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언제나 도시를 꿈꾸었다.


잡지 속 도시의 모습은 언제나 세련되었고

가끔 자기 마을로 놀러 온다던 사람들의 차는 검은 색이면서도 번쩍번쩍 빛이 났다.



소녀는 언제나 도시를 꿈꾸었다.


나방이 날아다니는 시골 밤 거리는 싫었다.

손에 굳은 살이 박힌 모습도 세련되어 보이지 않았다.




"우리, 도시 가자. 같이 가자."


소녀는 소년에게 그리 권유했다.

이 작은 마을의 유일한 또래에게.

언제나 밝은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친구에게.

자기만 보면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는 이 남자에게.


"응..."


소년은 아무것도 모른 채

소녀가 웃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밝게 웃으며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저 소녀가 이끄는 대로 흘러갔다.




새하얗게 화려한 도시 이면에는

희뿌연 매연과 함께 공장이 늘어서 있었다.


소녀는 묵묵히 볼트를 조였다.

작업반장이 뭐라고 지랄을 하건 묵묵히.


시골보다는 낫다 생각하며.

도시에 한 걸음 다가갔으니까.


여기서 조금만 더 돈을 모아서 도시 안 쪽으로, 더.



소년은 묵묵히 벽돌을 날랐다.


행복하고 싶었다.

소녀가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었고

자신 역시 그 곁에서 행복하고 싶었다.


너무 힘들 때면

고향에서 흥얼거리던 노래를 중얼거리곤 했다.




돈은 티끌만큼씩 모였다.

부족했다.


소녀가 꿈꾸던 그 차는, 그 옷은, 그 집은

정말 꿈 속에서나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새벽 출근길에

그 '언니'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술에 취한 상태로

진한 화장을 하고

옆에 있는 배불뚝이 남자들에게 아양을 떠는 그 '언니'들이 뭐 하는 사람들인지


처음에는 몰랐다.



소녀가 거기서 본 것은 남자들 손에 끼워진 금 반지와 여자들 어깨에 걸친 명품 가방이었다. 잡지에서나 보던.

소녀가 거기서 맡은 것은 돈과, 비싼 술의 냄새였다.


소녀가 거기서 보지 못한 것은 입과 달리 웃고 있지 않던 언니들의 눈이었다.

소녀가 거기서 느끼지 못한 것은 위험이었다.



그저 돈 때문에

화려한 삶이 살고 싶어서


충동적으로 소녀는 그 날 일을 제끼고 술집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처음은 생각보다도 아프고

생각보다도 더 비참했다.


그리고 손에 쥐어진 돈은

생각보다도 더 많았다.




소년이 공사판 일이 끝나고 집에 들어왔을 때

소녀는 손에 돈을 쥐고 울고 있었다.


화장은 망가져 있었고

옷은 반쯤 찢어져 있었고


가방엔 돈이 가득 쑤셔박혀 있었다.


소년은 말 없이 소녀를 안아주었다.




다음날부터

둘은 얼굴을 마주보지 못 했다.


소년은 새벽 일찍 출발했다.

소녀는 저녁 즈음 일어났다.


소녀가 화장을 마치고, 옷을 걸치고 술집으로 향하면

소년은 그제서야 집으로 돌아와 씻고, 잠들었다.


소년이 일어나 다시 출발하면

소녀는 그제서야 집에 들어왔다.



행복하고 싶었다.

소년은 노래를 잃었다.


행복한 모습이 보고 싶었다.

소년은 말을 잃어갔다.




점점 일상은 익숙해져 왔다.

전혀 모르던 화장하는 방법도, 몸 꾸미는 방법도 배웠다.

처음엔 몇 방울 마시는 것도 고역이었던 양주도 잘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제대로 씻지도 않고 냄새나는, 입가에 고춧가루가 낀 더러운 남자에게도 입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행복하고 싶었다.




"우리, 고향 가자."


명절날. 휴일을 맞아 쉬면서, 오랜만에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소년은 소녀에게 그리 말했다.


노래를 잃었다.

웃음도 잃었다.

행복도 잃었다.


그녀조차 잃고 싶지는 않았다.



"돈 조금만 더 벌면, 아파트 살 수 있어. 조금만 더야. 조금만..."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소녀에게 유이한 낙은 통장 잔고와 소년의 존재 둘 뿐이었다.

통장에 돈이 쌓이면, 조금만 더 쌓이면 도시에 집을 사야지.

차도 사고, 옷도 예쁜 거 입어야지.

소년에게도 멋진 양복 하나 맞춰줘야지.

건강검진도 시켜주고, 보약도 먹이고, 멋진 모습 만들어 줘야지.


성공하기 전 까지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소년과 같이 비싼 옷 입고, 비싼 차 끌고 마을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었다.


더럽혀진 자기 몸뚱아리를 감추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진실된 행복은 모조리 잃어버린 채로, 허영심만이라도 채우기 위해서는.




소년은 서서히 질식해갔다.


공사장의 먼지는 소년의 폐를 좀먹었다.

출근할 때도, 퇴근할 때도 소녀의 모습은 흔적 뿐이었다.

어릴 적 부르던 노래는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묵묵히 소년은 시멘트 포대를 날랐다.





집에 오면, 편지 한 장 만이 남아있었다.


'앞으로 3일동안, 출장 갔다 올 게. 돈 많이 벌어 올게.'


내일은 소년의 생일이었고, 도시에 온 지 딱 5년째가 되는 날이었다.


소년은 노끈을 샀다.




소녀가 기쁘게 돈이 잔뜩 입금된 통장을 흔들며 집에 돌아와 보면

소년은 춤을 추며 소녀를 맞이하고 있었다.


다리가 떠올라 있는 채로

목에는 노끈이 감겨, 천장에 매달린 채로

소년은 그렇게 신나게 몸을 흔들며 기뻐하던 소녀를 맞이했다.



소녀가 소년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는 동안

소년과 함께, 통장에 적힌 의미없는 숫자들도 같이 춤을 추었다.




p.s. 소설은 제목 짓기가 어려운거 같음...



소재 제공 및 과거글 모음 : https://arca.live/b/regrets/25502218