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2편



“...”


후순이는 기세좋게 핸드폰을 집어들고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후붕이의 행방에 대한 정보를 찾고자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후붕이의 행방에 대해 알지 못했다. 친하게 지냈던 홍대거리의 지인들은 물론, 후붕이가 알바를 했던 댄스 교습소에까지 연락을 해봤지만 모두 후붕이의 행방에 대해 알 수 없었다.


“대체 어디에 있는거야.. 후붕 오빠..”


후순이는 점점 우울해져갔다. 하지만 그런 후순이의 심리와는 다르게 주위에는 여전히 잘생긴 남자 아이돌, 배우, 선남선녀들이 넘쳐 흘렀다. 


하지만 후붕이가 생각난 이후, 후순이의 눈에 그런 남자들의 모습은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유명인 1, 2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재산역시 넘쳐흘렀다. 광고수입, 앨범수입 등 매일 쓰는 돈보다 통장에 새로 들어오는 돈이 더 많았다. 


하지만 후븡이가 없는 후순이에게 돈이라는 것은 그저 잉크로 찍혀나오는 숫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게다가 탄탄한 팬층까지 있었지만, 후순이는 행복하지 않았다. 


“오! 후순씨, 시간 있으면 내가 잘 아는 바에서 한 잔 하고 갈래요? 내가 쏠게요.”


“죄송합니다. 바쁜일이 있어서..”


후순이는 매일 방송국과 한남동 자택만을 오고갔다. 방송에서는 언제나 청순한 미소를 비추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뿜었지만 방송 카메라가 멈추면 다른 소속사 간부나 pd들의 추파를 무표정으로 무시하고 집으로 향하는 카니발에 올라탔다. 


집으로 돌아간 후순이는 늘 매니저가 미리 사와 냉동고에 보관해둔 슛팅스타를 꺼내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흘러가는 한강을 바라보며 오물오물 퍼먹었다. 


“..맛있어 너무너무 달아.. 너무.. 맛있어..”


슛팅스타의 아이스크림은 부드럽게 녹아 후순이의 목을 타고 흘렀고 퍼핑캔디를 하나하나 터뜨릴 때마다 후붕이와의 기억들이 떠오르는 듯했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후에는 핸드폰을 들어 후붕이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전화기록부에 저장된 후븡이의 전화번호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주인이 바뀐 뒤였고, 카톡은 후순이를 차단한 것인지 계정을 탈퇴한 것인지 후순이가 카톡을 수천개씩 보내도 답장이 없었다.


게다가 가끔씩 후순이와 찍은 셀카를 올리던 인스타그램도 모든 사진이 지워진채였고 표시되는 후붕이의 마지막 활동일은 후순이가 후붕이를 버린 바로 그 날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후순이가 우울증과 무기력증 진단을 받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후순이의 식탁에는 늘 강력한 우울증 치료제가 올려져 있었고 그 옆에는 그것을 보조해주는 무기력증 약이 포장되어 있었다.


우울증이 오니 불면증 역시 같이 딸려왔고 후순이는 밤마다 눈물로 배게를 적시다가 제 풀에 지쳐 새벽녘에 잠들곤했다.




그럼 잠이라도 편히 자야했으면 좋았으련만, 후순이에게는 짧은 잠마저 편히 잘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후순이는 매일 다른 종류의 악몽에 시달기리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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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순이가 눈을 떴을 때, 누군가가 정신을 찾은 후순이의 눈 앞에 서있었다.


“..후.. 붕.. 오빠..?”


후줄근한 청바지에 보라색 저지, 춤에 일가견이 있음이 가짓이 아님을 증명해주는 탄탄한 몸매까지, 후순이가 요 몇 달간 그리도 그리워했던 후붕이였다.


“지.. 진짜 오빠야..? 으흑.. 으흐흑.. 오빠.. 후붕 오빠..!”


후순이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는 듯 후붕이를 항해 팔을 뻗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달려가 후븡이의 따듯한 품에 안길 심산이었다.


하지만..


덥썩!


갑자기 투명한 바닥에서 기괴하게 생긴 검은 손이 올라와 후순이의 얇은 발목을 거칠게 붙잡았다. 그러자 후순이의 머릿속에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주입되기 시작했다.


“후붕오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면 안돼..? 나, 이제 성공할 일만 남았는데 오빠가 구질구질하게 나타나면 내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잖아..?”


후순이는 ms엔터의 사람들 앞에서 후붕이를 향해 차가운 조소를 내뱉으며 그 말을 날렸었다. 그 때만해도 다시는 후붕이를 볼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생각나는대로 말을 했었다.


당시 후붕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채 후순이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있었다. 


“아.. 아니.. 아니야.. 아니야..! 지.. 진심이 아닌..”


후순이는 후붕이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향한 것인지 모를 핑계를 대며 검은 손에 저항하며 앞으로 나아가려 힘을 주었다. 


하지만..


덥썩!


후순이의 저항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인지 바닥에서 검은 손이 하나더 뻗어 나와 후순이의 다른 발목을 우익스럽게 붙잡았다.


그러자 후순이의 머릿속에 악몽같은 기억이 하나 더 흘러들어왔다.


툭..


“자, 지금까지 고마웠어, 오빠.. 자, 이건 내가 주는 포상이고, 다시는 보지 말았으면 하는 성의니까, 후훗.. 더 말 안해도 되지..?”


후순이는 고개를 떨군 채 우두커니 서있던 후붕이에게 고깝게 두툼한 봉투 하나를 던졌다. 딱 봐도 한 두푼이 아니었다. 


후순이는 그 봉투를 던진 뒤, 미소를 띄우며 뒤로 돌아 그 자리를 떠났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진심이 아니에요.. 자.. 잘못했어요.. 제가..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용서해주세요.. 후붕 오빠.. 제가..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용서해주세요..”


후순이는 더 이상 검은 손들에 저항할 수 없었다. 후순이가 힘을 빼자 여기저기서 검은 손들이 뛰쳐나와 후순이의 팔, 어깨, 손목, 머리 등을 붙잡고 후순이를 바닥 아래로 끌어내렸다. 


“흐윽.. 흐윽..”


후순이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검은 손들이 이끄는 대로 바닥으로 잠겨들어갔다. 손까지 구속당해 숨쉬는 것 이외에 할 수있는 게 없어 눈물조차 닦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후순이는 고개를 숙인채 가만히 서있는 후붕이를 앞에두고 공허한 바닥속으로 끌려가게 되었고, 그 순간 고통과도 같았던 꿈에서 깰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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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허억.. 꾸.. 꿈..이구나.. 흐흑.. 흐으윽..”


후순이는 꿈에서 깼지만 진정으로 깬 게 아니었다. 그렇게 후순이의  하루가 다시 시작되었다.



일요일 아침 8시, 후순이가 점심에 있을 뮤뱅 라이브를 위해 몸단장을 할 시간이다. 후순이는 애써 밤새 꾸었던 악몽을 잊으려 노력하고 집을 나섰다. 스스로에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심호흡을 반복하며 현실에 집중하였다. 하지만 운명은 후순이가 원하는대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후순이에게 가혹한 시험이자 벌을 내려주는 심판관과도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후순이가 방송국에 도착해 여느때처럼 대기실에서 코디를 받고 발성 연습을 하고 무대를 둘러보기 위해 메인 스테이지로 나갔을 때였다. 마침 후순이의 바로 앞 차례에서 공연을 할 신인 여자 아이돌이 노래를 틀고 스탭들과 동선을 조율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보다 일찍 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후순이는 에어팓을 끼고 후붕이가 작곡한 노래를 조용히 흥얼거렸다.


하지만..


“좋아, 후진아. 연습한대로만 하자! 거기서는 한 번 더 턴을 하고..”


한 남성의 목소리가 기적적으로 후순이가 낀 에어팓의 노이즈캔슬링을 뚫어냈다. 후순이는 그 목소리를 전해듣자 그대로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이.. 목소리는.. 후붕 오빠..?!”


후순이는 획 고개를 돌렸고, 그런 후순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매니저 오빠! 저 자신있어요. 반드시 잘 해낼 수있어요. 그러니까.. 옆에서 지켜봐 주실거죠..?”


그 신인 아이돌, 후진이는 매니저라고 부르는 남자를 바라보며 부끄러운 듯 얼굴을 살짝 붉혔다. 마치 자그만한 학예회에서 연기하는 아이가 부모에게 꼭 봐달라고 부탁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럼! 저 옆에서 끝까지 지켜보고 있을께!”


남자는 떨리지만 혹여 후진이가 불안해할까봐 아무렇지도 않다는 목소리로 후진이에게 약속했다.


“...”


후순이는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저 후진이를 독려해주는 남자, 후붕이가 하던 말은 예전에 후순이가 나름 데뷔무대라고 할 수있는 자그만한 소무대에 서기 전 최종 리허설에서 해주던 말과 덩일했다. 


‘후붕오빠.. 왜.. 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거야.. 나도.. 나도.. 저렇게 격려해줬잖아.. 


내껀대..? 저 자리.. 후붕오빠한테 격려받을 수있는건 나밖에 없는데..? 왜..?’


후순이는 내적으로 혼란스러워했지만 후붕이의 반짝거리는 희망에 가득 찬 눈동자가 후순이를 항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이는 곧, 후순이에게 있어 지금 정상급 아이돌이라는 자리보다 이름없는 무명 신인 아이돌의 자리가 더. 탐나게 만들었다.


순간.. 


‘저 자리.. 가지고 싶어.. 후붕 오빠만 옆에 있어준다면 얼마가 돼도 가지고 싶어.. 가질 수 없으면..?










빼앗아야지~’


순간 후순이의 청초한 눈동자가 뿌옇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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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점점 산으로 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