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 기념으로 써봄

 글 쓰는게 개빡세구나

 소설 처음이라 어색하거나 오글거릴 수 있음


 ***


 저기...


 응, 후준아. 너 말이야.


 나, 너 좋아해.

 나랑 사귀어줄래?


 ***


 나는 너무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기 시작했다.


 "뭐, 뭐라고?"


 분명히 멍청한 표정하고 있을거야.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회린이의 흰 얼굴이 점점 빨개진다. 화났나봐. 어떡하지?


 "사귀자고, 멍청아."


 "그게, 음, 그러니까..."


 ***


 회린이와 나는 초등학교 때 처음 만났다.


 전학생이 온다는 소식에 나는 잔뜩 기대했지만, 여자애라는 소식에 조금 실망했다.

 초등학생들이 으레 그렇듯이, 나 역시 같이 게임하고 축구할 남자애들이랑 이야기하고 놀았지, 여자애하고 이야기하는 친구만 봐도 놀려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의 담임 선생님은 그때까지만 해도 말 잘하고 친구도 많은 편이던 내가 전학 온 회린이를 잘 적응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회린이는 선생님의 계략으로 내 짝꿍이 되었고, 나에게는 회린이에게 학교 시설들과 여러 가지를 설명해주라는 지령이 내려졌다.


 당연히 나는 아주 불만이었다. 주위 친구들이 휘파람 불고 놀리는 것도 그렇고, 친구들과 축구하기로 한 점심시간까지 처음 보는 여자애랑 꼭 붙어있어야 한다는 것도 매우 짜증났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때의 담임 선생님은 호랑이라고 불릴 정도로 무서운 분이셨기 때문에, 선생님의 명령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점심을 먹은 뒤, 나는 남자애들이 놀리는 것을 가까스로 무시한 채 회린이의 손을 잡으려다가, 손까지 잡으면 더 놀릴 것 같아서 소매를 잡고 학교의 이곳저곳을 알려주었다.


 그 때의 회린이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길고 까만 생머리에 커다란 안경이 조그마한 얼굴의 대부분을 가리고 있었고, 언제나 손을 공손히 모은 채로 바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얼굴만큼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하얗고 깨끗했다.


 회린이를 이끌고 학교를 설명한 날 이후에도, 나는 왜인지 회린이의 조심스러운 모습이 신경 쓰여서 괜히 말을 걸거나 크고 작은 장난을 치곤 했다.

 언젠가 심한 장난을 치다가 회린이를 울린 적도 있었지만, 내 노력은 결실을 맺어서 회린이와 나는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얼마나 친했는지 다른 친구들이 짓궂게 둘이 사귄다고 놀려서 조금 어색해진 적도 있었지만 금방 같이 이야기하곤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


 결국 우리는 중학생이 되었고, 당시 회린이를 제외하면 어떤 또래 여자애와도 제대로 대화한 적이 없었던 나는 남중을 가야 공부를 할 것이라는 아버지의 주장에 남중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애초에 집도 먼 편이었지만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친해진 나와 회린이는 그렇게 3년 동안 아무런 연락도 하지 못했다.

 휴대폰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연락을 유지할 수도 있었겠지만, 교육열이 엄청났던 엄마는 나에게 폴더폰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에게 지옥이 펼쳐졌다.


 다른 남자애들보다 곱상하고 여리여리하다는 이유로 나는 1학년 때부터 갓 일진놀이를 시작한 무리에게 괴롭힘당했다. 주먹으로 맞는 것은 예삿일이고 반의 누구도 나와는 대화조차 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들도 나처럼 괴롭힘당하게 될까봐 겁나서 그런 걸까? 심지어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위치가 원래 다녔던 초등학교와 꽤 되어서인지 원래 알던 친구들은 중학교에서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나름 사교성이 좋은 편이던 나는 단 3년만에 조용하고 겁 많은 찐따가 되어 있었다.


 변해버린 나에 대해 책임감이 생기셨는지, 부모님은 나름 명문고로 알려진 같은 법인의 남고 대신에 초등학교 때의 친구들이 많이 입학한 남녀공학 고등학교로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


 그 곳, 고등학교 1학년의 반에서, 나와 회린이는 재회했다.


 회린이는 말 그대로 변해있었다. 나와는 정 반대의 의미로.

 단발로 자른 머리카락은 금색으로 물들여 놓았고, 렌즈를 꼈는지 초등학교 때 쓰던 안경을 벗자 새초롬한 눈매가 예뻤다. 작은 편이던 키도 나만큼 커져서 어른스러워 보였다. 게다가 언제나처럼 하얀 피부는 안 그래도 예쁜 얼굴이 더 빛나게 해주었다.


 회린이를 다시 보았을 때 나는 그 변화에 놀랐고 다시 만나게 된 것에 감사했지만, 동시에 나와 회린이의 대비되는 모습에 움츠러들고 말았다. 회린이의 곁에는 좀 논다는 여자애들과 잘생긴 남자애들이 이미 붙어있었고, 그 곳에서 회린이는 당당하게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조심스레 인사해보려고 했지만, 회린이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이 내 인사를 무시했다. 담임이 내 이름을 부를 때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것으로 보아서 나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 외에도 초등학교 때의 몇몇 친구들이 나를 알아보고 인사했지만, 완전히 찐따가 된 내 모습에 그 이상의 관심을 주지 않고 떠나갔다. 나는 이 곳에서도 혼자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


 입학한지 일주일도 채 안되어서 반의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친한 애들끼리 몰려다니기 시작했다. 나 정도를 제외하면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까지 같이 올라온 애들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언제나 혼자 다니는 나의 모습이 회린이를 신경 쓰이게 만들었던 것일까? 평소처럼 책상에 엎드린 채로 예전에 친하던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몰래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손으로 툭 치는 느낌이 들어서 움찔 하고 고개를 들었다.


 "후준아, 오랜만이다?"


 나를 알아보나봐! 어떡하지? 어떻게 반응해야 괜찮을까?


 "으, 응. 오랜만이야."


 회린이는 내 반응을 보고는 웃으면서 내 등짝을 때렸다.


 "야! 왜 이렇게 어색하게 굴어? 찐따같이."


 조금 상처인데.

 음, 내가 찐따라서 그래. 어쩔 수 없잖아.


 "응, 그렇지 뭐..."


 "야,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 나랑 얘기 좀 하자."


 그런 다음에도 회린이는 맨날 혼자 다니던 나와 가끔씩 이야기를 해주었다. 회린이는 주로 말하고 나는 듣거나 질문에 답하기만 했지만 너무 외로웠던 나는 행복했다. 중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입이 조금 거칠어졌지만 여전히 배려심 많은 친구였다.

 물론 회린이 주변에는 다른 친구들이 많아서 항상 붙어있지는 않았지만, 인기 많은 회린이 덕분인지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던 친구들도 조금씩 다가와서 가끔은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왜인지 예전처럼 회린이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회린이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내 얼굴이 달아올라서, 회린이가 눈을 돌려 나를 쳐다볼까봐 겁이 났다.

 비록 회린이 덕분에 다시 친구를 몇 명 사귀었지만, 나는 여전히 찐따였다.


 그렇게 며칠이나 지났을까?


 ***


 "그게, 음, 그러니까... 좋아, 나도 너 좋아해."


 가슴이 따뜻해졌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심장에서는 두근두근 대신에 쿵쾅거리는 소리가 귓가까지 맴돌았다.


 정말이야? 정말 나를 좋아해?

 후준이가 나를 좋아한다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만 같았다. 후준이의 발그레한 얼굴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나를 지켜주던 그 모습 그대로가 아니어도, 지금대로 귀여웠다.


 입 맞추고 싶다. 안아주고 싶다.

 꼭 껴안은 다음에 절대 놓아주지 않을거야.


 내 몹쓸 상상을 깨려는 듯이, 회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하하, 후준이 좆찐따새끼야. 오늘 만우절이야!"


 아...


 삽시간에 교실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후준이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히고, 그저 나를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아니야, 후준아. 난 진심이야.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줘. 다 설명할 수 있어.


 "킥킥, 병신새끼. 회린이를 넘보네."


 이럴 줄 알았으면,


 "야, 저 새끼 우는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야, 후준. 어디 가!"


 장난 같은 건 치는 게 아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