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똑 똑-

"누구세요?"

"아서 모스 경위 앞으로 온 전보입니다."


"아서."

"으으음..."

"이봐, 잠꾸러기! 일어나 봐요!"

메릴이 자고 있던 나를 흔들어 깨웠다.

"으음... 옆에다 두고 가요..."


두 시간 후, 잠에서 깨어난 나는 메릴이 차려준 늦은 아침을 먹었다.

"아, 그래서 아까 온 전보는 뭐였나요?"

"아직 안 열어봤는데요."

"중요한 소식일 수도 있는데 그걸 아직도 안 봤단 말이에요?"

"하하... 말 나온김에 지금 확인해야겠네요."

---

"....."


전보는 요크에서 온 것이였다.


요크에서

앨리스 그린이

아서 모스에게 접선 요청

장소 런던 피카딜리 카페


"애, 앨리스가 갑자기 왜...?"

"앨리스?"

"... 아, 고향 친구입니다."

"흐음... 지금 설마 절 속이는건 아니겠죠?"

메릴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날 째려봤다.

"메릴 씨가 생각하는 그런거 아닙니다. 사실은, 전 앨리스를 별로 보고 싶지도 않다구요."

"음...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왜 당신을 만나자고 한걸까요?"

"글쎄요..."


그냥 무시해버릴까?

... 아니 잠깐만... 정말로 급한 일일수도 있잖아...


...


"... 일단 한 번 만나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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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부두 세관원을 매수한 다음 

약속한 시간에 맞춰 피카딜리로 향하였다.

앨리스 그린...

무슨 꿍꿍이인걸까.

약속 장소인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앨리스가 앉아있었다.


"딱 시간 맞춰서 왔네."

"용건만 말해. 무슨 일이야?"

"... 오늘 날씨 좋지 않니?"

 "헛소리 말고. 용건만 말하라고."

"....."

앨리스가 잠시 나를 말없이 째려보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네가 무슨 임무를 수행하는지는 다 알고 있어..."

"뭐?"

"주요 공장 노조 내 공산주의자 감시 및 색출. 맞지?"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다. 이건 비밀 임무인데.

얘가 이걸 어떻게 알고 있지?

어디서 정보가 새어나간걸까?

"역시 넌 어릴적부터 표정 감추는 걸 참 못했어... 그렇지?"

앨리스는 딱걸렸다는듯 피식하고 조소를 날렸다.

"여기 오기 전까진 리버풀에서 날 감시했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리고... 런던으로 휴가를 온 이유도 알고 있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제임스가 있는 곳을 알려줘."

앨리스는 티스푼으로 커피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그건 왜지?"

"그것까진 네가 알 필요는 없고..."

"싫은데?"

앨리스는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 멈추고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

"싫. 다. 고."

나는 앨리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힘을 주어 말했다.

"싫다면... 상관없어. 제임스가 보낸 전보도 입수했는데 어디있는지도 못찾을까봐?"

"....."

"후훗... 공산주의자 정보원도 꽤 쓸만하지 않니?"

"됐어. 난 이만 간다."

뭔가 앨리스에게 계속 말려드는 느낌이 들어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등 뒤로 앨리스가 째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나는 곧장 경시청에 들러 레스터 경감에게 보고를 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정보가 새나간 모양이군..."

"이미 제가 언제 어디서 그들을 감시했는지까지 파악했습니다."

"어디서 정보가 새나가는건지 알아내야 할텐데..."

레스터 경감은 연신 파이프만 뻑뻑 피워댔다.

"아 그리고, 어찌됐든 자네는 이제 감시 임무를 못하게 됐구만."

"네, 그렇게 됐습니다."

"일단 다른 보직으로 발령되기 전까진 가서 좀 쉬게나."

"알겠습니다."

---

"이봐 재키!"

"아, 네 경위님!"

"이 편지... 적어놓은 주소로 좀 가져다 줄 수 있나?"

"편지 말입니까? 이런건 우체국에..."

"우체국에 맡길 수 없는 편지라서 말이야. 직접 좀 전해주게."

"예 뭐, 알겠습니다. 순찰 중에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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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에게

방금 앨리스가 날 찾아왔어.

어디서 정보가 새나갔는진 모르지만

네가 나한테 전보를 보냈다는 걸 알고 있어.

무슨 꿍꿍이인진 모르지만, 아무튼 조심해.

공산주의자들은 굉장히 위험한 녀석들이야.


"....."

제임스는 경관에게서 온 편지를 읽어보며 생각에 잠긴듯 하였다.

제임스도 공산주의자들의 파괴 공작 소식을 신문으로 봐와서

그들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앨리스가... 지금 런던에 있다고..."

자신이 있는 곳을 꽁꽁 감춰둔다 한들

결국 언젠가는 위치를 들킬 것이 뻔했다.

그들의 정보력은 생각보다 뛰어난 수준이였다.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던 제임스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올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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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의 집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저녁을 먹고

거실에 앉아 아침에 보지 못한 신문을 읽었다.

"음? 이게 뭐야?"

요크의 석탄 야적장에서 자동차 공장 회계 담당자가

죽은 채로 발견됐다는 기사였다.

사인은 목에 그어진 자상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가만 있어봐... 이 사람 혹시..."

내 기억이 맞다면 죽은 회계 담당자는

그 때 앨리스와 뒹굴고 있던 그 삐쩍 마른 사내였다.

기사에 쓰여진 이름과 기억을 대조해봤더니 역시나 그 사내였다.

"후우..."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갑작스러운 앨리스의 등장.

뜬금없이 살해당한 회계 담당자.

두 사건 사이에 뭔가 연관성이 있을까?


똑 똑 똑 -

"누구세요?"

"메릴, 기다려요. 내가 나가볼게요."

문을 열었더니 전에 플랫폼에 마중나왔던 남자가 서있었다.

"모스 경위님?"

"그... 올리버 씨 맞죠?"

"기억하고 계시네요."

올리버가 씨익하고 웃어보였다.

"프리드먼 씨께서 급한 일이라고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옷 좀 입고 오겠습니다."

"아서! 이 밤에 어딜 가는거에요?"

"잠깐 제임스한테 갔다 올거에요! 문 잠궈요!"


"편지가 제대로 도착했나 보군요."

"예, 그래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모시고 오라 한겁니다."

"하아... 모처럼 푹 쉬려고 했건만..."

올리버는 런던 거리를 가로질러 차를 몰았다.

이미 늦은 밤이 되어 거리는 조용하고 어두컴컴 하였다.


부와아아앙-


하는 소리와 옆 도로에서 트럭 한 대가 빠르게 돌진해왔다.

"뭐, 뭐야!"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트럭에 부딪혀 우리가 탄 차가 전도됐다.

"으으..."

"올리버 씨! 괜찮습니까?"

"네...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올리버 씨나 나나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보였다.

다만 부딪힌 충격에 놀라서 그런지 몸이 조금 쑤셔 왔다.

"안에 있는 놈들 다 끌어내!"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우리를 차에서 끄집어냈다.

그들은 우리가 다쳤는지 한 번 훑어보고나서

별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우리를 일으켜세웠다.

"배짱도 좋군. 대영 제국 경찰관을 공격하다니."

"혁명 완수를 위해선 이 정도야."

앞에 서있는 건장한 사내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 너희들 공산주의자들이구만, 맞지?"

젠장.

"앨리스! 너도 여기 있는거 다 알아! 이리 나와!"

내가 소리치니 무리들 뒷쪽에서 앨리스가 걸어나왔다.

역시나 이건 앨리스가 꾸민 짓이였다.

"잠복해있길 잘했네, 결국 제임스의 부하도 잡아냈고"

"지금이라도 물러난다면 없던 일로 해줄게."

"아하하...! 지금 상황 파악이 안돼, 아서? 당장이라도 너희 둘을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릴 수도 있다구?"

"... 자, 잠시만요!"

올리버 씨는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겁을 먹은 모양이였다.

"알려드리겠습니다! 프리드먼 씨가 계신 곳을요!"

"올리버 씨! 그게 무슨 소리에요!"

"일단 살고 봐야할 거 아닙니까, 경위님!"

"우리 경위님과 다르게 현명하시구만, 그래서 어딘데?"

"리젠트 운하 야적장 앞 양조장입니다..."

"고마워, 덕분에 드디어 제임스를 만나겠네?"


탕-!


격발음과 함께 올리버 씨가 그대로 뒤로 고꾸라졌다.

머리에 뚫린 구멍에서 선혈이 푸슛- 하고 솟구쳤다.

"이런 씨발! 세상에..."

"걱정마 아서, 옛 정을 생각해서 너까지 죽이진 않을테니까."

앨리스의 부하들이 올리버의 시체를 트럭에 실었다.

"너..."

"왜 그렇게 보는거야?"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주먹이 저절로 꽉 쥐어졌다.

"내가 반드시 감방에 잡아쳐넣을거야..."

앨리스는 날 보며 빙그레 웃었다.

"글쎄, 일단 제임스 좀 만나고 나서 생각해보자."

앨리스의 말이 끝나자 뒤에서 누군가 내 머리에 포대를 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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