 넘겨, 몇 주 전의 문자 기록을 본 후에야 그는 알아차렸다.

작은 말다툼이 있었다. 말다툼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내가 일방적으로 짜증을 냈을 뿐인 문자와, 그 후 정신을 차리고 사과를 했던 기록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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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어지고, 쓰러지는 몸을 가누고 일어서 곧바로 화장실에서 속을 게워냈다. 거울을 보면 처량한 모습을 한 청년이 목에 넥타이를 옭아매듯 조이고 있었다.

바닥으로 눌러앉을 것만 같은 섬뜩함이 온몸을 감싸, 전에도 몇 번 느껴본 적 있는 혐오감이 자신에게서 느껴졌다.

당장 회사를 간다고 해도 제대로 일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여봐야 마이너스가 될 뿐이다. 차라리 회사를 그만둔다면....

초조함을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었다. 머리를 세게 치는 듯한 충격에 둔한 표정으로 멍을 때리게 되었다.



[ 7:30분



AT사와 중요한 미팅.]



핸드폰 알람에 같이 표시된 메모를 보고는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집을 나섰다.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다. 모두 나처럼 살아갈 텐데.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만약 여기서 포기한다면, 형과 부모님에 대한 배신일 것이라고,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몸 사리는 일 없이 어떻게든 나를 사람답게 키워보겠다고 일 한 형의 뒷모습이 의식과 함께 희미해져 갔다.

정신을 차리면 이미 미팅은 성공적이었다. 처음부터 계약할 생각이었는지 별다른 손을 쓸 필요도 없이 허무하게 끝난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방심할 순 없었다. 모두 완벽하고, 결점 없이 진행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런 모든 노력이 어이없게도 핸드폰의 알람에 의해 산산이 무너졌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간신히 버텼다. 하필이면 상대의 말을 끊는 바람에 기분이 나빠진 듯한 표정을 그에게 향했다.

넘치는 소용돌이에 제정신인 채 빨려 들어가는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는 문밖으로 쫓겨났다.

이제 끝이야.

사소한 실수 하나에도 무너져가는 사람들을 일생 여럿 보았기에, 그는 마른 입술을 통해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몰랐을 연인의 문자에 배신감이 솟구쳐, 의미 모를 문자를 망설임 없이 전송하고 말았다.



아마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상사가 빼먹고 두고 온 제품 자료를 백업해 둔 게 그가 아니었으면 무사히 넘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미소로 위장한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키워 온 순발력이 이런 때에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어떻게든 중심을 세워 일어선 그가 본 것은, 다시 그를 무너뜨리기 충분한 것. 어두워진 시야 가운데에 비추는 것은 자신이 보낸 메일.

부정하려 했다. 불행을 넘기자, 자신이 만든 불행이 덮쳐와, 어떻게 일으켜 세운 자신인데, 다시 무너져 바닥에 굴러버리고 말았다.

손끝이 닳아, 작게 피가 흘렀다. 지금이라도 사과하면 된다.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의 스크린을 조심히 누르고 있었다. 한 자, 한 자, 진심을 다해 사과의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그날, 그녀는 전화도 문자도 아무런 답장도 없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어릴 적엔 어머니가 곁에서 그를 보살폈다. 새벽이면 식기가 달싹거리는 소리에 일어나, 어머니가 요리하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학생이었을 땐, 그의 형이 막일을 하면서 그를 먹여 살렸다. 그 나이에도 철이 든 그를 보며, 그의 형은 안타까움을 느끼며 더욱 열심히 일을 감행했다.

그리고 지금은, 소중한 연인이 그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의지가 되는 사람들이 항상 곁에 있었다. 자신의 연인을 떠올리며 다시 그는 손을 꽉 쥐었다. 괜찮을 거라고. 우리의 연은 그 정도로 얇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모든 것들이 사라졌을 때마다, 포기하고 싶은 자신을 일으킨 건 누구였을까. 지금에 와서 되물어도 답을 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단 한 명이다. 지금 자신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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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할 수 있었다. 그녀 자신보다도 그녀를 더 잘 알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였기에, 그녀의 화가 완전히 풀렸다는 것 정도는 알아챘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말다툼일 수 있어도, 자신에게는 큰 위기였기에, 그것을 잘 넘겨서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려져 보이지 않는 벽에는 수많은 표정이 숨겨져 있었다.

책상 위에 팔을 받치고 손에 얼굴을 묻었다. 낡은 컴퓨터에서 나오는 듯한 희한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확신치 않은 망상에 시달리는 환자를 자신을 통해 보는 것 같았다. 그저 시시한 일로 인해 못 올 수도 있는 것에 괜히 과민 반응을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보지 못했던, 눈치채지 못했던 그녀의 어두운 표정을 조금씩이나마 기억해내고 있었다.

아직도 받지 않아.

전화를 내리며 힘없이 그가 탄식했다.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면,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쌓아두었던 쓰레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숙취 때문에 샀던 물이었는데 그 다음 날, 바로 출근하느라 된통 고생했던 기억이 있었다.

주우려고 허리를 숙여 잡았나 싶더니, 뚜껑이 분리되어 저 멀리, 침대 밑으로 굴러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오늘따라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뚜껑 없는 병을 쓰레기통에 던졌지만, 모서리에 맞아 다시 튕겨져 나왔다.

마른 한숨을 내쉬는 그에게는 떨어진 페트병을 주우러 갈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나 풀리지 않는 날도 있구나.

아니 생각해보면 매우 많았다. 이런 날.



예를 들면, 학생 때. 고등학교 등교 첫날부터 신발 끈을 묶다가 단추가 터진 적이 있었다. 형의 교복을 물려 입었었는데, 그는 형이 얼마나 바쁘게 살아가는지 알았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되지도 않는 바느질 실력으로 단추를 꿰매다가, 집게손가락에 물집이 생기고 교복 단추가 달려야 할 부분이 빨갛게 물들었다. 결국엔 어떻게든 달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친구들에게는 놀림감이 되어 난감했었다.

혼자 침울해져선 방에 틀어박혀 있자,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또 형이 일하러 갔다고 그는 추측했다. 예상은 반쯤 맞았다.

다음 날, 밖으로 나가면 말끔한 새 셔츠가 의자에 걸려 있고, 식탁 위에는 형이 차려놓은 듯한 밥과 일하러 간다고 알리는 짤막한 편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 편지는 형의 유서가 되고 말았다.



또 다른 날은 꽤 최근이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회사에 적응이 힘든 것도 있고, 완전 신입이었기에 이 부서 저 부서 한참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말하는 사람은 있었고, 그중에서 꽤 친하게 지내게 된 사람은 직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알고 있었던 지인이었다.

유난히 계속 꾸중을 듣게 되었던 그날은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까딱하거나, 턱을 괴는 버릇이 튀어나와 상사에게 욕을 듣고, 정말로 최악의 하루였다. 그에 비해 지인인 선배는 뭐든 유능하여 상사들이 채가기 좋은 후보 1위였다.

그날도 어느 정도 친했던 그 지인과 회사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기 위해서 찾아갔었다. 하지만 없었다. 깔끔하게 치워져서 마치 없었던 사람처럼 되어있었다.

부서의 사람들은 꺼림칙한 얼굴로 말했다. 해고되었다고 한다. 큰 실수를 해서 변명할 틈도 없이 그렇게 나갔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리가 없었다. 분명 무언가가 연루되어있었다. 곧장 이라도 그 지인을 채갈 듯 바라보던 상사들은 다른 곳에 눈을 돌렸다. 그제야 깨달았다.

부담감은 사람을 못 쓰게 만든다고 그는 생각했다. 저녁에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그는, 조금 일찍 퇴근해 지인의 집에 찾아갔다. 그리고 그는 생각을 고쳤다.

부담감은 사람을 죽인다. 정말로.





다음날은 속이 쓰렸다.



-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책상 옆 옷걸이에 걸린 넥타이를 보고 있었다. 열린 창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넥타이가 조금씩 조금씩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두 손 가득 땀이 차는 게 느껴졌다.

바람이 괘씸하게 느껴지고, 바깥에서 작게 들리는 경적 소리가 왠지 모르게 짜증 났다.



그리 큰 규모의 방이 아닌데도, 그의 방에는 창이 여러 개 있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가끔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나 새가 내려앉아 우는 소리를 제외하면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는 일을 시작한 이후, 별거 아닌 소음에도 창문을 닫았다. 정확히 말하면 익숙하지 않은 소리가 들릴 때엔 심하게 의식했다. 처음에는 고품들을 사고파는 트럭 소리에 닫았고, 사람들의 작은 발소리, 기침 소리에도 창을 닫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창문이 닫히는 일은 적어졌다.

왜냐하면, 창문이 열리는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



철컥, 소리를 내며 창문이 닫혔다. 그가 길게 손을 뻗어, 책상 옆에 있는 작은 창을 닫은 것이다. 유리창에 얼굴이 가려지고 바깥에서 들리는 작은 소음조차도 사라졌다.

도로 위의 차 소리도, 지칠 줄 모르고 울어대는 새들도, 매번 이 시각쯤에 두부를 팔러 오는 소리도, 작은 틈으로 넘어오는 바람 소리도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삭막해진 실내는 더 없이 조용했다.



고요해진 방 안에서 가까이에 있는 컴퓨터의 쿨러 소리만이 귓가에 울린다.

그는 회사 일도 더 없어, 컴퓨터의 전원을 끄려고 허리를 숙였다.



모니터 옆 스피커에서 경쾌한 알림 소리가 울린 것은 그때였다.

놀란 그는 급하게 화면을 보았다. 내게로 온 알림이 아니었다. 아마 그녀가 청소하러 왔을 때 사용한 듯했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야 그녀가 온 날로부터 꽤 많은 날이 지나있었다.

그는 침을 삼켰다. 목이 너무 텁텁해서 기침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조심스럽게 커서를 네모난 알림 상자 위에 놓고.

마우스의 클릭 소리가 확실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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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런히 놓인 책을 잘못 건들면 우르르 무너졌다. 책상 위에 놓인 책들은 높낮이가 다양해서 그것들이 한 번에 옆으로 기울어 무너지는 모습은 세찬 쓰나미와 같았다.

삽시간에 시끌벅적해진 후 다시 방 안에는 고요가 찾아왔다. 단지 눌러앉은 주전자가 쇠가 끊어지는 소리를 낼 뿐이다.

주위를 내팽개친 그는 눈동자에 삼색의 빛을 섬세하게 담고는 그저 넋을 잃었다.



주위를 맴돌던 조용한 벌레 한 마리가 갑자기 떨어졌다. 너무한 비현실감에 환각을 보는 것만 같은 충동이 머리를 휩쓸었다. 머리끝까지 솟아올랐던 피가 오히려 자신을 냉정하게 부추겼다.

화면에 띄워져 있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진이었다. 그는 길게 늘어선 채팅창의 스크롤을 올려, 대화가 시작되는 첫 날짜를 확인하는 순간 몸을 앞으로 숙였다.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역겨움에 헛구역질이 나왔다.

거짓말, 꺼져가는 작은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명명백백한 텍스트들이 눈동자 안에 새겨질 때마다 누군가 어깨를 누르는 듯한 압력을 느꼈다. 무게를 덜어주던 실이 끊어져 세게 쾅 찍어 누르는 것이라 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기 힘들 수준으로 몸이 뻣뻣해졌다.

화면이 바뀌고 비추어 보이는 모습이 많아질수록 떨림은 더 심해지고. 어릴 적 보았던, 물 빠진 강바닥에 붙어 꿈틀대는 물고기 같은 모습이 떠올랐다.

그가 기대왔던 사람의 목소리가 다른 누군가를 향하는 것을 보고 말았다. 자신이 모르는 얼굴, 자신이 모르는 목소리,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일. 믿을 수 없는 그런 절망적인 표정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찌를듯한 통증이 머리를 에워싸고, 고주파의 소음이 귓가에 울렸을 때 그는 문득 알아차렸다. 계속 겉을 맴돌던 의문을 그는 자연스레 깨달았다.



....설마 오늘 안 온 것도.

불길함은 더는 커질 수 없이 그를 침식했다. 좋지 않은 전류가 코를 타고 폐로 들어갔다. 살을 찢겨드는 역겨움이 진동했다.

흑발의 머리카락이 화면 너머로 격렬하게 흔들리며 연인 간에서나 할 법한 행위를 주고받는다. 보란 듯 입꼬리를 올리는 그녀는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회사에 치여 만나지 못했던 날이 늘어갈수록, 그녀가 남긴 기록 또한 늘어갔다. 그럼에도 그는 결코 후회라는 감정을 품지 않았다. 만나기로 했던 날에도 메시지의 기록은 찍혀있었으니까.

처음으로 이 기록이 시작된 날, 그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니까.

내리면 내릴수록 길게 늘어선 저급한 언어 속에는 사랑을 담은 표현이 난무했다. 격노하는 일도, 울음을 터뜨리는 슬픔도 없이 그는 멍하니 그 글자들을 바라보았다.



이내 그는 의자에 걸쳐지는 모습으로 추욱 늘어졌다. 증오심도 배신감도 아닌 허탈함이 가장 컸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커다란 허무감이었다.



수년 전, 뜯긴 티셔츠의 구멍에 더 큰 옷감을 덧대어 꿰맸더니, 그 옷감마저 뜯어져 완전히 입을 수 없게 되었던 적이 있었다.

매번 실패했던 바느질에 성공한 것으로 신 나 있었던 마음은 부구욱 하며 티셔츠가 찢어지기 전까진 지속했다. 아마 그날부터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다음이 있다면 그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그에게 있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그저 가끔 있는 그런 날. 순백이라는 단어에 알맞은 차가운 날이 그에게 긍정적인 의미로 다가올 수 있었던 날.

별 의미 없이 손에서 녹아가는 눈을 보고 있으면, 갑자기 앞에서 내밀어진 손에 그는 이끌리고 있었다. 그날 따라 날씨가 변덕이라, 눈이 내리다가 갑자기 쨍쨍한 햇볕이 내리쬐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손을 잡은 사람이 뒤를 돌아보는 그 모습에 가슴 속 어딘가가 따뜻해져 왔다. 날이 어두워짐에도 계속되는 의미 모를 떨림에 결국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끝내 서로의 마음이 통하고 연인 사이가 되었던 그날.



그날을 포함한, 그 이후로도 그녀와 지내는 순간들 모두가 그에게는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현실에서 도피하려 자신의 기억 굴레에서 행복한 순간을 찾으러 들어간 그때, 그는 깨달았다.

그나마 버팀목이 되었던 지난날의 기억조차도 모두 불쾌한 적색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차라리 처음부터 없었다면 좋았을 기억들이 급격히 식어감을 느꼈다.

그는 널브러진 옷처럼 의자에 걸렸다.



초점 없는 눈동자가 도달한 천장은 평소보다 검은색이 더 짙었다.



아마 지금의 자신과 닮은 모습을 한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는 어머니를 꼽을 수 있었다. 어머니를 가장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 이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슬픔이 너무 깊어지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가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들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뜨겁게 데인 부분에는 흉터가 생겨, 시간이 지나면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것만은 어머니를 부정하려 했었다.

시간이 걸려도 다시 천천히 회복해 나가면 된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처음부터 시작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한기가 서려 얼어붙을 것 같았다. 너무 차가워서, 너무 실려서, 동상에 걸린 착각이 들었다. 옆으로 비껴지듯 쓰러져 바닥에 힘없이 늘어졌다.

그 충격에 의해서인지는 몰라도, 그는 조금이나마 머리가 맑아졌다. 아직 느낄 수 있다. 이게 죽을 만큼 고통스럽다고 해도, 아직 그는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휴대폰에 손을 뻗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다.

다시 걸었다. 하지만 받지 않는다.

다시, 다시 걸었다. 몸을 움직여, 화장실 부근으로 기어가면서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발악하면서까지 그는 전화를 걸었다.



....................................여봇, 세요오....



툭,.........



전화가 걸리고 그녀의 목소리가 한번 난 이후로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화면에는 그녀 쪽에서 마이크를 껐다고 표시되었다. 마지막 결의는 너무나 허무하게 사라졌다.

검은색으로 짙어진 천장이 그를 죽일 듯 내리찍었다. 무슨 버튼이 종료인지도 모른 채, 손바닥은 휴대폰 위에 너부러져 아무 버튼이나 누르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무취 무색의 향으로 변해가듯 한기의 동상인지, 열기의 화상인지 모를 감각이 익숙해져 갔다.

깊은 뿌리가 완전히 검게 그을려, 마침내 존재도 없이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도 형상도 재 하나 남김없이 사라진 그곳을 향해, 그는 스러져가며 힘겹게 목소리를 내었다.



스토브 위에 눌러앉은 주전자는 가운데가 녹아 구멍이 뚫려 있다.



결국 맨 밑까지 도달한 그을음에 흩어져가는 의식을 뒤로 한 채, 두드리는 소리에 그는 목을 옆으로 기울여 창문을 바라보았다.



한 줄기 빗방울이 강하게 유리창을 두드렸다.










*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집을 나오고 문이 닫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크고 아름다운 눈을 서로에게 향하고 몇 초간 마주 보고 있으면 실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앗, 잠시만 기다려줘."



그렇게 말하곤 그녀는 닫힌 문에 웅크리더니 가방 앞주머니에 넣어둔 열쇠를 꺼냈다. 잠금장치가 달려 있음에도 열쇠로 문을 한 번 더 잠그는 것은 어느새 그녀가 가지게 된 습관이었다.



"끝났어?"



그는 눈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는 그가 다니는 대학교나 사교활동에서도 단연하건대 가장 미남으로 뽑힐 것이다. 자신의 표정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표정에도 내심 얼굴을 붉히며, 사랑하는 소녀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



미안, 오늘은 못 갈 것 같아.



짤막한 내용의 문자를 완성했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문자로 대화할 때에 조금 차가워진 느낌이 있었기에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괜찮네.

그녀의 옆에서 같이 걷던 그가 핸드폰을 힐끔 바라보더니 건성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망설임 없이 전송 버튼을 누르고는 바로 휴대폰을 전원 버튼을 한번 눌렀다. 검게 변한 액정에 또한 어두운 구름이 비추고 있었다.

그녀가 집에서부터 조금 걸어 나오자 하늘은 방금 보다 더 어두운 회색빛을 띠었다. 방금 자신이 나왔던 건물이 조금 삭막하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전철을 타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힘겹게 앞으로 나아갔다. 물 밀려오듯 넘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녀는 아직 놓치지 않은 그의 손을 잡고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앞서 있는 그가 자신을 당겨주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섬세한 부분에서의 상냥함에 감동하면서도 그녀는 인파가 몰려가고 난 후, 자신의 주머니를 확인했다. 이런 상황 후에는 그리 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것만큼 찝찝하고 미련 남는 게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었다.



"핸드폰이 없어..."



항상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녀는 한두 개씩 물건을 잃어버리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남자친구를 사귀며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작은 책갈피를 잃어버려도 온종일 생각이 나는 그녀였기에 남자친구가 특히 신경을 썼었다.



"주머니에 들어 있던 펜도, 지갑도 없어졌어..."



떨리는 목소리로 주머니를 뒤져도 인파에 밀려 여러 사람과 부딪힐 때에 떨어지거나 해 버린 것 같았다. 지나간 길로 돌아가서 찾아도 잘 보이지 않았다. 다시 신호등을 건너면 왼쪽 도로에서 들려온 갑작스러운 경적소리에 놀랐다. 그녀는 우울한 기색으로 그에게 기다리라고 한 장소로 돌아갔다. 분함과 불안함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도착하자 그녀를 맞이하고 있던 건 환하게 웃고 있는 장난기 가득한 그였다. 한 손에는 아까 잃어버린 휴대폰과, 다른 한 손에는 지갑을 들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가 일부러 분실물 센터까지 갔다 온 것으로 다행히 핸드폰과 지갑을 되찾을 수 있었다. 괜스레 힘만 쓴 것 같아 허탈해진 그녀는 손을 잡고 발 빠르게 목적지를 향했다.



문득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잊은 게 있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익숙함과는 다른 불안감이 마음속에 새로이 싹트기 시작했다.

옆에서 그녀를 상냥하게 이끌던 남자가 의아하게 바라봤다.



"이제 찾았으니까 빨리 가는 게 어떨까?"

"...어"



당겨지는 손에 의해 다리가 엇박자로 걸렸다. 남자 쪽으로 기울어져서는 다급하게 남자의 곁을 따라 이동했다.

손에 힘이 들어가서 조금 아팠지만 이제 거의 도착해 있었기에 그녀는 아무 불평 없이 건물에 따라 들어갔다.

이 사람과는 몇 번이고 손을 잡아도 도저히 그 감각이 익숙해질 것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그녀였다. 지금 그녀의 오른손에 쥐어진 손이 말이다.

모든 것에는 점차 익숙해지는 것도, 익숙해지지 않은 것도 있지만. 경험상 그녀에게 익숙해지는 것들에는 처음부터 그렇게 될 것이라고 느껴지는 촉이 있었다.



'자, 잡아도... 되는 건가... 요?'



그녀는 선배인 주제에 높임말까지 쓰면서 물어오는 연인의 모습이 웃겨서 한참 동안 쿡쿡 웃어댔다. 자신이 고개를 끄덕이면 그는 함박웃음을 지어, 내민 그녀의 손을 잡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갑작스레 끌어당겨져 그와 서 있는 위치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왼쪽 도로에 빠르게 다가오던 트럭이 힘차게 물웅덩이를 밟아 그를 적셨다. 이번에는 물에 적셔진 생쥐 꼴로 자신을 걱정하는 모습에, 그녀는 다시 한번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물기가 가득한 그 손만은 절대로 떼어 놓지 않았다.





휴대폰 알람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하면, 그녀의 손이 떼어졌다. 옆에 있는 그는 눈웃음을 지으며 잠깐 기다리라는 의미로 고개를 까딱하더니 휴대폰 화면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먼저 들어가게 된 집의 내부는 항상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자신의 연인과는 다르게 손 봐줄 필요도 없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외모에서부터 평소 행실, 습관까지 완벽하게 보여 조금 현실감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서 그녀는 더욱 큰 만족감을 얻어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손을 대는 것을 싫어하는 게 아닐까?

참 의지하는 곳 없는 사람이구나.

혼자 의문을 가지고 혼자 결론을 내려, 더는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이 사람의 여자친구는 조금 외로움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새로운 의문이 피었다가 사라졌다.

잠시라도 깊게 생각하면 아까처럼 불안감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그럴 땐—'



'그럴 땐, 너의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려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밀접한 사람들을 떠올렸다. 가족, 친구, 그이.....

전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던 이 방법이 지금은 왠지 통하지 않았다.

애매해서 그런 것일까?

그녀는 탄식했다. 소중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너무나도 많았기에, 또한 자신이 소중하다고 하는 것이 과연 그녀 자신의 진심인지 알 수 없기에.

처음 그녀가 이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위로하듯 그 말을 하면서도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그녀를 향해 살며시 눈꺼풀을 올렸다.



'누구를 생각했어?'



'너, 바보야.'



달콤했던 기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알록달록 떠오르는 기억이 검게 변색했다. 아니 가려졌다.

가려진 것도 아니면 사라졌다.



회피했다. 고개를 돌리며 부정했다. 그의 탓이라고 떠넘겼다. 끝내 그녀는 알지 못했다.



-



침대에 오르면 두근거림이 피어올랐다. 한 꺼풀씩 정성스레 벗겨지고 나면 자신이 꽃이라도 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온도는 한계점까지 닿아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아마 끝나는 건 준비한 물이 모두 사라지는 순간일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이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대로도 좋다고 진심으로 느꼈다. 아니,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다.



화끈해진 얼굴에서는 행위 내내 열이 내려가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이 시간이 자신의 공간을 채워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 빈 공간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고.



터무니없는 변명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는 것은 이미 전부터 깨닫고 있다. 그러나 쾌락이 사라져도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되지도 않는 변명에 배덕의 죄책감을 덜었다. 그 후로는 쭉 그런 행동이 이어졌다. 이번에도, 저번에도, 그리고 쭉.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현실을 부정하고 자기만족을 이끌었다.



아까 전화.... 왔었지?

응, 직전에 음소거돼서 괜찮아. 걱정했으면... 미안해?



역시나 이 사람은 평소와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항상 상냥하다. 그러나 말끝을 올리며 미안하다고 하는 것에 과연 진심이 얼마나 섞여 있을까, 하고 그녀는 속으로 혼자 의문을 가졌다.

그와 동시에 다른 한 사람, 그녀의 연인이 떠올랐다.



-



건강염려증이라도 걸린 것인지 술을 피해 다닌다고 소문난 선배를 처음 만난 날, 그는 소문과는 다르게 엄청난 속도로 소주를 들이붓고 있었다.

작당 모의라도 한 건지 그녀에게 계속해서 쏠리던 남자들의 시선이 어느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뀌어 그에게 향하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몇 번이고 화장실에 다녀온 그를 부축해 집에 데려가야 했다.



'죄송합니다..... 미안... 합니다.... 미아하은...'



생각 이상으로 가벼운 몸을 어깨에 메고 한 걸음 한 걸음 이동하며 번거로운 일이 되었다는 푸념을 늘어놓자 술에 취해있던 선배가 말해왔던 것이다.



'하아.. 제 몸도 못 가누시면서.. 적당히 마시라고 했죠!'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미안해요..우..우욱..'



취한 선배는 주로 그녀에 대한 걱정이나 사과를 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알지 못했던 그의 주사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조금 기쁜 감정이 들었었다.

이후로도 몇번 둘이서 술자리를 가질 때마다, 그가 술을 조금 무리하게 먹었나 싶으면 어디든 간에 머리를 숙이고 사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정말로 잘못했다고 생각할 땐,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진정성 있게 사과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 남을 탓하지 않는 습관을 지닐 수 있었다.

적어도 책임감 있게 행동했다고 생각했다.



똑같은 사과인데도 미묘하게 달랐다. 그녀의 옆에 있는 남자는 상냥한 사과만을 해 왔다. 귀찮은 개를 달래는 것 마냥. 그리고....

또 다른 점이 무엇일까. 그녀는 자신에게 물었다. 침대 위에서 바라본 이 남자의 방은 깨끗했다. 그냥 무난하게 깨끗했다. 괴리감이 느껴졌다. 어디선가 안쪽으로부터 이상하게 저릿한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



그래도, 네가 지금 선택한 건 나잖아.

깨부수듯 그녀의 머릿속에 그런 환청이 들렸다. 눈을 떴다.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불안감에 손이 떨려왔다.

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침부터 계속된 혼동 때문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많은 생각을 했던 하루였다.

자꾸 떠오르는 모습에 혼자 속으로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변명을 하기 바빴다.



그녀 자신이 선택한 것이다. 그러니 괜찮다..... 라는 말은 너무나 달콤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 항상 기대왔다. 그러니까 오늘도.....





아아, 이럴 땐 항상 그가 나를 껴안아주곤 했었는데.

그녀는 떠올렸다. 자신의 연인의 따스함을, 그리고 행복한 생각 속에 빠졌다. 이런 행위도 솔직하게 사과하면 용서해 줄 것이라고. 아니, 혹시나 모른다. 그가 나를 붙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



중간에 끊어져 흔적조차 남지 않은 따스함에 그녀는 자신의 명치 쪽의 옷감을 몇 번이고 끌어당겼다.



-



전화를 보면 많은 부재중 기록이 적혀 있었다.

연인과는 다른 관계인 그 남자의 집에서 급하게 나오면서도 휴대폰을 놓지 않았다. 부족한 체력에도 쉴 새 없이 뛰었다.



한창 멋 부리기를 하던 때에, 연인이 구매하고 신겨주었던 운동화를 신고서 그녀는 뛰었다.

건물을 나서자마자 굵직한 빗방울들이 땅바닥에 내리치기 시작했다.



늦어버렸어.

그녀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뺨에는 빗방울이 떨어져, 소스라치게 차가운 감촉이 전해져왔고 비로소 그 뜨거움이 식었다.

가슴 속에서 느껴지던 따스함이 사라진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최대한 냉정해야 했다. 둘도 없이 소중한 자신의 연인을 이유도 알 수 없이 잃어버릴 순 없었다.



물웅덩이를 밟고 넘어졌다. 그녀는 상당히 크게 넘어져 바로 중심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모르는 척 지나갔다.



"괜찮아..? 그러게 조심하지, 자 업혀라."



그녀를 향해 걱정스러운 얼굴로 손을 내밀어 주는 연인의 모습이 있었다. 곧바로 뭉클하게 벅차올라 손을 잡았지만, 그녀의 손은 허공을 휘저을 뿐이다.

팽개쳐진 우산을 챙긴 후, 땅을 짚고 일어나 더 빠른 속도로 그녀는 뛰기 시작했다. 그저 어느 때와 같이, 문을 열고 희미하게 웃으며 반겨줄 것 같았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면 별거 아니더라도 바로 뛰어가 보는 사람이거든 난. 가끔 있어, 방금 같이 불길한 예감이 들 때가."



말도 안 된다며 그녀는 손사래 쳤다. 하지만 우연히도 그가 그 말을 한 것은 그녀가 작은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였다. 작은 부상이라 따로 전화하지 않았지만, 동기를 수소문해서 찾아낸 것이다.

그가 그때 느꼈던 것이 불길한 예감이었다면,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것은 뭘까?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로 그녀는 나아갔다.



-



빗소리에 주위 사람들이 대화하는 소리 따위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빗속의 정적, 그 안에는 오직 물이 마찰하는 소리만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산은 거센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닌데 옆으로 꺾여졌다. 불안감을 애써 몰아내려고 그녀는 담담히 비를 맞으며 앞서 보이는 건물의 앞으로 다가갔다.



「잠시만 비켜주세요! 환자 지나갑니다!」



그를 만나야 한다는 강한 충동만이 그녀를 움직였다. 뛰어들어가는 건물 앞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아무렇게나 우산을 내던지고는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뚫고 지나갔다. 그녀는 몸이 식어가기는커녕 태어나서 가장 빠르게 뛰는 심장에 얼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조금만 더 빨리, 아니 애초부터 약속을 어기지 말아야 했다. 처음부터 눈을 돌리지 말았어야 했다.



「말도 마, 그 의젓했던 학생 기억나? 그 학생 집에서 글쎄…」



잘못했더래도 먼저 깨닫고 진지하게 사과해 준 그는, 자신을 믿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고드름이 되어 날카롭게 자신을 찔렀다. 주위에서는 실려가는 환자를 가십으로 삼고 있는 것 같았다.



「창문도 다 닫혀있어서, 신고가 늦었다고 들었는데... 혹시 몰라, 자살한 걸 수도 있잖아」

「하긴, 최근에 얼굴이 창백해져서는 쯧쯧... 가엾어라.」
























아니야...!













-



소란스럽다. 비에 젖은 휴대폰을 옷으로 닦아가며 어떻게든 그에게 전화를 건다. 받지 않는다.

다시 걸어보지만, 또한 받지 않았다.



하지만, 빗소리와 구급차 소리가 섞여 소란스러운 가운데 약간의 다른 음색의 소음이 섞여 들어온다.

아냐, 들리면 안 돼.

그녀는 귀를 막고 부정한다. 그럼에도 손으로는 그에게 다시 통화를 걸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구급대원과 함께 소리는 더 선명히 그녀의 귀에 박혔다. 철렁, 내려앉는 심장과 함께 순식간에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다시 한번 현실을 부정하는 그녀는 시선과 손을 휴대폰으로 옮겼다. 물방울 때문에 마음대로 조작되지 않는 휴대폰을 건드려 아무 버튼이나 막 누르기 시작했다.

눈물인지 빗방울인지 모르는 액체가 뺨을 타고 휴대폰으로 계속 흘러내렸다. 비는 조금 전보다 훨씬 잠잠해졌지만,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의 수는 많아져만 갔다.



그가 사라진다는 생각만으로, 그녀는 격렬하게 불안해져, 끝에는 허무한 기분이 된다.

그저 사라진다는 생각만으로, 눈물이 터져 나와 멈출 수 없게 된다.

자신이 행했던 배덕의 행위가 그 이상이 없을 정도로 역겹게 변해간다. 행복하게 칠해왔던 추억들이 검게 물들어진다.



제대로 눌리지 않는 스크린을 아무렇게나 누르며 눈앞으로 지나가려 하는 인영을 애써 무시했다.

그 순간, 갑작스럽게 휴대폰에서 물을 먹은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대 소리를 자세히 들으려 했다.



............여봇, 세요오.............



그리고 들린 것은 자신의 목소리.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어깨를 떨며 손에 쥐어진 휴대전화를 꽉 쥐었다. 던져서 없애버려야 한다는 충동을 억제 하고 있었다.

나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사랑하는 연인에게 무슨 목소리를 들려준 걸까. 자신에게 되물어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휴대전화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가끔 치직대는 소리뿐.



고개를 들 수 없다. 봐서는 안 될 것이 눈앞에 있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조이는 심장 탓에 손에 힘이 들어가버린 그녀는 귀에 가져다 댄 전화를 더 세게 귀에 붙였다. 그러자 조금 전에는 들리지 않던 작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



......



......



......미,안...... 미안해....





너무나 익숙한, 하지만 조금 다른 그의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울림과 동시에 그녀는 반사적으로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다. 제발 돌아와 달라고, 제대로 이야기하면 분명히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던 그의 마음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   」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온몸을 통해 흐른다. 입을 통해서 나올 수 없는 그런 처절함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그의 얼굴을 나는 얼마 만에 보았던 것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저리 마르고 고생할 때까지 나는 무엇을 한 것일까.

힘들어하는 그를 생각하지 않고, 상처투성이였던 그에게 나는 얼마나 더 상처를 준 것일까. 그렇게 힘들어하는 사람을 두고 나는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무엇으로 그가 미안해하는지, 그가 마지막으로 말한 '미안해'의 의미를 짐작한 그녀는 절망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얼마나 괴롭게 해버린 것일까.



내가 약속만 제대로 지켰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데.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던 일인데.

함부로 실망하고 삐쳐있지만 않았으면, 진심으로 그와 마주했으면.

마주할 수 있다면. 무릎 꿇고 용서부터 빌 텐데.





거기에 그 무엇보다도 그녀의 가슴을 옭아맨 것은.



숨이 막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텐데도, 죽어가는 고통 속에서 마지막 희망으로 건 전화를 자신이 받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한번, 두 번, 세 번, 몇 번이고 청한 도움을 나는 무시했다. 마침내 걸린 전화에서, 그는 인사말 한 마디를 끝으로 들리지 않게 된 나의 목소리를 기다리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 미쳐버리는 것 같았다. 당장 자신도 어디론가, 떨어진다든가 하여 죽어버리고 싶었다.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 돌아와 주세요......."



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보며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제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선배니까요......... 그러니까 제발...."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눈시울을 적셨다. 청색으로 물든 하늘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음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비가 내리지 않아도 반드시 퍼붓고 있다.



그래도 만약, 만약에라도

한 컵의 물이 끓을 시간만이라도 더 있었다면.



끊이지 않는 미련은 언제까지나 그녀의 목을 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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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여기까지가 끝.
Ntr 내상입고 썼는데, 이런 식으로 어둡게 써야 납득이 되더라.
꼭 쓰고 싶었던 스토리인데 너무 가독성이나 개연성이 떨어지게 써버렸음.

참고로 여주가 남주에게 못 갈것 같다고 메세지를 보낸 건 네트워크 문제로 전송되지 않았음.

그리고 저 바람남은 바람 핀 거 들켜서 여주 말고 현 여자 친구 부모에게 매장당해 인실좆.

남주는 원래 죽는 엔딩, 생존 엔딩 두개로 나눴었는데 그냥 애매하게 끝냄.

하지만 살았다고 하더라도 기억 잃고 여주 얼굴 보면 거부반응 심하게 오는 엔딩으로 구상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