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중세판타지 느낌 나는 세계관에서 사는 후붕이랑 후순이는 번성하는 왕국의 왕족인거임. 그렇지만 왕족 중에도 급이 있는 법인데 후순이랑 후붕이는 왕족 가계도 중에서 끄트머리에 있는 말석 왕족이라 왕국의 왕좌와는 거리가 먼 친구들임. 그런 집안의 사촌 사이인 후순이와 후붕이는 서로의 약혼 상대로 점찍어져 있는 상태고 둘도 서로에게 호감이 있어서 어릴적부터 풋풋한 사랑을 키워옴.


근데 이 두사람의 성격이 정 반대임. 후붕이는 귀족답지 않은 성격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자기 분수에 만족하고 야망이 없는 온화한 사람이었는데, 흐순이는 향상심도 꿈도 야망도 끝을 모르는 사람이었음. 둘이 놀러다니면 항상 후순이가 후붕이를 끌고다니고 후붕이는 후순이에게 맞춰주는 식이었고 그런 성격을 대변하듯이 후붕이는 정치력이나 일신의 무력-검술이나 마법같은-에서 별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함. 반대로 후순이는 타고난 재능과 끝없는 향상심으로 비상한 두뇌와 강대한 무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능력은 왕국의 위기 상황에서 큰 빛을 발함.


뭐 마물이 침공했다던가 이민족이 대거 침입해 온다던가... 구체적인건 중요하지 않고 암튼 위기를 맞은 왕국이었지만 그 위기는 후순이에게 오히려 신분 상승의 기회였고 무늬만 왕족이던 군소귀족 후순이는 자신의 재능을 통해 그 이름을 널리 알리고 끝내 왕국의 구원자 타이틀을 얻게 됨. 외모도 수려한데 카리스마 넘치고 무력도 특출난 후순이는 왕국의 사람이라면 좋아하지 않는 이가 드물었음.


그 소식을 들은 왕국의 둘째 왕자, 그는 후순이처럼 야망찬 인물이었고 자신의 형인 첫째 왕자를 축출하고 자신이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부왕을 향해 반란을 모의 중이었음. 그런 둘째왕자에게 후순이는 왕국의 구원자라는 명분과 왕국 최강자라는 실리를 갖춘 완벽한 여인이었고 그는 후순이에게 접촉함.


왕자의 컨택은 후순이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였음. 자신이 아무리 강하고 명성이 드높더라도 자신의 한미한 집안은 그녀의 야망을 충족시키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 나름대로 세력이 있는 둘째 왕자의 손을 잡는것밖엔 자신이 더욱 높은 지위를 얻는 지름길이라 판단함. 결국 후순이는 여왕이 되기 위해서 후붕이와 파혼하고 둘째 왕자와 결혼하여 그의 반란에 명분을 실어줌.


백성들의 지지와 후순이의 활약으로 손쉽게 반란을 성공시킨 둘째 왕자는 왕위에 오른 후 자신의 경우처럼 왕족들이 왕위를 주장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자신의 친척들을 숙청하기 시작함. 여러 왕족들이 영지와 재산을 몰수당한 채 왕국을 떠나게 됐고 그 중에는 후붕이의 가족들도 있었음.


평생의 염원이던 왕좌에 앉고 후환까지 처리한 왕자는 성취감에 젖은 채 방탕의 나날을 보냈지만 그와 다르게 후순이는 아직도 만족하지 못했으니... 그녀의 야망은 자신이 왕좌에 앉는 날까지 멈추지 않았음. 결국 후순이는 자신의 남편을 가차없이 해치우고 왕위를 빼앗음.


왕자를 치워버리고 왕위에 오른지 몇년이 지난 후, 후순이는 그렇게 갈망하던 왕위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함. 자신이 왕위에 오른 과정이 과정인지라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한채 귀족들을 견제하고 주변을 경계하는 나날을 보내는 것에 지쳐버린 거임. 그럴때 문득 떠오르는 어릴적의 추억... 바보같이 자신에게 헌신하던 후붕이와 보내던 때가 너무나도 그리워짐. 아무 걱정 없이 후붕이에게 어리광 부리던 날들이 후순이의 뇌리에 계속해서 맴돌고 후순이는 추방당했던 후붕이의 가족을 찾기로 마음 먹음.


왕의 권력은 수년전 추방당한 일가족을 찾아내는 데에는 충분했고 후붕이가 있는 곳을 알아낸 후순이는 정말 오랜만에 자신의 지위에 감사함을 느끼며 신분을 숨긴채 그곳을 찾아감. 추방당한 후 궂은일을 많이 했는지 앳된 느낌은 사라지고 건장한 청년이 되어있는 후붕이를 본 후순이는 어릴때 느꼈던 사랑이 다시 마음을 간지럽히는 것을 느낌. 왕자와는 문자 그대로 정략적 관계였던 왕자에게는 뛰지 않았던 심장이 후붕이를 보니 다시 뛰기 시작한 거임.


후순이가 후붕이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행복한 고민을 하던 찰나, 어디선가 후붕이를 부르는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옴. 그러자 후붕이는 그 목소리의 발원지로 한달음에 달려간 다음 한 여자아이를 안아듬. 그 옆에는 그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시골 처자가 후붕이의 팔을 감고 밝게 웃음을 지어보이는 거임.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그녀와 사랑하는 후붕이가 붙어있는 광경은 후순이에겐 용납될 수 없었고 그들에게 다가가려는 그녀의 귀에 한 단어가 들려옴.


"아빠!"


후붕이가 안아든 여자아이가 후붕이를 부르는 단어.

두 글자의 짧은 단어였지만 후붕이와 그 모녀의 사이를 정의하기에는 충분한 말이었음. 그리고 후순이의 사랑으로 부풀어오르던 가슴을 난자해놓기에도 충분했음.


자신에게 맹목적으로 바쳐지던 사랑이 이제는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것에 분노의 감정이 피어오르려는 찰나- 그 사랑은 자신이 야망에 눈이 멀어 내버린 것이었음을 깨닫고 슬퍼하다가


다음날 일하러 나온 후붕이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는 지금의 아내를 버리고 자신과 결혼하면 왕이 될 수 있다며 회유를 해 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후순이가 이 남자를 그리워하게 된 이유였던,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그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성품에 따라 그녀의 제안은 매몰차게 거절당해 버리고


심지어는 자신의 이름조차 불러주지 않고 일국의 왕을 만난 평민으로서 깍듯이 존대하는 후붕이의 모습에 자신이 평생 원하던 왕의 자리에 대한 깊디깊은 회한에 빠지는 후순이 나오는 소설 있으면


넘나 재미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