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서 그랬을 수도 있다.

첩의 아들 같은 손자 같은 아이가 우는 모습에 마음이 멈춘 것처럼 답답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벨을 다시는 못 본다는 생각에 자신이 벨에게 하려고 했던 짓이 무언 인지를 깨닫고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려서 그랬을 수도 있다.

벨을 견제하고 벨에게 더러운 수작을 부리려는 첩에게 회의감이 들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첩이 생각을 바꾼 이유는 말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첩은 벨을 사랑한다.

첩은 저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기 싫다.

언제 용사가 첩에게 말했지 제발 벨을 놔두라고 벨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용사가 이런 마음이었을까?

저 아이는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서 행복하게 살아야한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고 사랑하는 아이를 낳고 그들과 함께 더불어서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아야한다.

누군가의 강요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저 아이는 불행해질 것이다.

누군가의 소유물이 되는 삶은 저 아이를 불행하게 할 것이다.

그래 저 아이는 소중한 사람이지 소중한 물건이 아니다.

그리고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허나 첩의 아이들은 그를 가질려고 할 것이다.

자신만을 사랑하라고 강요할 것이다.

그를 상처입히지 않을 것이지만 그의 소중한 것들을 상처입힐 것이다.

그러니 첩은 첩의 아이들을 '교육'할 수 밖에 없다.


사랑에 눈이 멀어서 사랑하는 자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도 있는 아이들을 교육하여야한다.

사랑에 눈이 멀어서 사랑을 강요하려고 하는 아이들을 교육하여야한다.

사랑에 눈이 멀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려는 첩의 아이들을 교육하여야한다.


솔직히 다른 인간들이야 어떻게 되든 첩이 알 바가 아니다.

저 아이들이 다른 인간을 상대로 사랑싸움을 한다면 웃으면서 응원할 것이다.

인간들은 사랑스러운 물건들이다.

허나 단지 물건에 불과한 것들이다.

남편을 제외하고는 모든 인간들은 물건에 불과하다.

남편이 되기 전에 인간들은 단지 우리의 사랑을 받아야만 하고 우리에게 정기를 줘야하는 것들이다.

첩도 첩의 사랑인 용사를 제외하고는 인간들을 물건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허나 벨은 다르다.

벨은 우리 몬무스에게는 그 의미가 다른 존재란 말이다.

소중한 것이 아니다.

소중한 존재이다.

아껴야할 것이 아니다.

아껴야할 존재이다.

그는 몬무스들의 남편과도 비교할 정도로 소중할 존재이다.

만약 저 아이가 죽는다면..... 상상도 하기 싫지만 모든 몬무스들은 광기에 찰 것이다.

마치 사랑하는 자들을 잃은 자처럼 분노에 차서 다른 자들을 학살하고 다닐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나 소중한 존재이니 저 아이들에게 소중한 것을 대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겠지.

첩은 서로에게 살기를 쏘아보내고 있는 그들을 진정시키고 데오노라의 품 안에서 잠든 벨을 침대로 옮겨서 눕혔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내 딸들을 쳐다보았다.


'따라나오렴 딸들아'

첩의 말에 딸들은 모두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가소롭기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단 말이지.

첩이 그들을 향해 약간의 살기를 담은 미소를 지으면서 손가락을 튕기니 첩과 딸들이 위치한 곳이 바뀌었다.

위험하고 날카롭고 각진 물건이 없는 방이 광활한 협곡으로 바뀌었다.

여기라면 첩도 벨이 다칠 걱정 없이 마음대로 딸들을 교육할 수 있겠지.

충분히 멀리 떨어진 곳이니 벨이 다칠 염려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충분히 난폭하고 폭력적인 훈육을 할 수 있겠지.



.................



첩은 교육이라고 쓰고 훈육이라고 읽는 것을 마치고 첩은 다시 드라고니아의 궁전으로 되돌아왔다.

아이들은 저 마다 깨달은 듯 반성하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첩이 그녀들에게 덕담이라는 쓰고 늙은이의 잔소리라고 읽는 것을 말해준 후 넷이서 천천히 되돌아왔다.


그리고 궁전에 돌아왔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갑옷이 만신창이가 되고 부서진 갑옷사이로 군데군데 뼈가 보이고 눈에서는 눈알이 흘려나오는 데스나이트에게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이야기를 들었다.

첩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딸들을 훈육하는 동안에 자고있던 벨이 인간과격파들에게 납치당했다는 소식이였다.


벨이 인간들의 과격파에게 납치당했다는 소리를 들고 후회했다.

왜 벨에게 멀리 떨어질 생각을 했을까?

왜 벨을 조금 더 신경 써주지 못했을까?

왜 이 이 아이가 인간들에게 납치당할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만약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병력을 호위로 배치했다면 납치범들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이라는 이름의 후회가 첩을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다 쓸데없는 후회였다.

그 누가 강대한 드라고니아의 궁전에 침입해서 그곳의 왕자를 납치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누가 데오노라의 사랑하는 자식을 납치할 거라고 생각할 것인가?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였고 방심이였다.


그와는 별개로 머리에서 현기증이 느껴진다.

온 몸에서 힘이 빠진다.

몸에 균형감이 사라졌다.

다리가 풀려서 쓰러지고 말았다.

스스로에 대한 후회가 다시 첩을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첩이 느끼는 주된 감각은 후회가 아니다.

분노... 순수한 분노 인간들에 대한 순수한 분노가 첩을 감싸고 있었다.

첩뿐만이 아니다.

첩의 딸들이자 일국의 왕들인 데오노라, 하트의 여왕, 델에라가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살기를 내비치고 있다.

이미 중상을 입은 데스나이트는 그 살기를 견디지 못해서 쓰러지고 말았다.

첩이 손짓하자 데스나이트가 사라졌다.

언제나 대기인력이 있는 응급실로 보냈다.

벨을 호위하는 임무를 실패했더라도 최선을 다한 자다.

저자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그른 일이겠지.

고개를 돌리니수평선 너머에서 수 만의 몬무스들이 보였다.

저마다 끔찍한 살기를 품고 뛰어오고 있었다.

순간이동으로 허공에서 나타난 용사가 보였다.

역사상 최강이라고 불리우는 용사의 눈은 첩이 그와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눈이였다.

용사의 검은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해처럼 어두웠다.


인간과격파들이 왜 벨을 납치한지 첩은 모른다.

멍청하고 어리석은 자의 생각따위 첩은 알 수 없다.

허나... 그 어리석은 자들은 첩이 했던 후회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후회를 겪을 것이다.

고통이라는 단어가 무언인지 그 누구보다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벨이 아무런 일도 겪지 않는다는 가정하의 일이다.

만약.... 아주 만약에 그 아이의 털끝이라도 상하다면 이 세상에게 다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알려줄 것이다.

마물이였던 자들의 본성이 무엇인지 이 세상에 다시 새길 것이다.

그래... 인간들에게 다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알려줄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